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05 13:26최종 업데이트 22.06.0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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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미래의 침로인 'ESG'가 거대한 전환을 만들고 있다. ESG는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의 앞자를 딴 말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세계 시민의 분투를 대표하는 가치 담론이다. 삶에서, 현장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실천하는 사람과 조직을 만나 그들이 여는 미래를 탐방한다.[편집자말]
방글라데시의 작은 마을 조브라에 사는 22세 여성 소피아 카툰은 허름한 집에서 주 7일 내내 대나무 가구를 제작하며 살았다.[1] 소피아는 중간상인에게서 5타카(당시 환율로 22센트)를 받아 재료를 사서 하루 종일 대나무 의자를 만든 뒤 중간상인에게 넘겨주고 5타카 50파이사를 받았다. 소피아 수중에 남은 돈은 50파이사(2센트)가 된다.[2] 소피아는 숙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열심히 일했지만 매일 버는 50파이사로는 근근이 생계를 이어갈 뿐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3] 소피아는 고리대금업자를 피한 그나마 최악은 면한 사례이며, 고리대금업자의 수중에 놓인 사람들의 형편은 더 나빴다. 1970년대 방글라데시에서는 소피아와 같은 수많은 서민이 고리대금업자로부터 착취당하는 등 극한의 빈곤 속에서 고통 받았다.

그러나 얼마 후 소피아의 생활은 달라진다. 수입이 이전보다 60배 이상 늘어나 1달러 25센트가 되었다. 의자 만드는 작업을 기계화한 것도, 공공기관의 원조금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중간상인으로부터 재료비를 빌리지 않고 물건을 팔 수 있게 되었을 뿐이었다.[4] 치타공대학 경제학과 교수 무하마드 유누스가 소피아에게 담보 없이 소액을 빌려주어 가능한 기적이었다. 널리 알려진 그라민은행 탄생 이야기이다. 소피아가 고리대금업자에게서 돈을 빌렸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정보지만, 실제 당시 방글라데시 빈곤층의 다수가 고리대금업자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라민은행의 설립자 무하마드 유누스 ⓒ 그라민은행 홈페이지

 
전통적 은행 구조를 뒤집다

유누스는 1940년 치타공에서 태어나 유복한 부모님 밑에서 여덟 명의 누이와 함께 자랐다. 방글라데시 남동쪽에 위치한 치타공은 그 당시 세계에서도 가장 가난한 도시로 꼽혔지만 유누스의 집은 풍족했기 때문에 가난을 몸소 겪지는 않았다. 유누스는 치타공의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카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여 석사 학위를 받고 1961~1965년 치타공대학에서 경제학과 강사로 일했다.


그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밴더빌트 대학에서 박사를 받았고 1972년에 교수가 되어 다시 치타공대학으로 돌아왔다. 귀국 1년 전인 1971년에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 전쟁을 거쳐 그가 조국에 돌아올 무렵엔 신생국가로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았다. 유누스는 조국이 새 출발을 하는 시점에 희망을 품고 귀향하게 된다.
   
유누스는 미국 유학시절 배운 서구의 경제이론이 방글라데시와 같은 개발도상국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971년 독립 선언 이래 250억 달러가 넘는 해외원조를 받았지만 무수히 많은 국민이 굶주리고 죽어 나가고 있는 현실에서 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서구 국가의 경제이론을 적용할 수 없었다.[5] 방글라데시의 실제 삶이 반영된 실물경제를 알고 싶었던 유누스는 1974년 캠퍼스를 벗어나 근처에 있는 조브라 마을에 가게 된다. 

거기서 소피아를 비롯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고리대금업자가 일주일에 10%의 이자를 요구했다고 증언했다. 이 이자를 1년 치로 계산해 봤더니 시장경제의 이론을 적용할 수 없는 연간 3000% 넘는 천문학적인 숫자였다.[6] 유누스는 마이무나라는 여학생에게 마을을 돌아다니며 소액 대출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조사하도록 하였고, 마이무나는 소피아를 포함해 42명의 명단을 만들어왔다. 유누스는 그들이 필요한 자금이 약 27달러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며 스스로를 반성했다.[7][8]  

유누스는 가난한 사람들을 수혜대상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 일반적인 은행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소액이든 얼마이든 절대 대출해주지 않는다. 유누스는 조브라 마을을 조사하면서 작은 대출이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지갑에서 꺼낸 27달러로 마을의 42명의 여성에게 무담보로 빌려주었다.

