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09 19:34최종 업데이트 22.07.09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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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드라마 <진수기> ⓒ 디즈니플러스


한국인들을 자극하는 중국의 역사왜곡과 문화논쟁이 도를 한참 넘어섰다. 이번에는 중국 드라마 속의 삼겹살 굽기 장면이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4월 7일부터 디즈니플러스에서 방영된 중국 드라마 <진수기(珍饈記)>가 드라마 <대장금>을 연상케 하며 드라마 출연자들이 한복 비슷한 것을 입고 삼겹살을 쌈에 싸서 먹는 장면들이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어로 표현하면 '진수성찬기'가 되는 이 드라마로 인해 논란이 촉발되자, 중국 누리꾼들은 '드라마 속의 옷은 명나라 복식이고 음식은 중국 전통 음식'이라며 맞서고 있다.


디즈니플러스 측은 '문제의 삼겹살 굽기 장면은 <진수기>가 아닌 중국 웹드라마 <야불기적천세대인(惹不起的千歲大人)>의 한 장면이라고 정정해줬다. 그러면서 <진수기> 때문에 촉발된 논쟁과 관련해 "확인하기 어렵다"며 입장 표명을 피하고 있다.

<환구시보> 인터넷판인 <환구망>도 <진수기>가 빚어낸 한복 논쟁과 <야불기적천세대인>이 빚어낸 삼겹살 논쟁에 적극 뛰어들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이 매체는 지난 5일 "한국 누리꾼들, 중국 웹드라마 배우가 입은 옷이 한복이라고 주장... 중국 누리꾼들 '이건 명나라 복식인데"라는 기사를 내놓았다.

이 기사는 중국 누리꾼과 전문가의 주장을 섞어 제시하는 방법으로 한국인들의 비판을 반박한다. 기사에 소개된 뤼차오 랴오닝대학 미국및동아시아연구원장은 "중국과 한국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교류가 긴밀해서 문화적으로 비슷한 것이 많다"며 "예컨대, 이조조선 시기의 한국 복장은 디자인상으로 중국 명나라 복식 스타일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한 뒤 "중·한 양국은 역사를 직시해야 하며 상호 존중하는 태도를 갖고 열린 가슴으로 교류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옛 고구려 땅에서 대학 교직원으로 근무하는 뤼차오 원장은 '한·중 양국민이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조선시대 복장은 명나라 의상이다'라는 주장 뒤에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인터뷰의 나머지 대목에서 그는 좀 더 직설적으로 한국을 비판했다. '한국 청년들이 한국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한국 사회는 편협한 민족주의로 가득 차 있다"는 등등의 언급이 그것이다.

주장
 

지난 5일 <환구시보> 인터넷판인 <환구망>에 실린 기사 "한국 누리꾼들, 중국 웹드라마 배우가 입은 옷이 한복이라고 주장... 중국 누리꾼들 '이건 명나라 복식인데" ⓒ 환구망

 
위 기사는 삼겹살 부분과 관련해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을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한국인들의 비판을 반박했다. 드라마 속의 음식은 모두 다 중국미식, 중화요리라는 어느 중국인 시청자의 발언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몇 회 분을 봤는데 꽤 좋았다. 또 그 안에서 보여주는 것은 모두 다 중국미식(中國美食)이다. 아무 문제도 없다."
 
누리꾼 발언을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문맥상 위 발언은 기사의 핵심 논거 중 하나다. 핵심 논거로 소개된 뤼차오 원장의 발언 속에 위 누리꾼의 발언이 삽입돼 있기 때문에 '삼겹살은 중국 미식'이라는 주장이 신빙성 있게 전달될 여지가 없지 않다.

인터넷과 SNS가 정부 당국에 의해 통제되는 중국에서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러다가도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될 듯하면 중국 누리꾼들은 일사불란하게 꼬리를 감추곤 한다. 중국 당국의 의중이 개입된 현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일본은 근현대사 왜곡으로 한국을 자극하고 중국은 고대사 및 중세사 왜곡으로 한국을 자극한다. 양국은 이를 통해 자국민의 애국심을 공고히 한다. 뤼차오 원장은 한국의 편협한 민족주의가 원인이라고 주장했지만, 역사적 근거도 없이 한국을 자극해 논쟁을 유발하는 쪽은 중국과 일본이다.

