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13 15:48최종 업데이트 22.07.2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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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이주자는 살아 숨 쉬는 자인가. 존 버거는 <제7의 인간>에서 이들을 가리켜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라 했다. 오직 노동하는 몸으로 기능하기를 요구받고, 표류함이 당연시 여겨지고, 존재할 권리를 국가의 허락에 구해야 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와 난민의 현주소이다. 체류권을 '허가'받은 이주민들조차 한국 사회의 성원권을 제대로 획득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국가는 잔혹하고, 사회는 무심하다. 그럼에도 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계속되는 일. 한국사회에서 살아 숨 쉬는 이주민들의 삶을 르포르타주로 담고자 한다.[편집자말]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무엇을 위해 누군가를 죽이거나 죽거나 할 필요가 없죠. 거기엔 종교도 없죠. 모든 사람이 정말 평화롭게 사는 것을 상상해 봐요."

1971년 존 레넌은 소유도 탐욕도 없는, 오직 형제애만을 가진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상상하는 노래 이매진(Imagine)을 발표했다. 이 노래에 특별히 관심을 끄는 대목이 있다. 바로 세상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도 '종교'도 없어야 한다는 노랫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경계선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자기가 살아온 땅에서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어서 경계선을 넘어 강제이주를 선택한 이들이 있다. 소위 난민이라는 실존이다.

그런 난민 신세로 살아가는 이들이 현재 국내 실향민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7100만 명이다. 그중 2590여 만 명이 난민(또는 인도적 체류자)으로 인정받았다(UNHCR, 2019). 그들은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고 바다를 가로질러 머물 곳을 찾아 나선다. 지금 이 땅에도 그런 난민 처지로 온 이들이 3만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한국의 난민 수용률은 세계 최하위국으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3% 수준이다. 이 수치는 유럽연합 회원국의 평균 난민 인정률 34%(2018년 기준)와 비교하면 무척 낮은 수준이다.

루렌도 가족과의 만남
 

루렌도씨 가족과 함께 ⓒ 홍주민

 
한국에 온 난민들은 다양한 얼굴로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가장 막막한 상황에 내던진 이들이 있다. 입국 후 난민 신청을 하지만 심사조차 거부되어 강제 출국되거나 공항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2016년부터 2021년 9월까지 1156건의 공항 난민 신청 중 심사에 회부조차 거부된 사례는 757건(65.5%)이다. 10명 중 7명에 가까운 이들이 난민 심사를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앙골라에서 인종 문제로 박해를 당하다가 한국에 온 루렌도씨 가족은 2018년 12월 28일 인천공항에 도착해 난민 신청을 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루렌도씨 가족에게 난민 심사를 받을 권리 자체를 주지 않고 입국을 불허했다. '국경수비대'를 자임하는 인천공항 출입국은 루렌도씨 가족에 대한 강제송환 시도를 세 차례나 했다.

돌아가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에 루렌도씨 가족은 사력을 다해 강제 출국에 완강히 거부하고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로 공항 출입국장 안에서 288일 동안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도 언론을 통해 이들의 사연이 알려지게 되었고 시민사회의 도움으로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루렌도씨는 콩고에서 1972년에 출생하였다. 1989년 부친이 사망하고 1992년에 모친도 내전의 한복판에서 사망한다. 2남 1녀 중 맏이인 그는 대학에 입학을 하였지만 생계 때문에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는 의류와 모기장을 파는 행상을 5년간 한 뒤 앙골라로 이주해 수도인 루안다에 있는 건설회사에서 13년간 일을 하면서 2009년 1월 교회에서 만난 바체테씨와 결혼을 했다. 바체테씨 역시 콩고 출신이었다. 이후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며 네 자녀의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단란했던 루렌도씨 가족에게 먹구름이 밀어닥친 것은 2018년 10월. 콩고 출신 앙골라 거주민들(바콩고인) 40만여 명을 폭력적으로 추방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다쳤다. 오랜 전쟁 탓에 콩고인에 대해 앙골라인들이 뿌리 깊은 적대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당시 루렌도씨는 다니던 회사가 경제난으로 어려워져 택시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특수경찰차와 부딪히는 사고가 났다. 사고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루렌도씨가 바콩고인이라는 사실을 경찰이 알게 됐다. 루렌도씨의 팔뚝과 어깨에 바콩고 표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루렌도씨는 경찰에게 고문을 받고 그 사이에 부인인 바체트씨는 경찰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루렌도씨는 열흘 만에 탈출해 한 교회로 피신한다. 부인과 아이들은 어느 목사의 사택에서 한 달여간 피신 생활을 하였다가 2018년 12월 27일 루렌도씨와 만나 극적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루렌도씨 가족은 앞서 말했듯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난민인정 신청을 했으나 난민심사를 받을 기회 자체를 거부당하고 강제송환 시도를 세 번이나 당했다. 그러고는 공항 출국장 46번 게이트 옆에 살아가는 신세가 됐다.

