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1 18:00최종 업데이트 22.11.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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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 픽사베이


종일 많은 말을 하고 들으며 산다. 오늘도 나는 안녕하시냐는 인사부터 시작해서, 이번 주에 할 일에 대해 논의했고,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주말 이야기를 나눴다. 기록되지 않고 휘발될 거라는 생각에 무심히 하는 말들이지만, 가끔씩 다른 사람이 던진 말 중 하나가 가시가 되어 마음에 꽂힐 때가 있다. 나한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밤마다 고민하며 잠 못 이룬다.

그래서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한 날의 저녁은 늘 불안하다. 사람들 틈에서 이런저런 말을 하다 보면 말 폭풍에 휩쓸려 어느 순간에는 말을 위한 말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빈틈을 채우기 위해 튀어나오는 어설픈 말들. 그렇게 온종일 함께했던 사람들이 지나가고 주변이 고요해지면 기억 속에서 스멀스멀 폭풍의 잔해가 올라온다. 혹시나 내가 뱉은 말의 조각들에 걸려 넘어져 다친 사람이 없었는지 걱정하다 잠든 적이 여러 번이다.


글 쓰는 법에 대한 관심에 비해 말하기 방법에 대한 관심은 적어 보인다. 글쓰기보다 더 자주 하는 것이 말하기인데도 말이다. 에세이 쓰는 법, 일기 쓰는 법, 보고서 쓰는 법 등 글로 나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강의도 많고 책도 참 많다. 하지만 말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 어렵다. 영어 말하기, 발표 잘하기, 목소리 잘 내는 법 말고. 일상에서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나와 말이 통하지 않는 타인을 꼬집거나 깨물면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일이다. 어른이 그런 행동을 하면 경찰서에 간다. 대부분의 어른은 말로 상처 주고 말로 상처받는다. "왜 그렇게 말하냐"며 묻고 따지다 사랑도 잃고, 돈도 잃고, 모든 걸 잃는다. 속담에는 말 한마디로도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살면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내는 사람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지기

가장 싫은 사람은 말하다가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다. 가벼운 대화로 시작했는데, 자꾸만 큰 싸움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소리를 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말이 상대에게 닿지 않는다고 느낄 때, 어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른다. 목소리가 작아서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을 텐데도 말이다.

내 마음을 이해해달라는 절규가 고성으로 나온다. 말을 바꿔야 하는 문제이지 소리를 질러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데도, 스스로도 어떻게 할지 몰라 소리만 지른다. 감정을 대체할 단어를 찾지 못해 냅다 욕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답답한지, 조급한지, 불안한지, 섭섭한지 마음을 말하면 될 일이 불필요한 싸움으로 번진다. 내 생각을 더 크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거리감만 만든다.

자꾸만 주제에서 벗어나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안타깝다. 예컨대 사고로 인해 지하철이 연착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데, 갑자기 지하철 요금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경우다. 오랫동안 갖고 있던 생각을 이야기할 기회를 포착한 것일 테지만, 대화에는 맥락이 있다. 자꾸만 맥락에서 벗어난 말을 하는 사람과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란 어렵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특히 이런 경우가 많다. 전주비빔밥이 맛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전주에 아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경우다. 대화의 주도권을 나에게 가져오고 싶은 마음,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듣는 사람은 당황스럽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만이 대화는 아니다. 타인의 말에 관심을 갖고 질문하며 함께하는 것도 대화의 한 방법이다. 때로는 침묵도 대화다.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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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지르고, 욕하고, 딴소리하고, 말 바꾸고. 내게 말로 빚진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그 말을 나에게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나에게 이 말을 해서 당신이 얻고 싶은 것을 알고 있는지 말이다. 공감이 필요한지, 혹은 해결책을 원하는 것인지, 내 의견을 구하는 것인지, 자신을 뽐내고 싶어서인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연인들은 공감해 달랬더니 왜 해결책을 내놓는 거냐며 싸운다. 회사에서는 왜 지시가 이랬다저랬다 하냐며 싸운다. 가족끼리는 너는 왜 내 마음도 이해하지 못하냐며 싸운다. 같은 뱃속에 머물러 있었다고 해서,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서, 같은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같은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모두에겐 저마다의 우주가 있다.

공감, 해결책, 의견 제시와 같은 상호작용이 아니어도 좋다. 무조건 당신의 말을 따르기를 원해도 괜찮다. 얻고자 하는 것이 명확한 대화는 불통으로 흐르지 않는다. 몇 번의 대화 속에서 상대가 내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눈치 챘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대화하는 방법을 바꿀 수도 있고, 내용을 추가할 수도 있고, 목적을 일부 수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내 목적을 모르는 상태로 대화가 시작되었다면 아무런 방법이 없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모른 채 이상한 말들만 무수히 늘어놓다 나온, 본질과 상관없는 말들이 싸움으로 번진다. 닿지 않는 말들이 답답해 서로를 이해하려던 노력이, 결국은 말꼬리 잡기로 이어지는 환장의 말잔치!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오늘도 불편한 사람과 일해야 하는 당신을 위한 책>의 저자 야마사키 히로미는 소통을 두 가지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사람을 대하는 소통, 또 하나는 자신을 대하는 소통이다. 야마사키는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우선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과 적절하게 동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도 저절로 원활해질 수 있다고 한다.

말이 안 통하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인지도 모른다. 내 욕망을 나조차 제대로 모르는데,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줄 리 없다. 사람들이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면, 나 자신에 관한 공부부터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 나를 설명할 수 있을 때, 타인과 제대로 된 소통을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말그릇>의 저자 김윤나는 외려 말실수를 반복하는 사람들을 위로한다. "그들도 우리처럼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상처 많고 두려움 많은 존재다. 그들도 우리처럼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또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준비되지 않은 말을 서둘러 꺼내는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투르고 또 한참 서투르다"라고 말이다.

말빚으로 사랑도 잃고, 돈도 잃고, 많은 걸 잃었던 사람들에게, 그래서 내가 거리를 둔 사람들에게 전한다. 당신이 내게 원했던 것을 한번만 생각해보라고, 그리고 다시 나에게 말을 걸어달라고. 우리 다시 제대로 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고. 
덧붙이는 글 말로 빚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추천도서

- 김윤나, <말그릇>
- 야마사키 히로미, <오늘도 불편한 사람과 일해야 하는 당신을 위한 책>



말 그릇 -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김윤나 (지은이), 카시오페아(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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