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16 19:46최종 업데이트 21.04.1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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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멕시코를 가르는 국경 사막 한 가운데서 발견된 소년 윌톤 ⓒ Telemundo 뉴스 캡처

 
아이가 걸어왔다.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랄 수 없는 텍사스 사막 한복판이었다. 그 누구도 그 곳에서 아이가 혼자 걸어올 것이란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몇 시간이나 걸어왔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아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마침 그 곳을 지나던 미국 국경수비대 차량이 아니었다면 그 아이가 어디까지 걸어갔을지, 또 얼마나 걸어갔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이의 운명이든 혹은 신의 가호든, 아이는 그 곳에서 살아났다.

아이의 첫 마디는 '도와주세요!'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를 버리고 갔다고 말했다. 자기가 있는 그 곳이 어딘지 모르겠다고 했고 또한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10살, 윌톤이라는 이름의 사내아이였다. 얼굴엔 사막 먼지가 눈물과 섞여 얼룩을 만들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소설에나 나올 법한, 지난주 멕시코와 미국을 가로지르는 국경 어디쯤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바로 며칠 전, 5미터에 가까운 국경 장벽 위에서 누군가 두 명의 아이를 미국 쪽으로 던지는 모습이 국경 수비대 야간 탐지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지난달엔 다섯 살 여자 아이가, 여덟 살 된 남자 아이가, 심지어 여섯 달 된 아기가 멕시코와 미국을 가르는 브라보 강(Rio Bravo)에 빠져 죽었다.

이렇게, 죽거나 던져지거나 혹은 버려진 아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미국이었다. 그들의 아메리칸드림이라기보다는 그 누군가의 아메리칸드림을 쫓아가다, 물에 빠져 죽거나 5미터 가까운 높이의 국경 장벽 위에서 던져지거나 사막 한가운데 어디쯤에서 버려졌다. 올해 밀입국을 시도하다 미국 측 국경 수비대에 체포된 아이들이 1월 5858명, 2월 9431명, 그리고 3월엔 1만 8809명으로 증가했다. 증가 추세가 심상치 않다.
 

어린 소녀가 국경 너머로 버려지는 장면 ⓒ Telemundo 뉴스 캡처

 
죽거나 던져지거나 버려진 아이들

밀입국이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닐 뿐더러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다. 특히 세계 국경들 중 가장 많은 밀입국이 이루어진다는 멕시코와 미국 사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최근 이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그간의 전형과 다르다. 밀입국이라면 당연히 은밀해야 했고 국경을 넘고 사막을 건너는 일이니 대부분 남성이었다. 게다가 숫자가 많으면 눈에 띄기 쉬워, 많아봐야 서너 명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최근 몇 달 사이의 모습은 생경하다. 괴나리봇짐 하나도 거추장스러울 여정에 아이들이 등장한다. 요즘 같으면 품에 아이 하나쯤 안고 있어야 밀입국을 시도하는 이주자의 전형적 모습이라 할 만하다. 마치 유행처럼. 게다가 수십 명, 많게는 기백 명까지 그룹을 이뤄 밀입국을 시도한다.

오히려 그들이 바라는 바는 밀입국 중 부디 미국 쪽 국경 수비대에 발각되는 일이다. 그러니 강 건너 미국 국경수비대의 풍력선이 감시 활동을 시작함과 동시에 강 속에 몸을 던진다. 혹여 미국 국경수비대 감시선이 다가오기 전 멕시코 측 감시선이 먼저 다가온다면 추운 날씨일지라도 끝까지 배에 오르지 않은 채 사나운 물살을 견딘다. 그러다 결국 그 물살에 손잡고 있던 아이를 놓쳐 떠내려 보내는 일이 잦다.

무슨 일일까? 불법 이주 혹은 밀입국이라는 험난한 여정에 미성년 아동이 의미 있는 숫자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즈음이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였고,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미성년 아동 이주가 증가했다. 하지만 지금과 다른 양상이라면 그들 대부분이 미성년이긴 하지만 성년에 가까운 16세 혹은 17세 정도의 연령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현상에 대한 분석은 콜롬비아, 멕시코, 미국을 잇는 마약 유통의 지역적 패권이 요동치는 가운데 중앙아메리카 북부 삼각지대라 불리는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가 새로운 마약 유통 경로로 부상하고 그 과정에서 해당 지역의 치안이 처참하게 망가진 결과로 해석되었다. 그간의 미국을 향한 이주가 경제적 이유로 인한 것이었다면 이즈음의 이주는 당장 마약 카르텔들의 조직원 포섭 혹은 그들의 폭력을 피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탈출이었던 셈이다.

