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30 18:06최종 업데이트 21.04.3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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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사탕수수 밭으로 노랑 스쿨버스가 올라간다. 그들 태반이 학교도 다니지 못했을 것이나, 또한 미국에도 감히 가보지 못했을 것이나, 미국 스쿨버스는 신물 나게 타고 다닌다. ⓒ 림수진

 
이른 새벽 스쿨버스가 올라간다. 마을 위쪽, 화산의 치맛자락을 풍성히 덮고 있는 사탕수수 밭으로 가는 길이다. 그 안에 새벽밥 먹고 나선 이들이 빼곡히 타고 있다. 태반이 평생 미국 한 번 가보지 못했을 것이고, 또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아보지 못했을 것이지만, 그들은 매일 미국에서 내려온 노랑 스쿨버스를 탄다. 그렇게, 정글도라 불리는 마체테 한 자루씩 들고 사탕수수 밭으로 올라간다.

그러고 보니, 우리 마을이 사탕수수 산지였다. 동서남북 그 어느 방향이라도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사탕수수 밭이 시작된다. 사탕수수가 자라나는 계절이면 온 마을이 초록이고 사탕수수 꽃이 피는 계절이면 온 마을이 하얗고 사탕수수가 익어가는 계절이면 온 마을이 달달하다. 그리고 사탕수수를 베는 계절이라면, 이들이 들어온다. 저 멀리 멕시코 남서부 게레로(Guerrero) 주 어느 산간마을에서 오는 사람들이라 했다.
 

사진 중앙의 작은 마을이 내가 사는 마을이다. 동서남북 사방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사탕수수 밭이 시작된다. 북쪽으로 화산이 보인다. 활화산이다. ⓒ 림수진

 
사탕수수 익어갈 무렵

사탕수수가 무르익으면 건넛마을 제당소에서 운전수를 모집한다. 몇 십 년은 족히 되었을 미국 스쿨버스를 몰고 그들이 사는 마을로 가 그들을 데려와야 한다. 긴 버스 안에 많게는 70-80명까지 앉아 탈 수 있어 멕시코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들에서 '치킨버스'라 불리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하지 않던가. 우리 마을에서 그들이 사는 곳까진 왕복 스무 시간이 넘는 거리다. 그 길을 쉬지 않고 가서 다시 쉬지 않고 그들을 싣고 마을로 돌아와야 한다.


그 곳에 닿기 위해 멕시코 중서부 미쵸아칸과 게레로, 가장 위험한 곳, 일명 '뜨거운 땅(Tierra Caliente)'이라 불리는 곳을 지나야 한다. 일찍이 마약카르텔이 점령하였고 멕시코에서도 가장 치안이 취약한 곳이다. 버스 한두 대로는 도무지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적어도 대여섯 대는 한꺼번에 붙어가야 안심이 된다. 아무리 졸음이 쏟아져도 중간에 차를 세울 수 없다.

마을에 사탕수수를 베러 온 이들은 마을 입구에 얼기설기 지어진 '알베르게'에 산다. 더러는 가족을 대동하기에 그 곳에 학교가 임시로 선다. 마을 학교로 오면 될 일이겠으나, 멀기도 하려니와 더러는 스페인어 사용에 어려움을 겪어 지방정부와 제당소에서 세운 방침이다. 어찌 되었든, 그 사람들이 마을에 들어오면 곧 돈이 돈다. 매주 토요일, 일과를 마치고 각자 숙소로 돌아가 씻은 후 한껏 차려 입고 마을 다운타운으로 내려온다. 마을 입구 그들의 숙소에 머물며 사탕수수 밭만을 오가던 이들이 일주일에 딱 한 번 가족과 함께 마을 나들이를 한다. 이때도 노랑 스쿨버스가 이들을 실어 나른다.
 

