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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0일의 고독이여, 안녕.”
5·18 스무돌을 맞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가 전국 순회공연에 붙인 홍보문이다. 5·18이 무등산을 넘어 전국에서 기념된다는 뜻을 담았단다. 그럴 수도 있다. 서울 전야제가 그러하듯 광주가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7300일의 고독이여, 안녕'이란 말은 어딘가 미덥지 않다. 5·18은 모두 해결되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물론 본뜻은 아닐 터이다.

비단 민예총의 문구 때문만은 아니다. 5·18을 더이상 떠들지 말자는 싸늘한 눈길이 대다수 신문들의 지면에서 묻어난다. 부정적 사고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건설적 여론'도 나온다. 딴은 그렇기도 하다. 특별법이 마련되고 재판이 벌어졌다. 코끝이 싸하던 망월동 풍경은 달라졌다. 영화 <꽃잎>은 텔레비전을 탔다. 무엇보다 김대중 정권이 등장하지 않았던가.

하여 오월 그날은 그 `7300일의 고독'은 정녕 안녕일까. 아니다. 마땅히 그 `안녕'에 물음표를 붙여야 한다. 꽃잎의 이정현이 테크노 가수로 화려하게 나타난 모습은 상징적이다. 우리는 혹 지금 학살을 하나의 문화상품이나 기념품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텔레비전으로 5·18특집을 감상하며 우리는 그렇게 오월을 넘겨도 괜찮은 것일까.

오월의 안녕! 또는 오월의 부활?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문제는 현실이다. `두부처럼 잘려나간 어여쁜 젖가슴'이 증언하듯 그날의 핏빛 학살은 엄연한 현실이다. 새삼스런 말이지만 현실은 언제나 냉엄하다. 무엇보다 오월이 제기한 두 핵심적 과제는 미완으로 남아 있다.

먼저 미국의 존재다.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오월은 온몸으로 드러냈다. 분단체제와 독재정권 쪽에 미국이 서 있다는 역사적 진실을 피투성이로 증언했다. 저들은 1950년 충북 영동에서 민간인을 마구 학살했음은 물론 80년 오월의 학살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우리 겨레를 `들쥐'로 비유한 미국 장군의 인식은 그대로 이 땅의 여성을 노리개로 삼다가 엽기적으로 살해하는 미군의 만행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2000년 오늘 여전히 미군은 성역 중의 성역이다. 포연에 묻힌 매향리를 보라. 이땅의 `야당'은 물론 오월에 젖줄을 댄 김대중 정권조차 미국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고 있지 않은가.

다른 하나는 실질적 민주화다.
오월의 무장항쟁이 없었다면 6월 대항쟁은 불가능했다. 군부는 사실상 오월을 통해 더이상 권력을 탐낼 만용을 잃었다. 그러나 어떤가. 우리는 그 해 오월의 민중들이 열망하던 민주주의를, 그날의 정의를, 오늘 구현하고 있는가. 아니다. 단적으로 5·18을 왜곡한 그 언론, 그 언론인들이 변함없이 언론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도 그날 그 순간처럼 친미·냉전논리의 확성기가 되어 여론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대미 관계의 주체적 재정립과 실질적 민주화라는 오월의 두 과제는 신자유주의 속에 하나로 모아진다. 지구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우리에게도 대량실업과 가정파괴로 구체화한 신자유주의 뒤에 다름 아닌 미국이 똬리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5·18 앞에 지금 혹 수사학이라 하더라도 안녕을 말할 때가 아니다.

시인 김남주는 노래했다.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풀잎은 흔히 민중의 대명사로 일컬어 왔다. 바람에 쉬 눕지만 곧바로 다시 일어서는 까닭이다. 그러나 시인은 단호히 말한다.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는 않았다.” 죽은 시인의 시는 오늘 죽어가는 오월에 날카롭게 살아난다.

5·18이 풀잎으로 노래할 일이 아니라면 더더욱 꽃잎은 아니다. 하물며 모래시계나 박하사탕일 수 없다. 문화와 기념식으로 우리가 혹 참 오월을 잊는다면 이는 비극이다. 실질적 민주주의를 일궈내고 민족이 하나로 거듭나는 그날까지 가파른 오월의 고독은 끝날 수 없다. 오늘 오월은 더 깊은 고독에 잠겨 있는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5월18일자)신문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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