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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텔레비전이 각 가정의 안방과 거실을 차지하게 된 이후부터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담은 애창곡으로 지금도 유치원에서 사랑받고 있는 노래다.

그러나 지금의 어린이들에게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거나 특별한 일이 아닌 듯 싶다. 너무 많은 곳에서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생각과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세계를 엿보는 '순수의 시대'로 재미를 톡톡히 본 <전파견문록>(MBC, 매주 토요일 밤 10시 15분)이 '어린이 출연 전문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약간의 육아상식을 곁들여 천진한 갓난아이의 재롱을 안방극장 오락프로그램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목표달성 토요일>(MBC, 매주 토요일 오후 5시 30분)의 'GOD의 육아일기'가 몇 차례 연장방송을 거듭하면서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어른들을 위해' 텔레비전에 노출된 아이들의 모습을 그저 예쁘고 귀엽게만 볼 수 있을까.

돌도 안된 갓난 재민이가 걸음마를 시작하고, 돌잔치를 맞이하고, 말문을 여는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것은 분명 감동이 있는 재미를 주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저렇게 어린 아기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도 되는 걸까?", "만 4세가 되기까지 아이들의 시력은 불안정하다는데 저렇게 강렬한 조명의 스튜디오에서 카메라 세례를 받아도 좋은 걸까?", "저 아이가 자라서 혹여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방송활동 때문에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눈도 뜨지 못한 핏덩이 갓난아이를 지켜보게 되었다. 이번 가을개편과 함께 신설된 <인체대탐험>(KBS 2TV, 매주 월요일 밤 11시)에서 '생명프로젝트-9월20일생 이비의 성장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강보에 싸여 하품이나 하고, 하루종일 먹고 자는 것이 전부인 갓난아기를 무엇 때문에 지켜보아야 하는지도 알 수 없거니와 태어나자마자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버린 아이들의 인권은 무시돼도 좋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떳떳치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린아이를 두고 '실험'을 하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SBS의 간판 가족오락프로그램 <뷰티플 라이프>(매주 일요일 오후 6시 30분)의 '신개념 행동수정 프로젝트-상상의 친구'는 야채를 먹지 않는 편식습관을 고치기 위해 부모와 짜고 거짓 우주인 친구를 만들어 아이를 설득하는 내용을 몇 주간 시리즈로 방송했다.

유치원생 아들의 잘못된 식습관을 고치기 위해 더 큰 잘못인 거짓말을 한다는 비교육적인 상황에 동의한 부모의 행동도 이해할 수 없지만, 어른들이 만든 거짓상황에 무방비로 빠져든 아이가 나중에 느낄 배신감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지 묻고 싶다.

텔레비전은 중독성이 있는 매체다. 연초부터 '사생활 관찰일기류'의 프로그램이 빈번해지면서 우려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유행은 잠재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관찰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연예인에서 일반인으로, 성인에서 청소년, 그리고 어린이로 폭이 넓어지고 있고, 관찰내용도 초기에는 특정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활동으로 국한되었으나 지금은 '24시간 생존게임'도 낯설지 않을 만큼 일거수일투족이 카메라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니 어린아이들을 비추는 텔레비전 카메라의 관심도 더욱 집요해지고 자극적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텔레비전이 갖고 있는 센세이셔널리즘의 속성이 스스로 판단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기 어려운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손길을 뻗치고 있는데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를 흥얼대던 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해, 한때의 유행으로 치부하고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인지 자문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영화전문 주간지 <씨네버스>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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