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20 07:11최종 업데이트 21.07.20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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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가짜뉴스와 프로보커터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종 사회 이슈부터 정치담론에 이르기까지, 왜곡과 소란을 일으키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합니다. 세계 각국에서 맹위를 떨친 가짜뉴스와 프로보커터들의 활동을 조명하고, 이에 대한 각 나라의 고민과 대안을 소개합니다. 이와 함께 이 현상을 역사적으로 톺아봅니다.[편집자말]
"우리가 하는 모든 거짓말은 진실에 빚을 지고 (우리는) 언젠가 그 빚을 갚게 됩니다. (Every lie we tell incurs a debt to the truth and sooner or later that debt is paid.)"

2019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역사 드라마 <체르노빌>(Chernobyl)의 대사다. 원자력 발전소는 전기를 만들 수 있는 경제적인 방법이지만 쉽게 무서운 재앙으로 변해버릴 수 있다. 그 사실을 세계인들에게 각인해 주었던 이 비극적인 사건이 어떻게 꼬리를 무는 거짓말로 점점 더 증폭되어 갔는지, 그리고 그동안 그 책임자들과 사고를 당한 직원들, 구조대원들에게 어떤 심리적·물리적 영향이 미쳤는지 드라마는 극적으로 그려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수 민중의 선택에 따라 미래 정책 방향이 결정된다. 민중의 선택은 정보를 기반으로 한다. 넘치는 정보 속에서 사실 관계를 가려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 지금, 거짓으로 인한 빚은 꼭 갚게 되어 있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현재 전 세계는 그럴듯한 가짜 정보와 음모론을 유통하는 선동가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스페인도 예외가 아니다. 알비세 페레즈(Alvise Pérez)라는 활동명으로 소셜미디어에서 인플루언서가 된 루이스 페레즈(Luis Pérez)가 그 대표적인 예다.
  

엘비세 페레즈에 대한 '엘 컨피덴시알'의 기사 ⓒ El Confidencial

 
대표적 가짜뉴스 제작자

그가 주목을 받은 것은 전직 배우이자 중도 우파 정치인인 토니 칸토(Toni Cantó)의 자문역으로 알려지면서였다. 토니 칸토는 중도 우파 정당으로 분류되는 시민당(Ciudadanos)에서 정치를 시작한 인물로, 이후 몇 년 사이 토렐로도네스 이웃당(Vecinos por Torrelodones), 연합 진보 및 민주주의당(Unión Progreso y Democracia) 등 다른 정당으로 이적을 거듭했다.

이후 다시 시민당으로 돌아가 발렌시아 시의회 소속으로 활동했고, 갑작스럽게 사임한 뒤에 2021년 마드리드 주 선거에서 우파 정당인 인민당(Partido Popular)의 후보로 모습을 드러냈다. 2021년 선거에 후보로 이름을 올리는 과정에서는 사회주의 노동자당(Partido Socialista Obrero Español)으로부터 항의를 받고 이후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그가 발렌시아 시의회에서 활동하는 동안 거주지가 발렌시아시여야 했고, 사임 이후 바로 마드리드로 거주지를 옮겼다고 해도 시기상 마드리드 선거 후보 자격으로 명시되어있는 요건을 충족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토니 칸토의 자문역으로 정치에 발을 들인 루이스 페레즈는 한동안 당내에서 보좌관 등의 활동을 했지만 반복적인 극우 성향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후, 당직에서 물러나 소셜미디어상의 인플루언서로 활동해왔다. 그는 특히 포데모스(Podemos)와 사회주의 노동자당, 페미니스트 운동, 카탈로니아의 독립운동을 겨냥하는 발언을 해왔다.

스페인에서 다수당이 되어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두세 개 정당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연합 정부를 이루어야 한다. 지지자가 많은 정당 위주로 살펴보면 우파에 속하는 인민당과 중도 우파 격의 시민당, 중도 좌파 성향이자 현재 총리인 페드로 산체스(Pedro Sánchez)가 속한 사회주의 노동자당, 좌파 성향의 포데모스 등이 있다. 루이스 페레즈의 공격 대상은 주로 중도 좌파부터 좌파를 아우르는 정치 진영인 셈이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루이스 페레즈가 스페인 미디어에서 '선동가' 혹은 '프로보커터'와 같은 이름으로 거론되는 이유는 그가 가짜 뉴스를 유포하고 사람들을 동요시키기 때문이다. 스페인 미디어는 그가 미국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부상한 대안 우파(alternative right, alt-right)와 결을 같이한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2020년 4월 11일 자 <엘 디아리오>(El Diario) 기사에 따르면 2018년 12월 그는 발렌시아에 있는 한 보행자 도로에서 돗자리를 깔고 장사하는 불법 상인들이 많아 일곱 살 난 아이가 택시에 치일 뻔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가 언급한 장소는 차가 다닐 수 없는 길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사람들이 항의하자 그는 글을 삭제했다. 스페인에서 돗자리를 깔고 장사를 하는 불법 상인들 중에는 아프리카계의 불법 이민자나 난민들이 많은데, 이들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기 위한 가짜 뉴스였던 것이다.