2019년 2월 초 필자는 난민 활동가들과 함께 루렌도씨 가족을 만나러 갔으나 출입국으로부터 거부당했다. 이후 변호사들은 법원에 소송을 청구하고 활동가들은 공항에서 사는 가족을 지원했다. 

1심 재판에서 출입국은 루렌도씨가 앙골라에 살던 집주인에게 여러 차례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을 했다는 주장을 하면서 루렌도씨 가족이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로 난민 인정을 받으려 한다는 논리를 폈다. 재판부는 2019년 4월 26일 출입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활동가들과 변호인단은 항소를 했다. 변호인단은 루렌도씨가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집주인의 진술을 얻어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루렌도씨가 2018년 11월 16일 택시 충돌 이후 경찰에 연행되어 고문과 폭행을 당한 뒤 감금되었고, 열흘 만에 탈출하여 어느 교회에 한 달간 피신해 있다가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는 증거도 확보했다.

루렌도씨를 돕던 단체 '한국디아코니아'는 덴마크에 있는 세계헤른후트형제단(이하 형제단)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개신교 공동체인 형제단은 전 세계 40여 개국에 120만여 명의 형제들이 연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디아코니아가 함께하고 있다. 루렌도씨 가족이 공항에 억류당했을 당시 형제단 대표가 내한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루렌도씨와 전화 통화를 해 그가 처한 상황을 듣게 되었다.

형제단 대표는 앙골라 헤른후트 형제단과 연계해 루렌도씨를 피신시켜주었던 앙골라 현지의 목사를 만나 진술을 얻어냈다. 변호인단은 이 진술 확인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결국 2심 재판부는 2019년 9월 27일 루렌도씨 가족에 대한 난민 심사 신청 불회부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2심에서 패소한 출입국은 대법원에 상고를 했다. 그렇지만 대법은 최종적으로 루렌도씨 가족의 손을 들어주었다. 출입국이 루렌도씨의 입국을 거부한 것은 월권이므로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이 판결의 한 사유였다.
 

공항에서 벗어나게 된 루렌도씨 가족을 환영하며 ⓒ 홍주민

 
이로써 2019년 10월 12일 루렌도씨 가족은 억류 288일 만에 공항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국경과 대륙을 넘어선 연대의 결실이었다. 공항 밖으로 나왔으나 루렌도씨 가족은 2021년 10월 8일에 이르러서야 정식으로 난민 인정을 받게 되었다. 한국에 도착한 지 1014일째 되던 날이었다.

새로운 시작, 하지만 힘겨운 난민의 일상

공항에 있을 때 루렌도씨의 열한 살 난 큰 아들 레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가장 힘든 게 무엇인가요?"
"저는 지금 학교에 못 가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에요. 만약 우리가 다시 앙골라로 돌아가면 부모님이 죽을까봐 무서운 마음이 자꾸 들어요."


루렌도씨 사건은 난민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는 난민 신청자들이 난민 심사 신청 불회부 결정으로 강제 송환되었거나 송환될 가능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 심각한 사건이었다. 망망대해에서 유영하다가 구조된 가련한 이를 다시 물속으로 밀어 넣어 수장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난민 인정을 받은 루렌도씨 가족은 이 땅에서 거주의 자유와 직업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이 자유를 위한 기나긴 싸움은 이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제2, 제3의 루렌도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억울한 난민 불인정 사례를 줄이기 위해선 뚜렷한 기준과 일관성이 부족한 난민 심사·소송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인터뷰 도중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루렌도씨는 한 마디를 남겼다.

"무기력한 감정이 지배하고 있어요. 이제까지 아픔을 잘 표현할 수 없었어요. 난민 인정을 받았지만 아직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 11월 6일 인터뷰를 하던 토요일 밤 시간, 엿새 동안 가구공장에서 힘든 노동을 하고 돌아온 루렌도씨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덧붙이는 글 <이주민 르포 :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사람들>은 '익천문화재단 길동무'와 <오마이뉴스> 공동 기획으로 2021년부터 진행되고 있습니다. 익천문화재단 길동무는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심화 발전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소박한 일들에 힘을 보태기 위해 김판수·염무웅 선생님, 송경동 시인, 민변 조영선 회장, 김소연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장 등의 발의와 참여로 만들어졌습니다. '길동무 청년문학학교', '길동무문학·예술창작기금', '한국사회기층문화보고' 등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gildongmu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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