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30 16:01최종 업데이트 22.03.3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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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교과서가 한층 더 개악됐다. 29일 문부과학성의 검정심사를 통과한 교과서들에서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라는 억지 주장이 더 강조되고, 극우세력의 역사수정주의 시각이 일제식민지배 문제에 더 많이 투영됐다. 일본이 전쟁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쪽으로 역사를 수정하려는 세력의 시각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29일 오후 일본 문부과학성의 한 회의실에 검정을 위해 각 출판사가 제출한 고교 역사 교과서 등이 진열돼 있다. 2022.3.29 ⓒ 연합뉴스

 
용어의 문제

이번에 검정심사를 통과한 교과서들에서는 '종군 위안부' 대신 '위안부'라는 표현만 사용됐다. 일본군이 가해자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일본 정부의 의중을 반영한 대목이다.


이에 관한 공식 입장인 1993년 8월 4일 고노담화는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런 뒤 본문에서 군의 개입을 시인한다. 그중 하나가 "어쨌거나 본 건은 당시 군의 관여 아래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다"라는 대목이다.

고노담화는 현재까지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미국도 이를 적극 지지한다. 특히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그랬다. 일본이 이마저도 시인하지 않으면 한일관계가 파탄돼 '한·미·일 대 중국'의 대립 구도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런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고노담화를 공식 파기하지 못하면서도, 이번과 같은 교과서 검정을 통해 사실상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용어 문제와 관련해 교과서 집필진과 문부과학성 사이에 갈등이 있었음을 드러내는 흔적도 있다. 보도에 따르면, 도쿄서적이 발행한 교과서에 "2021년에 종군위안부가 아니라 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각의 결정이 이뤄졌다"는 문장이 있다. 정부가 사용하지 말라는 종군위안부 용어를 교과서에 드러내면서도 이 용어가 내각회의 결정에 배치된다고 서술했다. 집필진은 종군위안부로 표기하고자 했지만 내각의 압력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문장이다.

한국인들을 강제노동 노예로 전락시킨 강제징용과 관련해서는 '강제연행' 같은 표현 대신 '징용'이나 '동원' 같은 표현이 사용됐다. '모으다, 요구하다, 불러들이다'를 뜻하는 징(徵)이 들어간 징용(徵用) 자체에도 '강제성'의 뉘앙스가 있지만, 이 단어가 오랫동안 사용되는 과정에서 그 뉘앙스는 점점 약해졌다. 오늘날 징용은 '합법적 강제성'의 뉘앙스를 많이 풍기고 있다.

'징용' 앞에 '강제'를 붙이는 것은 동어반복인 측면도 있지만, 징용의 뉘앙스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것의 불법성을 명확히 하려면 강제징용이나 강제연행 같은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도를 차단하고자 일본 정부가 '징용'이란 표현을 강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치적 필요에 맞춰 수정하는 일본 정부의 조치는 한·일 역사문제 해결을 지연시키고 일본 군사대국화를 부추기는 동시에, 한·일 양국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기제로도 작동할 위험성이 있다. 그래서 더욱 철저히 대처해야 할 사안이다.

여성혐오

역사수정주의 세력의 위안부 서술은 여성 혐오적 시각을 반영한다. 여성들이 성노예로 전락한 것을 국가권력이나 사회의 책임으로 인정하지 않고 여성들의 개인 책임으로 전가한다. 가난을 탈피하고 큰돈을 벌려는 욕심에서 여성과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벌인 일인 듯 몰아간다.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의 망언에서 나타나듯이, 역사수정주의자들은 피해자를 도리어 매춘부로 몰아세운다. 돈을 벌려고 포주와 자유롭게 계약한 뒤 전쟁터에 나가놓고 일본정부를 상대로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며 피해자들을 코너로 몰고간다. 작년에 <역사연구> 제41호에 수록된 김은경 한성대 교수의 논문 '인가된 무지와 전략적 무시가 낳은 참사, 램지어 사태에 대한 관견(管見)'에 이런 대목이 있다.
 
램지어의 주장이 문제적인 이유는 단지 공창제와 위안부 제도를 동일한 맥락에 둬서가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혐오를 재생산해서다. 식민지 여성에게 자유로운 계약 주체라는 '권능'을 부여하며 노린 것은 이들을 사회적 평판이나 전쟁 위험도 아랑곳 않고 오로지 돈을 좇아 몸을 내던지는 비인격적 존재로 만들려는 것이다. 이는 폭력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수법이다.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낙인찍기는 피해에 대한 부정이면서 동시에 심각한 혐오 발화다.
 
