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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서운 한마디! "이 장진구 같은 놈아!"

어머니는 원래 <가을동화>를 보셨다. 나는 그것을 내심 다행스럽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같은 시간에 하던 <아줌마>는 우리집에서 만큼은 내가 집에 거의 없는 주말의 재방송 시간대로 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을동화>의 종영과 함께 올 것은 오고야 말았다. 어머니와 함께 <아줌마>를 처음 보았을 때 인문대 대학원에 다니는 머슴아인 나는 차마 내 방으로 들어가지도 계속 있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느 장면에선가 어머니는 박장대소를 터뜨렸고 나 역시 가슴이 쓰라리면서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세미나에서 교재를 안 읽었을 때 나를 포함한 주변의 사람들이 대처하는 흔한 방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선 조용히 눈치를 보며 끝나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말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여태까지 나온 개념어를 적당히 나열하는 거다.

그 후 나는 개념어를 쓸때면 흠칫 어머니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면서 나는 서서히 개념어를 조금씩 덜쓰게 되었고 그러기 위해서 고착된 개념어가 아닌 다른 언어들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이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자 이른바 개념어 사기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한 그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욕! "장진구 같은 놈"이란 말을 안 듣기 위해서이다.

나는 '<아줌마> 작가 정성주 ―<아줌마>를 통해 이야기하는 지식인의 위선과 남성의 허위' 강연장으로 향하며 이른바 내가 요즘 있는 동네의 사람들(그러니까 인터넷 신문 S&Unow, 서울대 영문과 대학원, 영화동아리)이 불필요한 개념어를 조금씩 덜 쓰고 있음을 생각해 내었다. 물론 어머니의 커다랗고 통쾌했던 웃음소리는 계속 귀에 쟁쟁거렸다.

3월 22일 두레문예관 302호에서 열린 강연회에는 40여명의 청중들이 참여했다. 한참 주가를 올린 <아줌마>의 인기에 비하면 사람이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 신입생 환영제의 강연회는 노땅들에게는 왠지 쑥스러운 곳이고 새내기에게는 다소 지루한 곳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역시 강연회에 올법한 대학의 준지식인들은 지식인을 통렬하게 조롱한 작가에게 별로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기야 총학주최의 강연회에 간다는 것이 취직과 고시공부가 급한 이 마당에 세월 모르는 짓일지도 모르겠다.

<아줌마> 작가 정성주, "나는 지식인이 좋다"

우리 또래의 대학 다니는 아이들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정 작가는 그러니까 중년이 넘은 '아줌마' 작가였다. 펑퍼짐한 아주머니 작가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다소 깡마른 체구의 정 작가는 "서서 말하라고? 이런 아줌마들 부를 때에는 의자를 준비해야 되요. 30분만 넘으면 어지럽거든요"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성주 작가는 강연에서 시종일관 계몽을 강조하였다. "지식은 좋은 것이에요. 그 좋은 지식을 널리 퍼뜨려야 되요. 우리 아줌마들은 계몽당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어요." 지식인에 대해 냉소적으로 공격하던 <아줌마>의 내용은 간데 없고 갑자기 무슨 계몽의 이야기람?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대학가에서 계몽이라는 단어는 '대중'위에 군림하는 되먹지 않은 엘리트주의자로 낙인찍히기 쉽상인 이른바 '위험한' 단어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대중을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일수록 겉으로는 '계몽'을 위험한 단어로 낙인 찍으면서 속으로는 '계몽'하려고 덤비고는 한다.

그런 식으로 대학내에서 '계몽'이 가진 가치는 '위선' 앞에서 휘발되어 왔다. 물론 내 속에도 역시 그러한 이중적 태도가 숨어있다.

정씨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아줌마>에서) 먹물들을 야유한 것은 우리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해주지 않기 때문이에요. 야유를 할 수밖에 없어요." 즉 정작가가 바란 것은 참된 지식인상이었다.

계몽의 긍정적 의미를 되살리자는 것! 그렇기 때문에 정씨는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는 먹물들의 오만함 그리고 자세히 보니까 잘 알지도 못하고 떠들어대는 그들의 위선이 작가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큰 만큼 많이도 미웠던 것이다.

가족이여, 행복하게 배신하자

'오삼숙'(원미경 분)의 법원 앞에서 '두팔 벌린' 이혼장면은 한국의 텔레비젼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통쾌한 이혼 장면이었다. 과연 작가의 가족에 대한 생각은 어떠할까?. 정씨는 "어차피 혈연집착은 지나간 흐름이 되지 않았어요? 지금같은 형태면 존속하기 힘들겠죠"라고 운을 떼었다.

