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11 12:15최종 업데이트 22.03.1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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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커피 역사학자들 사이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전쟁이 지옥이라면, 커피는 미국 군인들에게 작은 구원이었다."
"커피 없이 군인이 될 수 없다."

남북전쟁으로 시작해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아프카니스탄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참여한 모든 전쟁에서 미국 군인들은 커피를 들고, 커피와 함께 싸웠다. 커피는 위안과 용기를 주는 필수품이었다. 커피는 전쟁과 함께 세계를 바꾸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 ⓒ pixabay

 
커피 시장 뒤흔든 1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대전도 예외는 아니다. 전쟁 직전 유럽 국가들 대부분은 산업화를 통해 이룬 소비력 증대로 엄청난 커피 소비를 자랑하고 있었다. 유럽 최대의 커피 소비국이었던 독일의 경우 전쟁 직전 국민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연간 2.5~3kg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전 세계 커피 거래량의 50% 이상이 유럽에서 소비되었다.


당시 북미와 유럽의 커피 시장에서 팔리는 커피의 75%는 브라질산이었다. 20세기 초 브라질의 커피 산업이 성장하면서 유럽의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등에서 브라질로 향하는 이민 행렬이 이어졌고, 이들에 의해 유럽 커피 소비시장과 브라질 커피 생산시장이 끈끈하게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1914년 7월 28일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은 커피와 관련된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전쟁으로 인한 커피 소비 감소는 예상보다 심각하였다. 유럽의 다수 국가가 끌려 들어간 전쟁으로 인해 소비가 위축되면서 산지에서의 커피 가격은 하락하였다.

독일의 영향이 컸던 중남미 커피 시장으로 가는 해상은 영국에 의해 일찍이 봉쇄되었다. 유럽의 커피 거래소는 문을 닫았고, 참전국의 커피 재고는 모두 국가에 의해 몰수되었다. 독일 함부르크 항에 쌓여 있던 브라질산 가격 안정용 커피는 모두 독일 정부에 압류되었다. 커피를 운송하는 것이 위험해지자 브라질을 비롯해 생산지의 커피 원두 재고는 쌓여만 갔다. 커피 생산지와 커피 소비지 유럽 사이의 연결 고리가 모두 사라졌다. 커피인들에게는 말 그대로 "비참했던 5년(quinquenio sinistro)"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었다.

유럽 국가들에서 커피 거래와 소비는 불가피하게 줄어들었지만 끊긴 것은 아니었다. 미국을 통한 우회적 거래 라인이 형성된 것이다. 전쟁 발발 이전 미국을 통한 유럽행 커피 우회 수출 물량은 180만 kg 미만이었다. 그러나 전쟁 이듬해인 1915년에는 무려 4억 5천만 kg을 넘어섰다. 250배 이상의 증가였다. 미국을 통해 북유럽의 중립 국가들로 들어가는 커피 중 적지 않은 양이 독일로 유입되어 독일 군인들의 전투 식량이 되었지만, 미국의 기업가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시 참전 미군들이 마신 커피는 주로 브라질 산토스 산 저렴한 커피로 농도도 매우 약했다. 1갤런(약 3.8ℓ)당 커피 가루 5온스(약 142g)를 넣는 정도였으니 요즘 마시는 드립커피나 싱글샷 아메리카노의 1/6 농도였다. 200㎖ 한 잔에 원두 3g 정도를 넣었다.

유럽 투자자들이 중남미 지역 커피 생산지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면서 커피 생산량도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전쟁 중반을 넘기면서 커피 재고량으로 버티기도 어려운 상태에 접어들었다. 소비 시장과 생산 시장이 함께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 국가들의 커피 거래는 국가의 통제 하에 들어갔고, 커피 소비는 군대가 우선이었다. 일반인들은 커피를 접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커피 대용품 혹은 대용품을 섞은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전쟁의 장기화로 지구 상에 남은 유일한 커피 소비 대국은 미국뿐이었고, 미국은 전쟁 덕분에 자연스럽게 세계 커피 시장의 큰 손으로 등장하였다.

획기적인 발명품

이 무렵에 획기적인 발명품이 세상에 나타났다. 바로 물에 녹는 가용성 커피(soluble coffee), 즉, 인스턴트커피였다. 1881년 프랑스의 알퐁스 알레(Alphonse Allais), 1890년 뉴질랜드의 데이비드 스트랭(David Strang), 1901년 일본인 사토리 카토(Satori Kato)가 물에 녹는 커피 개발에 성공한 바 있었다.