작년에 <여성과 역사> 제34권에 실린 박정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의 논문 '교차하는 권력들과 일본군 위안부 역사 - 램지어와 역사수정주의 비판' 역시 여성 혐오의 위험성을 언급한다.
 
역사수정주의자들은 미국의 힘에 기댄 냉전체제의 역사인식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되돌리고 싶어 한다. 그 세계에서는 전쟁책임도, 식민지 지배 책임도 일본이 더 이상 지지 않아도 되고 소수자나 여성 혐오 발언도 혐오로서 감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극우세력이 위안부 문제를 통해 여성혐오를 표출하는 것은 전쟁범죄를 은폐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이는 일본 내의 정치·사회적 필요와도 무관치 않다. 여성에 대한 억압이 특히 견고한 자국의 사회구조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미투 운동이 일본에서 크게 활성화되지 않는 것은 운동의 필요성이 낮아서이기보다는 운동의 역량이 낮기 때문일 수 있다. 그 같은 여성 권익 실태는 10여 년 전부터 유행한 신조어에서도 감지된다. 여자력(女子力)이라는 단어의 유행이 그것이다.

죠시료쿠로 발음되는 '여자력'을 '여성의 힘'이나 '여성의 능력'으로 번역해서는 안 된다. '여자다움', '여성스러움'으로 번역돼야 한다. 이 단어는 외모나 말투 혹은 태도 등이 얼마나 여자다운지를 나타날 때 사용된다.

일본은 한국·중국과 더불어 한자문화권 국가다. 이런 나라에서, '여성의 힘'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단어가 여자다움 혹은 여성스러움을 뜻하고 있다. 여성 권익의 수준을 보여줄 만한 척도다. 일본 극우세력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폄하하는 데는 이 같은 자국의 사회구조를 지키려는 의도도 없지 않아 보인다.

결국, 대중의 지위 약화

위안부 혐오가 여성 혐오와 무관치 않다는 점은 한국 극우세력의 구호에서도 나타난다. 수요일마다 옛 일본대사관 앞에 출현해 수요집회를 훼방하는 위안부사기청산연대가 지난 1월 26일 첫 집회를 열 때 내건 구호 중 하나가 '여가부 폐지'였다.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국민계몽운동본부·엄마부대로 구성된 이 연합단체의 여성 회원들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전단을 들고 있는 모습이 언론에도 보도됐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태도가 여성 인권에 대한 태도와 직결된다는 점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국민의힘에서 여가부 폐지가 추진되는 데서도 느낄 수 있다. 이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저해하는 움직임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바가 1945년 이전 문제가 아니라 2022년 현재 문제임을 보여준다. 모순된 사회구조를 옹호하려는 욕망이 '위안부는 사기다'라는 주장에 녹아 있다.

강제징용에 대한 폄하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약자들이 당한 피해를 그들 자신의 책임으로 전가시키는 태도에서도 그런 의도가 읽힌다.

큰돈을 벌 욕심에 자발적으로 징용에 응해놓고 뒤늦게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을 탓하냐며 적반하장 식으로 피해자들을 나무라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배세력의 혐오감을 반영한다. 위안부와 강제징용에 대해 한층 개악된 서술을 내놓은 일본 교과서들은 그 같은 혐오감을 상당부분 반영하고 있다.

위안부 혐오나 강제징용 피해자 혐오는 결국 대중의 지위 약화로 이어지기 쉽다. 여성과 노동자의 권익이 약해지면 대중의 권익 역시 전반적으로 취약해진다. 여가부가 폐지돼 여성 권익이 약해지고 이로 인해 대중의 지위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면, 여가부 폐지에 열광했던 일부 남성들의 권익도 덩달아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일본 역사교과서 우경화가 위험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다. 잘못된 역사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고 그 역사를 바로잡는 일을 저해하기도 하지만, 한·일 양국 대중의 현재 처지를 약화시킬 가능성도 커진다. 한·일 기득권층이 여성 혐오나 사회적 약자 혐오를 통해 대중의 지위를 약화시키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역사교과서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비판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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