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06 17:52최종 업데이트 22.04.0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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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이 선친을 친일파로 비판한 독립운동가 후손단체 대표를 고소했다. 5일자 보도들에 따르면, 대한민국건국회 동제사 대표를 상대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를 제기했다.

촛불혁명 당시인 2016년 11월 16일 원내대표로 선출돼 새누리당을 이끌었던 정우택 의원은 2020년 제20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대선과 함께 치러진 이번 3·9 재보선에서 5선을 이뤘다. 더불어민주당 정정순 의원이 당선무효형을 받은 뒤 치러진 청주시 상당구 재선거에서 당선됐다.


그가 재선거 예비후보자였던 지난 2월 2일, 동제사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극악무도한 일제를 위해 앞장서왔던 친일파들의 위세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며 "이런 부류의 친일파 정운갑의 혈손이 민족의 얼이 서린 청주시 상당구에 정치지도자로서 국회의원을 한다고 하는 것"이라는 문장이 나오는 자료다.

동제사는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보수를 표방해 오고 있다지만 최소한 충북의 정치 1번지라고 하는 대표적인 보수 지역인 청주시 상당구에서만큼은 친일파 혈손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사람을 내세우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런 동제사의 행위로 인해 명예훼손을 입었다며 정우택 의원이 법적 대응에 나섰다.

정우택 부친 정운갑

정우택 의원의 부친인 정운갑(鄭雲甲, 1913~1985) 전 농림부장관은 일제 강점 3년 뒤에 충북 진천에서 출생했다. 만 25세 때인 1938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중일전쟁 발발 이듬해인 이 해부터 일본제국주의의 한국 지배에 참여했다.

<조선총독부 및 소속 관서 직원록(朝鮮總督府及所屬官署職員錄)>에 따르면, 그는 1938년 당시 충청남도 논산군 권업과에서 근무했다. 그의 신분은 속(屬)으로 표기돼 있다. 장관급이 임면하는 판임관(判任官)의 일종인 속관(屬官)이었던 것이다.
 

본문에 인용된 총독부 기록. ⓒ 조선총독부

 
1939년과 이듬해 기록에도 그는 논산군 속관으로 등장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1940년 기록에는 권업과 직원으로 표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해의 기록에서는 내무과장 다음다음에 거명됐을 뿐 구체적인 소속 부서가 명기돼 있지 않다.

그 뒤 일제강점기판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1953년 11월 12일자 <경향신문> 기사 '정 총무처장 약력'은 정운갑이 지금의 행정자치부에 상응하는 총무처의 책임자가 된 사실을 보도하면서 "4276년 일본 고문(高文) 행정과 합격"이라고 서술했다. 1943년에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했던 것이다.

이 시기의 정운갑에 관한 기록에는 공백들이 있다. 고등문관시험 합격 이전과 이후의 기록이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1941년·1942년 행적과, 1943년 합격 이후 행적이 뚜렷하지 않다.

1941년·1942년 행적이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것은 고시 공부 때문일 수도 있다. 1939년과 1940년에는 논산군 권업과에 근무했다는 기록이 있는 반면 1941년에는 구체적인 실무 부서에서 일했다는 기록이 없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군청 상급자들이 경성제국대학 출신인 그의 고시 공부를 돕고자 편의를 제공해줬을 수도 있다.

한편, 1943년 합격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생길 여지가 있다. 합격 이후의 2년간에 관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 위 <경향신문> 기사에도 언급됐듯이 1945년부터 1948년 사이에 경기도 지방과장을 지낸 일이 있다. 해방 당시에도 관직에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친일파 기준

2005년에 서울대학교 일제잔재청산위원회는 역사학자 이병도와 함께 정운갑을 '서울대 친일 인물 12인'으로 발표했다. 그해 4월 7일자 <오마이뉴스> '서울대 일제청산위, 1차 친일인물 12명 발표'에도 보도됐듯이, 서울대 공대학생회·자연대학생회·미대학생회·사범대학생회·동아리연합회·수행불교회·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밀알선교단·증산도학생회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정운갑·이병도와 더불어 정인섭·김성태·현제명·노수현·장발·장우성·백한성·한태연·민복기·한동석를 친일인물로 규정했다.

이때 근거로 제시된 것은 정운갑의 고등문관시험 합격이다. 친일 엘리트 관료의 등용문을 통과한 사실이 제시됐다.

1948년 9월 22일 제정돼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활동 근거가 된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은 '행위' 아니면 '지위'를 근거로 반민족행위자 여부를 판단했다. 적극적인 친일행위를 한 사람이나, 친일행위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고위직에 있었던 사람을 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다.

정운갑이 적극적 친일행위를 했다는 자료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경우에는 고위직에 들어가는 관문을 통과한 경력이 있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행위'보다는 '지위'를 근거로 친일파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반민법 규정 중에서 지위와 관련된 것은 제2조·제4조·제5조다. 제2조는 귀족 작위를 받거나 제국의회 의원이 된 것 자체를 친일행위로 규정했다. 제4조는 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의 간부가 된 것과 칙임관 이상의 관리로 임용된 것 자체를 친일로 규정했다. 제5조는 고등관 3등급 이상에 임명된 것 자체를 친일로 판단했다.

칙임관은 일왕이 직접 임명하는 관직이었다. 칙임관 아래에 주임관이 있었고 그 아래에 판임관이 있었다. 반민법 제4조 제3호는 칙임관 이상은 친일파로 규정했지만 판임관에 대해서는 그런 규정을 두지 않았다.

정운갑이 고등관이 되는 관문을 통과한 시점은 해방 2년 전이다. 그 뒤 2년 동안에 관직에 취임했다면, 이 법에서 말하는 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할 여지가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3월 22일 제정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6호는 "고등문관 이상의 관리 또는 군경의 헌병분대장 이상 또는 경찰간부로서 주로 무고한 우리민족 구성원의 감금·고문·학대 등 탄압에 앞장선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했다.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인명사전 부록인 <금단의 역사를 쓰다, 18년간의 대장정>에서 행정직 관료의 친일파 판단 기준을 '고등관 이상의 관료로 재직한 자', '친일행위가 뚜렷한 일반 관공리'로 제시했다.

정운갑은 식민지배기구에 참여했다. 식민지배구조의 상층부에 진입하는 관문도 통과했다. 헌금을 하거나 기고나 강연을 하는 방식으로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과 달리, 일제 지배에 직접 '참여'했고 그 속에서 더 높은 역할을 얻고자 했다.

그는 해방 직전에 고등문관시험을 패스한 게 아니라 2년 전에 그렇게 했다. 그 기간에 아무것도 안 했다고 말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서울대 일제청산위가 그를 친일인물로 규정한 데는 그런 판단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2009년 9월 27일자 <충북인in뉴스> '정우택 지사 선친, 친일 누명 벗었나'에 등장하는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정운갑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제외됐다고 해서 친일행위자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행적이 불확실해서 수록이 보류된 384여 명에 대해서는 향후 사전을 개정·보완할 때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정운갑이 반민법, 2004년 특별법, <친일인명사전>이 규정하는 친일파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그가 친일 행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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