특히 시카고에서 일하던 일본계 화학자 사토리 카토는 자신이 개발한 인스턴트커피를 1901년 뉴욕 버펄로에서 개최된 범아메리카박람회에 내놓았다. 2년 후에는 '커피 농축물과 그 제작 과정'으로 특허를 취득하였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인스턴트커피의 대량 생산과 판매에 성공한 인물은 조지 콘스탄트 루이 워싱턴(George Constant Louis Washington)이라는 벨기에계 미국인이었다. 뉴욕 브루클린에 생산공장을 세우고 레드 이 커피(Red E Coffee)라는 브랜드로 판매를 시작한 것이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0년이었다. "완벽하게 소화되는 커피"라는 이점을 앞세워 시장 장악에 성공하였다. 1914년 초에는 <뉴욕타임스>에 "커피를 마실 때 더 이상 소화불량을 무릅쓰지 마세요"라는 광고를 실었다. 역겨운 신맛과 기름내를 제거한 깨끗하고 완벽한 커피를 내세운 광고가 효과를 발휘하였다.
 

1917년 4월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독일에 선전포고한 직후 입대에 응한 제1차 세계대전 신병들이 뉴욕의 한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 연합뉴스

 
먼 대륙에서 벌어진 전쟁을 관망하던 미국은 1917년 4월에 드디어 참전을 선언하였다. 미국의 참전과 함께 미국산 인스턴트커피도 군대에 쏟아져 들어갔다. 군대를 중심으로 인스턴트커피에 대한 소비가 급증하자 유사한 제품이 시장에 속속 등장하였다.

쏟아져 나오는 모든 인스턴트커피는 미군에 의해 소비될 지경이었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18년 10월 쯤에는 미군에서 하루에 75만 파운드의 생두를 로스팅하고 있었으며, 매일 3만 7000파운드의 인스턴트커피를 미국 군대에서 소비하였다. 당시 미국 전역에서 생산되는 인스턴트커피 양이 6천 파운드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소비량이었다.

이런 커피 소비에 맞추기 위해 미국은 전선에서 멀지 않은 프랑스에 커피 로스팅공장을 세워 직접 운영하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로스팅되고 그라인드 되어 공급되는 커피가 긴 운송 시간으로 인해 산패되고 불쾌한 맛을 내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였다.

인스턴트커피는 막대형, 태블릿형, 캡슐형, 기타 여러 모양으로 시도되었고, 최종적으로는 봉투에 1/4파운드를 넣는 것으로 규격화되었다. 전쟁터에서 군인들은 인스턴트커피 가루를 주석 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젓기만 하면 쉽고 편하게 마실 수 있었다. 심해지는 참호형 전투와 독일군에 의해 시작된 화학전으로 야외에서 커피를 끓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인스턴트커피는 시의적절한 해결책이었다.

군인들 사이에서는 커피라는 단어 대신 창업자의 이름을 붙여 '컵 오브 조지'(a Cup of George)라는 별칭이 유행하였다. 조지 워싱턴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군인들의 친구가 되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아니라 인스탄트커피 창업자였다. 마실 때 느끼는 편안함과 마시고 난 후의 각성 효과 그리고 만들기 편리함은 전쟁터 군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요소들이었다. 고향 떠난 군인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역할을 하기에 커피만한 음료가 없었다.

브라질은 전쟁 초기에 중립을 선언한 상태였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고, 해상봉쇄로 커피 무역에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하였다. 무역의 지속적 감소로 브라질 정부의 재정에 어려움이 심화되던 때에 브라질의 무역선이 독일 잠수함에 의해 침몰되는 사건이 반복되었다. 결국 1917년 10월 브라질 정부가 남미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참전을 선언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브라질 정부는 독일로부터 전쟁 중 발생한 커피 무역선 피해 보상금을 받았다. 공업화의 출발점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인스턴트커피의 인기는 잠시 땅에 떨어졌다. 편리성보다는 향과 맛을 중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을 통해 미국의 참전 군인들은 커피 맛에 반쯤은 중독된 채로 일상에 복귀하였다. 전쟁에서는 이기고 돌아왔지만, 그들 모두는 전쟁 물자에 불과하던 커피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아침 식탁이나 일터를 가리지 않고 커피 없이는 살 수 없는 새로운 미국인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미국을 커피 소비와 무역의 중심 국가로 만들었다.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 푸른역사.
Jeff Koehler. In WWI Trenches, Instant Coffee Gave Troops A Much-Needed Boost
April 6, 2017. 11:10 AM ET. Food History & Culture.
Mark, Pendergrast(2010). Uncommon Grounds. N. Y.: Basic Books.
Matt Foster(2018). World War I Centennial: How the War Moved Coffee Around the Globe. Barista Magazine online. 2018.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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