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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의 공익성을 가늠하는 잣대로, 대표적인 교양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 다큐 프로그램이지만 실제로는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기 일쑤였다. 흔히들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유익하긴 하지만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휴먼스토리를 다룬 인물다큐나 일년에 한두번 특집으로 방송되는 자연다큐를 제외하곤 우리 방송에서 국산 다큐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던 탓이기도 하다. 실제로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동물의 왕국류의 자연다큐 외에는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KBS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3스페셜'이 보여준 다큐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KBS가 지난 5월 봄개편때 5개의 다큐 프로그램을 신설했을 때만 해도 일시적인 시도일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가을개편 이후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은가. 이들 다큐멘터리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 역시 환경, 문화, 시사, 역사, 인물 등으로 다양해졌다. 3D 입체화면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역사스페셜, 시청자 참여의 가능성을 열어준 VJ특공대, 다큐시리즈 인간극장 등 형식도 다채롭다.

인물다큐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것이 인생이다' (KBS 1TV 화요일 7:35)는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인생역정을 보여준다. 소재의 특성상 지나간 시간을 극으로 재현해 보여주기 때문에 정통 다큐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지만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한 삶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와 중, 장년층에게 인기있는 장수 프로그램이 되었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세계 곳곳에서 인종과 국경의 벽을 넘어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고 우리 문화를 전파하고 있는 한국인의 모습을 전해주는 '한민족리포트' (KBS 1TV 월요일 자정), 평생 나눔을 실천하고 산 할아버지가 정년퇴직 후에도 호떡장사로 나눠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모습이나 노인 부부가 서로 의지하며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풍경, 해오름이라는 노인신문을 만들어 노인들의 제2의 인생설계를 돕는 할머니들의 이야기 등 황혼의 삶을 그윽하게 보여주는 '아름다운 실버'((KBS 1TV 월요일 밤 11:40), 문화, 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 비주류에 속하지만 특유의 장인정신으로 한길을 걷는 사람들의 '마이웨이' (KBS 2TV 화요일 밤 12:20)는 TV에서 보기 어려운 보통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된다.

황금시간대에 당당히 입성한 다큐 '인간극장' (KBS 2TV 매일 저녁 8:45)은 다큐시리즈라는 새로운 시도가 재미있다. 일일연속극이나 시트콤, 뉴스가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저녁시간을 파고든 용기도 가상하지만 장기수 귀휴, 공개입양, 장애인의 꿈, 성전환자의 선택 등 모두가 함께 생각해 봐야 할 주제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이야기 솜씨도 감동적이다.

이런 일련의 KBS 다큐 프로그램 편성이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는지 가을개편을 기회로 MBC는 창사특별기획 '한국의 자연'(일요일 오전 7:10)을 정규편성했고, SBS는 VJ 프로그램 '휴먼TV 아름다운 세상'(화요일 저녁 7:15)을 신설했다. 자연다큐 프로그램에서 몇차례 공적을 쌓은 바 있는 MBC가 드디어 자연다큐 프로그램을 정규편성한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비록 일요일 아침잠을 포기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크지만.

'성공시대'(MBC 일요일 밤 10:35)와 '마이웨이'를 통해 두가지 성공방식을 비교해 보고, 역사, 환경, 시사문제에 대한 상식을 넓히고, 담장에 가려진 우리 이웃의 삶을 들여다볼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갖고자 한다면 TV 편성표 구석구석을 뒤져 골라보는 재미를 느껴보자.

매번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현란한 조명과 수다스런 잡담이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에 지쳤을 때, 항상 새로운 얼굴이지만 낯설지 않고, 잔잔한 재미와 감동이 있는 다큐 프로그램을 골라 보다 보면 어느새 휴식같은 친구로 다가앉은 TV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영화전문 주간지 <씨네버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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