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11 14:54최종 업데이트 22.03.0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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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미래의 침로인 'ESG'가 거대한 전환을 만들고 있다. ESG는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의 앞자를 딴 말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세계 시민의 분투를 대표하는 가치 담론이다. 삶에서, 현장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실천하는 사람과 조직을 만나 그들이 여는 미래를 탐방한다.[기자말]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사)ESG코리아 사무실에서 중국화동지역한국상회(한국인회)연합회 정희천 회장을 만났다. 재외국민은 일제강점기에 중국, 연해주,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독립운동 역사와 함께해 왔으며, 조국을 잊지 않고 대한민국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타지에서 머무는 그들의 삶은 혼란스럽다. 타국에서 한국 문화와 언어를 잃어버린다면 우리 동포의 정체성을 확립하긴 어렵다.

그의 이러한 고민은 교민 사회에서 민족 의식을 고취하고 한국인으로서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정 회장이 교민과 함께 한 일은 상해한국학교 설립, 재외국민 자녀 교육을 위한 지원 제도 개선 및 예산 확대,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상해지부 설립 등이다. 더 나아가 그는 앞으로 한인회와 재외한국학교 중심으로 ESG운동을 실천하고자 한다.
  

정희천 회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 안치용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 재외국민을 위한 활동을 많이 전개했다. 재외국민과 재외동포는 다른가.
"흔히 재외동포가 730만 명이라고 한다. 재외국민과 재외동포는 법적 개념이 다르다. 법률상으로 재외동포(在外同胞)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적이 있는 외국 국적자와 그의 직계 비속이라고 정의한다(재외동포의 출입국 및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제 2조). 재외국민(在外國民)은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중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고 해외 거주자뿐 아니라 90일 이상 일시 체류자를 포함한다.

쉽게 말해서 재외동포는 조선족, 한국계 미국인 등 외국에 거주하는 외국 국적자이지만 한국계 혈통을 가진 우리 동포를 지칭하는 반면 재외국민은 영주권을 가진 해외 거주자와 유학생, 주재원 등 한국 국적을 가진 국민을 말한다.


2022년 2월 법무부 기준으로 재외국민은 약 250만 명이다. 국적을 결정하는 법의 기준에는 속인주의와 속지주의가 있다. 속인주의는 자식의 국적이 부모의 국적을 따르고, 속지주의는 부모의 국적에 관계없이 출생지에 따른다. 한국은 속인주의로 부모의 국적에 따라 자녀의 국적이 결정된다."

- 중국 재외국민이 다니는 상해한국학교를 설립했다고 들었다.
"중국은 1949년 10월 1일에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다. 우리나라와는 1992년도에 정식으로 수교를 했다. 나는 한-중 수교 전 1988년에 상사 주재원으로 비공식적으로 중국에 들어와 장기 파견 근무를 하다, 1989년 3월에는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한국인으로서 55번째로 중국 비자를 받았다.

한-중 수교 후 많은 한국 사람이 중국에 진출했다. 이때 중국에 같이 온 자녀들이 정체성 혼란, 모국어 학습의 어려움 등의 문제를 겪는 것을 목격했다. 국적 교육, 국어 교육의 시급함을 느낌과 동시에 점차 중국에 온 한국인들의 한국학교 설립에 관한 요구가 늘어났다.

재외국민들의 숙원은 해외에 나가서도 자녀들이 한국인으로서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만약 한국학교가 없으면 자녀들은 중국에서 사회주의 교육을 받거나 사립국제학교로 가야 한다. 사립국제학교는 미국인이나 영국인이 설립한 학교로 한국학교보다 등록비가 몇 배나 비싸다. 비용 문제를 떠나 재외국민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바로잡기 위해 국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고민은 내 자녀에게도 해당됐고, 개인과 주변의 필요성에 의해 상해한국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 개인의 필요와 한인 사회의 요구가 일치한 셈이다.
"국적 교육과 언어 교육에 있어 초등학교가 가장 중요하다. 초등학교 때 기초교육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국적 교육과 기준 언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으면 한국인으로서의 역사 의식, 문화 등이 사라진다. 기준 언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내 자녀도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한국에서 생활하기엔 미숙하고 힘든 부분이 있겠지만, 한국인으로서 기본 자질을 갖추는 국적 교육을 받게 했다. 국제화를 위해 국제학교나 중국학교에 보내도 된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말을 모르고,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정체성이 없으면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설립 과정에 어떤 역할을 했나.
"개인 사업을 하면서 1999년 상해한국상회-한국인회(상공회의소 산하 상해한국상회와 민간 교민협의회인 한국인회가 통합됨)에서 사무총장을 맡았다. 이 무렵에 중국 내 한국학교설립추진위원회를 설치했다. 위원회의 사무총장을 겸직하면서 학교설립에 관한 인허가 등 여러 실무를 담당했다. 중국 정부와 한국 정부를 찾아다니며 설립 허가를 받아 1999년에 상해한국학교가 중국 상해시 민행구(闵行区)에 세워졌다. 나는 초대 재단 이사 4명 중 한 명으로 몇 년간 학교에서 봉직했다.

