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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과연 현실인가. 지역에 기초한 1인 정당을 감히 거부한 사람은 정치 감각이 없는 바보들일까. 하여 낙선의 쓴잔을 마시는 것이 마땅한가. 기존 정당, 아니 1인정당의 `두령'에 짐짓 의연한듯 줄 서야하고 꼭 그렇게 해야 국회의원이 되는걸까.

“이렇게 고사목이 될 수 없다. 해볼 만큼 했다. 이번 총선은 정치적 삶의 마지막 기회다.” 1970년대와 80년대 명성이 드높던 학생운동 `대부'가 외길을 접으며 사사로이 전한 말이다. 차라리 가슴 한켠을 울린 그는 결국 실패했다. 우리를 한결 슬픔에 젖게 한 사실은 또 있다. 한국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지역감정 여론에 온몸으로 부닥친 정치인은 `큰 표' 차로 낙선했다. 바로 그 옆에서 반민주인사는 화려한 몰표로 당선됐다.

그랬다. 16대 총선은 적잖은 유권자, 특히 젊은 세대들에겐 `고문'이자 절망이었다. 사상 최저의 투표율이 이를 입증한다. 50년만의 정권교체와 `국민의 정부'를 자임한 김대중 정권은 지난 2년 동안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안건너기'식으로 개혁을 진행해왔다.

총선은 기대에 못미친 개혁과 그 미지근한 추진력에 대한 엄연한 `중간평가'였다. 여당보다 오히려 개혁에 소극적이고 심지어 반개혁적인 야당은 또 어떠한가.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에 어찌 당혹스럽지 않았겠는가. 진보정당이 있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다. 바로 그 이유에서 오늘 정면으로 민주노동당에 묻고싶다. 진보정당 보도에 인색했던 언론에 참패의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옳은 말이다. 아니 정말이지 제발 진보세력도 언론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언론개혁에 적극 나서길 바란다.

그러나 동시에 내부의 문제는 없었는가 냉철히 자문할 것을 권한다. 과연 민주노동당은 얼마나 이 땅의 진보세력을 대표했는가. 당선 가능한 대중적 후보들을 끌어들이는데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여론이 이미 선거공간에서 무성했다. 왜 대중성 있는 386후보들을 기존 여야정당에 모두 빼앗겼는가. 그들의 `타협'을 비판하기 전에 `삼고초려'하는 자세를 보였는가. 청년진보당은 과연 꼭 그렇게 갈라설 수밖에 없었는가. 기존 정당 후보로 당선된 40대의 한 후보를 선거공간에서 만났을 때 그가 술잔을 비우며 던진 말은 충격이었다. “민주노동당에서 오라고 했으면 고민했을 텐데 기회를 안주던군요.”

진보정당의 실패를 행여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으로 돌린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여론을 왜곡한 언론의 책임은 분명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누구에 있을까. 가혹한 말일지 모르지만 잠재되어있는 진보역량을 묶어 세우지 못한 민주노동당 지도부에 있다.

언제부터인가 진보정당도 책임지는 미덕을 보이지 않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연합이 조직적으로 참여했다는 `국민승리21'이 1997년 대선에서 참담하게 패배한 책임은 과연 물었는가. 그 연장선에서 2000년 사월의 실패는 어쩌면 이미 예고된 것은 아니었을까.

해방공간과 1950년대 진보당이 실증했듯이 우리 현대사는 본디 진보정당이 커나가기에 기름진 땅이다. 다만 진보의 잠재력이 억압되어있을 따름이다. 언젠가 억눌린 진보적 여론은 폭발적으로 분출될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돌파구는 손에 손 잡았을 때 가능하다. 더 이상 민주노총의 `권위'가 손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노총이 대선과 총선에서 열정을 다해 조직적 지원을 못한 어떤 이유가 있었다면, 그 문제부터 분명히 매듭을 졌어야 했다.

어쨌든 선거는 끝났다. 예상했듯이 민주노동당은 깃발을 내리지 않겠단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더 큰 깃발을 올려야하지 않을까. 노동운동 내부의 단결은 물론 진보적 시민운동과의 연대를 진지하게 모색해야한다.

이 땅의 모든 진보역량을 하나로 거듭 내오는 수고 없이 다시 선거에 참여한다면 이는 미래의 가능성마저 탕진하는 짓이다. `눈덮인 길'에 길을 내듯 한결 사려깊게 한걸음 한걸음을 옮길 때다.

아직 오지 않은 당,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이 땅에서 집권할 당을 위하여.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4월 20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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