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05 11:12최종 업데이트 22.03.04 10:30
  • 본문듣기
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미래의 침로인 'ESG'가 거대한 전환을 만들고 있다. ESG는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의 앞자를 딴 말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세계 시민의 분투를 대표하는 가치 담론이다. 삶에서, 현장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실천하는 사람과 조직을 만나 그들이 여는 미래를 탐방한다.[편집자말]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생활ESG행동' 사무실에서 열린 '국민의 삶, 물 정책과 생활ESG행동'을 주제로 한 '생활ESG행동 라운드테이블'에서 시민환경연구소 백명수 소장은 "물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라며 특별히 공영방송 등에서 먹는샘물과 정수기 PPL의 중단을 요구했다.

1993년 설립된 시민환경연구소는 환경운동연합의 전문 연구기관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비정부기구(NGO) 연구기관 가운데 하나인 시민환경연구소는 '시민의 눈으로, 과학의 힘으로'란 기치 아래 자연의 가치와 시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 국내·외 환경 현실을 진단하고 해법과 대안을 모색하며 사회적 의제 설정에 힘썼다.
 
안전한 물 공급받고 먹을 수 있는 권리
 
 

시민환경연구소 백명수 소장(왼쪽)과 생활ESG행동 안치용 시민행동본부장. ⓒ 안치용

 
백 소장은 주로 먹는 물 분야를 연구했으며 이날 라운드테이블에서 상수도 정책과 먹는 물에 대한 시민사회의 인식 전환 등을 논의했다.

시민의 삶과 가장 밀접한 물 정책 대상은 단연 수돗물이다. 수돗물은 원료가 되는 물이 원수로 이루어져 있는 상수원에서 취수되어 여러 단계의 정수 처리 과정을 거쳐 시민의 생활 영역에 도달한다.


따라서 수돗물 수질은 상수원의 원수 수질과 정수처리 과정 그리고 정수된 물을 생활영역에 공급하는 수도관(수도관망)의 위생이 결정한다. 우리나라는 주로 지하수를 사용하는 유럽과 달리 하천수를 상수원으로 사용하며 전국 164개 지자체 및 한국수자원공사 등과 같은 수도사업자가 수돗물을 공급‧관리한다.

수도법과 먹는물관리법은 수돗물 공급‧관리 과정에서 지자체와 수도사업자가 안전성 기준을 이행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또한 각 지자체는 지자체 내 조례 등에 따라 지속적으로 수돗물을 모니터링한다. 환경부 등 정부 차원의 수질 모니터링과 연구 역시 동반되고 있다.

정부가 개입하고 조정하지만 현재의 수돗물 공급‧관리 구조는 지방의 고유사업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지차체의 역량에 따라 공급‧관리 수준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나아가 수돗물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대처 능력에 차이가 생긴다. 결국 도시와 농촌 간 구조적인 수돗물 격차가 나타나게 된다.

백 소장은 "수돗물은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분야"라면서 "수돗물을 이용하는 인구가 많고 상대적으로 예산 등 지자체 인프라 구축이 잘 되어 있는 대도시 및 수도권에 비해 수돗물 이용 인구가 적고 인프라가 약한 농촌 지역은 수돗물 공급‧관리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수돗물이 시민의 삶에 가장 기본이 되는 재화인 만큼 이러한 '수돗물 양극화'에 대해 정부 차원의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좋은 수질의 수돗물을 이용하는 것은 기본권의 문제입니다. 수돗물이 수도꼭지에서 나오기까지는 국가가 공급과 품질 적정 가격 등을 책임져야 하지 않나 싶어요."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과 함께 수돗물 공급‧관리를 도 단위나 유역별 단위로 확장하고 통합요금제를 시행할 것을 백 소장은 주문했다.

"'끓여마시라'는 말이 만능은 아닙니다" 
  

수돗물(자료사진) ⓒ 조정훈


어릴 적 부모로부터 혹은 학교 교사로부터 "수돗물은 끓여 마셔야 안전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끓여 마셔야 안전하다"는 말에는 수돗물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라운드테이블 내내 백 소장은 수돗물에 대한 시민사회의 불신을 우려했다. 백 소장은 "실제 정수 처리된 결과보다 (수돗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수돗물 불신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했다.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자료보다 오랜 부정적 이미지가 수돗물에 대한 직관적 판단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이다.

수돗물을 수도꼭지에서 나온 그대로 마시기에는 어딘가 찝찝하고 (이미 정수처리를 거쳤는데도) 별도의 정수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은 걱정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백 소장은 1991년 3월과 4월 발생한 두 차례의 낙동강 페놀 오염 사태를 비롯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잇달아 발생한 수돗물 오염 파동이 수돗물 불신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분석했다.

상수원에서 관망을 거쳐 수도꼭지에 도달하기까지 전 과정에서 안정적인 수준으로 수질을 관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수돗물 공급‧관리는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결코 뒤떨어지는 수준이 아니다. 옥내 배관이나 개인 저수조 등 사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논외로 한다면 공적 영역에서 이루어진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이 유명무실하지는 않다는 얘기다.

