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13 13:34최종 업데이트 23.01.1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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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2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내년 예산안·세법 일괄 합의 발표 기자회견에서 합의문을 발표한 뒤 악수하고 있다. ⓒ 남소연


1년 중 해가 가장 짧다는 얼마 전 동짓날, 여야는 법인소득세율 구간별 1%P 인하, 금융투자소득세 2년 유예 및 증권거래세 인하, 종합부동산세 공제 한도 조정 등 내년도 예산안 중재안에 합의했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법인소득세는 최고소득 구간에 한해 최고세율 25%를 22%로 인하하려던 정부안이 축소되긴 했지만, 여야 합의의 핵심에는 자본 및 법인소득세 감세가 있었다.

통상 이들 감세는 시장 참가자의 기대를 높여 저축과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종국에는 감세 이상의 세입을 유도하는 일종의 선순환을 기대하고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금을 줄여줄 테니 투자를 늘리거나 고용을 창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보수언론과 여권에서는 일관되게 부정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법인소득세 인하로 투자나 고용이 늘었다는 명확한 근거는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 궁금한 것은 정치적으로 이러한 감세가 어떻게 가능했는가이다. 똑같지는 않지만 참고할 만한 사례는 있다.

2001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대규모 감세법안인 '경제성장과 조세감면의 조화법'에 서명했다. 이는 선출직 공무원의 손으로 만들어내기 쉽지 않을 만큼 유권자들의 선호로부터 상당히 벗어난 정책으로 평가되었다. 여론으로부터 괴리된 정책이 어떻게 성립가능했을까. 배경을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다.

1990년대 초반 미국의 장기호황은 클린턴 정부 집권 초기 재정적자를 상쇄하고 집권 말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2.4%의 흑자라는 성적표를 남겼다. 이후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이 흑자를 두고 유력후보 간 논쟁이 있었다.

공화당 후보인 조지 W. 부시 측은 조세감면을 통해 중산층에 재정 흑자를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민주당 후보인 앨 고어 측은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려 저소득층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맞섰다. 당연히 당시 부시 캠프의 감세정책은 대중들에게 긴급하지도 않고, 선호에 맞지도 않았다. 하지만 선거는 부시의 승리로 끝났다.

오랫동안 정치학은 유권자나 대중집단이 정치인을 투표로 보상하거나 처벌할 수 있기에 시간이 흐르면 공공정책과 대중의 선호가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고 봤다. 이는 평균 유권자들의 역량을 강조하는 관점이다.

감세 효과는 빨리, 비용 청구는 늦게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


유권자들은 나름의 정보를 바탕으로 정치적 선호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인은 이를 압력으로 인식하고 이들 유권자의 선호에 부합하는 정책을 만들 것이라고 본 것이다. 여기에는 대중들이 증세나 감세와 같이 민감한 사안의 지지나 응징을 위해 정책효과를 예측하고 책임자를 식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비판의 핵심은 과연 정치인이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유권자가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이는 사실상 대부분의 경우 충족되기 어렵다.

부시 정부의 감세정책에 대한 연구들은 이렇게 분석한다. 먼저 이 감세법안은 일반 대중에게 유리한 감세효과는 가급적 빨리 나타나도록 하되 전체 비용은 뒤늦게 청구되도록 설계되었다. 이와 함께 법안의 장기효과는 인식하기 어렵게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졌다. 뿐만 아니라 그나마 필요한 정보조차 제한적으로만 유통되었다.
     
즉 당시 감세법안을 추진했던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비난을 빠져나갈 출구전략이 있었기에 사실상 유권자들의 응징은 정치적으로 고려할 만한 메리트 있는 요소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부시가 감세를 세금 감면(tax cut)이 아니라 세금 구제(tax relief)라는 용어로 대체하며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려 했던 유명한 프레이밍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겠다.