대출을 받은 여성들은 바구니를 만들어 팔았고 빌린 돈을 빠르게 갚았다. 그는 소액 대출이 그들이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힘을 주고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심어준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9] 이때의 경험이 1976년 무담보 소액 신용대출인 '그라민은행(Grameen Bank)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그라민'은 방글라데시어로 마을을 뜻한다.

전통적인 은행의 입장에서는 담보 없이 대출한다는 발상이 터무니없게 느껴진다. 은행업은 대출시 회수가 안 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는 대출을 잘 해주지 않는다.[10] 하지만 유누스는 그 발상을 뒤집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고 이후 극빈자를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은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 될 만큼 성장했다. 그라민은행이 가난의 악순환을 끊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라민은행의 실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제안이 아니라는 것을 성공적으로 증명하기 시작했다. 필요한 최소한의 생산 수단을 구입하고 소득 창출 사업에 착수할 기회를 제공하여 '저소득, 저저축, 저투자'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11]

그라민은행의 소액대출 사업

이 프로젝트는 시행된 후 1979년까지 3년 동안 500명이 넘는 사람에게 대출해 주었고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전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전통적인 방식의 다른 은행들에 비해서 상환율이 더 높았다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12] 유누스는 가난한 사람 중에서도 극빈자에게 집중했고 시범 운영을 통해 극빈자가 제공할 수 있는 담보가 적을수록 더 정확한 날짜에 대출금을 갚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했다.[13]

그라민은행의 초기 성공을 기반으로 1979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이 '그라민 프로젝트'를 채택하면서 그라민은행은 방글라데시 전국의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어 운영되었다. 1983년 유누스는 그라민은행을 정식 법인으로 설립하고 독립은행으로 전환하여 극빈층, 특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담보 없이 소액을 대출해주는 신용대출사업을 본격화했다.[14] [15]

그라민은행의 운영방식은 다음과 같다. 은행 지점은 지점장과 여러 센터 관리자로 구성되며 약 15~22개 마을을 운영한다. 관리자와 직원은 먼저 마을을 방문하여 해당 지역 환경에서 잠재 고객을 조사하고 은행의 목적, 기능 및 운영 방식을 지역 주민에게 설명한다. 그라민은행의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전 재산이 1500타카(현재 환율로 약 2만1000원) 이하여야 한다.

요건을 충족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모여 5명의 소그룹을 만들고 그룹 8개가 모여 총 40명의 채무자로 구성되는 공동체가 탄생한다. 이들은 1주일 동안 대출금을 갚는 방법 등 그라민은행의 규칙을 학습한 후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또한 1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회의에 필수로 참여하여 대출 상환금 납부 현황 및 생활 개선 정도를 공유해야 한다. 처음부터 모두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룹 당 2명만이 우선적으로 대출을 받는다. 처음 2명의 대출자가 6주에 걸쳐 원금과 이자를 성공적으로 분할상환해야 그룹의 다른 구성원들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5명의 차입자가 모두 분할상환하면 추후에 더 큰 금액의 대출이 시행된다.
 

그라민은행은 공동체 개발 목표를 비즈니스 모델에 포함시켰다. 그라민은행은 마을에서 공동체를 만들어 빈곤층을 도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 그라민은행 홈페이지 매거진

  
집단적인 상호감시가 대출의 담보인 셈이다. 대출한도는 1인당 150달러 내외의 소액으로 비교적 작지만 그들이 기계 수리, 인력거 구입, 젖소, 옷감 등 소규모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에 충분하다. 현재 기본 대출의 금리는 20%이며 대출 상환율은 2022년 3월 기준 97.2%이다.[16] [17] [18] [19] 2019년 조사에서도 상환율은 평균 96% 이상이었다.[20]

그라민은행은 단순히 금융대출에 국한하지 않고 회원이 생활을 개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21] '16개 규약(16 Decisions)'을 통해 구체화하는데, 이 규약은 그라민에 가입하는 회원에게 요구하는 생활 개선 서약으로 개인위생 보호, 주거환경 개선, 저축의 생활화, 자녀 의무교육 등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22] [23] 예를 들어 '저축의 생활화'는 대출 신청자에게 의무적으로 저축계좌에 가입할 것을 요구하여 장기적으로 빈곤을 탈피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24] 
 

16개 규약 중 4항(왼쪽). 채소를 재배하여 섭취하고 남은 물품은 판매한다. 10항(오른쪽). 끓이거나 정수작업을 거친 깨끗한 물만 섭취한다. ⓒ 그라민은행 홈페이지

