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25 13:03최종 업데이트 22.03.2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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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옥순 엄마부대 대표와 국민혁명당 관계자들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도 소녀상도 모두 거짓말’, ‘30년간 속았다, 위안부 사기 이제 그만’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수요일인 23일, 위안부사기청산연대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정의연이 지난 16일 이들을 집회 방해 및 명예훼손·모욕 혐의로 고소한 것에 대한 맞고소다.

위안부사기청산연대는 지난 1월 26일 수요집회가 열리는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첫 집회를 열었다. 이 연합단체에는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국민계몽운동본부·엄마부대처럼 수요집회와 평화의소녀상(위안부 소녀상)을 반대하는 단체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과 더불어 <반일 종족주의>를 공저한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도 이들과 연대하고 있다.


그날 연합집회에서 이들은 "위안부 성노예설 거짓이다" 같은 구호뿐 아니라 "여가부 폐지" 같은 구호도 함께 내세웠다. 여성 회원들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전단를 들고 있는 모습이 언론매체에 보도됐다.

이들의 주 활동은 수요집회에 맞서는 맞불집회다. 서울 광화문광장 동편의 연합뉴스 사옥 앞에서 거행되는 수요집회와 그 주변 곳곳에서 벌어지는 맞불집회를 보게 되면, "수요집회에 맞서는 맞불집회"란 표현이 지나치게 약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수요집회 참가자들의 목소리보다 이들의 확성기 소리가 훨씬 클 때가 많다. 또 위안부 역사청산 활동과 수요집회를 깎아내리는 주장들이 난무한다. 심지어 일장기가 등장할 때도 있다. 수요집회에 맞서는 정도가 아니라, 방해 혹은 훼방하는 활동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일본의 혐한집회

수요일마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이 광경과 거의 똑같은 것이 일본에서도 벌어진다. 일본 극우세력이 주도하는 혐한집회에서도 일장기와 욱일기가 펄럭이고 태극기가 불태워지는 가운데 "일한(日韓) 단교"니 "한국인 매춘부"니 하는 팻말들이 등장할 때가 있다.

2014년 6월 2일 일본에서 인종차별철폐 NGO 네트워크(人種差別撤廃NGOネットワーク)가 국제인권활동일본위원회·재일코리안변호사협회(在日コリアン弁護士協会)·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등과 함께 작성한 '헤이트 스피치에 관한 NGO 리포트(ヘイト·スピーチについてのNGOレポート)'에서도 그 실정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에 실린 사진들을 보면, 혐한집회 참가자들이 혐오의 말뿐 아니라 혐오의 글을 통해서도 한국인들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사진에는 "착한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모두 죽여"라는 팻말도 찍혀 있다. 
 

본문에 언급된 사진. ⓒ 인종차별철폐NGO네트워크

 
혐한집회 발언들의 맥락을 고려할 때, 여기서 말하는 착함이나 나쁨은 인격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일본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좋은 한국인과 나쁜 한국인을 구별한다. 한국에서 위안부 활동을 방해하며 일본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 팻말에서 말하는 '좋은 한국인들'이다. 그런 한국인들에 대해서도 '모두 죽여'라는 구호가 나오는 것을 본인들은 알까?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사진에는 할머니 그림과 함께 "조선인 위안부의 터무니없는 거짓말, 일본인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朝鮮人慰安婦の大嘘、日本人への重大な人權侵害)"라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이 등장한다.

오우소(大嘘)는 '터무니없는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로 번역되지만, '사기'로 번역돼도 무방하다. 위안부사기청산연대가 주장하는 '위안부는 사기다'라는 주장은 이처럼 일본 혐한집회와 맥이 닿는다. 
 

본문에 언급된 사진. ⓒ 인종차별철폐NGO네트워크

 
한국의 극우 집회에서 일장기뿐 아니라 욱일기까지 등장할 때가 있다. 군국주의 침략전쟁 시대의 일본을 상징하는 욱일기가 대한민국 땅에서도 펄럭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극우집회와 일본의 혐한집회는 외형상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혐한집회에서는 한일관계를 파탄내자는 주장이 나오는 반면, 한국 극우집회에서는 그것이 나오지 않는다. 한국 극우집회에서는 한일관계를 복원하자는 주장만 나올 뿐이다.

