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02 05:18최종 업데이트 22.11.02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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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삭감으로 인해 여성의 공공 서비스 접근권과 양질의 일자리 접근 기회가 줄어들고, 무급 돌봄노동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 ⓒ 셔터스톡

 
매년 10월 29일은 국제 공공서비스 노조연맹(Public Services International, PSI)이 캠페인을 벌이는 '글로벌 돌봄 행동의 날'이다. 2020~2021년 글로벌 돌봄 행동의 날 어젠다는 돌봄 경제에 대한 공적 재정투자 요구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가정과 시장 영역에서 발생한 돌봄 위기와 돌봄 노동자가 겪게 된 취약성을 강조했다.

연맹은 올해 <돌봄 모순: IMF, 젠더와 재정 긴축>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하고 팬데믹 이후 긴축 재정이 불러올 충격에 관심을 촉구했다. IMF와 각국이 코로나 팬데믹에서 온전히 회복되지 못한 시민을 위해 대안적인 재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공부문 예산 삭감 때문에 여성, 특히 저소득 국가 여성의 공공 서비스 접근권과 양질의 일자리 접근 기회가 줄어들고, 무급 돌봄노동 부담이 증가하는 참혹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특히 지난 7월 22일 국제통화기금(IMF) 이사회가 승인한 성 주류화 전략을 비판한다. 이 전략의 목적은 기금의 핵심 기능인 감시, 대출, 역량개발 등에서 성 격차에 관한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전략의 핵심은 성 격차 해소와 경제성장이 함께 간다는 인식이다. 그런 인식 아래 기금의 핵심 기능에 성 격차에 관한 사항을 반영하여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맞춤형 정책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제 공공서비스 노조연맹이 펴낸 <돌봄 사회조직 재건 가이드>와 <돌봄 사회조직 재건 워크북> 표지. ⓒ PSI

 
그러나 IMF의 성 주류화 전략은 여러 측면에서 미흡하며 '핑크 워싱'(성소수자 인권을 인권 개념에서가 아닌 상업적, 정치적 용도로 쓰는 것)의 완벽한 예라고 평가받았다. 우선 성평등이나 성 불평등이 아니라 '성 격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둘째, 공공 지출 삭감이 여성의 무급 돌봄노동과 경제활동 참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셋째, 성 주류화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개별 국가를 컨설팅하는 과정에서 페미니스트 운동 단체와 학자들과 협업할 계획이 없다.

넷째, 오랫동안 핵심적인 정책 수단으로 삼고 있는 IMF 자신들의 긴축 정책과 처방이 여성의 경제적 세력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일관되고 철저한 성찰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공공부문 임금 동결은 IMF가 줄곧 주창해온 긴축재정의 중심축이다. 공공부문의 여성 근로자 비중이 높은 현실에서 공공부문 임금 동결은 여성 근로자에게 치명적이다.

마지막으로 성평등을 제고할 수 있는 핵심적인 시스템은 그대로 두고, 일부 여성에 대한 사회적 보호 목표의 보상적 조치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돌봄을 기반으로 경제와 사회를 건설하는 비전이며 GDP 성장을 넘어 인권과 돌봄을 경제 목표와 지표의 중심에 둬야 한다.

"남녀 노동참여 같아지면 7% 성장"

기타 고피나트 IMF 수석 부총재가 9월 27일 한국에서 열린 '2022 대한민국 성평등 포럼'에서 한 기조 연설은 이런 IMF의 성 주류화 전략이 바탕이 됐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많은 개선이 이뤄졌지만, 한국은 소득과 노동력 참여 측면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동시장 성 격차가 가장 큰 국가"라며 "2035년까지 한국 여성과 남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같아질 때 국내총생산(GDP)은 지금보다 7%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육아휴직 제도, 돌봄서비스 확대, 근로시간 단축 등 고용 환경 개선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 성별 격차가 여전히 크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책 협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시장의 성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책 수단을 고안하든, 기존의 제도를 확대하든 예산이 필요하다. 육아휴직 제도는 있지만 특수고용형태 종사자나 자영업자처럼 법적으로 적용 대상이 되지 못한 근로자도 많고 실질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근로자도 많다.

엄마 아빠 불문하고 육아휴직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고용보험 기금만으로 충당하지 못해 일반 회계 투입이 불가피하다. 어린이집은 보편적이라지만 초등학교 방과후 돌봄서비스는 인프라와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돌봄을 남녀가 더 평등하게 분담하기 위해서는 가정과 기업에 대한 전폭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정부도 코로나 이후 세계적인 재정긴축 추세에서 비껴가지 못했다.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2023년 예산안은 13년 만에 긴축으로 돌아섰으며 앞으로 몇 년간 이런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 공공서비스 노조연맹이 강조하는 돌봄을 기반으로 경제와 사회를 건설하는 비전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제 활력과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면 정부는 노동시장 성별 격차 해소를 위한 지속가능한 재원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다.
   

윤자영 / 충남대 경제학과 부교수(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 윤자영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부교수는 노동경제학과 젠더경제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관심분야는 시장과 비시장 영역의 돌봄과 젠더·계층·세대 질서 및 불평등의 상호관계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최저임금위원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회보장위원회 등에서 공익위원과 민간위원으로 참여했고, 학계에서는 한국노동경제학회 이사와 한국사회정책학회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젠더와 기본소득, 노동시장 성차별과 불평등, 돌봄서비스 일자리 근로조건 등 논문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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