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13 17:15최종 업데이트 22.07.2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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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이주자는 살아 숨 쉬는 자인가. 존 버거는 <제7의 인간>에서 이들을 가리켜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라 했다. 오직 노동하는 몸으로 기능하기를 요구받고, 표류함이 당연시 여겨지고, 존재할 권리를 국가의 허락에 구해야 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와 난민의 현주소이다. 체류권을 '허가'받은 이주민들조차 한국 사회의 성원권을 제대로 획득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국가는 잔혹하고, 사회는 무심하다. 그럼에도 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계속되는 일. 한국사회에서 살아 숨 쉬는 이주민들의 삶을 르포르타주로 담고자 한다.[편집자말]
2021년 1월 아주 추운 날 오후. 한 이주노동자가 급하게 안산에 왔다. 그녀는 2019년 12월에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온 로타(가명)씨이다. 나는 처음 로타씨를 만난 날을 잊을 수 없다. 천천히 한 걸음씩 힘을 주어 내딛는 로타씨의 이마에는 추운 겨울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곳은 누구나 목적지를 가기 위해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지구인의 정류장'이다. 소수자, 이민자, 당사자들이 참여하여 함께 소통하고 노동인권활동을 지원하는 조그마한 단체다. 주로 월급을 떼이거나 정해진 근무지가 아닌 곳에서 일하는 불법파견, 안전하지 못한 숙소 문제 등으로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요즘은 몸이 아파서 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21년 한 해만 해도 건강권 관련하여 찾아와 함께 의료기관을 찾은 이주노동자가 100여 명에 달한다.
 

처음 '지구인의 정류장'을 찾아왔을 때 로타씨는 동료들의 부축이 없으면 걷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 정은주

 
그녀에게 편안한 자리를 권하고 따뜻한 물을 건네면서 나는 최대한 밝은 얼굴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로타씨는 얼핏 보아도 산달이 얼마 남지 않은 임산부처럼 배가 불러 있었고, 그 배를 감싸 쥐고 있는 손은 전체가 붉게 얼룩지고, 군데군데 피부가 벗겨져 있었다.

경기도의 한 농촌 비닐하우스에서 상추, 치커리, 케일 등의 채소를 수확하는 일을 했다고 했다. 채소들이 물기가 있고, 잎 표면이 까칠까칠하여 겨울에는 장갑을 끼고 채소를 따도 그 습기로 인해 손가락이 붓고 얼기가 쉽다고 하였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손도 자기와 똑같다고 이야기하면서 손을 부끄러운 듯 뒤로 숨겼다.


어디서 지냈는지 알고 싶어 숙소 사진이 있으면 보여 달라고 하였더니, 핸드폰 속 사진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그녀가 찾아오기 불과 한 달 전,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생을 마감한 속헹씨의 숙소와 비슷한 비닐하우스 숙소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한국에 비닐하우스 같은 숙소가 있는 것은 여기 와서 처음 알았어요.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일을 마치고 편안히 쉬기가 힘들었습니다."

쉽지 않을 거라 몇 번이나 각오했지만
 

속헹씨 등 이주노동자 5명이 지냈던 비닐하우스 기숙사 ⓒ 이주노동자기숙사산재사망대책위 제공


로타씨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국에 오기 전에 이주노동이 쉬운 것은 아닐 것이라고 몇 번이나 각오를 하고 왔지만, 이 나라에서 맞닥뜨린 노동환경은 로타씨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오기 전에 건강검진을 받아서 건강에 이상이 없는 사람만이 올 수 있다는 이야기, 자신도 고향에서는 한국에 일하러 오기 위해 한국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들과 만나서는 한국에 가서 남산서울타워, 남이섬에 꼭 가보고 싶다는 등의 이야기를 주고받은 평범한 청년이었다고 말하였다. 그런 젊은이가 어쩌다 이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게 되었을까.

"2021년 6월부터 조금씩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일하는 시간 대부분을 쭈그리고 앉아서 채소를 따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참을 만했습니다. 사장님한테는 말하기가 힘들었어요. 평소에도 일이 많다고 빨리 일하라고 하는데, 아파서 쉰다고 하면 싫어할 것 같았어요. 11월부터는 배가 커지고, 참기 힘들 정도로 아파왔어요. 그래도 아픈 것을 사장님이 알까 봐 배를 천으로 꽁꽁 싸매고 일을 했습니다. 일을 못하면 캄보디아에서 한국에 오려고 빌린 돈도 갚을 수가 없고, 제가 꿈꾸는 일도 이룰 수 없기 때문에요."

한두 달 만에 더 이상 허리를 숙이고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배가 부풀고, 걷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아파서,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누군가가 지구인의 정류장을 알려주어 안산까지 오게 되었다고 그는 울먹이면서 말하였다. 고통이 커지는 동안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는 마음에 함께 눈시울이 붉어졌다.