사탕수수 밭에 노랑 스쿨버스가 들어왔다. ⓒ 림수진

 
마을 사람들과 그들이 섞이는 법은 거의 없지만, 돈은 그 사이를 열심히 오가며 돌고 돈다. 매주 토요일 해질 무렵 서기 시작하는 장도 어쩌면 이들을 위한 '배려'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들이 마을에 머무는 동안 장날은 여느 때보다 호화롭다. 싸구려 소시지를 튀겨 파는 집, 피자 흉내만 낸 피자집, 아이들 문구와 완구류, 일 나가는 이들을 위한 작업화와 바지, 아낙들이 쓸 부엌살림, 그 모든 것이 아무리 봐도 조잡한 수준을 면치 못하지만, 불티나게 팔린다.

이들의 일은 정확하게 사탕수수를 베는 것이다. 농익은 사탕수수 밭을 베기 하루 전 그 곳에 불을 놓는다. 1년 가까이 둥지를 틀고 살던 뱀이나 해충을 쫓고 거추장스러운 사탕수수 잎을 태우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탕수수를 베기 직전 불에 그슬리면 당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마을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방식이다.

다른 나라뿐 아니라 멕시코 내 많은 곳에서 이미 사탕수수 수확 작업이 기계화되어 베는 순간 잘게 토막 난 사탕수수가 컨테이너에 실린다는데, 우리 마을에선 100% 수작업이다. 화산의 치맛자락 경사진 곳에 기계가 오르기 쉽지 않고 곳곳에 화산 분출과 함께 튀어나온 돌들이 있어 기계에 손상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땅까지 워낙 비옥하여 무르다니,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을에 돈을 뿌리다

아침 여섯 시, 해가 뜨기도 전에 노랑 스쿨버스를 타고 올라간 이들은 마체테로 사탕수수를 베고 그것을 모았다가 밭으로 들어오는 트럭에 실어 나른다. 대략 200kg 정도의 무게로 한 무더기씩 모으는데, 그 무게의 사탕수수를 자르고 모으고 트럭에 싣기까지 약 600원에서 700원 정도의 돈을 받는다. 일은 아침 해 뜨기 전부터 해가 한창 뜨거워지기 직전인 오후 한 시 혹은 두 시까지 이어진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마찬가지다.
 

사탕수수를 가득 실은 25톤 트럭이 제당소를 향해간다. ⓒ 림수진

 
일을 잘하는 사람은 그 시간 동안 스무 무더기에서 많게는 서른 무더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그날 하루 일당이 1만 5천 원, 많게는 2만 원 정도가 된다. 멕시코 1일 법정 최저임금이 겨우 6-7천 원에 머물고 있으니 나쁜 수준은 아니라고, 그들의 급여를 두고 마을 사람들이 설왕설래한다. 게다가 매일 할 수 있는 일이니 얼마나 좋으냐고 한다. 그들의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그다지 중요치 않은 것 같다.

급여는 일주일에 한 번씩 토요일 오후에 지급된다. 마을의 많은 가게들이 평일에 그들로부터 전표를 받고 물건을 준다. 그리고 그 전표를 사탕수수 밭 주인 혹은 제당소에 가져가서 돈으로 바꾼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심한 듯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대화엔 그들의 삶이 끼어든다. 그들에게 지급되는 급여가 제법 많다는 말부터, 엄청난 양의 고기를 먹어치운다거나 또한 엄청난 양의 술을 마시고 대부분이 마약에 취해 산다는 소문들이다. 마을에 도는 마약 중에서도 가장 하급을 골라 구매한다니, 하루에 일당 2만원 벌어 5천원은 기본적으로 마약 사는데 쓰는 셈이다.

이들이 마을에 머무는 동안은 많은 이들에게 호시절이다. 가게들만 아니라 마을 내 싸구려 마약을 취급하는 마약 카르텔 말단 조직원들이게도 그렇다. 그들의 오토바이가 유난히 시끄럽게 마을 곳곳을 누빈다. 이곳 우리 마을까지 와서 사탕수수를 베어주고 엄청난 돈을 뿌려주는 것도 사실 고마운 일인데, 돌아가면서까지 마을 곳곳에서 오랜 시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물건들을 기꺼이 구매해간다. 그러니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는 노랑 스쿨버스 대신 그들이 벤 사탕수수를 제당소까지 실어 날랐던 트럭들이 동원된다. 최소 25톤을 실을 수 있는 트럭이다. 짐이야 맘껏 싣는다지만, 속도를 제대로 낼 수가 없어 꼬박 스무 시간 정도 가야 하는 길이다.