  
그라민은행은 세계에서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가난한 사람도 금융 대출을 받고 상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라민 모델의 아이디어는 전 세계로 널리 퍼졌으며 유누스는 2006년에 자신이 설립한 그라민은행과 함께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창립 초반인 1980년에 회원이 1만5000명 미만이었지만 2021년 10월 현재 방글라데시 마을의 93% 이상인 8만1678개 마을에서 944만 명이 회원이 되었다.[25] [26] 2020 보고서에 따르면 창립 이래 누적 316억 달러 이상의 금액을 회원에게 대출했다.[27]
 

유누스가 노벨평화상을 받고 손을 흔들고 있다. ⓒ Social Education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성장 

그라민은행의 성공적인 정착은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된다. 마이크로크레디트는 금융에서 소외된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무담보 신용대출로 소액의 창업자금을 지원해주고 동시에 교육 훈련 등 비금융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여 자립을 돕는 금융기법이다. 사실 마이크로크레디트는 그라민은행 이전에 시작되었다. 1720년대 아일랜드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가 영국 식민 치하의 조국의 비참한 삶을 바라보며 가난한 예술가들의 생활고를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조건 없이 소액의 자금을 대출해준 것이 시초이다. 그라민은행은 무담보 소액 신용 대출의 은행 시스템을 정착시켜 세계에 널리 알리고 새로운 금융 질서를 만들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29] [30]

마이크로크레디트는 방글라데시와 같은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도 진출했고 유엔이 2005년을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해(International Year of Microcredit)'로 지정할 만큼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31] 2000년 유엔 새천년정상회의에서 2015년까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사람의 비율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채택했고 마이크로크레디트가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강력한 도구로서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유엔 개발 계획(UNDP)이 설명했다.[32]

그라민은행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마이크로크레디트 기업이 등장하였다. 처음에는 빈곤 퇴치를 위한 효과적인 금융수단이라는 평가를 기반으로 비영리재단과 자선 투자자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했으나 영리은행을 포함하여 많은 투자자가 이 신흥시장에 자금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인도의 SKS마이크로파이낸스는 1998년 자선단체로 출범했으나 상업자본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외부 자본을 투자 받아 2005년 영리단체로 전환하여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33] [34] 마이크로크레디트가 투자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35]

'마이크로파이낸스 혁명'은 허위였나

원래 가난한 사람의 자활을 도우려고 시작한 사업이 1990년대 들어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면서 지나친 상업화 경향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부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이 고리대금업자와 비슷한 정도로 높은 이자율을 부과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대출을 무리하게 받은 저소득층이 상환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현실이 알려졌다.[36]

2010년에 인도 안드라 프라데시에서 부채로 고통 받던 주민 200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보고되었다. 주정부는 소액 대출 회사가 과도한 부채를 부추기고 차용인을 너무 가혹하게 압박한 것이 원인이라고 말했다.[37] 이에 따라 그해 10월 15일 안드라 프라데시 주정부는 소액 대출 기관의 수금인이 차용인을 찾아오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38]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이 과도한 이자를 부과하기 시작하면서 차용인이 부채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을 감시하는 방글라데시 정부 산하 기구인 PKSF의 회장 카지 아마드는 "소액대출이 가난한 사람에게 죽음의 덫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카지는 "가난한 사람들이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대출을 받는 사례가 많으며 대출자의 60%가 대출 상환에 관한 고려 없이 여러 곳에서 대출을 받는다"고 지적했다.[39]

가난을 팝니다

그라민은행도 이와 같은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한때 전 세계적으로 칭송받은 유누스는 일부 방글라데시 국민으로부터 '사채업자 유누스'라고 불리며 가난을 팔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2011년 보도된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총리 셰이크 하시나는 "유누스의 소액 대출이 빈곤 완화라는 명목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 먹는다"고 비난했다.[40]
  
방글라데시 출신의 미국 오리건대 교수 라미아 카림이 현지 조사를 통해 집필한 책 <가난을 팝니다>는 혁명적 대안으로 불리는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실상을 폭로한다. 저자는 치타공 마을을 방문하여 유누스가 그라민은행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어준 소피아 가족을 만났다. 기대와 달리 저자가 목격한 소피아 가족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라민은행은 소피아의 이야기를 이용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소피아는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41]
 

라미아 카림의 <가난을 팝니다> ⓒ 오월의봄

 

카림은 그라민은행을 비롯한 이른 바 '착한 자본주의'가 결코 신자유주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착한 일은 이윤의 극대화와 결합되었으며 토지, 물, 식량 등에 관한 구조적 개선 없이 이윤과 소비자 확대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방식과 다를 것이 없는 접근법에 치중했다고 비판했다.

