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21 06:02최종 업데이트 22.07.2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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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이주자는 살아 숨 쉬는 자인가. 존 버거는 <제7의 인간>에서 이들을 가리켜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라 했다. 오직 노동하는 몸으로 기능하기를 요구받고, 표류함이 당연시 여겨지고, 존재할 권리를 국가의 허락에 구해야 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와 난민의 현주소이다. 체류권을 '허가'받은 이주민들조차 한국 사회의 성원권을 제대로 획득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국가는 잔혹하고, 사회는 무심하다. 그럼에도 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계속되는 일. 한국사회에서 살아 숨 쉬는 이주민들의 삶을 르포르타주로 담고자 한다.[편집자말]
"회사 이름이 뭐예요?"
"몰라요."


일하다가 손을 다쳐 찾아온 아르투(가명, 러시아, 55세)씨에게 회사 이름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회사 이름조차 모른다면 상담을 시작할 수도 없다. 회사 간판을 찍은 사진이 있다며 보여주기에 살펴보니 직원 수가 400명 이상 되는 큰 규모의 기업이다. 그는 고려인 출신 동포 노동자이고, 한국어도 미숙하여 통역을 통해서만 대화가 가능했다. 그가 이 회사의 직원일 리가 없으니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작은 실마리라도 찾아야 한다.
 

센터를 찾아와 상담중인 아르투씨. 그는 자신이 일하다 다친 회사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 우삼열

 
아르투씨처럼 이주노동자가 회사의 이름을 모르면 자기 권리를 지키기 힘들다. 노동자가 회사 이름을 모른다면 근로계약 내용, 잔업 수당, 4대보험 가입 여부 등 다른 정보도 잘 모르기 십상이다. 직업소개업체를 통해 하청회사로 들어간 경우 이주노동자는 근로계약서는 고사하고 급여명세서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르투씨는 자신을 하청업체로 보낸 직업소개업체의 이름조차 기억해내지 못했다. 근로관계의 기초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는 '노동자'로 인정받기 어렵다.

고려인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동포(F-4) 비자를 취득하여 살고 있는데, 법무부가 정한 규정에 따르면, F-4 비자를 가진 동포들은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전문 업종에서 일해야 한다. 그런데 자격증 취득을 해도 취업하지 못해 어려움이 많다는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다.


"기능사 자격증 따느라고 학원비만 75만 원 들었어요. 방수 기능사 자격증을 땄는데 3개월 동안 낮에 힘들게 일하고 밤새 공부해서 간신히 시험에 붙었어요. 그런데 이 자격증을 가지고 취업할 회사가 없었어요. 함께 자격증 딴 사람들도 이 분야에 취직을 못했고요. 지금은 다시 직업소개소 통해서 회사를 소개받아 일하고 있어요. 기능사 자격증을 왜 따야 하는지 이유를 전혀 모르겠어요."

100인 이상 사업장인 원청의 사내하청 업체에서 일하는 F-4 비자 취득 동포 김올가(42세, 여)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법무부가 정한 규정에 따라 기능사 자격증을 땄지만, 결국 계속 일용직 노동자로 전전하고 있다며 한탄했다. 이렇듯 F-4 비자 취득을 위해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하더라도 해당 분야에 취업하기 어려워 대부분 전업이 아닌 알바 등 임시직으로 일하면서 고용 불안정에 시달린다(<외국인 비합법 노동시장 연구> 2019, 한국노동연구원). 이런 사정을 법무부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F-4 비자를 취득한 동포들은 결국 직업소개소를 통해 업체를 구하게 된다. 이 업체에서 동포들을 대기업에 파견하는 것이다. 외국인력정책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제조업의 경우 노동자 300인 미만 규모의 기업이 적용 대상이다. 이 중에서 50인 이하의 소규모 기업들에 이주노동자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르투씨처럼 TV 광고까지 하는 대규모 기업 내에서 이주노동자가 수십 명씩 일하는 게 가능한 이유는 대기업과 하청업체와 직업소개소의 삼각 관계 때문이다. 

고려인 동포들은 한국어에 미숙하고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다 자신들끼리의 네트워크도 빈약하여 정보력이 크게 떨어진다. 이 때문에 산업현장에선 이들을 가리켜 '목에 빨대 꽂기 쉬운' 대상이라는 말이 나돈다.

2021년 11월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 197만 6999명 중 고용노동부가 관리하는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는 총 34만 6665명으로 17.5%에 불과하다. 반면 법무부가 관리하는 F-4 자격 동포는 47만 7713명으로 24%다. 규모가 더 크다. 외국인력정책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가 실제로는 법무부보다도 더 적은 이주노동자를 관리하고 있으니 이주노동자 정책이 제대로 운용되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허울뿐인 법

산업현장에는 일반 고용허가제(E-9비자) 노동자, 고용허가제특례(H-2비자) 노동자, 재외동포(F-4비자) 노동자가 섞여 일하고 있다. 이들 중 동포에게는 두 가지 비자가 주어진다. 동포의 정체성은 동일하지만 H-2비자 소지자는 미숙련노동자로, F-4비자 소지자는 숙련노동자로 분류된다.

