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25 13:41최종 업데이트 22.03.2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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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부드러운 맛을 강조하는 보통명사로 쓰이는 용어가 '마일드 커피'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인스턴트 커피 박스나 포장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세상 모든 커피가 마일드 커피인 듯하다. 그런데 이 단어가 미국과 브라질 사이의 커피 전쟁에서 탄생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1870년대 중반 커피녹병으로 실론과 자바 커피가 멸종하자 세계 커피 생산시장을 좌지우지하게 된 브라질과 세계 커피 소비시장의 중심이 된 미국 사이에는 커피 가격을 둘러싼 갈등이 반복되었다.


가격이 상승하면 생산자 브라질이 웃고 소비자 미국은 울었다. 가격이 상승하면 브라질 사람들이 너나없이 커피나무를 심었고 몇 년이 지나면 생산 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하였다. 이번에는 미국이 웃고 브라질은 울어야 했다. 경제학자들이 붐 앤 버스트 사이클(Boom and Burst Cycle)이라고 부르는 이런 역사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반복되었다.

이런 갈등을 지켜보던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이 19세기 후반부터 하나둘 커피를 재배해 미국에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반이었다. 초기에는 생산량도 적었고, 가격에서 브라질 커피와 경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1910년대에 접어들어 변화가 시작되었다.

어부지리 얻은 콜롬비아 

일시적으로 커피 가격이 상승했던 1912~13년 세계대전 발발 직전에 커피 재배를 본격화한 콜롬비아가 대표적이다. 전쟁 초기에 잠시 하락하였던 커피 가격이 전쟁 중반에 군대용 커피 소비의 확대로 회복 조짐을 보이더니 미국의 참전을 전후하여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1918년 1월 8일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민주주의를 위해 세계를 안전하게 지키겠다"라는 의회 연설을 행한 그날 뉴욕커피거래소에서 커피 가격이 폭등하였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콜롬비아는 전쟁이 끝나갈 무렵부터 커피 재배 면적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콜롬비아인들이여, 커피를 심지 않으면 죽음뿐이다'라는 슬로건이 등장할 정도의 커피 재배 열풍이었다.

반면 브라질은 전쟁이 끝나면 커피값이 급등할 것을 예상하고 수출을 통제하였다.이로 인해 커피 가격은 하락하지 않았다. 커피를 애호하는 미국인들의 불만은 또다시 브라질을 향했다. 커피 생산시장의 빅브라더 브라질에 대한 한 세대 동안의 반감이 다른 나라 커피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을 자극하였다.
 

콜롬비아 커피 ⓒ pixabay

 
이렇게 깊어지고 있던 브라질과 미국 사이의 커피 갈등의 틈새를 시의적절하게 파고든 것이 바로 콜롬비아였다. 브라질과 미국이 싸우면 싸울수록 콜롬비아산 커피의 미국 수출이 증가하였던 것이다. 1914년에 4100만 킬로그램 수준이던 미국 수출량이 1919년에는 5480만 킬로그램으로 증가하였다. 1914년에 개통된 파나마 운하 덕분에 캘리포니아 지역으로의 커피 수출이 편리해진 것도 하나의 요인이었다. 같은 기간 브라질 커피의 미국 수출량은 3억 3700만 킬로그램(미국 수입량의 3/4)에서 2억 5900만 킬로그램(1/2 수준)으로 줄었다.

콜롬비아 이외에 과테말라를 비롯한 중앙아메리카산 커피의 생산량도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과테말라 커피를 지배하고 있던 독일인 사업가들의 재산이 동결되고 더러는 추방되면서 생긴 빈자리를 미국인 커피업자들이 채웠다. 콜롬비아 이외에 과테말라를 포함한 이들 중미 국가들에서 미국으로 들어가는 수출량이 1919년에 7100만 킬로그램에 달하였다. 19세기 초 노예혁명 이후 100년 이상 커피 생산과 수출이 중단되었던 카리브해의 아이티도 다시 커피 수출을 시작하여, 1919년 기준 2100만 킬로그램을 미국에 수출하였다.

이 커피는 뭔가 부드럽다

미국인들이 브라질산 커피 의존도를 낮추고 점차 중남미산 커피를 선호하게 된 것이 온전히 브라질과의 커피 전쟁 때문만은 아니었다. 커피의 질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산토스항에서 수출되는 브라질산 커피에 비해 중남미 지역 신생 커피 생산국의 커피 맛이 더 우수하였다.

세계 커피 생산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브라질이 오랫동안 커피의 품종 개선 노력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운송이 편리한 지역에서 습관적으로 커피를 재배하였을 뿐 더 좋은 토양과 기후 조건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였다. 전쟁터 군인들에게 보급하는 커피가 고급일 필요도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군인들이나 일반 시민들에게 더 이상 브라질 커피의 맛은 환영받기 어려웠다.

반면에 중남미 신생 국가들의 커피는 적절한 토양과 기후에서 재배되었기 때문에 쉽게 미국 소비자들의 높아진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이 새로운 맛을 "마일드"로 표현함으로써 브라질산 커피, 일명 '산토스 커피'와 구분하기 시작하였다.