그라민은행이 내세우는 높은 회수율의 이면도 폭로했다. 대표적으로는 강압에 의한 회수. 대출 담당자는 회수율을 높게 유지하라는 상부의 압박을 받았고, 채무자는 빚을 상환하기 위해 다른 기관에서 또 다른 대출을 받기도 했다. 빚을 갚지 못하면 집을 부순 뒤 그 자재를 팔아 빚을 상환하는 상상을 초월한 사례까지 나타났다. 그라민은행이 높은 상환율을 기록한 이면의 참담한 현실이었다. 고리대금업자의 횡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카림은 그라민은행이 강조한 빈민 여성의 삶의 질 개선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그라민은행의 소액대출 사업이 가난한 여성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것은 맞다. 하지만 여성이 대출을 받았지만 실제 사용자는 대부분 남성이었다. 특히 농촌 여성은 실질적인 자본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비록 여성이 주요 대출 대상이지만, 많은 남편이 일단 그들의 아내가 돈을 얻으면 통제권을 주장하기 때문에, 종종 남성이 실질적인 수혜자였다. 즉 여성의 권리 향상을 기한다는 목표를 표방했지만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강력하게 결합한 사회에서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가난하고 취약한 여성을 대출시장으로 끌어온 것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42] [43]

뉴욕 주립 빙엄턴 대학교 사회학 교수 월든 벨로는 마이크로크레디트가 빈곤과 싸우는 많은 여성을 도왔다는 면에선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을 가난하게 하는 근본적인 사회구조에 접근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소액대출 시스템으로부터 실질적인 혜택을 얻은 계층은 극빈자보다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가진 계층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많은 연구자는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통해 극빈자가 빈곤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지 않는다. 실제로 그라민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지 8년이 지난 극빈자 중 55%가 기본적인 의식주 욕구를 채우지 못했고 많은 여성이 빌린 돈으로 사업을 하기보다는 당장 급한 식량을 구입하는 데 써버렸다는 보고가 있었다.[44] 유누스의 그라민은행 모델이 생존전략으로서 기능할 뿐 빈곤을 종식시킬 수 있는 형태의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주창했다고 하는 것은 과장이라는 분석이다.[45]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소득, 저신용의 금융 취약계층은 여전히 많다. 적절한 금융지원 없이 이들이 가난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정부, 금융기관, 사회가 이들에 관심을 가지고 포용적 금융을 강구해야 한다는 데에 이견은 없다.[46] 그라민은행의 소액대출은 빈곤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지만 금융약자를 보호하려는 포용적 금융 운동을 세계에 널리 전파한 공로는 인정받아야 한다.

마이크로크레디트에 관한 유럽의 행동 강령(European Code of Good Conduct for Microcredit Provision)은 마이크로크레디트의 모범 사례를 수립하고 운영 및 보고 표준을 파악한다. 행동 강령은 고객 및 투자자 관계, 거버넌스, 리스크 관리, 보고 표준, 관리 정보 시스템까지 크게 5개의 카테고리로 나뉜다.

그 중 고객 및 투자자의 관계 조항은 마이크로크레디트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과 자금을 대는 투자자에게 투명성과 신뢰성을 보장해주고자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1.18 조항에서는 채권 회수 관행을 규정한다. 상환을 요구할 때는 고객을 존중하는 태도로 대해야 하며 물리적인 접촉을 포함한 협박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거버넌스 부문에서는 강력하고 책임 있는 거버넌스 구조를 강조하며 비즈니스 계획, 이사회 및 경영진의 역할과 책임, 외부 감사를 다룬다. 리스크 관리 조항은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이 금융기관인 점을 고려하여 금융사기 위험을 식별하는 시스템과 절차 및 내부 감사 기능을 정했다.

