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18 18:09최종 업데이트 22.04.1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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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2022년 여름까지 새로운 독도 대책을 내놓겠다며 작년 12월 8일 자민당 독도대응팀 첫 회의를 열었다. 뒤이어 금년 3월 29일에는 문부과학성이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라는 억지 주장을 강화한 교과서 검정 결과를 내놓았다.

지난주에는 또 다른 도발이 알려졌다. 독도의 한글 도메인이 외무성 홈페이지에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 14일 자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인터넷 주소창에 '독도.com'을 입력하면 외무성 홈페이지의 한국어 버전이 뜨면서 "일본의 영토"라는 글자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아래에는 "다케시마 영유권에 관한 일본국의 일관된 입장"이라는 글이 이어진다.
  

ⓒ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보도에 따르면, '독도.com' 도메인 소유자는 미국 국적자다. 도메인 최초 등록 시점은 2004년이고, 만료일은 다음 달인 5월 27일이다. 2004년에 등록된 이 도메인을 외무성 홈페이지에 연결해 놓은 것이다.

영어나 일본어가 아닌 한글로 돼 있기 때문에, 주로 한국인들이 이용할 수밖에 없는 도메인이다. 한국인 대부분은 외무성 홈페이지에 적힌 내용을 수긍할 리 없기 때문에, 이 도메인을 그곳에 연결한 주목적은 일본의 입장을 홍보하기보다는 한국인들을 자극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한국인들의 대응도 언론에 보도됐다. 한자 다케시마가 들어간 '竹島.jp'를 클릭하면 한국 외교부 홈페이지가 연결되도록 해놓은 일이 15일 알려졌다.

독도 밀약

1894년에 발발한 청일전쟁을 통해 청나라를 한국에서 밀어낸 일본은 1904년 2월 8일 또 다른 경쟁자를 몰아내고자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그런 뒤 그달 23일 한일의정서 체결을 통해, 한국에서 군사기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과 한국에 대해 충고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의정서 제1조는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 정부를 확신하고 시정의 개선에 관한 그 충고를 용인할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때는 1905년 11월 17일의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이 강제되기 1년 9개월 전이었다. 한일의정서 체결은 한국이 을사늑약 상태로 끌려가는 과정 중에 일어났다. 한국의 자주권이 서서히 잠식되던 시기에 발생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일본이 벌인 것이 독도 가로채기다. 러일전쟁 와중인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했다.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 정부를 확신"하라며 믿음을 주고는 독도를 그런 식으로 빼앗은 것이다.

독도 한글 도메인을 외무성 사이트에 연결한 일은 독도를 시마네현에 연결한 일에 비해 낮은 수준의 도발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 공통되는 것이 있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욕망이 숨길 수 없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독도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두 사안에 공통적으로 배어 있다.

타이완을 매개로 미·중 패권 경쟁이 격해지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매개로 미·러 패권경쟁이 가열되는 지금, 미국은 동맹국들 간의 결속을 더욱더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일본 정부뿐 아니라 한국 정부에 의해서도 위안부·강제징용 같은 역사 문제가 억제되는 것은 백악관의 의중이 양국 정부나 정치권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민당 독도대응팀이 올여름 새로운 독도 정책을 예고하고, 역사교과서를 한층 개악하고, 독도 한글 도메인을 매개로 자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일본의 욕망이 숨길 수 없는 것임을 보여주는 현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미국의 세계 정책에 편승해 군사대국화를 이뤄나가고 있다. 그래서 적어도 지금은 미국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한국을 자극하고 한·미·일 동맹을 약화시키는 일들이 일본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 욕망을 숨길 수 없기에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고 볼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에 게양된 일장기 2015.4.8 ⓒ 유성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와 노다니엘 전 홍콩과기대 교수의 인터뷰와 뒤이은 <월간 중앙> 2007년 4월호 등을 통해 알려지게 된 독도 밀약이 체결될 때만 해도, 일본인들은 그 욕망을 일시적으로나마 감췄다. 당시의 미국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것이 일본의 욕망 숨기기를 가능케 했다.