먼저 와서 상담을 기다리는 노동자들이 있어서 로타씨와는 다음날 함께 병원에 갈 생각으로 내일까지 괜찮겠냐고 묻자, 그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웃옷을 걷어 올려 자신의 배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 순간 우리는 모든 일을 뒤로하고 병원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이 노동자의 인생을 책임질 수는 없어요. 한시라도 빨리 고향땅으로 돌아가서 가족과 만나게 해야 해요."

평소 이주노동자와 자주 찾던 곳이라, 의사는 진심을 다해 조언했다. 순간 겁이 나기도 했다. 어떻게 손쓸 시간도 없이, 타국에서 온 이 청년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가족이라도 하루빨리 만나게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로타씨의 상태는 위태로워 보였다.

여러 단체를 통해 난소 낭종 전문가를 안내받았고, 빨리 진료받을 수 있는 곳에 입원하여 로타씨는 2월 초에 수술을 받았다. 난소에 자리 잡은 지름 30cm의 낭종을 제거하였고, 조직검사 결과 난소암 판정을 받았지만, 다행히 한쪽 난소를 살릴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100명이 넘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지역주민, 이웃, 단체들이 응원하고 마음을 모은 덕분에 로타씨는 1차 수술을 무사히 끝내고 퇴원을 하였다.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없는 이야기
 

2021년 12월 간에 이상 소견이 있어 병원에서 MRI 검사를 받고 오는 길. 눈이 내려서 좋다고 하더라고요. ⓒ 정은주

 
이것으로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일까. 이 과정을 함께 겪으면서 나는 여러 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다. 왜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는데도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을까. 왜 아파도 그 사실을 숨겨야 했을까. 수술을 끝내고 퇴원한 후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까. 

건강검진을 통과하여 우리나라에 일을 하러 온 청년이 일을 하는 도중에 위중한 병을 얻었다. 누구나 갑작스럽게 아플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다. 이런 일에 대비하여 건강보험제도가 있고, 2019년 7월부터 이주민 건강보험 가입 의무화로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제때 건강검진을 받고 의료기관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의하면 제조업, 건설업에 비해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의 건강상태는 열악한 반면, 의료기관을 이용한 비율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건강상의 문제로 의료기관에서 진단, 검사 또는 치료가 필요하지만 받지 못한 비율을 나타내는 '미충족 의료율'도 제조업이 17%, 건설업이 22.3%인 데 비해 농업이 62%로 가장 높다. 그 이유는 하루 노동 시간이 길고 한 달 평균 휴일이 2일밖에 안돼 병원에 갈 시간이 없고, 의료진과 의사소통하기 어려우며, 거리가 멀거나 교통편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농업 사업장의 다수는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건강보험 직장가입이 불가능해 지역보험 가입 비율이 높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보험료를 반씩 부담하는 직장보험과 달리 지역보험은 보험료 전액을 노동자가 부담해야 한다. 게다가 외국인은 자산과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내국인의 평균 보험료를 납부하게 하고 있다. 그러니 100만 원을 벌건 200만 원을 벌건 외국인 지역보험 가입자는 13만 원가량의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

게다가 농업사업장은 5인 미만인 경우가 많아서 산재보험에서도 배제되어 있다. 

"안 나으면 자기네 집에 가야지"

로타씨가 입원 후 수술을 하고 회복하는 데는 3~4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병이 위중하다 보니 중증환자로 등록을 했고, 이후에도 계속적인 검사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원래 일하던 사업장에 이 사실을 알리고 휴가를 받는 것이 필요해 로타씨와 함께 고용주와 전화 통화를 여러 번 하게 되었다. 고용주와의 첫 통화부터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X! 바빠 죽겠는데! 나도 몸이 아픈데 밭에 나와 일하고 있고. 나도 꼴이 말이 아니야. 애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나도 병 생겼다고. 그까짓 자궁에 혹 좀 달렸다고, 떼면 그만이야. 요즘은 암이라도 치료하면 다 나아. 안 나으면 자기네 집에 가야지. 아픈 사람들이 한국에 뭐하러 돈 벌러 왔어!"

왜 고용주는 아픈 사람을 위로하지 못하는 것일까? 자신의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얻은 병에 대해 '그까짓'이라고 할 만큼 질병에 대해 잘 알까. 건강검진에서 통과한 사람, 20~30대의 젊은이들이 이주노동자로 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걸까?
 

로타는 고향에서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래서 책에 관심이 많아요. 저랑 다닐 때는 꼭 서점에 들릅니다. ⓒ 정은주

 
돈만을 쫓아온 기계가 아니고, 자신들의 꿈을 함께 가지고 온 사람, 우리와 함께 있는 동안은 우리의 이웃, 우리의 친구가 될 사람들이라고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걸까? 많이 아파서 지금은 쉴 수밖에 없지만, 빨리 나아서 농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노동자에게 아프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을까.

