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10 07:19최종 업데이트 21.12.10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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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커피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17세기에 커피가 미국에 상륙하였고, 18세기 독립전쟁 이후 미국인들이 커피에 애국적 의미를 부여하는 등 커피를 향한 미국인들의 관심은 폭발하였지만 커피 소비가 이에 비례하여 증가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차와 초콜릿 음료가 커피만큼 소비되고 있었다.

비록 차에 대한 세금 부과로 영국과의 전쟁을 시작하였지만 문화적 뿌리인 영국과 모든 것을 단절하지는 못하였다. 차나 초콜릿뿐 아니라 커피의 수입도 영국이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에 수입되는 커피는 주로 영국의 식민지였던 카리브해의 자메이카산이었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골드러시 이후 본격화된 서부 개척이라는 이름의 팽창 정책으로 미국의 땅이 확대되는 것에 비례하여 커피 소비도 확대되었다. 서부영화에서 흔히 보듯 카우보이, 보안관, 총잡이들은 모두 모닥불에 앉아 커피를 끓여 마셨다.

개머리판에 커피 원두 가는 장치까지

미국의 커피 소비 역사에서 가장 큰 전기를 제공한 것은 남북전쟁(1861~1865)이었다. 커피가 미국 중류 가정의 상비품이 되었을 때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노예 노동에 의존하고 있던 남부와 임금 노동에 의존하고 있던 북부 사이의 불균형이 배경이었다.

1860년 말 노예 폐지론자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남부의 많은 주들이 연방 탈퇴를 선언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1861년 4월 12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에서 남부군이 북부군의 요새에 포를 발사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남북전쟁 재연 행사에서 남북전쟁 당시 대포를 쏘고 있다. ⓒ envatoelements

 
전쟁이 시작되자 커피는 군인들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 사기를 높여주는 물품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전쟁 중에 커피는 하나의 사치품 수준으로 인기가 있었다. 남북전쟁 참전 군인들의 일기장과 편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총' '대포' '노예' '링컨' '어머니'가 아니라 '커피'였다고 한다. 커피는 남북전쟁의 중심에 있었다.

문제는 북군과 남군 사이의 불균형이었다. 북군의 경우 하루에 43그램, 일 년에 16킬로그램의 원두를 보급품으로 받았는데 이는 하루에 거의 열 잔 정도의 커피를 내릴 수 있는 양이었다. 커피는 북부 군인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커피가 주는 에너지로 행군을 하고, 커피가 주는 활력으로 불침번을 섰다. 총을 쏘며 전쟁을 하는 날은 합해보면 일 년에 평균 1주일이나 2주일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고, 나머지 날들에 그들은 커피를 만들어 마시고 있었다.

칼빈 소총의 개머리판에 커피 원두를 가는 수동 그라인더를 장착한 것은 전쟁 직전인 1859년에 샤프스 소총(Sharps Rifle)사가 시작한 아이디어였다. 북군은 이런 장비가 달린 칼빈 소총에 늘 커피 원두를 장착하고 다녔다. 한 일기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야영지의 아침이 밝으면 "수천 개의 커피 그라인더가 커피 원두를 갈며 내는 소리로 가득했다"라고 한다. 그러고 나면 캠프 파이어 위에서 수천 개의 커피 주전자들이 향긋한 향기를 날리며 끓어 넘치기 시작하였다.

군인들은 전쟁 속에서 그것이 어떤 물인지를 가리지 않고 커피 원두를 넣고 끓여 마셨다. 심지어는 말들이 마시기 부적합할 정도로 더러운 물도 가리지 않았다. 커피는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즐기는 마지막 위안이었고, 전투를 마치고 마시는 살았구나 하는 안도의 첫 모금이었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큐레이터 출신인 역사가 존 그린스팬(Jon Grinspan)이 표현하였듯이 "이것은 아이러니였다. 노예제를 폐지하기 위해 싸우는 북부 군인들이 노예 농장에서 온 커피로 힘을 얻어 전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위대한 커피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1862년 9월 17일 메릴랜드 주의 앤티텀 크릭(Antietam creek)에서 북군과 남군 사이에 남북전쟁 시작 후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침부터 계속된 전투에서 지쳐가고 있을 때쯤 19살 된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북군 사병이 총탄이 오가는 속에서 뜨거운 커피가 담긴 통을 들고 나타났다. 군인들은 각자 지니고 있던 주석 잔을 꺼내 커피를 마시고 다시 전투를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일개 연대의 구원 부대를 맞이한 것"처럼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이었다고 함께 있던 장교는 회고했다.