정씨는 우선 정상/비정상 가정으로 나누는 이상한 편가르기가 고쳐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것이 '행복한 이혼'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커다란 걸림돌이다. '오삼숙' 역시 아이들 때문에 '장진구'와 헤어지기를 주저하지 않았었나? 그렇다면 양육은? 가족의 형태에 대한 긍정적 대안을 제시해 달라는 질문에 정씨는 "남자들은 두팔에 동시에 아이를 들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라는 너스레와 함께 공동주택, 공동가족과 같은 형태도 있을 수 있고, 사회에서의 생존경쟁이 싫은 남자들은 집에서 양육을 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정씨는 지금의 가족정서에 대해 정면으로 비난했다. 한국적인 끔찍한 부모 사랑이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그것 때문에 자식의 자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정씨는 청중들에게 '부모님을 배신하라'고 주문하였다. 이른바 "행복한 분리선언"인 셈이다.

'교조적 가족주의'라는 '장진구 틱' 한 표현을 써서 나를 잠시 놀라게 한 정씨는 다시 "생명에 필요한 산소는 역설적으로 많이 들이킬 수록 빨리 죽는다"는 적절한 비유로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자신 역시 한국적 의미에서는 좋지 않은 부모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씨는 '오삼숙'의 대사를 통해 말했던 것처럼 아이를 낳은 것 만큼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모성'이란 이상하게 학습된 것이라고 못박는다. 그리고 "사회주의국가 방식으로 육아했으면 더 좋겠다"고 말한다. "애 낳는데 웬 밥이냐? 여성들은 밥하지 마라" 라고 말했던 마오쩌뚱을 그래서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작가 가라사대 "나는 조선일보를 안본다. 정신건강에 해롭다"

<아줌마>에서 가장 욕을 먹은 캐릭터는 사실 오일권(김병세 분) 교수였다. 사회적으로 실력있고 아주 냉정한 데다가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정치력까지 겸비한 그에 비하면 '장진구'는 연민의 정이 느껴지는 캐릭터였다.(정씨는 연민을 느끼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에 '장진구'(강석우 분), '한지원'(심혜진 분) 둘 다 무언가 줄줄 흘리고 다니고 참 사랑스럽지 않냐고 대답했다.) 오교수의 필살기 '양비론'에 대한 정씨의 태도는 아주 단호했다.

"양비론을 펴며 정신 못차리게 하는 거에요. 생각해보세요. 형제가 요만큼이라도 잘한 사람이 있을거 아니에요? 누가 잘했나 꼭 대조해야 해요." 결국 이런 것들이 가려져야 투표를 잘 할 수 있고 정치개혁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정씨는 홍세화가 번역한 <똘레랑쓰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권하며 관용의 선이 어디까지인가가 우리 사회에서 더 논의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비론의 예술가' <조선일보>에 대해 정씨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아줌마> 때문에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저는 <조선일보>하고는 인터뷰 안했어요. '여성조선' 이런거 있나요? 하여간 '조선'자 들어가는 거랑은 앞으로도 안해요. 조선일보도 안봐요. 정신건강에 해로워서."

그녀는 이번에 했던 인터뷰들 중에서 자신의 말을 그대로 쓴 것은 <한겨레>뿐이었다고 했다. 그녀가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지 않게 된 것은 몇 년 전에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던 좋지 않은 경험 때문이다.

정씨는 "제일 왜곡이 심하죠. 거의 각색을 해요"라고 표현했다. "멀쩡한 사람을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는 것이다. (참고로 '장진구'의 원래 직업은 기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기자들과 사이가 안 좋아서는 드라마를 성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상부의 판단에 의해 대학교수로 바꾸었다고 한다. 대학교수들은 단결을 안해서 그다지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그 판단은 옳았다.)

흔히 조선일보에 대해 떠도는 전설 '조선일보 정보 우위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 전설은 '중동(중앙일보, 동아일보) 성악설(性惡說)' 이론과 함께 내 주위에 있는 조선일보 옹호자의 중요한 근거이기도 하다. 극작가 만큼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는 직업이 또 어디있을까? 이번에도 단호한 한마디! "조선일보 정보가 제법 쓸만한게 많더라도 요즘 인터넷이 발전해서 조선일보의 정보력에 기대지 않아도 되요"

집요한 질문 두 가지

한편 강연이 끝난 후에 청중들은 집요하게 두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질문이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쉬운 법이지만 자기 자신의 '밥줄'과 관련된 질문에 대답하기는 힘든 법이다. 나 역시 "과외는 자본주의 교육체제의 불평 등을 심화시키는 거니까 하면 안되는 거 아냐?"라고 물어볼까봐 너무 무섭기 때문이다.

