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17 12:14최종 업데이트 22.05.1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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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편집자말]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은 '옳은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왜냐하면 촛불로 부패와 비리를 탄핵한 이후에 다른 후보자들은 대안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선 결과를 냉정하게 분석했지만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기대가 점차 부식해 결국 실망이 돼 버리고 말았다. 가장 큰 이유는 문재인 정부 역시 한국의 민주주의 퇴행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포스트 민주주의(post-democracy)는 민주주의 제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이 점점 더 껍데기가 되는 상태, 즉 실질적 민주성이라는 속은 파내어지고 껍데기만 남아 있는 상태를 말한다. 지난 5년을 되돌아보니 전형적인 포스트 민주주의와 너무나 유사한 민주주의의 퇴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 개정 시도부터 그랬다. 당시 제출한 개헌안은 정의당조차 칭찬할 정도로 개혁적이었지만 내용과 결과보다는 과정과 절차가 문제였다. 단독으로 개정안을 만들어 무리하게 밀어붙였던 것은 목적으로 수단을 정당화하려는 일방통행 정치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그다음 해인 2019년 후반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의 거센 반발과 부정적인 여론을 무릅쓰고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시급한 검찰개혁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유일한 적임자로 여겼기 때문인지 무리해서라도 강행한 모양이다.

제왕적 대통령 전형 보인 박근혜 사면

장관 임명은 국회의 동의가 없어도 진행할 수 있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입법부의 동의를 얻는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통령의 지나친 권력집중과 혹시 모를 자의적 권력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권력분립의 원리를 지키는 차원에서 그렇다.

비슷한 시기에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소위 4+1 합의체(민주·바른미래·정의·평화+대안신당)가 다수의 힘으로 이른바 검찰개혁 3법안(검찰청법,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공수처법 제정안)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채택해 2020년 초에 단독으로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이번에도 역시 검찰의 권력남용을 방지하려는 의도는 누가 봐도 옳았지만 그 실행방식에는 민주성이 빠져 있었다.

같은 해에 같은 수법으로 단독 처리한 공직선거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4.15 총선이 다가오는 시점에 민주당은 정의당 심상정 의원의 획기적인 개정안(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힘을 실어줬다가 조국 장관 임명 과제를 성공시키고 나서는 본심을 드러냈다. 거대 여당의 위압으로 원래 개혁안을 갈수록 축소시켜 결국 거의 백지상태로 돌리고 만 것이다.

특히 결정적으로 협력해준 약소 정당들까지 배신한 것은 불법은 아니지만 협치에 대한 반칙이었다. 이 일을 시작으로 두 거대 정당은 심지어 편법으로 위장 정당을 출격시켜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짓밟았다.

국민의 여론이 어김없이 매우 비판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다시 망신을 자초하기 바빴다. 2021년 여름에 추진했던 언론중재법 개정 시도가 그것이다.

개정안이 언론의 자유를 해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어떤 개혁 시도에도 거의 묻지마식으로 발목 잡는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와 해외 전문가 집단까지 크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끝까지 개정을 고집하다가 본회의 상정에 실패하자 법안을 겨우 철회했다.
 

지난해 12월 특별사면을 받아 같은 달 31일 0시 석방된 후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온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가 3월 24일 퇴원,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 남소연

 
이러다 보니 2021년 성탄절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한 것도 더 이상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박근혜 사면은 사실 대대적인 사건이다. 특별사면권은 아주 예외적인 상황에서 사회의 화합 또는 화해를 위해 사용하는 특별한 수단인 만큼 매우 신중하게 써야 할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화해를 달성하려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이 고유권한을 아무 조건 없이 독단적으로 쓴 것은 제왕적 대통령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올해 들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대선에서 이기자 민주당은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또다시 다수의 힘으로 국회에서 관철했다. 검찰 출신인 윤 당선인이 취임하기 전에 검찰개혁을 필히 완성해야 한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다.

단독 처리를 위해 개정안을 신속처리 절차로 채택할 수 있는 안건조정위원회를 활용하는 꼼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본래 소수당을 배려해 만들어진 이 제도를 다수당이 악용한 셈이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탈당한 다음 사보임(사임·보임)을 실행함으로써 위원회의 구성요건을 충족시켰다. 일종의 '파업 파괴자' 술책이자 김대중 대통령 때의 '의원 꿔주기'를 방불케 하는 조삼모사 계략이었다.

염치없는 혐치(嫌治)

그것도 부족해 역시 국회 내 소수세력을 위한 수단인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제도를 무력화하기 위해 본회의 안건을 일부러 쪼개서 상정했다. 야당의 마지막 방어수단도 막고 개정법안을 민주당의 뜻대로 단독 처리해 버린 것이다. 이쯤 되면 협치(協治)가 아니라 염치없는 혐치(嫌治)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는 불행하게도 임기 내내 말 그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민주주의의 일그러진 모습을 일관성 있게 보여줬다. 그 특징은 형식적으로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만 내용적으로는 민주적 과정을 생략하는 것이다.

요컨대 추상적인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목적은 분명히 옳았지만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동원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수단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권모술수(權謀術數)였다. 또 국민을 위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국민 위에서 양 진영의 정당 카르텔 내부 패권 싸움에 이기기 위한 전술에 불과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0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용산구 집무실로 들어가기 전 정문앞에 모여 있는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권우성

 
그러나 이러한 포스트 민주주의 전형은 결코 '독주 민주당'의 문제만은 아니다. 갓 들어선 새 정부도 벌써부터 포스트 민주주의 낌새가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무리한 공약을 하고, 당선 이후에 일부 공약을 부당하게 파기하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의 이전 결정 과정이나 내각과 대통령실 인사 등 일련의 행태도 마찬가지로 우려스럽다.

민주주의를 이렇게 너무나 '자유'롭게만 해석하다가는 새 정부도 곧 '국민의 짐'이 된다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이 글은 모두 필자가 한글로 작성했으며 편집자가 약간의 교정·교열만 했음을 밝힙니다.
 

하네스 모슬러 /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 하네스 모슬러

 
* 필자 소개: 이 글을 쓴 하네스 모슬러는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 (University of Duisburg-Essen) 정치학과와 동아시아연구소(IN-EAST) 교수이며,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이다. 관심 분야는 한국정치와 사회로서 최근 연구주제는 선거제도, 개헌, 기억의 정치, 시민교육, 포퓰리즘 등이다. 최근 저서로 <Politics of Memory in Korea>(편저), <South Korea's Democracy Challenge>(편저), <The Quality of Democracy in Korea>(공편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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