보고 표준에서는 사회적 및 재정적 성과를 보고하기 위한 공통 표준을 제시하고 마지막으로 관리 정보 시스템에서는 고객에게 높은 효율성과 신뢰성을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데이터를 수집 및 가공하여 필요한 형태로 정보를 배포하는 프로세스를 제시했다.[47]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하는 기업은 이 강령을 준수해야만 유엔의 고용 및 사회 혁신 프로그램(EaSI)에서 제공하는 펀드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이 펀드는 소액 금융 또는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적합한 기업에게 자금을 제공해주고 관련 교육을 통해 역량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핵심 기구이다.[48][49][50]

궁극적으로 이 행동 강령은 마이크로크레디트가 사회에 제공할 수 있는 뛰어난 가능성을 인식하고 소액금융의 지속가능한 관행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다. 지나친 상업화 경향과 함께 급속히 증가한 마이크로크레디트 기업은 저마다 각기 다른 규칙을 만들었고 견제가 어려웠다. 일각의 부정적 관행에도 불구하고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마이크로크레디트 제도의 정착과 확산에 관한 실험과 논의는 계속되어야 한다.

글 안치용 ESG코리아 철학대표, 이주현·장가연 바람저널리스트, 이윤진 ESG연구소 연구위원
덧붙이는 글 참고자료

[1] The Global Development Research Center, Grameen Bank - Banking on the Poor,
https://www.gdrc.org/icm/summary.html

[2] 페터 슈피겔, <가난 없는 세상을 꿈꾸는 은행가>, 좋은책만들기, 36-38p

[3] GEOFFREY MOCK (2010.5.11), ‘MICROLENDING, MACRO IMPACT’, https://today.duke.edu/2010/05/grameen.html

[4] 신한은행, 금융의 새로운 블루오션 마이크로크레딧, http://img.shinhan.com/cib/ko/data/FSB_0611_09.pdf

[5] 데이비드 본스타인, <착한 자본주의를 실현하다 그라민은행 이야기>, 갈라파고스, 37p

[6] 페터 슈피겔, <가난 없는 세상을 꿈꾸는 은행가>, 좋은책만들기, 31p~38p

[7] 페터 슈피겔, <가난 없는 세상을 꿈꾸는 은행가>, 좋은책만들기, 39p

[8] GEOFFREY MOCK (2010.5.11), ‘MICROLENDING, MACRO IMPACT’, https://today.duke.edu/2010/05/grameen.html

[9] Milaap, ‘What is Grameen Bank and Who is Muhammad Yunus?’, https://milaap.org/stories/what-is-grameen-bank-and-who-is-muhammad-yunus

[10] 문진수, <금융, 따뜻한 혁명을 꿈꾸다>, 북돋움, 34p

[11] Grameen Bank 홈페이지, https://grameenbank.org/credit-delivery-system/

[12] Masudul Alam Choudhury(2016), , 40p,  https://books.google.co.kr/books?id=c87LDAAAQBAJ&pg=PA40&lpg=PA40&dq=grameen+project+success+500&source=bl&ots=HuNlxig-U0&sig=ACfU3U3pMxcmdf0TKp8vEDBmKDm_8KT-bA&hl=ko&sa=X&ved=2ahUKEwiyiK-U9e33AhUSmFYBHQQQA2QQ6AF6BAgZEAM#v=onepage&q=grameen%20project%20success%20500&f=false

[13] 페터 슈피겔, <가난 없는 세상을 꿈꾸는 은행가>, 좋은책만들기, 45p

[14] Grameen Bank 홈페이지, http://grameenresearch.org/history-of-grameen-bank/

[15] 남주하 외 3명(2017), <금융포용과 금융약자를 위한 미래: 착한 금융과 따뜻한 금융의 실현>, 무역경영사, 150~151p

[16] Grameen Bank 홈페이지, https://grameenbank.org/credit-delivery-system/

[17] Grameen Bank 홈페이지(2022.4.13), MONTHLY REPORT: 03-2022 ISSUE 507 IN USD, https://grameenbank.org/data-and-report/monthly-report-03-2022-issue-507-in-usd/

[18]이철환(2016.2.12),그라민은행과 스위스용병의 성공비결…'빚이 아닌 신용', 머니투데이,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6021208084521956

[19]  남주하 외 3명(2017), <금융포용과 금융약자를 위한 미래: 착한 금융과 따뜻한 금융의 실현>, 무역경영사, 151, 155p

[20] Stephanie Wykstra(2019.1.15), Microcredit was a hugely hyped solution to global poverty. What happened?, Vox, https://www.vox.com/future-perfect/2019/1/15/18182167/microcredit-microfinance-poverty-grameen-bank-yunus