현재 중국 내 한국학교는 1998년에 세워진 북경한국학교 외 총 12개가 있다. 중국 한국학교는 한국과 중국 교육부에서 모두 인가를 받은 정식 학교다. 중국 한국학교를 비롯한 재외한국학교 졸업생들은 한국 내 대학교를 비롯한 모든 상급학교 진학이 가능하다. 상해한국학교가 개교할 때 초등학교 1~3학년 세 학급에 전교생이 43명이었다. 1000여 명 학생과 120여 명의 교사가 있는 지금과 비교하면 굉장히 조촐한 출발이었다.
  

상해한국학교 전경 ⓒ 안치용

 
한국 교육부 소속이지만 제대로 된 지원 없어

- 상해한국학교는 어떻게 발전해왔나.
"처음에는 운동장이 있는 3층짜리 중국학교를 임대해서 운영하다 10년 후 새 학교를 건립했다. 한국학교는 사립재단이 있는 사립학교이지만 공립형의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다. 재단 이사장을 개인이 아니고 교민 대표가 맡기 때문이다. 교민 대표인 이사장이 상해한국학교를 정식으로 설립하기 위해 한국정부로부터 매칭펀드 투자를 유치했다. 매칭펀드는 교민들이 투자금의 반을 모으면, 한국정부가 나머지 반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총 투자금액이 당시 금액으로 1000만 달러가 넘었고, 교민 사이에서 500만 달러 넘게 모금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중국 상해시 민행구에 새 부지를 사고, 학교 건물을 건설했다.

현재 상해한국학교(上海韩国外籍人员子女学校)는 체육관을 포함해 5개 이상의 건물이 있으며 모든 건물이 연결돼 있다. 강당과 음악관 등의 건물은 여러 한국 기업의 기부로 건설됐다. 한국학교 강당은 금호 아시아나에서 기증해 '금호아시아나 음악관'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

- 상해한국학교를 운영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많았고, 아직도 어려움이 많다. 2015년에 상해한국상회-한국인회 23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2016년까지 활동하면서 교민 대표로 상해한국학교 재단 이사장직을 맡게 됐다. 이때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국회 산하에 재외한국학교이사장협의회를 만들었다. 당시 15개국 34개 학교가 참여했던 이 협의회에는 2020년 현재 12개국 32개 학교가 참여하고 있고, 그중 중국에 제일 많은 학교가 있다. 나는 2015년 8월부터 2019년 말까지 협의회 3대 회장으로 일을 했다.

상해한국학교는 한국 교육부 소속이지만 제대로 된 지원법이 없었다. 안민석 의원이 '재외국민의 교육지원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계속 발의했으나 18~20대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국회 관련 상임위에 재외한국학교의 전 과정 의무교육 지원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후 초등학교의 의무교육 지원 요청 등 두 번의 수정안을 거쳐 저소득층 교육 지원으로 합의가 되었다.

결국 재외국민교육 지원법 개정안은 2019년 12월 21대 국회에서 통과됐다. 법률상으로 재외한국학교 지원금을 국가 예산 항목으로 넣을 수 있었던 것에 의의를 둔다(같은 법 제3조 제 2항 ② 국가는 제1항에 따라 재외국민 교육지원에 필요한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여야 한다). 그전까지 교육부의 남는 예산으로 재외국민 교육 지원을 받았다면, 개정 이후 정식 예산 항목이 만들어진 것이다."

- 재외한국학교 의무교육은 아직 시행되지 않은 상태인가.
"그렇다. 한국은 초·중 의무교육 즉 무상교육을 시행하고 있지만 해외에 있는 한국학교는 해당되지 않는다. 중국 거주 재외국민은 중국한국학교에 초등학교 기준으로 1년에 학비로 평균 400~600만 원을 낸다(2020년 중국 한국학교 기준, 입학금 제외). 한국 내 공립초등학교의 학비가 무료인 것과 달리 재외국민은 적지 않은 돈을 학비로 낸다.

재외국민도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재외국민은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한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며, 부동산을 제외한 금융소득, 일부 근로소득에 대해서 세금을 낸다. 국민으로서 의무는 다하고 있는 것에 비해 교육과 관련된 권리는 지켜지지 않는다. 당장 초등학교만이라도 먼저 의무교육을 해달라고 한국 교육부에 요구하고 있다.
  

재외국민교육지원법 상정 촉구 2019년 6월 재외국민교육지원법 상정을 촉구하며 국회를 방문한 정희천 회장 등 한국학교 이사장협의회 일행 ⓒ 안치용

 
상해한국학교는 한국 교육부 소속으로 교육부의 커리큘럼을 따르고 교사도 한국에서 채용한다. 1년에 한 번씩 재단 이사장이 한국으로 와서 교사를 채용한다. 교장은 교육부에서 학교당 한 명씩 파견하여 기본 임기 3년에 임기연장 1년으로 총 4년가량 근무한다. 교장 임명은 한국 교육부에서 일방적으로 한다. 이렇다 보니 임명된 교장이 현지에 특화한 사람이 아닐 때가 많아 교정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 따라서 이사장에게도 교장 심사 권한을 달라고 한국 교육부에 계속해서 요청하고 있다."
 