커피 생산지의 다양화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1차 세계대전의 승리로 미국 경제가 급성장해 미국인의 소비력이 커진 것도 이들이 커피를 골라서 마시는 시대를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군대에서 마시던 획일적인 맛의 인스턴트 커피는 전쟁과 함께 갑자기 사라졌다. 생산지가 어디인지, 어떤 품종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커피를 마시던 시대와 작별을 하고 맛과 향이 좋은 '마일드 커피'를 찾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콜롬비아 커피를 마셔본 미국인들 사이에서 "브라질 커피와 달리 이 커피는 뭔가 부드럽다"라는 표현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점점 다양한 마일드 커피가 미국으로 흘러들어왔고, 미국인들은 커피를 구분하여 마시기 시작하였다. 마일드 커피를 상징하는 커피가 다름 아닌 콜롬비아 커피였다. 아라비카 커피 생산량 세계 2위의 커피 국가 콜롬비아가 이렇게 하여 탄생하였다.

브라질과 미국 사이의 커피 전쟁이 가져온 어부지리의 주인공이 콜롬비아였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에 어울리는 나라들이 과테말라를 비롯한 중앙아메리카의 신흥 커피 생산국들이었다.

마일드 커피의 유행 속에서 한 단계 더 고급인 명품 커피들도 등장하였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하와이 코나, 코스타리카 따라주 커피 등이다. 18세기 이래 차를 마시던 영국 왕실에서조차도 이들 명품 커피를 찾기 시작하였고, 이런 소문을 접한 세계 모든 지역의 커피 마니아들이 명품 커피에 환호하기 시작하였다.

필연, 우연, 그리고 그 중간

커피 재배지역의 다양화와 커피 소비자 취향의 다변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오랫동안 커피 생산을 포기하였던 여러 지역에서 커피 생산을 재개하도록 자극하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바 커피의 부활이었다. 인도네시아인들이 스스로 판단해 커피를 다시 재배한 것이 아니라, 식민 지배자인 네덜란드 자본이 커피 농장을 재개했다.

자바 커피는 한 세대 만에 품종이 바뀌었다. 병충해와 기후 변화에 약한 아라비카종 대신 병충해에 강할 뿐 아니라 면적 당 생산량도 많은 로부스타종이었다. 생산된 커피는 네덜란드를 통해 유럽으로 수출되었고, 네덜란드 커피 시장에서는 브라질산 아라비카 커피를 추월하였다. 지금도 네덜란드 커피 시장에서 로부스타종 커피로 만든 인스턴트 커피가 유행하고 있는 역사적 배경이다. 세상은 바뀌어도 사람 입맛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생산이 증가하기 시작한 로부스타종 커피가 미국에 상륙한 것은 1900년대 초반이었다. 미국 시민들이 커피 가격의 일시적 폭등으로 고통받던 시절이었다. 뉴욕커피거래소는 분석 결과 맛과 향이 형편없다는 이유로 1912년에 로부스타종 커피의 거래를 금지했다. 미국에 이어 브라질은 로부스타종 커피 재배 자체를 금지했다. 이런 견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인도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로부스타종 커피 재배지는 점차 확대되었다.

아라비카종과 로부스타종을 섞어서 강하게 볶은 후 빠르게 내려서 마시는 에스프레소 커피의 인기,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다시 촉발한 인스턴트 커피 시장의 활성화가 로부스타종 커피 재배의 확산을 가져왔다. 지금은 전 세계 커피 소비 시장의 40% 내외를 차지하고 있다.

20세기 초 유럽과 북아메리카를 넘어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번지기 시작한 커피 소비의 확대는 커피나무의 고향인 아프리카 동부 지역에서의 커피 재배를 촉발하였다. 에티오피아에서 출발한 커피나무가 예멘, 인도양, 인도, 자바, 카리브해, 중남미를 거쳐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온 것이다.

1901년 선교사들은 자생하는 토착 커피가 이미 사라졌던 에티오피아에 인도양의 레위니옹섬(일명 부르봉섬) 커피와 카리브해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커피를 유입해 심었다. 케냐의 경우에도 1893년 경 영국 선교사들에 의해 브라질 부르봉종 커피가 옮겨 심어진 것이 커피 산업의 출발이었다. 아프리카 로부스타종 커피 생산의 거인 우간다에 커피가 처음으로 심어진 것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 어느 시점이었다.
 

콜롬비아의 커피 농부 ⓒ pixabay

 
역사에는 필연, 우연, 그리고 그 중간에 속하는 어부지리의 결과물이 적지 않다. 콜롬비아 커피는 필연도, 우연도 아닌 어부지리의 결과로 탄생하였다. 브라질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커피 전쟁을 벌이는 대신 커피 품종 개선 노력에 집중했다면, 미국이 브라질과 커피 가격에 쉽게 타협했다면 콜롬비아가 얻지 못했을 어부지리였다.

남과 북, 미국과 베트남의 전쟁으로 어부지리를 얻어 부흥한 일본에 우리가 또다시 어부지리를 안겨주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야 하는 안타까운 시간이 시작되었다.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 푸른역사.
Mark Pendergrast(2010). Uncommon Grounds. N. Y.: Basic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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