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5 19:47최종 업데이트 22.12.05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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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지난 11월 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시민촛불 집회’에 윤석열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유성호

   
금쪽같던 시간을 허비한 문재인 정부를 거쳐 끝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정치에 대한 환멸과 무력감이 몰려들었다. 정부 출범과 동시에 많은 이들이 혀를 차거나 격정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일이 늘어났다. 그래도 애써 냉소하며 정치 사안과 거리를 두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겨우 반년, 대통령과 정부의 면면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후진 것이었다. 저 깊이 한국 정치를 조소하고 냉담해하는 이들에게도 정부의 비정상적인 행보를 지켜보는 것이 보통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 전 연락을 준 한 지인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윤석열 정부와 아귀다툼 같은 정치권 뉴스는 최선을 다해 보지도 듣지도 않으리라 했단다. 그런 그에게도 분노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 때문이었다. 국정운영에 부족한 것투성이고 아무리 미숙해도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책임감이 없는 것은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태원 거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158명이나 숨지는 참혹한 일이 벌어진 지 한 달이 훌쩍 지났다. 기어이 희생자 유가족이 국회에서 무릎을 꿇으며 절규해야 했다.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는 첫발을 떼지도 못했다. 공권력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아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은 유가족이,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무릎을 꿇어가며 진상규명해달라 절규해야 했다.

그럼 지난 8년간 한국 사회는 아무런 진전 없이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시민들의 안전 의식은 높아졌고 안전 관련 규제는 보다 촘촘해지고 확대되었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일터의 안전 문제도 한국 사회 주요 의제로 전면화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참사 발생 이후 보였던 언행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의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의 위치에서 대형 참사의 책임을 일선 현장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주무 장관으로서 책무는 망각한 채 유가족 가슴을 후벼파는 실언을 쏟아내는 장관을 내내 감싸는 일도 있을 수 없다.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도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거래하는 흥정거리로 삼지도 않을 것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이자 정부의 최우선 책무인 국민 생명과 안전 보호에 무감각하거나 경시하는 듯한 태도는 화물연대 파업을 대하는 데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도로 위의 안전을 우려하는 정부의 목소리는 듣기 어렵다. 앞서 화물연대와 했던 약속은 내팽개치면서 입만 열면 '법과 원칙' 타령이다.

현재 정부는 사정기관들을 동원하는 것으로 버티고 있다. 가장 현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곳이 검찰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그토록 제어하고자 했던 검찰 권력은 전임 정부와 야당 대표를 겨냥해 전방위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 불법행위 혐의가 있어 수사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겠지만, 의도적으로 혐의를 왜곡 과장하거나, 수사권-기소권을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사례가 넘쳐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서해 피살 공무원이 월북했다고 결론 지은 과정을 문제 삼아 국가정보원, 국방부, 통일부 등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당시 장관들을 인신구속하고 나섰다. 수사가 일단락됐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 특혜 의혹이나 검언유착 의혹을 보도한 MBC에 대해서도 재수사에 나섰다.

반면 검찰은 현 정권과 연루됐다는 의혹이 짙은 사건들에 대해서는 요지부동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소위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보여줬던 과잉의 집요함은 오간 데 없다.

검찰 고발사주 의혹은 무마되었고, 곽상도를 제외한 박영수 전 특검 등 대장동 50억 클럽에 대한 수사도,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사건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전임 정부 공격에 앞장서고 있는 감사원은 대통령실 이전 관련 불법 의혹들에 대한 시민단체의 감사청구에 대해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다음 월드컵보다 더 남은 대통령 임기
 

지난 11월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사태 관련해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에 나섰다. ⓒ 대통령실 제공

   
겨우 반년이지만 국민 대다수는 이미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대가 없는 듯하다.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없으니 퇴행의 끝도 알 수 없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이 1명을 제외하고 모두 현 정부에서 교체된다. 함부로 칼을 휘두르는 사정기관에 더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보다 더 엄혹한 사법부를 경험해야 할지 모른다.

경제적 어려움은 사회 약자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노동계를 더 거세게 공격하는 구실로 삼을 공산이 크다. 세상 단순하고 낡은 사고방식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태롭게 할까 정말 걱정된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하지만 누구 말대로, 대통령의 임기는 다음 월드컵보다도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우리는 슬기롭게 이 정부를 버텨내야 한다. 그 시간은 적어도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킨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민주당이 대오각성했다면 해야 할 일이 있다.

양당 사이의 적대적 공생관계에서 작동하고 있는 지금의 정치체제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시민의 삶을 책임지는 정치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혐오와 헛발질에 기대 정치권력을 유지하는 양당 정치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권력을 독점하려 하지 말고 개혁진보가 차지하는 전체 비중을 키우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하고 연합정치를 준비해야 한다. 수명이 다한 대통령제 등 권력구조를 바꾸고 국민발안제처럼 시민 권한을 보장하는 헌법 개정을 준비해야 한다. 국민을 괴롭히는 정치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이미 누구는 거리에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을 들었다. 또 누군가는 소셜미디어에 갇혀 온통 분노와 조롱을 퍼붓는 데 에너지를 쓰고 있기도 하다. 반응할수록 디지털 세상의 알고리즘은 유사한 소식을 날라다 준다. 대신 세상의 다른 중요한 소식들은 주변부로 밀려난다. 김건희 여사 사진 촬영에 조명을 썼냐 안 썼냐 하는 논쟁이 당시 제기되었던 외교안보 사안을 압도할 정도라면 곤란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시민들이 눈길을 주지 않아도 묵묵히 정부와 국회, 사법부를 감시하고 문제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국가 예산 심의가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노후 소득인 국민연금의 개선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 공공기관 통폐합과 인력 감축 등으로 공공서비스의 질이 악화되는 것은 아닌지 누군가는 감시해야 한다. 또 누군가는 삶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현장에서 힘을 보태며 사회 약자와 연대하고 있다.

냉소와 분노만으로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 수는 없다. 세상은 절대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는 자명한 이치를 되새길 때다. 정치적 우울감을 말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박정은 /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소셜 코리아 편집·운영위원) ⓒ 박정은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박정은은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이며 <소셜 코리아> 편집·운영위원이기도 합니다. 2000년부터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평화군축, 국제연대 활동에서부터 정치개혁, 검찰개혁 활동, 사회정책 관련 연대 활동 등에 주력했습니다. 2018년부터 4년간 참여연대 사무처장직을 맡았고, 정치개혁공동행동 집행위원장, 시민평화포럼 운영위원장직을 수행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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