- 문제점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학부모에게 재외한국학교 학비는 부담스럽다. 중국 한국학교를 예를 들면, 평균 500만 원가량의 학비 말고도 입학금, 급식비, 스쿨버스비 등 추가적으로 지출해야 할 금액이 있다. 1년에 학비를 못 내는 사람이 10% 정도 된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 한해 보조금을 준다. 교육부가 더 많은 지원을 해줘야 한다. 한국 교육부는 재외한국학교 예산의 평균 26%만을 지원한다. 지원금을 50%로 증액해 주거나 초등학교라도 의무교육(무상교육)으로 바꿔야 한다.

현지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 상해한국학교는 교육부에서 제공하는 국내 커리큘럼을 갖다 쓴다. 재외한국학교이사장협의회 회장이었을 때 안민석 의원과 김상곤 전 교육부 부총리에게 요구해서 서울대학교에 재외국민교육센터를 만들었다. 이 센터는 연구기관으로 현지 이수 과목 등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 같이 현지 실정에 부합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제공하여 재외한국학교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파견 교사 연수가 필요하다. 재외한국학교에서는 한국에서 채용되어 온 교사도 현지 방식으로 가르쳐야 하는데 한국에서 하듯 교육을 똑같이 진행하고 있다. 지금은 교장이나 학교재단 이사장이 한국에서 1박 2일로 연수를 받고 있으나, 교사도 체계적인 프로그램의 연수를 받도록 해야 한다. 상해한국상회-한국인회, 재외한국학교이사장협의회 등이 함께 문제점 개선을 위한 제언과 요구를 한국 교육부에 계속 전달하고 있으나 결과는 미진하다."

김준엽 전 고대 총장의 영향 많이 받아

- ESG 교육에 관심이 있다는데.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ESG 교육을 받거나 ESG 실천 운동을 한다면 좋을 것 같다. 교육부나 교장과 협의를 해 이런 과목을 학교 커리큘럼에 넣고 싶다. 지금은 기본 틀만 가지고 있지만, 방과 후 수업이나 정식 교육에 포함하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교육부, 재외국민교육센터와 협의해야 하는 문제다. 그러나 준비하고 정돈하면 ESG 교육을 재외국민 교육에서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한국학교 이사장협의회에서도 이런 의식을 공유하고 싶다."

- ESG 운동을 중국한인회 중심으로 확산하면 어떤 의의가 있나.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ESG는 글로벌한 세계 시민 이슈이다. 거기에서 각 지역에 맞게 특화한 ESG 의제를 발굴하고 정립해서 한인회와 연결한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SG를 기업과 연계해 현지화하면 중국 내 ESG 의제 확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60만여 개 이상 기업이 한국 본사에서 추진하는 ESG 경영 체계를 중국 현지에서 함께 실행해야 할 것인데, 앞으로는 중국 진출 현지 기업이 실천하는 ESG 가치가 중국 국가 정책과도 같이 갈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중국 현지 진출기업이 ESG를 선도적으로 시행하고 한국에 있는 본사가 따를 수도 있다.

말하자면 현지 기업과 재외국민이 투 트랙으로 ESG를 실천하고 실현해나갈 수 있다. 해외 현지에서 재외국민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해 나가고, 해외 현지 진출기업은 현지 적응이나 현지 공략을 원활하게 하면서 나아가 불협화음을 줄이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를 꾸린 것으로 알고 있다.
"고대 총장인 고 김준엽 은사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김준엽 총장은 평안북도 강계군 출신으로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학병으로 징집됐다가 광복군으로 들어가 활약했다. 중국에서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중앙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다. 나는 1994년도부터 중국에서 김 총장의 비서 역할을 했다. 주로 선열들의 흔적을 복원하는 작업이었다. 김 총장은 중국 12개 대학교에 한국 연구소를 만들어 중국 내 우리나라 진출사를 연구하고 발전시키자는 뜻을 품으신 역사학자였다. 그분은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와 독립운동을 직접 고증했다. 같이 돌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공부가 됐다.

한국학교를 만드는 데에도 그런 공부가 도움이 됐을 것이다. 상해에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지부)를 만들게 된 계기도 김 총장 덕분이었다. 한국에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가 있으나, 정작 중국 내 의거 현장에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가 없다는 게 부끄러웠다. 그분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상해에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를 설립하게 됐다." 

 

인터뷰를 마친 정희천 회장(가운데)이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곽오열 극동대 교수, 이윤진 ESG연구소 연구위원, 현경주 바람저널리스트, 안치용 ESG코리아 공동대표. ⓒ 안치용

 

글: 안치용 ESG코리아공동대표, 현경주 바람저널리스트, 이윤진 ESG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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