정치나 정책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 때문에 정치인들은 국민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이해에 복무하려는 동기를 더욱 강화하게 된다. 대다수 유권자의 선호와 상반되는 정책이 수립된 데에는 무엇보다 감세가 정치인들에게 이득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득은 공화당의 자금 조달과 선거의 정치적 토대를 제공하는 소수 집단들의 이해관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이었다. 이들 집단의 기조는 명확했다. 부유층의 조세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이들은 감세를 찬성하는 정당에 막대한 지원을 하거나, 이를 반대하는 정치인을 표적으로 낙선운동을 하는 반조세 활동을 펼치며 부시를 도왔다. 이와 함께 감세의 단계적 도입과 일몰제, 시한폭탄 전략은 감세를 항구적으로 매력적인 정치전략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먼저 부시 정부는 부유층에 대한 대규모 감세의 실질적인 효과가 시간상 뒤에 나타나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이는 감세가 초래할 불균등한 분배 문제를 감추고, 주요 감세의 대상인 부유한 유권자들이 미래에 더 큰 감세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는 정치적 효과를 낳았다.

다음으로 감세에 일몰제, 즉 소멸시효를 설정함으로써 미래의 정치인은 납세자가 이미 받고 있는 혜택을 축소해야 하는지 여부를 고민하게 된다. 이는 미래의 부유층이 공화당의 재선을 위해 자금을 대도록 하는 강력한 유인책이 된다.

마지막으로 2001년 감세는 고소득자들에 대한 감세가 2004년에 폭발적으로 발생하도록 설계되었다. 2004년은 부시 대통령이 재선을 노리는 대선이 있는 해이다. 이는 일몰제와 유사하게 미래의 정치인들이 감세의 옹호자로 행동하도록 유도하게 된다. 결국 2001년 부시 정부의 대규모 감세는 대중들에게 단기적인 매력을 무기로 법안 반대자들을 사실상 무력화하였고, 장기적으로는 공화당 집권의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더 컸다.

감세, 특히 법인소득세의 경우 경제 효과에 대한 이견이 난무한 상황에서, 미국의 감세 사례는 우리가 암묵적으로 가정하는 것만큼 조세 및 재정정책이 경제정책으로서 의미가 크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세가 투자나 고용을 늘린다는 경제적 정설은 없다. 우리의 경우를 보자.

부자 감세 대신 일반 증세할 수도

과거 이명박 정부 때 대규모 감세가 있었지만 법인의 수익 증가가 실물 투자로 이어지기보다는 기업의 부동산 매입으로 자산가치가 상승하고 사내유보가 늘어났다는 지적이 많았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자기자본 500억 원 초과 법인과 상호출자 제한기업 집단에 속하는 법인에 한해 사내유보의 투자, 배당, 고용 및 임금 증가를 유도할 목적으로 세금을 부과한 적이 있었다(기업소득 환류세제). 그러나 환류세제 도입 이후 기업지배권 강화의 수단인 배당만 큰 폭으로 증가하고, 정작 설비투자와 인건비 증가는 상당히 저조한 실적을 보였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다.

이는 대규모 기업일수록 증세나 감세보다 경기의 불확실성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며, 사실상 법인세 증감이라는 조치가 경제정책 수단으로서는 별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점을 방증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증세나 감세를 둘러싸고 미국처럼 치밀한 정치공학이 작용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명박 정부 초기 강력한 감세법안이 집권 후반기에 후퇴한 것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보면 조세법률주의, 당정분리원칙, 선거이슈라는 거시 정치요인이 주로 거론된다.
     
이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조세법률주의에 따라 감세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에 대한 행정부의 우위가 원칙적으로 어려운 집권 후반 당정분리 상황에서 대통령에 대한 집권여당의 자율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선거 이슈가 압도하고 차기 당권 및 대권주자가 대두하면서 여야 간 정책연합이 활발해지고 소장파 의원들의 협상력이 커지게 된다.

그래서 결국 임기 말 이명박 정부의 감세 추진은 실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과 같은 미시정치보다는 거시정치제도의 제약과 정치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와 국회 사이의 정치적 타협이 우리 조세정치의 중심에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감세가 코로나19 및 글로벌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정부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5년간 60조 원이라는 초기의 감세 시나리오 정도는 아니겠지만, 세입이 줄어든 만큼 단기적으로 지출을 줄이거나 추가적으로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다만 재정건전성을 최우선 가치로 들고나온 정부가 채권발행을 단기적인 세입 수단으로 고려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감세를 단행한 정부는 통상 두 가지 선택지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하나는 추가적인 세원 확보이고 다른 하나는 지출 축소다.