일본 극우와 다를 바 없는
 

‘수요시위 30주년 기념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1525차 정기 수요시위’가 열린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한 극우단체 회원이 일장기가 그려진 현수막을 걸고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 유성호

 
한국 극우가 독자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위안부 반대 이론의 최선봉에 서 있는 이영훈 교수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그의 글에서는 독창적인 연구의 결과보다는 일본 극우와 다를 바 없는 주장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가 <반일 종족주의>에서 '위안부는 사기'라는 명제를 입증하고자 집중 조명한 인물이 위안부 피해자인 문옥주 할머니다. 이 책 제23장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에서 그는 "1940년 가을, 나이 16세의 문옥주는 만주 동안성에 있는 일본군 위안소로 갔습니다"라며 "헌병에 잡혀갔다고 했지만 그대로 믿어서는 곤란합니다"라고 한 뒤 "어머니나 오빠의 승낙 하에 주선업자에 끌려간 것을 그렇게 둘러댔을 뿐입니다"라고 서술했다.

지금의 헤이룽장성 동부인 동안성에 소재한 위안소로 "끌려갔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갔습니다"라고 서술했다. 그런 직후에 "주선업자에 끌려간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1993년에 나온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문인 고노담화에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에 의해 끌려간 것도 일본군에 의해 끌려간 것으로 인정했다. 이영훈 교수가 고노담화 문구를 세밀히 고찰하지 못한 것이다.

또 "끌려갔습니다" 대신 "갔습니다"라고 쓰고자 할 경우에 반드시 반박해야 할 자료도 언급하지 않았다. <반일 종족주의>보다 14년 먼저 나온 문옥주 할머니의 일대기를 제대로 반박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런 주장을 내놓았던 것이다.

모리카와 마치코 작가가 3년간의 인터뷰를 토대로 2005년에 펴낸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에 따르면, 문옥주는 1940년 가을을 회고하는 대목에서 "그날도 하루코네서 놀다가 저녁이 되어 걸어서 이십 분 정도 되는 거리의 집으로 돌아가던 중 '너. 여기로 잠깐 와' 하는 소리에 놀라서 멈춰 섰다"고 한 뒤 "그때 나를 불러 세운 사람들은 일본인 헌병과 조선인 헌병, 조선인 형사였다"고 기억했다.

일대기에 따르면, 문옥주는 소녀가장이었다. 위안부로 연행되기 전까지, 그는 만두 장사 등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했다. 하루코(춘자) 집에 갔다 오는 길에 연행된 위 상황을 설명하기 바로 직전에 "그때는 이미 어머니는 물론 오빠와 남동생도 전적으로 나에게 기대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오히려 보람이라 생각하고 더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가족을 열심히 부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집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어머니나 오빠의 승낙 하에 '가장'이 위안부가 됐다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문옥주 본인이 자신의 상황을 위와 같이 회고했으므로, '그가 헌병이 아닌 위안소업자를 따라 자발적으로 갔다'고 주장하려면 '일대기가 거짓'이라는 점부터 입증해야 한다. 또 문옥주의 돈벌이에 거의 전적으로 의지하던 가족들이 문옥주가 한국을 떠나는 것을 승낙했다는 점과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의 보전을 요구했다는 점도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영훈은 그런 과정도 없이 문옥주가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고 주장했다. 가족을 책임진 소녀가 과연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을까? 이영훈은 왜 이런 기본적인 의심조차 품지 않았을까? 이건 학술적 과정으로서 아주 기본적인 것인데 말이다.

창의적인 학술적 연구도 없이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갔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한국 극우세력의 이론적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현실이 서글프다. 이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에 동조하며 수요집회를 훼방하는 세력이 과연 독자적 판단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지를 의심케 만든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소녀상 앞에서 제1475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다. 사진은 털모자와 목도리를 한 소녀상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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