로타씨는 고용주의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아픈 것을 꽁꽁 숨겼을 것이다. 고용주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울음이 터진 그녀를 보면서 어쩌면 몸이 아픈 것만큼이나 마음이 아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할까

수술을 한 지 몇 달이 지나도 로타씨는 일을 할 만큼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되었으나 워낙 큰 낭종을 제거한 데다가 길고 깊은 상처가 배에 남았다. 병원에서도 힘을 많이 들이는 일은 당분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하였다.
 

2021년 2월 큰수술을 잘 이겨내고 회복을 위해 운동을 하고 있는 로타씨 ⓒ 정은주

 
그러나 그녀는 우리 사회에서 E9비자를 가진 이주노동자 신분이었다. 고용허가제도 안에서 이주노동자는 정해진 기간 지정된 업체에서만 일을 할 수 있다. 로타씨처럼 큰 병에 걸려도, 충분한 휴식 기간을 갖지 못하고 자유로이 일터를 옮길 수 없다. 업무상 재해, 질병, 임신, 출산 등의 사유가 있을 시에는 조금의 여유가 더 주어지지만, 로타씨가 수술 후 받은 진단서로는 '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에 의거, 최대 3개월의 기간에 한 달의 유예기간을 더 받을 뿐이다.

그동안 구직 등록을 하고, 여러 곳에 면접을 보러 갔으며, 혹시나 수술로 일을 구하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처음 일한 농장에서는 건강상의 이유로 사업장 이동을 신청하였고, 그 후 정해진 기간 새로운 일을 구하지 않으면 로타씨는 첫 고용주의 말대로 고향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미등록으로 남아야 했다.

부지런히 구직활동을 한 덕분에 기간 안에 그녀는 새로운 일을 찾아 충청도의 한 농촌으로 떠났는데, 그때도 몸이 회복되지 않은 채였다, 결국 며칠 되지 않아 수척해진 얼굴로 다시 돌아왔다. 버섯을 기르고 상자에 담아 옮기는 일을 했는데, 힘에 부쳐서 일을 못하게 된 것이다.

다시 돌아와 있는 동안에도 3개월 안에 일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에 마음이 편치 못하였을 것이다. 그동안 틈틈이 병원에 가서 정기검진도 받으면서 혹시나 전이가 되지 않았나 하고 가슴을 졸이는 시간도 있었다. 가끔 통증이 찾아왔지만 열심히 구직등록을 하였고, 지금은 또다시 새로운 일을 구해서 갔다. 새로운 일터의 고용주는 로타씨가 병원에 가기 위해 안산에 올 때면 경과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나에게 자주 연락을 해온다. 그리고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물어본다. 이런 '사장님'을 만나는 노동자가 얼마나 될까.
 

로타씨는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받아야합니다. 2021년 12월 병원가는 버스안 ⓒ 정은주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2020년 12월 20일 냉기 가득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을 거둔 이주노동자 속헹씨를. 그 후 우리 사회는 여러 시스템의 한계 속에서도 더 이상 제2, 제3의 속헹씨가 생기지 않도록 한목소리를 내어오고 있다.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건강보험의 비합리적인 적용을 고쳐보려는 시도 등의 긍정적인 움직임이 그 산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속헹씨가 숨을 거둔 이후에도 노동자가 일터와 숙소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일들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로타씨는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겨우 한 발자국 비켜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주노동자의 일만이 아니다. 조금만 넓게 보면 이 땅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의 이야기가 된다. 노동자들이 안전한 작업장에서 건강하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가 필요하다.
 

수술이 막 끝나고 마취가 깨기 전인데 제가 손을 잡아주니, 제 손을 30분이나 잡고 놓지않았어요. ⓒ 정은주

 
2022년 1월 7일 드디어 캄보디아에 있는 속헹씨의 유가족으로부터 국제우편이 왔다. 안에는 고 속헹씨의 산업재해 보상보험 관련 청구를 우리가 제안한 법률사무소에 위임한다는 가족의 위임장이 들어 있었다. 그녀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면, 그 죽음에 대해서라도 온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우리의 바람이 1년 넘어서야 답을 받은 것이다.

죽은 날로부터 20일 후면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그녀는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 죽음이 남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살피고 논의해나갈 것이다. 비록 아주 천천히지만, 속헹씨의 가족들에게서 온 우편처럼 우리 사회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이주민 르포 :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사람들>은 '익천문화재단 길동무'와 <오마이뉴스> 공동 기획으로 2021년부터 진행되고 있습니다. 익천문화재단 길동무는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심화 발전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소박한 일들에 힘을 보태기 위해 김판수·염무웅 선생님, 송경동 시인, 민변 조영선 회장, 김소연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장 등의 발의와 참여로 만들어졌습니다. '길동무 청년문학학교', '길동무문학·예술창작기금', '한국사회기층문화보고' 등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gildongmu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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