먼저 감세는 다른 세원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증세의 형태로 돌변하기도 한다. 기업감세가 국민 대상 증세를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은 법인소득세율을 낮췄지만 개인소득세의 과세 대상은 오히려 증가시켰다. 다만 이는 장기침체 상황과 여소야대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따라서 유력한 대안으로 은밀한 지출축소가 부상할지도 모른다. 사실 감세논쟁의 핵심은 누구의 세금을 줄이는 대신 누구의 복지를 줄일 것인가로 모아진다. 실제 윤석열 정부는 박근혜 정부와 유사한 지출구조 조정 카드도 꺼내 들었다.

교묘한 숫자놀음과 보수적인 관료 카르텔 앞에 무릎 꿇은 박근혜 정부의 지출조정 실패 사례가 교훈이 될지는 아직 알기 어렵다. 다만 지난 12월 여야의 감세합의로 조정된 세입예산 규모는 당초 예산안보다 더 축소될 것이므로 다양한 형태의 지출압박이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우려되는 것은 복지국가의 역사에서 감세와 그에 따른 지출압박이 정치적 레토릭과는 달리 언제나 일반 대중의 삶을 침식시켰다는 점이다. 감세가 의도한 성장을 견인하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지만, 불평등을 심화하기 때문이라 점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감세는 주로 기업과 부유층에 직접적인 혜택을 주는 데 반해 정부의 지출축소를 유도해 재분배 기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감세로 투자 유입? 지나친 낙관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앞서 본 미국 부시 정부의 감세는 월남전 이후 20년 만에 가장 큰 규모로서 10년간 2.1조 달러에 달했다. 심각한 문제는 총 감세의 36%가 상위 1% 부유층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소득 하위 80%의 미국인이 받게 될 감세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이후 일부 연구에서는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이 소득 하위 80%의 실질적 증세로 채워졌다는 충격적인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감세가 불평등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산서 상 이명박 정부 시기 복지지출 규모는 축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직전인 노무현 정부 시기에 제정한 기초연금과 매년 증가하는 국민연금 급여, 미국발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경기부양성 긴급지원 지출을 제외하면 일부 시기에는 GDP 대비 복지지출 규모가 심지어 축소되기도 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기 사회서비스 공급 시장화를 통한 국가책임의 약화, 공공부조 수급자 규모 축소, 일시적이고 잔여적인 급여 확대, 지방재정의 중앙정부 통제 확대, 반복지적 시민단체 지원 등 체계적인 축소강화는 한국 복지국가의 질적인 성장 기반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법인소득세는 어차피 주주, 노동자,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이기 때문에 페널티로 기능해서는 안 된다는 감세 옹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는 통상적인 재정적 방어논리였지만,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낡은 논리인 데다 과거 부시를 도운 이익집단의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윤석열 정부의 재정 운용 전략이 사회적으로 위험해 보이는 것은 이러한 경제수장의 입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증세가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지금, 한국의 감세가 대규모 투자 유입을 유도할 것이라는 기재부의 주장도 지나치게 낙관적이라 우려된다.

앞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세정책은 재정학의 언어로 쓰인 정치학에 가깝다. 조세정책은 접근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교묘한 산술과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정치의 장이다.

시민들의 감시가 소홀한 재정 관료와 정치인들의 언어는 언제든지 우리에게 계산서를 내밀거나 일상을 침식할 수 있다. 우리가 나와 공동체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유권자로서 조세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참고로 얼마 전 영국에서는 법인소득세 감세의 여파로 최단기 총리가 탄생하기도 했다.
 

김성욱 / 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 김성욱

 
필자 소개 : 김성욱은 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에서 사회정책 분야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사회보장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재직했고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와 한국사회정책학회 총무분과위원장, 비판과대안을위한사회복지학회 연구분과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주로 복지국가 비교 분야의 연구를 수행해왔으며, 최근에는 개인의 경제적 불안정과 사회정책의 관계, 복지정치의 미시 전략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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