[21] 남주하 외 3명(2017), <금융포용과 금융약자를 위한 미래: 착한 금융과 따뜻한 금융의 실현>, 무역경영사, 153p

[22] 김성현(2011), 한국형 그라민 뱅크의 성공을 위한 과제

[23] Grameen Bank 홈페이지, https://grameenbank.org/16-decisions/

[24] 남주하 외 3명(2017), <금융포용과 금융약자를 위한 미래: 착한 금융과 따뜻한 금융의 실현>, 무역경영사, 155p

[25] Grameen Bank 홈페이지, Annual Report 2008, https://grameenbank.org/wp-content/uploads/bsk-pdf-manager/GB-2008.pdf

[26] Grameen Bank 홈페이지, https://grameenbank.org/introduction/

[27] Grameen Bank 홈페이지, Annual Report 2020, 10p, https://grameenbank.org/wp-content/uploads/bsk-pdf-manager/Annual_Report_2020-1_41.pdf

[28] Social Education(2007), Nobel Peace Laureate Muhammad Yunus: A Banker Who Believes Credit is a Human Right, 2p, https://www.socialstudies.org/system/files/publications/articles/se_7101079.pdf   

[29] Stephanie Wykstra(2019.1.15), Microcredit was a hugely hyped solution to global poverty. What happened?’, Vox, https://www.vox.com/future-perfect/2019/1/15/18182167/microcredit-microfinance-poverty-grameen-bank-yunus

[30] 문진수, <금융, 따뜻한 혁명을 꿈꾸다>, 북돋움,57-63p

[31] 문진수, <금융, 따뜻한 혁명을 꿈꾸다>, 북돋움, 55p

[32] UN(2004.11.18), UN LAUNCHES INTERNATIONAL YEAR OF MICROCREDIT 2005, https://www.un.org/press/en/2004/dev2492.doc.htm

[33] SKS MICROFINANCE 홈페이지, https://www.sksindia.com/our_journey.html

[34] SKS MICROFINANCE 홈페이지, https://www.sksindia.com/how_we_do.html

[35] 문진수, <금융, 따뜻한 혁명을 꿈꾸다>, 북돋움, 69-70p

[36] 문진수, <금융, 따뜻한 혁명을 꿈꾸다>, 북돋움, 69p-70p

[37] AP(2012.2.24), ‘Hundreds Of Suicides In India Linked To Microfinance Organizations’, Insider, https://www.businessinsider.com/hundreds-of-suicides-in-india-linked-to-microfinance-organizations-2012-2

[38] The Economic Times(2011.1.5), ‘Suicides reveal how men made a mess of MFIs’, https://economictimes.indiatimes.com/industry/banking/finance/suicides-reveal-how-men-made-a-mess-of-mfis/articleshow/7219687.cms?from=mdr

[39] James Melik(2010.11.3), ‘Microcredit 'death trap' for Bangladesh's poor’, BBC, https://www.bbc.com/news/business-11664632

[40] Lydia Polgreen and Vikas Bajaj(2011.3.2), ‘Microcredit Pioneer Ousted, Head of Bangladeshi Bank Says’, The New York Times, https://www.nytimes.com/2011/03/03/world/asia/03yunus.html

[41] 라미아 카림(2015), <가난을 팝니다 가난한 여성들을 착취하는 착한 자본주의의 맨얼굴>, 오월의 봄

[42]‘BBC World Service, Article 22: Right to social security and realisation of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https://www.bbc.co.uk/worldservice/people/features/ihavearightto/four_b/casestudy_art22.shtml

[43] 라미아 카림(2015), <가난을 팝니다 가난한 여성들을 착취하는 착한 자본주의의 맨얼굴>, 오월의 봄

[44] Gina Neff, Microcredit, microresults, https://www.leftbusinessobserver.com/Micro.html

[45] Walden Bello(2006.10.30), ‘Microcredit, Macro Issues’, https://www.thenation.com/article/archive/microcredit-macro-issues/

[46] 남주하 외 3명(2017), <금융포용과 금융약자를 위한 미래: 착한 금융과 따뜻한 금융의 실현>, 무역경영사, 5-7p

[47] European Commission(Version 2.5 of 2017), European Code of Good Conduct for Microcredit Provision

[48] European Investment Fund 홈페이지(2019), https://www.eif.org/what_we_do/microfinance/easi/easi-funded-instrument/index.htm

[49] European Investment Fund 홈페이지(2016), https://www.eif.org/what_we_do/microfinance/easi/index.htm

[50] European Commission 홈페이지, https://ec.europa.eu/social/main.jsp?catId=1084&langI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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