2020년 4월 16일 자 <엘 에스파뇰>(El Español)은 루이스가 제시한 음모론에 대해 보도했다. 팩트체크를 모토로 하는 스페인의 언론 플랫폼 <뉴트랄>(Newtral)이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뉴트랄의 창립자가 이전에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고문으로 있었다는 것을 근거로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뉴트랄의 배후에 있는 것처럼 주장했다.

그리고 뉴트랄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창립 후 14개월 만에 수익을 5천 유로에서 4백만 유로 가까이 불렸다고도 주장했지만, 이후 이것은 그가 매출과 순이익을 혼동해서 빚어진 해프닝으로 드러났다. 이외에도 그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뉴트랄이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제한다고 주장했다. 

좌파 인사들의 수난

이쯤 되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스페인 정부가 봉쇄령을 시작으로 바이러스와 전쟁을 하는 동안 그가 방역에 반대하는 온라인 시위를 장려하고 관련된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다. 전 세계적으로 극우 성향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마스크 쓰기가 바이러스를 막는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말을 그는 최근까지도 트위터에 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반대 진영의 정치인들에 대한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퍼뜨렸다. 

2020년 4월 1일 자 <라 반가르디아>(La Vanguardia)는 스페인 공산당(Partido Comunista de España) 소속이자 전 마드리드 시장이었던 마누엘라 카르메나(Manuela Carmena)에 대한 루이스 페레즈의 가짜 뉴스를 보도했다. 마누엘라가 공립 병원을 이용하지 않기 위해 바이탈에어(VitalAire)라는 회사로부터 산소 호흡기를 받아 집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이런 뉴스는 진보 진영의 미디어가 다루지 않는다는 트윗을 올린 것이다.

물론 아무런 근거가 없는 말이었고, 마누엘라도 직접 반박했다. 하지만 당시 스페인은 매일 엄청난 사망자가 쏟아지고 있었고 산소호흡기가 전 세계적으로 희귀 자원이 되어 있을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루이스 페레즈가 그의 말을 믿는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킨 혐오는 엄청난 것이었다.
  

알비세 페레즈에 대한 '엘 파이스'의 기사 ⓒ El Pais

 
2021년 3월 25일 자 <엘 파이스>(El Pais) 영어판 기사는 루이스 페레즈가 카탈로니아 지방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문서를 위조해 배포했다고 보도했다. 2021년 2월 카탈로니아 지방 선거 당시엔 전 보건 장관인 살바도르 이야(Salvador Illa)가 그의 타깃이었다. 당시 살바도르 이야는 사회주의 노동자당과 연대한 카탈로니아 사회주의자당(Socialistes de Catalunya) 후보로 선거 캠페인을 하는 중이었다.

루이스 페레즈는 살바도르의 이름과 코로나19 양성 판정이 적혀있는 의료 문서와 함께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이 문서는 이후 거짓으로 판명이 났고, 현재 그는 모욕죄와 위조죄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경계해야 할 인간 심리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거짓말을 유난히 쉽게, 자주 하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뻔한 거짓말이더라도 커다란 스캔들이 되고 특정 지지층을 선동하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개 그런 경우 팩트체크를 통해 거짓이 드러나더라도 지지층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경우가 많다. 이쯤 되면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이라는 우스갯소리 같은 말만이 이를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참석 인원이 매우 적었는데도 백악관 대변인 션 스파이서(Sean Spicer)는 "(취임식에) 사상 최대 규모가 모였다"라고 말했다. 이후 NBC 인터뷰에서 백악관 선임고문 켈리앤 콘웨이(Kellyanne Conway)는 백악관이 왜 거짓 브리핑을 한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당시 콘웨이는 "당신은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스파이서는 대안적 사실을 제시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후 '대안적 사실'은 세계적인 유행어가 되었다.

'사실을 대신하는 사실'이라는 형용모순의 말이지만, 우리가 사실을 부정하고 싶고 다른 답을 원할 때 그 말을 믿고 인용하고 싶은 우리 저변의 심리를 콕 찔러 묘사한다. 진영 논리로 설명할 수만도 없는 이 같은 심리는 우리가 늘 경계해야 하는 일반적인 인간 심리이다.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경계와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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