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5 05:08최종 업데이트 22.11.15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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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5월 2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주택건설 장기계획의 문제점' 기사에 '주택보급률'(붉은 상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주택보급률'은 우리나라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는 주택의 수급 상황 정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다. 주택보급률은 주택 수를 가구 수로 나눈 값을 말한다. 즉, 주택의 재고가 거주 가구 수에 비해 충분한가를 판단하기 위한 지표다.

그런데 이 지표를 사용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 주택의 양적인 공급을 나타내기 위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지표는 '천인당 주택 수'이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주택보급률'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택보급률'이라는 지표가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 그 기원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김진유 경기대학교 도시교통학과 교수에 따르면, 1975년 5월 21일자 <동아일보>에 주택보급률이라는 통계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당시 건설부(현 국토교통부)는 '주택건설장기계획'을 발표하면서, 1975/76년 78.3%인 주택보급률을 1981년까지 88.4%로 높이겠다고 밝히고 있다.

1975년은 과밀화되어가는 구시가지 인구를 한강 이남으로 분산하고 서울의 균형 발전을 위해 남서울 개발을 추진한다는 '남서울 개발계획'에 따라 강남구가 탄생한 해이기도 하다.

1970년대 들어 우리 사회는 비로소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하게 되었고, 집다운 집에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팽배했다. 주택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주택건설 10개년 계획'(1972~1981), '국민주택건설촉진법'(1973) 등이 제정되었고, 집합주택 단지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76년 반포동, 압구정동, 청담동, 도곡동이 '아파트 지구'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아파트 주거비율. 출처_통계청. ⓒ 경신원

 
1970년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단독주택에 거주하고 있어 1978년 아파트 주거비율은 겨우 5.2%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0년에는 28%로 10년 만에 급격하게 증가했고, 2015년에는 59.9%까지 올랐다. 서울의 경우 총주택 수 대비 아파트 비율은 1980년 19.0%였던 것이 2000년에 50.9%로 증가했고 2010년에는 58.9%로 더욱 증가했다.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우리나라를 '이상한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비판했지만, 그래도 아파트 개발은 짧은 시간에 많은 수의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주택보급률, 주택 부족 여부 판단 지표로 한계
 

서울시 주택보급률. 출처_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 경신원


한국전쟁 이후, 많은 주택이 파괴되어 도시로, 특히 서울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은 턱없이 부족했다. 1960년대 이후 서울에 건설된 주택 수는 매해 증가해, 1960년대에는 3만 호, 1970년대에는 3~5만 호, 1980년대에 들어서는 5~7만 호를 매년 건설했다. 1986년에는 한 해 동안 12만 호가 넘는 주택을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파르게 증가하는 가구 수를 주택 수가 따라가지 못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60%에도 미치지 못했으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급격하게 높아져 2019년에는 96%에 이르렀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96%에 이르렀다는 건, 서울시에 거주하는 가구 수의 96%에 해당하는 주택이 이미 보급된 상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집 마련은 여전히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서울시가 발표한 '2020년 서울시 복지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서울시 자가 보유율은 42.4%에 불과하다.

더구나 KB부동산 월간주택가격동향 시계열 보고서에서는 2021년 12월 서울의 소득 대비 집값 비율을 20년 1개월이라고 밝혔다(3분위 소득, 3분위 주택가격 기준). 중위 소득 가구가 서울에서 중간 가격대의 집을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20년 1개월을 모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KB부동산이 주택 관련 통계작성을 시작한 2008년 12월 이후 역대 최고치의 기록이다.

주택보급률이 지속적으로 상승했어도 주택가격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는 거다. 시장에서 요구되는 수요만큼 충분히 주택이 공급되었음에도 이런 모순적 상황은 왜 발생하게 되는 걸까?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 ⓒ 연합뉴스

 
주택보급률이 주택의 부족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로 한계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정부 또한 기존 주택보급률의 보완을 위하여 2008년부터 주택 수에 다가구 구분 거처를 반영하고, 가구 수에 1인 가구를 포함한 신주택보급률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주택보급률은 총량적인 주택의 공급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거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주택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지난여름 엄청난 폭우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던 반지하 주택이 대표적인 경우다.

현재 발생하는 주택의 부족 문제는 절대적인 양적 공급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가구의 구매 능력 대비 적정한 가격의 주택이 부족한 데서 발생한다. 주택보급률이 100% 가까이 도달했음에도 반지하 주택이나 옥탑방, 고시원 등을 전전하는 취약계층의 문제는 총량적인 주택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주택보급률'은 1970년대 주택의 절대적인 양적 부족 상황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오늘날 사회·경제적 상황에 걸맞은 주택의 질적인 수준과 가구의 구매 능력이 반영된 지표가 새롭게 마련되어야 할 때다. 이를 바탕으로 각 지역에 적절한 주택공급 계획이 수립되어야 하며,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한 상실되었던 국민의 신뢰성을 회복하여야 한다.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김진유 (2016. 7. 20) 주택보급률 100%, 그 착각의 함정. 일간부동산
변창흠, 이한일 (2004) 정상거처 기준을 활용한 서울시 주택보급률의 재평가와 효과에 관한 연구. 주택연구 12(2): 2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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