H-2비자 소지자가 한 사업장에서 2년 이상 일하거나, 기능사 시험에 합격하여 전문성을 인정받으면 F-4비자를 받을 수 있다. F-4비자 소지자는 기능사 자격에 해당하는 업종에만 취업이 가능하다. 그러나 노동현장에서 이런 구분은 사라지고 있다. H-2비자 소지자와 F-4비자 소지자가 직업소개소와 파견업체를 통해 대량으로 사내하청업체에 유입되어 단순노동에 종사한다.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직업소개소의 이름을 기억해도 현재 일하는 회사의 이름이나 정보는 알지 못한다. 일용직처럼 일하는 것이니 작업하는 회사가 어디냐는 중요하지 않고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직업소개소에서 보내주는 월급이 중요할 뿐이다.

임금의 일부를 직업소개소가 떼고 나머지를 입금해 주는 방식이므로, 통장을 열심히 살펴봐도 진짜 일하는 회사의 명칭은 보이지 않는다. 직업소개소가 회사 측과 맺은 계약 내용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는 급여의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 어느 정도 금액의 급여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만 듣고 가서 일하고, 그에 준하는 돈이 통장에 들어오면 맞는 것으로 생각한다.

"센터를 방문하는 F-4 비자 노동자들 중 80%는 회사 이름을 모르고 있어서 답답해요. 상담 한 건 한 건 진행할 때마다 실제 근무한 회사와 작업 내용을 확인하느라 힘이 듭니다."

이주노동자를 상담하는 한 단체 활동가의 하소연에서 무기력감마저 느껴졌다. 그는 때로 노동자가 회사 이름을 그림 그리듯 종이에 써주면, 이걸로 인터넷을 통해 주소 검색을 하고 연락처를 찾아내기도 한단다.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하다가 임금을 떼이는 경우에는 실제 임금 지급처를 확인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고 했다. 직업소개소들은 어느 지역에 일자리가 있다고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 올리는데, 대개 20만 원 가량의 소개비를 받는다고 한다. 정보가 잘못되거나 신분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 노동자가 피해를 당하기도 하고, 심지어 소개비를 주고 들어간 회사에서 며칠 버티지 못하고 그만 둘 경우 소개비를 돌려받으려는 과정에서 직업소개소와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F-4 비자 소지 동포들에 대한 관리가 부실하기 때문에 산업현장에서는 혼란과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동포들 중 제과, 제빵, 도배, 장판, 컴퓨터 등 자신이 기능사 자격증을 가진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은 매우 드물다. 직업 교육과 취업 연계가 부족하니 자연스럽게 일용직으로 일하는 동포들이 많아진다. 

"H-2 비자로 일하면서 체류기간이 끝나게 되어 기능사 시험을 준비했어요. 시험에 합격하면 3년마다 연장되는 F-4 비자를 받을 수 있거든요. 어차피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지에 대해 법무부는 물어보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아는 F-4 동포들은 자격증 분야와 관련 없는 회사에서 일해요. 고용허가제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는 경우도 많아요."(김타냐씨, 43세, 여)

대기업의 책임과 정부의 과제

과거 '현대판 노예제도'로 비판받아 사라진 산업연수생제도의 모델은 '해외투자법인 연수생 제도'였다. 이 제도는 대기업들이 자회사인 아시아 지역 해외 법인을 통해 저임금 이주노동자를 들여오는 방식이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대규모 사업장들은 사내하청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이주노동자를 편법 고용한다. 이주노동자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기업과 직업소개업체들의 불법 행위는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그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은 더욱 취약해지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부작용도 더욱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므로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려인들을 위한 최저임금 등 각종 정보 안내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 우삼열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반드시 노동자의 권리를 알 수 있도록 교육을 해야 하며, 산업현장에서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등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또한 부처별로 역할이 복잡하게 얽힌 난맥상을 풀어 단일한 시스템으로 정리하고, 이민 정책과 노동 정책이 시행과정에서 원칙과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운용돼야 한다.

끝으로 자신이 일하던 회사의 이름도 모르던 아르투씨의 이야기를 전한다.

"직업소개소를 통해 회사에 들어간 후 제품을 운반하는 일을 했어요. 큰 회사 안에 있는 작업장인데 한국인은 거의 없었습니다. 2년 정도 일하던 중 갑자기 한국인들만 많이 일하는 곳으로 보내졌어요. 거기에선 저만 '알바(하는) 사람'이었어요.

철판을 롤러에 밀어 넣어 평평하게 만드는 일을 했는데, 이 일을 시작할 때 아무런 안전교육을 받지 않았어요. 2주 동안 일을 하다가 철판을 잡은 손의 장갑이 기계에 말려들어갔고, 둘째 손가락을 크게 다쳤어요. 3번 수술을 받았는데 의사는 앞으로 제가 손가락을 제대로 쓰지 못할 것 같다고 합니다. 저를 다른 곳으로 보낸 직업소개소는 제가 왜 다쳤는지 남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는데, 저는 다친 손 때문에 걱정이 많이 돼요."


그가 일하다가 다친 '한국인들만 많이' 일하던 곳은 하청업체였을까, 아니면 수출기업이라며 TV 광고에 나오던 원청업체였을까? 책임의 소재는 그의 커지는 걱정만큼 불투명하고, 그의 다친 손가락을 보면서 마음은 더욱 무거워진다.
덧붙이는 글 <이주민 르포 :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사람들>은 '익천문화재단 길동무'와 <오마이뉴스> 공동 기획으로 2021년부터 진행되고 있습니다. 익천문화재단 길동무는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심화 발전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소박한 일들에 힘을 보태기 위해 김판수·염무웅 선생님, 송경동 시인, 민변 조영선 회장, 김소연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장 등의 발의와 참여로 만들어졌습니다. '길동무 청년문학학교', '길동무문학·예술창작기금', '한국사회기층문화보고' 등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gildongmu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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