삼겹살

사실, 삼겹살 굽기처럼 고기를 굽는 문화는 농경국가인 중국과 친숙하지 않다. 이는 만주대륙이나 몽골초원처럼 농경보다는 유목에 가까웠던 지역에서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 문명이다.

유방의 한나라(전한)와 왕망의 신나라에 뒤이은 중국 후한시대(25~220년)의 어휘집인 <석명(釋名)>에도 그런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이 책은 불고기의 일종인 맥적(貊炙)이 "호맥(胡貊)에서 기원했다"고 설명했다. 4세기경에 나온 <수신기(搜神記)>는 맥적을 적족(翟族)의 음식으로 소개하면서 "태시(太始) 이래로 중국에서 이를 즐겼다"고 설명했다.

<석명>에 언급된 맥(貊)은 한민족을 가리킬 때가 많다. 이 문헌에서 말하는 맥족이 설령 한민족이 아니라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불고기 문화가 외부에서 중국으로 유입됐다는 사실이 중국 고대 문화에 엄연히 기록돼 있다는 점이다. 전파 경로를 따지자면, 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 문화는 중국 북쪽이나 동북방의 고대 유목지대에서 황하 유역으로 전파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태시(太始)라는 연호가 사용된 기간은 355~356년이고, 의미가 비슷한 태시(泰始)라는 연호가 사용된 기간은 기원전 96년~기원전 93년 및 서기 265~274년이다. <수신기>의 저자인 간보(干宝)가 4세기 전반에 사망했으므로, 355~356년은 배제된다. 맥적이 중국 북부나 동북부에서 중국으로 유입된 시점은 나머지 두 기간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돼지 삼겹살 식습관이 중국에서 발달했다는 근거 역시 찾기 어렵다. 삼겹살 부위만 골라 먹었다는 기록은 옛날 한국 문헌에서도 찾기 힘들다. 조선 후기 관료 겸 화가인 장한종(1768~1815)의 <어수신화>에 저육전(猪肉廛)이라는 돼지고기 정육점 혹은 식당이 나온다. 이 식당에서는 돼지 출산 때 나오는 태포나 머릿고기 같은 구체적 부위를 판매했다. 하지만 삼겹살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삼겹살에 관한 문헌 기록 중 1934년 11월 3일 자 <동아일보> 기사 '육류의 조코 그른 것을 분간해내는 법'이라는 기사가 있다. 이 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도야지 고기는 조선에 잇어서는 강원도에서 조 껍질을 먹고 자란 것이 조타 하고, 도야지 고기의 맛으로 말하면 소와 같이 부위가 만치 아니하나 뒤넙적다리와 배 사이에 있는 세겹살(三枚라고 하는)이 제일 맛이 있다 하고 그다음으로는 목덜미살 맛이 있다 하고."
 

1934년 11월 3일 자 <동아일보> 기사 '육류의 조코 그른 것을 분간해내는 법' ⓒ 동아일보

 
논쟁

한자와 한글이 섞인 '삼겹살'이 아니라 한글만으로 이뤄진 '세겹살'이라는 말이 이 시기에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삼매'를 붙여 고기 부위를 지칭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 기사가 나온 시기는 돼지고기 식습관이 한국인들에게 확산하던 때였다. 돼지고기를 먹는 문화가 이전부터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소수의 상류층에 국한됐다. 일반 대중이 많이 먹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전반기다. 이 시기의 신문 기사가 삼겹살이 가장 맛있다고 추천하는 데서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뤼차오 교수의 말처럼 한국과 중국은 지리적으로 가까워 의복이나 음식 문화에 유사성이 나타나기 쉽다. 한국과 중국은 정치·경제적으로도 가까워 문화교류가 활발했다.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명나라가 무역을 가장 많이 한 상대방도 조선왕조였다.

그랬기 때문에 명나라 사람들이 삼겹살을 즐겼다면, 이것이 조선 전기에 알려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랬다면, 1934년에 나온 한국 신문 기사가 '삼겹살이 가장 맛있다'고 한국인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다.

불고기 문화가 중국에서 수출된 게 아니라 중국으로 수입됐다는 점은 위의 중국 문헌들에서 증명되고, 삼겹살 부위가 20세기 전반 한국에서 소개되기 시작했다는 점 역시 한국 언론보도에서 증명된다.

역사공정과 문화공정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학문 연구를 장려하는 중국 당국이 이런 내용을 확인하지 못할 리는 없다. 이웃 나라를 자극해 논쟁을 부추기고 자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데 주목적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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