그들이 어쩌면 '굿뉴스' 즉 복음의 사도였을까? 목숨을 걸고 '죽음의 열차'에 올라 멕시코를 통과하고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직전 미국 국경수비대에 잡혔는데 19세를 기준으로 처우가 달랐다. 성인으로 분류되는 밀입국자들이 즉각 추방되는데 반해 미성년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미국 국경 수비를 담당하는 관세국경보호청의 보호를 받았고 그 곳에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미국 보건후생국의 보호 아래 관리되었다.(관련기사 : 100달러와 피임약, 오늘 나는 '죽음의 열차'를 탑니다 http://omn.kr/1lqp3)

관세국경보호청의 보호를 받는 동안의 처우는 그리 좋다 할 수 없지만, 일단 보건후생국의 보호 아래 넘어가면 자국에서 상상할 수 없던 수준의 삶이 펼쳐졌다. 다시 그 곳에서 6개월을 보내고 이미 미국에 들어와 있던 친척이나 가족에게 인계되면 그 때부터 지난한 체류 지위 심사에 대한 절차가 진행된다.
 

미국 국경으로 가는 멕시코 화물열차 탑승한 중미 이민자들 모습. ⓒ 연합뉴스/AP

 
최소 5-6년이 걸리는 일이었으니 일단 그 사이 미국에 체류할 수 있는 지위가 보장되었다. 게다가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만한 확률이 성인에 비해 월등했다. 그렇게 미국에서 체류할 수 있는 적법한 지위를 얻게 된다면 본국에 남은 가족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되는 셈이었다. 그러니 미성년자라면 일단 어떻게든 미국 국경 수비대에 잡히고 볼 일이란 소식이 본국으로 전해졌다. 굿뉴스이자 복음이었다.

그렇게 미성년자들이 이주자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하면서 미국 정부는 이들의 보호에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3국 정부와 합작하여 각 국 교육기관을 통해 '본국에 머물러라' 캠페인을 전개했겠는가. 물론 들인 돈에 비해 실효를 얻지 못하여 여전히 미성년 이주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멕시코를 관통하기 위해 대부분 통과이주자들이 '죽음의 열차'를 택하던 시기였으므로 쉽게 행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니었다.

미국에 닿기 위해 멕시코를 통과하는 일이 비교적 쉬워진 것은 2018년 이후다. 이주자 카라반이라 불렸던 대규모 공개 이주가 행해졌고 멕시코를 관통하는 과정에서도 죽음의 열차에 오르지 않고 곳곳에서 국내외 기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적어도 미국 국경을 넘기 전까진 모든 것이 합법으로 간주되었다. 여정의 곳곳에서 이들에게 잠자리와 식사가 제공되었고 무엇보다도 국내외 언론이 이들에게 포커스를 맞추면서 세간의 관심과 지원이 쏟아졌다.(관련기사 : 이주자 카라반이 온다, 솥을 걸고 음식을 만들어라 http://omn.kr/1m4te)

이러한 조건과 함께 미성년 이주자의 연령은 점점 하향하였고 자발적 의지가 아니더라도 부모 품에 안겨 아메리칸 드림을 향해가는 아이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성년의 부모들이라도 품에 안은 어린 아이가 있다면 미국 국경수비대에 잡혔을 때 아이와 함께 별도의 시설로 옮겨져 보호를 받았다. 국제법상 바로 추방할 수 없는 그들의 아이들이 긴 시간 난민 지위 심사를 받는 동안 부모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 새롭게 전해진 복음이었다.

비극의 발단이 된 '굿뉴스'

어찌 보면 비극의 발단이었다. 그 이후 미국을 향해 가는 중앙아메리카 이주자들의 품에는 늘 아이가 안겨 있었다. 설령 안을 아이가 없더라도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들이 그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아이가 여권이자 곧 비자'란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브라보 강(Rio Bravo)을 건너는 아이들. ⓒ El Pais 뉴스

 
불법 이주자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했던 도날드 트럼프 행정부도 아이를 안고 밀려드는 이주자들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인 듯싶었으나 역시 사업가다운 기막힌 발상으로 국면을 전환시켰다. 난민 신청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밀려드는 이주자들에게 '안전한 제3국'을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결코 안전할 수 없는 멕시코가 미국의 압력으로 '안전한 제3국'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국제법상 누구라도 난민 신청을 하고 지위 부여를 위한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난민 신청을 한 그 국가에 머무는 것이 원칙이나, 중앙아메리카에서 올라와 미국에서 난민 심사 신청을 하는 이들은 미국이 아닌 바로 아래 '안전한 제3국' 멕시코에서 머물러야 했다. 그 시간이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결코 안전하지 못한 멕시코에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이 발표되면서 아이를 품에 안은 이주자들의 숫자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미국의 입장에선 한 번의 위기를 넘긴 셈이다.