이제 곧 그들이 돌아갈 즈음이다. 보통 매년 12월에 와서 그 다음해 4월 말 혹은 5월 초에 돌아간다. 그렇게 근 30년을 오고 간다. 그들이 오기 전, 그러니까 30년 훨씬 이전 우리 마을 사탕수수는 당연히 우리 마을 사람들이 벴다. 마을 어르신들 중 사탕수수와 자신의 젊은 시절이 엮이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사탕수수를 벴거나 사탕수수를 베는 가족들에게 밥을 날라 줬거나, 혹은 소 두 마리를 엮어 우마차에 사탕수수를 실어낸 기억들까지.
 

우리마을 사탕수수 밭은 별도의 관개를 하지 않고 우기철 강수에만 의존한다. 화산재와 섞여 사탕수수 재배에 매우 우수한 지질 조건을 갖췄지만 땅이 무르고 경사가 심할 뿐더러 돌이 많아 기계가 들어가기 쉽지 않다. 따라서 사탕수수 밭을 가는 일도 여전히 말과 노새의 힘을 빌려 하고 사탕수수를 베는 일도 100%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오래 전 방식 그대로다. ⓒ 림수진

 
30년 전... 먼저 떠난 이들

남자들이라면 사탕수수를 베거나 나른 일을 기억하고 여자들이라면 종종 걸음 치며 밥을 해 날랐던 일들을 기억한다. 그 시절엔 새벽 2시가 되면 남자들이 일어나 일을 나갔고 집에 남은 여자들은 그 시간부터 일 나간 남자들의 아침을 준비했다. 옥수수를 갈아 또르띠쟈를 굽고 장작을 때 만든 아침이 준비되면 새벽 4시쯤 자는 아이들을 깨워 마을에서 제법 떨어진 공동묘지 앞으로 밥을 가져가 걸어 두게 했다.

새벽 2시부터 등짐으로 져 날라 실은 사탕수수가 새벽 5시쯤이면 한 트럭을 가득 채워 제당소로 향해갔고 제당소로 들어가기 전 마을 공동묘지 앞을 지났으니, 그 곳 커다란 나무에 밥주머니들을 걸어 두면 트럭 가득 실은 사탕수수 더미 위에 실려 가던 남자들이 자신의 밥주머니를 낚아채 제당소로 들어가는 동안 그 위에서 밥을 먹었다고 한다. 아직 어두운 새벽이었을 것이다.

시계도 없던 시절, 오직 닭 우는 소리에 맞춰 아이들을 깨워 밥주머니를 들려 보냈는데 혹시 조금 늦어 밥주머니를 트럭이 오기 전 걸어 두지 못하면 새벽 두 시부터 일한 남편이나 아들이 제당소에 사탕수수를 내려놓고 다시 밭으로 올라가 사탕수수를 싣고 다음 번 제당소에 들어갈 때까지, 그러니까 대략 오후가 될 때까지 아침을 먹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먹을 것이 지금과 같이 흔치 않아 밥주머니에 담기는 것은 불린 옥수수로 가루를 내어 만든 또르띠쟈와 삶은 콩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떻게든 커피는 마련하여 유리병에 담고 옥수수 깡치로 입구를 막아 밥과 함께 공동묘지 앞 나무에 걸어 두었다.
 

이른 아침, 말 두 마리를 엮어 화산의 치맛자락 언저리 사탕수수 밭을 간다. 여전히 활동하는 화산 덕분에 화산재로 덮인 토양은 늘 비옥하다. ⓒ 림수진

 
그렇게 이른 아침을 전하고 집으로 오면 곧 다시 점심을 내가야 할 시간이었다. 제당소에 사탕수수를 부리고 다시 밭으로 올라가 두 번째 사탕수수를 싣고 제당소로 들어가는 트럭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점심을 준비해 다시 공동묘지 앞에서 아버지나 오라버니를 하염없이 기다렸던 일들이 지금은 추억의 한편으로 남아 있다. 당시 신발이나 옷이 변변했을 리 없어 간혹 맨발로 가족의 밥주머니를 들고 다녔던 일화들도 공공연하게 그리고 조금 시리게 추억으로 소환된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남편과 아들의 옷도 그날 밤으로 빨아 말려 다음날 입게 했을 정도로 모든 것이 귀한 시절이었다.

