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11 11:54최종 업데이트 22.07.11 11:54
  • 본문듣기
언론의 경제 기사를 보다 보면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수출과 기업이 어렵다는 말을 한다. 어려움은 연말이 되면 최대 실적으로 둔갑한다. 기업들은 실적을 내세워 임직원들에게 많은 성과급을 지급한다. 성과급 잔치가 끝나면 언론과 기업, 정부는 또다시 위기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올해 위기 마케팅의 시작은 무역적자 소식의 도배로 시작된 듯하다. 지난 1일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2022년 상반기 무역적자 103억 달러 소식에 언론들은 일제히 1997년 외환위기 직전 때보다 더 큰 위기가 닥쳤다고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상반기 무역적자 13조원… 66년만에 최대 - 조선일보.7.2
무역적자 역대 최악…시름 깊은 한국경제 - 중앙일보 7.2
무역적자 만성화 조짐... 저성장 굴레 벗을 수출대책 급하다 - 동아일보 7.2


13조 원이라는 수치는 공포를 키우기에 충분했다. 공포는 곧바로 정부를 향한 특단의 대책 요구로 이어진다. '무역적자 만성화와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방위 지원체계를 즉시 가동해야 한다.' <동아일보> 주장이다. '파괴적 규제개혁으로 기업 의욕을 북돋아 수출증대로 이끌어야 한다' <헤럴드경제> 사설의 결론이다. 수출이 잘돼야 위기를 돌파할 수 있으니 과감하게 규제를 개혁하라는 게 한결같은 주문이다.

그러자 정부가 답했다. 지난 3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추경호 기획재정부장관은 무역금융을 40조 원 늘리고, 물류 지원을 강화하고, 수출업계 인력난 완화를 위해 주 52시간 제도를 손질하겠다고 재계와 언론의 요구에 답했다.

걱정할 건 국민 살림살이

그런데 의문이 있다. 재계와 언론이 주문하고 정부가 화답한 기업 지원을 늘리고 규제를 풀고 주 52시간제를 고쳐 수출을 늘려 무역 적자를 해소하겠다는 대책, 이게 과연 맞는 방향인가 하는 것이다. 유신 정권 내내 수출만이 살길이라고 귀가 따갑게 반복했지만 정작 수출이 누구의 살길이었는지는 알쏭달쏭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가 핵심 경제 정책이었지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면 국민의 삶도 덩달아 나아진다는 주장은 증명된 적이 없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사상 최대의 매출과 실적을 자랑하며 돈 잔치를 벌이던 수출 대기업들이 금방 망할 것 같은 위기에 봉착했다는 주장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부분의 언론이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6% 증가한 3503억 달러, 수입은 26.2% 늘어난 3606억 달러라는 위 산업통상자원부 발표 통계를 인용하면서 원유·가스·석탄 등 3대 에너지원 가격이 급등해 수입 증가액이 커진 게 무역 적자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에 따라 국내 주요 기업이 생산에 차질을 빚었고" "(그 결과) 수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문동민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의 말을 부각하며 화물연대에 책임을 돌리는 듯한 보도를 했다(<한국경제>, 66년만에 처음 본 '최악'의 무역적자).  

삼성은 올 2분기 매출 77조 원에 14조 원 영업이익을 냈다. 2분기 기준으로 역대 세 번째로 높은 영업이익이다. LG전자는 이전 2분기에 비해 15% 매출이 늘어났고 영업이익은 12% 줄어들었다. 여러 악재 속에서도 선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기 전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상목 경제수석,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과 사전 환담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이런 실적을 앞에 두고도 정부와 재계와 언론은 하반기 전망은 '흐림'이라며 위기론을 키운다. 그러나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기업과 수출 전망 '흐림'이 아니라 비교적 선방한 수출 효과를 상쇄하며 적자 폭을 키운 수입 물가이고, 고물가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국민의 살림살이다.

수출의 이익은 기업에 쌓이고, 오른 수입 물가는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간다. 수출이 늘어나고 기업이 이익이 커지면 국민의 살림살이도 나아진다고 하지만, 사상 최대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두고 주주와 임원, 대기업 정직원들은 돈 잔치를 벌였지만, 국민은 매번 부러운 구경꾼이 될 뿐이었다. 낙수 효과의 허상이다.

그런데도 대기업 감세를 약속한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오르내리자 국민에게 닥칠 고물가 피해보다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 수출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한다.

이명박 정권의 환생?

6월의 물가 인상률이 전년 동월 대비 6%를 넘었다. 전기·가스·수도 요금 모두 올랐고 외식 물가도 평균 8%가 올랐다. 원·달러 환율 상승세로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기준 금리를 한꺼번에 크게 올리는 걸 검토하고 있다. 저임금에 빚을 안고 살아가는 국민은 돌아누울 자리도 없는 막다른 궁지에 몰린 처지가 됐다.

그러나 정부 처방은 약발도 별로 먹혀들지 않는 유류세 인하가 전부다. 오히려 법인세 인하, 종합 부동산세 인하에 더 열을 올린다.

대기업이 곳간에 쌓아둔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65조 8416억 원(공정위 <2022년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현황 분석 결과>)으로 1년 전에 비해 19% 증가했다. 기업을 위해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할 때가 아니라, 현금 수십조 원을 쌓아둔 수출 대기업, 대출 이자로 사상 최대의 이윤을 남기는 은행들, 유가 폭등으로 몇 달 장사로 1년 치 벌이를 했다는 정유사와 민간 발전사들에 국민의 고통을 함께 나눠야 한다고 말해야 할 때다.

기름값, 물가고, 공공요금 인상, 금리 인상의 짐까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국민에게 실질 임금을 깎고 노동 시간을 늘려 위기를 극복하자는 주장은 잔인한 소리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망가진 경제 생태계 복원은 국민 호주머니 채우는 것부터 해야 한다는 게 세계적인 인식이다. 많은 나라에서 임금 인상이 줄을 잇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유독 윤석열 정부만은 반대의 길을 가려 한다. 

이명박 정부는 기업을 위해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고 고환율 정책으로 국민을 고물가 고통으로 몰고 갔다. 윤석열 정부는 그 길을 가지 말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시작은 거창했지만, 끝은 대통령이나 국민이나 모두 불행했다. 기업과 언론, 정부가 하나같이 주창하는 국민 희생을 바탕으로 한 위기 극복론은 틀렸다. 아무리 처음 해보는 대통령이라지만 균형 감각을 잃은 듯한 발걸음이 참 불안해 보인다. 하루가 다르게 곤두박질치는 대통령 지지율, 추락하는 건 이유가 있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