30년 후 오하이오 출신의 이 사병 매킨리는 커피에 얽힌 이 애국적 영웅담 덕분에 2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포탄 속에서 커피를 마시는 군인, 남북전쟁 당시 흔한 풍경이었다.

커피 얻으려고 적과 내통

60만 명 이상이 사망한 남북전쟁이 지옥이었다면, 지옥에서 참전 군인들에게 작은 구원을 안겨준 것은 커피였다. 그런데 이 구원의 손길은 북군에만 미쳤다. 해군력이 우수했던 북군의 해상 봉쇄로 인해 남군은 커피 대신 치커리, 민들레, 도토리, 호밀, 땅콩, 완두콩과 같은 대용품으로 만든 음료를 마시며 향수를 달래야 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남부 군인들은 줄어드는 보급품, 특히 커피 부족으로 고통을 겪었다. 한 영국 참전 기자는 이를 "커피 부족은 남부 군인들을 정신 이상보다 심하게 괴롭혔다"라고 적었다. 남부군의 한 간호사가 "북군이 우리를 굴복시킨 무기는 커피였다"라고 술회한 것을 보면 커피의 위력을 짐작할 만하다.

특히 추운 겨울이면 따뜻한 커피가 주는 유혹 앞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나날이 거듭되었다. 군인들은 "커피 없는 군대 생활은 불가능"이라는 표현으로 자신들이 겪는 고통을 드러냈다. 남군 병사들은 몰래 북군에 편지를 보내 담배와 커피의 교환을 제안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전쟁이 소강상태일 때 실제로 남군과 북군은 몰래 만나서 필요한 물품을 교환하였는데 남군들이 가장 구하고 싶어 했던 물품은 바로 커피였다. 커피를 구하기 위해 적과 내통하는 위험을 감수했다.

커피에 대한 그리움은 남부의 군인들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똑같았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에 속해 있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이웃 간의 갈등과 전쟁의 참혹함을 그린 영화 <콜드 마운틴>에서 주인공 니콜 키드먼은 자신이 어려울 때 온정을 베푼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커피 원두가 들어 있는 작은 봉투를 건네며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치커리 커피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남부 군인이나 시민 모두에게 커피는 일종의 사치품이었다. 

북군이 커피로 인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북군의 승리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커피를 빼놓을 수도 없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북군의 지도자 벤저민 버틀러(Benjamin Butler) 장군은 실제로 자기 병사들의 수통에 커피를 넣어 다닐 것을 지시하였고, 자기 병사들에게 커피 기운이 넘칠 때 공격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는 전투를 앞두고 있는 동료 장군에게 "자네 병사들이 아침에 커피를 마셨다면, 이 전투에서 이길 수 있네"라고 확신을 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커피와 함께한 북군이 승리하였고, 미국은 커피와 함께 양키 문명의 나라가 되었다.
 

커피를 마시는 북군 병사들 ⓒ NPR

 
남북전쟁 당시 북군에서는 전쟁 속에서도 편리하게 커피를 마시는 방법을 고민하던 끝에 커피 가루에 설탕과 액체 분유를 섞은 'essence of coffee'라는 이름의 일종의 인스턴트 믹스 커피를 개발하여 보급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커피는 가루가 잘 녹지 않은 상태여서 맛이 거칠어 군인들에게조차 인기가 없어 곧 보급이 중단되었다. 만일 당시에 이 커피가 제대로 맛을 냈다면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믹스 커피 개발 국가라는 명예를 얻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군인들에 의해 미국 가정에서의 커피 소비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커피에 의존해 전투를 해서 승리한 북군 병사들이나, 커피 맛을 찾아 헤매다 전쟁에서 패한 남군 병사들이나 커피에 빠져드는 데 차이는 없었다.

남북전쟁이 가져온 미국인들의 폭발적 커피 소비에 부응한 것은 때마침 커피 생산의 거인으로 등장한 브라질이었다. 예멘의 모카커피, 인도네시아 자바 커피, 카리브해의 자메이카 커피 등 맛과 향이 뛰어난 커피가 아니어도 충분했다. 전쟁 속에서 커피를 배운 미국인들에게 브라질산 저급 커피도 충분했다. 유명한 브라질 산토스 커피가 미국인의 아침 식탁을 점령하기 시작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이길상.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푸른역사, 2021).
Jon Grinspan. How Coffee Fueled the Civil War. The Opinionator. July 9, 2014.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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