그 때 사탕수수를 베고 실어 나르던 마을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라고 묻고 본다면, 그들 중 상당수는 '북쪽' 미국으로 갔다. 우리 마을에도 미국에 가는 것이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 곳에서 어느 정도 돈을 모아 다시 고향 마을로 돌아온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30년 전 그들이 비운 자리에 우리 마을보다 훨씬 더 고립되고 열악한 지역의 사람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들어온 것이다.
 

사탕수수 밭을 태운 후 베고 나면 베어진 둥치에서 바로 3-4일 후에 새롭게 싹이 돋는다.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임에도 싹을 틔우고 자란다. 한 번 심으면 대략 20년 정도 계속하여 수확이 가능하다. 별도의 관개를 하지 않기에 당도가 높고 수작업으로 수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품질이 우수하여 다른 지역의 사탕수수보다 높은 가격으로 팔린다. ⓒ 림수진

 
누군가에겐 여전히 여기가 미국

어찌 보면 300년 전 아프리카 흑인들까지 노예로 이 땅에 실어온 것이 사탕수수 때문이었으니 우리 마을의 사탕수수가 게레로 주 어느 산간 지역 사람들을 불러들인 것은 아주 사소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마을 사람들이 30여 년 전에 그랬듯이, 어느 순간 이들도 더 이상 사탕수수 베는 일을 하지 않을지 모른다. 이에 대한 불안함 때문일까? 우리 마을 사람들은, 특히나 사탕수수 밭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늘 이곳이야 말로 그들에게 '미국'이나 다름없다고 유독 강조하고 다짐하듯 말한다.

이른 새벽부터 수 톤의 사탕수수를 베고 어깨에 지고 날라 하루에 10달러 조금 넘는 돈을 버는 곳이지만, 그들이 나고 자란 곳에 비한다면 이곳이야 말로 그들에겐 미국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토요일 저녁, 마을에 서는 조야한 장터마저도 미국의 대형 쇼핑몰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견줘진다. 아마도 마을 사람들 입장에선 마을이 언제까지라도 그들의 미국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봐도 기계화의 가능성이 낮은 우리 마을 사탕수수 밭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200kg 정도 되는 양의 사탕수수를 베고 나르는 일에 500원을 줬는데, 최근 들어 600원으로 올랐다고 사탕수수 밭 주인들은 불만이다. 제당소에서 사들이는 사탕수수 값이 크게 오르지 않았으니 이들의 불만도 일리가 있다. 올해도 주인과 일꾼들 사이에 삐거덕 잡음이 일었다니, 어느 순간 사탕수수를 베는 그들과 사탕수수 밭 주인 사이의 협상이 결렬된다면 그들은 아마도 새로운 미국을 찾아갈 것이다. 그 곳이 멕시코 안이든, 멕시코 밖이든.
 

10월 혹은 11월이 되면 사탕수수 꽃이 피기 시작한다. 이 꽃이 지고 나면 멀리서 사람들이 들어오고 수확이 시작된다. ⓒ 림수진

  

사탕수수 꽃은 갈대 혹은 억새와 비슷하다. ⓒ 림수진

 
그럼에도 우리 마을은 여전히 또 다른 누군가에게 미국일 것이다. 어쩌면 그들을 데려오기 위해 더 먼 곳으로 노랑 스쿨버스를 몰고 가야 할 수도 있겠지만, 사탕수수가 있는 한 누군가는 이곳에 와서 사탕수수를 벨 것이다. 이 세상엔 하루에 10달러만 벌 수 있어도 기꺼이 미국이라 여기고 낯선 곳에 실려와 하루에 수백 톤씩 사탕수수를 베고 져 나를 사람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다디단 사탕수수를 베면서 쓰디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말이다.

하여, 언제까지라도 우리 마을에서라면 매일 새벽 '진짜 미국'에서 온 노랑 스쿨버스가 사방으로 마을을 둘러싼 사탕수수 밭 사잇길로 어둠을 가르고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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