독도 밀약은 '미해결의 해결'이라는 기조에 입각했다. '앞으로 해결하기로 하자'라고 합의하는 것으로써 해결된 것으로 간주하자는 원칙이 이 밀약을 지배했다.

(1) 상대방이 독도를 자기 영토로 주장하는 것에 대해 정부 차원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2) 어업 수역을 설정할 때 독도를 양국 공동수역에 포함시키고, (3) 한국이 독도를 점거하는 상태를 유지하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을 세우지 않으며, (4) 이 합의를 계속 지키되 비밀을 유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독도 밀약은 한일협정(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이 체결되기 5개월 전인 1965년 1월 11일 합의됐다.

이 시점에 독도 밀약이 합의되고 뒤이어 한일 협정이 체결된 것은 양국의 미수교 상태가 두 나라에도 불편했지만 무엇보다 미국에 불편했기 때문이다. 점점 강해지는 북·중·러를 한·미·일 동맹으로 맞서야 했던 당시의 미국으로서는 한일관계를 어떻게든 복원하는 것이 절실했다. 그런 다급함이 밀약의 성사를 촉진한 결정적 요소였다.

미국을 더욱 다급하게 만드는 일이 밀약 3개월 전인 1964년 10월 16일 있었다.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한 것이다. 이로 인해 동북아의 군사적 균형에 변화가 생기고 미국이 공산권을 보다 강하게 압박해야 하는 상황이 독도 밀약을 한층 부추겼다.

이는 미국이 한·일 국교 재개를 더욱 압박하고 이에 밀린 일본이 독도 밀약 체결을 서두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장에 합의되기 힘든 문제를 밀약 형태로 봉합해 두고 나머지 사안들을 명문의 조약·협정으로 마무리하자는 발상이 일본 정부를 움직였다.

미국 눈치 보던 일본이 변했다

당시의 일본이 미국의 눈치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는 노다니엘의 <독도밀약>에서도 알 수 있다. 이 책은 독도밀약이 1월 11일에 체결된 것은 미일정상회담 일정에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린든 존슨 행정부가 자국을 방문하게 될 사토 에이사쿠 총리를 상대로 한일관계 해결책을 재촉했고, 사토 내각은 정상회담 때까지 성과를 제출해야 했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방미 직전에 사토 총리와 고노 이치로 건설대신 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사토는 부재중 총리 대행으로 고노를 임명하며 '워싱턴에 도착하기 전에 일·한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요청했다. 존슨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일 국교정상화와 관련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은 미일정상회담 성공의 절대 조건이었다.
 
고노 이치로 대신은 정일권 국무총리와 더불어 이 밀약의 책임자였다. 김종필의 형인 김종락이 시마모토 겐로 요미우리신문 특파원과 함께 이들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했다.
  

한일협정에 서명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 ⓒ 문경환

 
고노 대신은 사토-존슨 회담 직전에 밀약 체결을 마무리했다. 일본이 제시한 밀약은 11일 서울에서 정일권의 동의를 얻고 13일 박정희의 재가를 받았다. 서울 현지의 일본인들은 박정희의 재가 사실을 용산 미군기지 내의 전화 시설을 통해 미국의 사토 총리에게 알렸다. <독도밀약>은 이렇게 말한다.
 
그때 사토는 샌프란시스코의 마크홉킨스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12일 밤의 일이었다고 시마모토는 회상한다. 현지 시각으로 13일 오전 예정되었던 사토-존슨 회담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1965년 당시에는 미국의 힘이 막강해 일본의 욕망이 감춰질 수 있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독도 밀약이다. 당시의 일본은 미국이 부담돼서라도 욕망을 감춰야 했지만, 지금의 일본은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

지금의 일본은 욕망을 굳이 감추지 않아도 미국과의 협력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이 한·미·일 동맹을 강조하는 중에도 그들의 욕망이 자꾸 삐져나오고 있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대응이 향후 급박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낳게 만드는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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