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15 10:14최종 업데이트 21.07.1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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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2일 오후였다. 여느 때와 같이 선호씨의 아버지와 선호씨는 FR컨테이너에 적재돼 있던 화물들의 밴딩을 제거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 때, 선호씨의 아버지에게 원청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해머와 정을 챙겨서 FR컨테이너가 있는 야드 쪽으로 사람 한 명을 보내라는 지시였다.

선호씨의 아버지는 눈앞에 있던 선호씨에게 그 지시를 전달했다. 이주노동자 A씨에게 가서 FR컨테이너가 있던 야드 쪽으로 가라고 전하되, 그가 정과 해머라는 단어를 잘 모를 수 있으니 연장을 직접 챙겨주라고 했다.


잠시 후, 선호씨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정과 해머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선호씨의 아버지는 "그러면 쇠지렛대를 A씨에게 챙겨주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A씨는 선호씨에게 "혼자 가면 힘이 드니 같이 가서 작업하자"고 말했다. 선호씨는 같이 작업에 나섰다. 그리고 작업을 하던 도중 23살의 청년노동자 선호씨는 300kg이 넘는 불량 FR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했다.

선호씨를 뺀 모든 게 '비정상'
 

지난 어버이날, 선호씨의 친구들로부터 카네이션을 받고 눈물을 흘리시는 선호씨의 아버지 ⓒ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사고는 뭔가 정상적이지 않을 때, 즉 뭔가를 잘못했을 때 발생한다. 그렇다면 이번 사고에 있어서 선호씨는 무엇을 잘못했을까? 곰곰이 생각하고,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단 하나의 잘못도 없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잘못된 결과가 나왔다. 왜 그럴까? 잘못은 선호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고현장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

FR컨테이너가 애초에 고장 나 있었다. 그러니까 사용하면 안 되는 컨테이너를 계속해서 사용해왔다는 것이다. 원래 FR컨테이너의 날개는 안전장치가 다 있다. 유압식이든, 판스프링방식이든, 갑자기 넘어지지 않게 안전장치가 다 돼 있다. 그러나 사고 컨테이너는 그런 안전장치가 없었다. 물론 처음부터 없진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손실됐을 테고, 그 뒤에 보수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보수하지 않은 채 사용됐다.

3월 1일부터 인력들의 업무가 통폐합됐다. 3월 1일 이전까지 선호씨는 동식물 검역 업무만 맡았었다. 그러나 3월 1일 이후로는 동식물 검역, CFS 등 기존의 업무만 수행하면 되던 인력들이 당일 선박의 사정에 따라 동식물 검역도 했다가, CFS도 했다가 온갖 필요한 업무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원청사에서 요청하는 일을 그때그때마다 수행했다. 그러다 보니 작업숙련도가 맞지 않는 일에 투입되기도 했다. 4월 22일의 FR컨테이너 날개 해체작업도 그랬다.

산업안전보건법도 지켜지지 않았다. 사업주는 노동자를 채용할 때와 작업내용을 변경할 때에는 그 노동자에게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작업에 필요한 안전보건교육을 해야 한다. 그러나 선호씨는 1년 4개월이 넘도록 일하면서 안전에 대한 교육을 일절 받지 못했다.

지게차와 관련해서도 위반사항이 많다. 지게차는 적재, 하역을 하는 용도 이외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고 당일 지게차의 앞발을 이용해서 FR컨테이너 날개를 접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정해진 용도 외에 사용하는 건 불법이다. 신호수를 배치하지 않은 것 역시 당연히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다.
 

고용노동부 안경덕 장관과 관계부서장들, 대책위가 사고 대책과 관련하여 간담회를 진행 중이다 ⓒ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사람보다 돈이 더 중요한 병든 사회

고장 난 FR컨테이너, 무리한 업무통폐합,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선호씨의 사고를 살펴보면 사람보다 돈이 더 중요한 우리 사회를 마주할 수 있다. 노후화 된 FR컨테이너를 왜 사용했을까?

당연히 FR컨테이너를 수리하거나 새 FR컨테이너를 구입하는 것이 비싸기 때문이다. 무리한 업무통폐합 역시 A파트 5명, B파트 5명씩 나눠서 근무하는 것보다 A와B를 합쳐서 8명을 근무시키는 게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두 지키기 위해서는 인건비, 작업시간 등등 모든 것이 증가한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줄이고, 업무를 위탁하고, 노후화된 장비를 사용한다. 사람이 안전하게 일하는 것보다, 사람의 생명보다, 비용을 절감하는 게 기업에게 더 중요한 것이다. 모든 산재사망사고는 이러한 기업 풍토와 그것을 용인하는 사회구조 때문에 발생했다. 이렇게 원인은 다들 진단한다. 아니 진단했다. 진단한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고쳐지지 않을까?

병든 우리 사회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병의 원인을 진단하면 그에 맞는 처방을 해야 병이 낫는다. 장염에 걸렸는데 감기약을 먹는다고 장염이 나아질 리는 없다. 장염의 증세가 감기몸살과 비슷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상인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데 현상만 보고 잘못된 진단을 하고, 잘못된 처방을 하면 병이 낫질 않는다.

비용 절감 때문에 산재사망사고가 늘 발생한다면, 비용 절감을 못하게 해야 한다. 일하는 사람의 안전을 위해서 비용 절감을 못하게 강제해야 한다. 누구나 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 당연한 명제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고비용이라는 이유로 무시된다.
 

산재사고의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에서 발언 중인 선호씨의 아버지 ⓒ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병든 사회는 고쳐야 산다

자본과 기업 논리에 찌든 우리 사회는 병들어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잘못된 처방만 받고 있다. 지금까지 병든 사회를 고치는 역할을 해야 할 정치인들이 계속 돌팔이 의사였던 것이다. 언제까지 '돌팔이 의사' 역할을 하는 정치인들을 믿어야 할까? 이제는 더이상 믿기 어렵다.

진단을 아예 잘못하거나, 진단을 제대로 해도 처방을 제대로 못하는 돌팔이 정치인은 바꿔야 한다. 우리 사회를 제대로 진단 못하고, 처방을 제대로 못하는 돌팔이 정치인들을 언제까지 두고 볼 수는 없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서민의 입장에서 이 사회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를 만들어야 한다. 이윤보다 사람을 더 중요시하는 정치인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꼭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선호씨처럼 안타까운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이윤보다 사람이 더 중요한 사회,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제발 그래야 한다.
 

더 이상 죽이지마라는 구호를 더 이상 들지 않길 바란다. ⓒ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정종해 씨는 평택청년플랫폼 피:움의 대표입니다. 피:움은 평택청년회의 후신으로써 한국청년연대 산하의 청년단체입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 청년들의 문제를 평택지역 청년들의 지혜와 실천으로써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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