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06 18:24최종 업데이트 22.10.06 18:24
  • 본문듣기

누구나 잘못을 한다. 자료사진. ⓒ 픽사베이


누구나 잘못을 한다. 우리는 넘어지면서 걷는 것을 배웠다. 잘못하지 않고서는 배울 수도 없다. 오답 노트가 효과적인 이유는 틀린 답을 교정했을 때 정답을 더 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을 깨닫는 순간은 기쁘고 위대한 순간이어야 한다. 잘못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걸 배우는 순간, 나는 더 나은 인간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잘못을 깨닫는 순간을 부끄러워하면서 감추려는 데 급급하다.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잘못을 지적한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방금 한 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잡아떼는 것은 기본, 상대가 잘못 들었을 것이라며 몰아세우기도 한다. 그렇게 더 나은 인간이 될 기회를 놓쳐버린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 보면 미운 사람들이 종종 생기기 마련이다. 제때 사과만 받았어도, 이렇게까지 상대를 미워할 일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못 해서 멀어지고 갈라진 관계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적절한 시점에 사과를 하고, 받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

우리는 왜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까

로버트 치알디니 박사는 <설득의 심리학>에서 이를 '일관성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이미 내린 결정이나 이미 저지른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옳은 결정을 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이유는 그저 편리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마음을 정하면 일관성을 고수하는 편이 낫다.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예를 들어 수 많은 종류의 자동차 중에 하나의 차를 골라서 샀다면, 선택하지 못한 다른 차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피곤하기 때문에 내 선택에 합리화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일관성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경우에 따라 자신의 이익과 정반대되는 행동까지 하게 만든다.

뇌 과학의 측면에서 김호와 정재승은 인간은 구조적으로 사과하기 힘든 뇌를 갖고 있다고 밝힌다. 인간은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거나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누군가 알게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나 피해에 대한 우려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는 뇌에서 판단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활동을 방해하고,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우리 뇌를 지배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상황에 대한 판단보다는 발생할 수 있는 위협에 촉각을 세우고 방어적인 논리에만 치중하게 된다.

스트레스와 피로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뇌의 작용이 결과적으로 나를 보호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기업의 측면에서도, 개인의 측면에서도 갖가지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는 시대다. 사소한 실수가 풍선처럼 부풀려지기도 하고, 실체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되기도 한다. 잘못이 미디어를 통해 박제되고 유포된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회피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한 문제가 되곤 한다. 인간관계라고 다를까. 절교, 결별, 퇴사, 이혼 등 여러 가지 관계 단절은 메신저에서 벌어진 작은 실수와 적절한 사과의 부재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잘못이 잊히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사과의 3단계, 결정 - 인정 - 노력
 

사과 한마디로 끝났을 일이 쓸데없이 길어지는 것보다 더 피곤한 일은 없다. 자료사진. ⓒ 유성호


사과 한마디로 끝났을 일이 쓸데없이 길어지는 것보다 더 피곤한 일은 없다.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사과할 일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사과를 요구하는 상대의 지적이 늘 옳은 것만은 아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오해나 왜곡일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의 문제를 먼저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방어논리를 앞세우려 하지 말고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잘못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지적받은 언행이 나오게 된 이유에 대해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소통 방식의 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만약 상대의 지적이 옳다는 판단이 들었다면,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자. 두 번째 단계는 깔끔하게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거나,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등의 회피성 발언은 금물이다. 울고불고 빌면서 애써 과장되게 사과를 표현할 필요도 없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분명히 인식하고 있음을 전하고 가장 간단하고 쉬운 말로 반성하고 뉘우치고 있음을 표현하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다. 앞으로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라는 계획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과를 받는 상대에게도, 사과를 하는 본인에게도 중요한 과정이다. 사과를 하는 사람은 이 다짐을 통해 더 나은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고, 사과를 받는 사람은 관계를 안전하게 지속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사과 한마디로 이토록 밝고 희망찬 미래를 볼 수 있다니!

행동의 일관성을 지키는 것으로 피로도를 줄이겠다는 뇌의 동물적 명령에서 나온 구구절절한 변명보다, 이성과 합리에 기반한 깔끔한 인정과 사과가 훨씬 덜 피곤하다. 그 예는 맞춤법 지적에 발끈하는 래퍼와 사과하고 고치는 래퍼의 인스타그램 스토리 게시물 개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가사에서 '되'와 '돼'를 구분하지 않아서 논란이 된 일에 한 래퍼는 그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하기 위해 5개의 게시글을 통해 분노를 표했고, 또 다른 래퍼는 '가사 쓰는 사람인데 죄송하다'며 단 하나의 게시글로 끝냈다. 매우 경제적이다.

잘못하지 않았다고, 그런 뜻이 아니었다며 자신을 방어하려고 애쓰며 갈등할 때 보다 솔직하게 실수를 인정하고 나아가려고 노력할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잘못을 기꺼이 인정하고 제때 사과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세상, 너그러운 용서와 화해로 서로가 더 가까워지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혹시라도 이 글에 문제가 있다면 '댓글로 둥글게' 알려줬으면 좋겠다. 잘못이 있었다면 미리 사과드리고, 다음부터는 이런 글을 쓰지 않도록 하겠다.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숀 오마라, 케리 쿠퍼, 엄창호, (2020). <사죄 없는 사과사회>, 미래의창.
김호, 정재승, (2011). <쿨하게 사과하라>, 어크로스.
로버트 치알디니, (2002). <설득의 심리학>, 21세기 북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10만인클럽후원하기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