백 소장은 "(관망이 노후하거나 열악한 농촌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인구가 모인 대도시의 수돗물은 60년 동안 마셔도 병이 나지 않는 수준으로 공급된다"라며 "지자체 홈페이지 등을 통해 자신이 사용하는 수돗물의 정보를 알 수 있으며 원하면 수질 검사를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환경부 '물사랑누리집'에서는 '우리동네 수질정보'와 수질검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는 수돗물 오염 사태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미흡한 대처나 현재 상수도 정책의 실패가 국민의 수돗물 불신을 키운 게 사실이지만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도외시한 채 수돗물에 대한 불신만 키워나가는 시민사회의 인식은 바꿔야 한다고 백 소장은 역설했다.

중금속 등 모든 유해물질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데도 '끓여마시면 안전하다'는 통념이 유지되는 상황은 정부 물 정책의 실패가 낳은 허점과 시민사회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환상이자 해결해야 할 과제를 의미한다.

수돗물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실제로 이들이 경험한 정도에 비해 과장되어 있고 정수기 병입수(생수) 등 부가적인 물 산업 발전으로 이어졌다. 백 소장은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정수기 관리, 병입수 품질 등 제반 사항을 고려했을 때 평균적으로 수돗물이 정수기를 사용한 물이나 병입수보다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페트병에 담겨야 안전한 물? 
 

페트병에 담긴 생수는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다. ⓒ 녹색연합

 
수돗물 불신은 병입수와 정수기 시장의 막대한 팽창을 낳았다. 백 소장은 "전국 지자체의 수도사업 예산이 연간 약 6조~7조 원이라면 정수기 시장은 약 2조 원에 달하며 병입수 시장 규모도 거의 1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수돗물과 달리 병입수와 정수기는 개인의 부가비용이므로 병입수와 정수기 시장이 확대되는 것은, 시민이 수돗물을 먹는다면 지출하지 않아도 될 비용을 부가적으로 지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원인은 수돗물 불신이다. 이런 부가산업의 팽창은 탄소 발생과 쓰레기 문제 등 심각한 사회 부담으로 이어진다.

한 생수업체에서 판매하는 '어린이 생수'에 담긴 물의 양은 200ml이다. 두 세 모금을 마시면 그만인 200ml의 물을 담기 위해 페트병 하나가 사용되는 셈이다. 편리성을 고려하여 생수업체는 점점 더 작은 용량의 병입수를 만들고 '고급스러운 물' 마케팅을 하며 여러 종류의 병입수를 생산하고 있다.
 

정수기 ⓒ 최은경

 
정수기 역시 마찬가지다. 실질적으로 불필요한 수준인데도 '필터'를 강조하거나 얼음 등 부가 기능을 홍보하며 판매율을 높이고 있다. 병입수와 정수기 시장은 광고와 PPL 등을 통해서도 마케팅을 펼친다.

'먹는 물'이 시장에 맡겨지면서 경쟁과 마케팅이 과열되는 동안 이 산업이 배출하는 쓰레기 등 환경문제는 점차 심화하고 있다. 병입수의 페트병 쓰레기 문제는 지속적으로 대두되는 주요 쓰레기 문제 중 하나이며 정수기의 필터 쓰레기 역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나아가 '안전하다'고 믿고 구입한 병입수나 정수기가 실제로 안전하지 않아 발생하는 위험은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간다.
 

해변에 버려진 페트병 생수병들 ⓒ 녹색연합

 
백 소장은 먹는 물 시장이 초래할 위험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병입수나 정수기 시장이 가격경쟁 등에서 우위를 선점하려고 운영하는 저가 공급체계는 수질을 위협하고 있으며 결국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 영역으로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입수의 가격을 올리거나 병입수를 담는 용기에 제한을 두는 등 정부가 개입해 병입수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수준으로 '제대로' 생산되도록 하고, 또 과도한 생산을 하지 않도록 정책적인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고 백 소장은 지적했다. 공공기관은 병입수나 정수기 사용을 원천 금지하는 등 정부 국회 지자체 공기업 등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소장은 드라마 등 TV 프로그램에 무분별하게 들어와 있는 병입수와 정수기 PPL을 공영방송부터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외국 영화나 프로에서는 극중 인물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자연스럽게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한국 프로에서는 극중 인물이 정수기 물이나 병입수를 마신다며 이러한 PPL이 수돗물 불신을 강화한다고 지적했다.
 
일관된 정책과 시민인식의 변화


백 소장은 "젊은 세대일수록 수돗물 불신이 더 크다"라고 우려하며 "젊은 세대가 수돗물을 마시는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수돗물 불신을 해결하기 위한 인식 전환 차원의 캠페인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수도 정책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강조했다. 그는 수돗물 공급‧관리와 시민사회의 뿌리 깊은 수돗물 불신 문제 모두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인식 전환 캠페인과 함께 지속적이면서 일관된 정부 정책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 소장이 역설했듯,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마시는 것은 '복지'가 아니라 '기본권'이다. 모두 평등하게 또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공공 서비스로 제공되어야 한다. 수돗물 분야에서는 이러한 기본권 존중을 위해 정부의 노력과 함께 반드시 시민사회의 노력도 수반되어야 한다. 먹는 물 문제는 사실과 인식의 문제가 혼합돼 있기 때문이다.



안치용 ESG연구소장 겸 '생활ESG행동' 시민본부장
노수빈 바람저널리스트

  

생활ESG행동 시민환경연구소 백명수 소장(왼쪽에서 네번째)과 생활ESG행동 관계자들이 라운드테이블이 끝난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 안치용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10만인클럽후원하기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