첫 번째 질문은 "작가도 지식인 아니냐?" 는 것이었고, 두 번째 질문은 "소득이 얼마냐?"는 것이었다. 명문대 출신의(정성주 작가는 이화여대를 졸업하였다.) 전문직 여성인 정씨에게 던져진 이 질문은 그녀가 던진 그 모든 말들의 근거를 묻는 것이었다.

그녀는 직업으로서의 방송작가는 지식인이 아니며 자기는 지식인들에게서 좋은 지식들을 많이 얻고서 그것을 글로 만드는 그냥 '이야기꾼'이라고 대답했다. '파장을 팔아먹는 자본주의의 말종, 방송업계'에서 지식인으로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곳을 떠나야 하는 것일테니까. 그녀의 동료들 중에서도 그렇게 방송국을 떠난 사람들이 있단다.

아주 집요한 청중 때문에 결국 공개하게 된 그녀의 원고료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물론 잘 나가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고액 연봉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인 것처럼 작가 역시 노동자이다. 그들 모두 지금 현재는 비정규직이다. 하지만 비정규직을 지칭하는 단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임시직, 프리랜서, 아르바이트, 파트타임 잡. 그 중 가장 최하급 노동시장에는 임시직이 있고, 최상급 노동시장에는 프리랜서가 있다. 그 구별은 작업의 선택권과 임금의 차이일 것이다. 프리랜서가 지식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임시직인 자신의 동료를 생각하고 자신의 사회에서의 위치를 계속 고민할 때일 것이다.

이제 정성주 작가는 비정규직이라고 하기에는 그녀의 표현을 빌면 '무언가 떳떳하지 못한' 많은 임금을 받고 어느정도 자신의 일을 선택할 수 있는 '1%'의 운좋은 작가군 즉 프리랜서의 분류에 들어섰다.

6회 쯤 방송되었을 때 '장진구'를 개과천선 시키는 것이 어떻겠냐는 상부의 제안도 잘 물리쳤다고 한다. 가짜 휴머니즘에 대항하는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의 선두에서 그녀의 행동은 하나의 본보기 였을 것이다.

어떤 드라마를 쓰고 싶냐는 질문에 자기 자신도 보고 싶어하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했다. "생계를 위해 쥐약을 넣은 과자를 팔 수는 없쟎아요. 몸에 좋은걸 팔아야죠. 그래야 계속 장사도 할 수 있는거고"라는 정성주 작가의 솔직함은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도 1%의 방송작가가 '우리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대본을 쓰는 기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것은 수많은 돈을 자신도 모르게 드라마의 광고비에 쏟아 붇고 있는 대중들에게 작가가 느끼는 '왠지 미안한 느낌'을 지우는 길이기도 하다.

생활어로 설득하기

문예관을 내려오며 '똘레랑스', '안티조선', '지식인' 등의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드라마 <아줌마>의 먹물들에 대한 온갖 야유들이 사실은 '제대로 된 지식인'을 향한 정성주 작가의 절실한 바램의 다른 표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른바 지식인 직업군 피라미드의 최하층에 있는 나는 언제나 '현대사태'를 이야기할 때도 '대학입시'에 대해 이야기 할 때도 내가 쓰고 싶은 단어만을 쓰려고 했다. 내가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며 한 번이라도 밥상머리에서 사용하는 말들을 쓴 적이 있었나?

얼마전 어머니와 아버지는 기아에 다니는 그러므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제는 현대맨이 된 매형에게 정주영에 대해 칭찬하고 있었다.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야. 난 사람이지", "저런 창의력 있는 사람을 키워줘야 하는데"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맞장구를 치셨다.

나는 반박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쉽게 풀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 방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우선 나는 아직 배신을 때릴만큼 경제적 자립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내 머리속에는 '독점재벌', '부당해고', '신자유주의' 등의 이른바 대자보용 개념어들만 머리를 뱅뱅 돌 뿐 제대로 설득해낼 '생활어'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 정성주 작가의 열띤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잘 모르는 거야. 그래서 쉬운 말은 안되는 거야."

덧붙이는 글 | 서울대 인터넷 언론 S&U Now (www.snunow.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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