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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

잘 익은 홍시는 두 개 밖에 남지 않은 이로도 넉넉히 즐기시던 돌아가신 외증조할머니를 떠올리게 하고, 팥빙수를 비비면서 어느 여름 평생 처음 먹어보는 별미에 신기해하던 할아버지의 얼굴을 지우지 못한다. 그렇게 홍합국을 마시며 궁색하던 백수시절 소주친구를 떠올리고, 닭꼬치는 어울리지 않는 음식을 앞에 놓고 사랑을 고백하던 얼굴 붉어지는 첫사랑의 기억에 겹쳐진다.

또 마찬가지로 나는 칼국수를 먹으러 가자는 사람을 만나면 그 얼굴에서 아버지와의 공통점을 찾게 되고, 종로 어느 골목이라도 지나다가 삼치 굽는 냄새를 맡는다면 쇠고기보다 생선구이가 좋다는 어머니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복날 삼계탕 그릇을 앞에 두고 그 옛날 전교조 해직선생님의 궁벽한 정이 떠올라 목이 칼칼해질지도 모른다.

군대간 아들이 휴가를 나온다는 전화를 받은 우리 어머니는 삼겹살과 초콜릿과 땅콩, 그리고 귤과 사과를 준비했고, 또 나는 할머니를 찾아뵐 때 족발을 먼저 챙긴다. 그리고 그렇게 초콜릿과 땅콩과 귤과 아이스크림과 떡볶이, 호두과자, 김밥, 그리고 술. 이런 것들과 그것이 닿아있는 또 다른 어떤 사람의 기억을 나는 잊지 못하며, 또 부모님과, 가족과, 친구와, 옛 사람들을 기억하고 만나고 상상하기 위해 또 어떤 음식들을 사이에 놓는다.

그런가하면 거르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날 듯 하루 세 번 밥상을 받는 나는 '밥값'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기도를 할 때보다도 훨씬 깊고 심각하게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너는 살아있을 가치를 가진 존재인가, 라고. 그리고 한숨을 쉬며 '밥그릇'에 대해 푸념을 하고, 게거품을 물고 '밥줄'에 대해 떠들 것이다. 또 밥통과, 밥버러지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음식이란 최고의 쾌락에 대한 욕망과 최소한의 생존에 대한 요구 사이에 다리를 걸치고 있다. 먹지 않고는 살수가 없는 법이라고 입만 열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산 입에 거미줄을 치느니 마느니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옛날 로마의 귀족들은 보다 많은 미각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 먹고 게워내고 다시 먹기를 반복했다고도 한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밥 한 그릇을 놓고도 싱글싱글 웃다가, 막막한 한숨도 쉬고, 또 코끝이 저려 눈물짓기도 하는 모양이다.

나는 음식을 통해 내가 기억하는 나, 그리고 사랑하고 미워했던 사람들의 삶으로 이어진 굴곡들을 더듬어보곤 한다. 그리고 하찮은 음식 한 접시를 앞에 놓고서도 그 삶을 다시 마주해 되씹기도 하고, 또 새로이 만들고 발견하는 오늘의 의미를 담아 음식을 만들고, 씹어, 삼킨다.

그래서 '맛있는 추억'은 '사랑했던 사람'과 같은 말이며, 또 그들에 대한 사랑고백이며, 또 다르게는 내가 살아온 길지도 않은 삶에 대한 후회이고 반성이고 사랑이며 연민이다. 그래서 맛있는 추억은 아름답고 즐거운 추억이며 마음저린 추억이고, 또 오늘 살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도 나를 보고싶은 사람이 있다면 '술이나 한 잔 하지'하고 전화를 해올 지 모른다. 그러면 나는 아마 '좋지'하고 맞장구를 칠 테지만, 혹 다음날 아침 약속이라도 있다면 '밥이나 먹지 뭐' 하고 물러앉을 것이다.

밥상 물린 지 얼마 안 돼 배는 아직 그득하다만, 또 이 사람 저 사람 떠올리다보니 맛있는 것 좀 먹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과분한 관심과 칭찬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연재는 아니라도 이곳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계속 쓰겠지만, 또 제 홈페이지(www.kes.pe.kr)나 다른 인터넷 신문(www.koreanlife.net)에서도 만나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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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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