거기에 2020년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했으니, 미국 입장에선 난민 신청자들에 대해 문을 걸어 잠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기왕에 미국 국경 바로 아래 운집해 있던 이주자들은 어찌 어려운 시절을 감내하며 버텼지만, 새로운 이주자들이 유입될 만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던 '이주자 카라반'의 시대가 다시 러시를 이룬 것은 지난 1월부터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 대해 서슬 퍼렇던 도날드 트럼프가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새 대통령이 선거 공약으로 이주자에 대한 관용을 약속하고 나선 마당이니 언제든 미국으로 들어갈 기회를 엿보던 이들에게 다시 한 번 호시절이 도래한 셈이다.

조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2021년 1월 미국 국경수비대에 잡힌 밀입국자 숫자는 3만 명을 넘어섰다. 대략 3천 명 선에 머물던 여느 해 같은 달에 비해 열 배 이상이다. 이마저도 충분히 놀라운데 2월에는 14만 명 그리고 3월에는 17만 명이 국경 수비대에 체포되었다.

놀란 바이든 행정부는 공약으로 걸었던 말을 살짝 바꿨다. 이민 정책을 개정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라며 '오지 말라'(No venga)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이들의 행렬을 막지 못했다. 급기야 아이를 품에 안고 들어오는 밀입국자들도 즉각적으로 안전한 제3국, 멕시코로 추방하겠다고 발표했고 실제로 멕시코 측 이민국 사무소에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미국에서 추방되는 밀입국자들이 연일 늘고 있다.
 

미국서 멕시코로 추방되는 중미 이민자들 ⓒ 연합뉴스

 
국제사회의 비난이 일고 있지만, 미국의 입장 또한 단호하다. 이미 자국 내 아동 이주자 수요 시설이 포화 상태이고 자국 내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상황이며 무엇보다도 이미 2만 명 가까이 수용된 아동 이주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미국 행정부가 밝힌 아동 이주자 수용비용은 1인당 하루에 775달러다).

여전히 미국으로 향하는 수많은 윌톤들

다시, 며칠 전 사막에서 발견된 아이 윌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의 고향은 니카라과다. 지난 2월 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엄마와 함께 이주자 카라반 대열에 합류했다.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그리고 멕시코를 거쳐 미국 국경 근처에 닿았을 때 엄마와 함께 납치되었다. '납치'라니 새삼스러울 수 있겠으나,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과정에선 흔한 일이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수입원이기도 하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같았다면 미국 국경을 넘기 위해 흔히들 코요테 혹은 닭장수(pollero)라 불리는 밀입국 브로커를 고용했을 것이나, 지난 10여 년 사이 이 또한 마약 카르텔이 접수해 버렸다. 미국이 국경 수비를 강화할수록 일개 개인일 수밖에 없는 코요테나 닭장수들은 설 자리를 잃었고 그 자리를 막강한 조직력과 화력으로 무장한 마약 카르텔이 장악했다. 그들의 기술력이라면, 미국이 아무리 국경 수비를 강화한다 해도 언제든지 얼마든지 사람들을 넘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오히려 미국이 국경 수비를 강화할수록 밀입국은 더 정교해져야 할 것이고 이로 인해 커미션 역시 올라갈 것이니 이들로선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주자를 납치한 후에 미국에 있는 친척 연락처를 확보하고 그들로부터 돈을 받으면 납치된 가족을 인계해주는 방식이 통상적이다. 미국에 있는 가족이 지불을 거부한다면? 국경을 넘겨주는 대신 그들 몸 속 어딘가 마약을 심어 운반하는 '노새'(mula) 역할을 부과하면 된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경우, 가끔 뉴스에 나오는 대로 불에 탄 수십 구의 시체로 사라질 확률이 높아진다.

엄마와 함께 납치된 윌톤의 경우, 미국에 있는 삼촌과 연락이 닿았지만 삼촌은 윌톤의 석방비만 지급할 수 있었다. 5천 달러였다. 그렇게 윌톤은 누군가에 의해 국경의 저쪽, 즉 미국 땅으로 넘겨졌고 그 곳에 버려졌다. 그리고 국경 수비대를 만나 목숨을 건졌다. 일정 기간 보건후생국의 보호가 끝나면 돈을 지불한 삼촌에게 인계될 것이다. 다행히 아직까진 미국 이민 당국이 윌톤의 삼촌에 대한 체류의 법적 지위를 묻진 않는다. 물론, 윌톤의 엄마는 여전히 생사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2021년 4월 현재, 하루 평균 200명 가량의 아이들이 미국 국경수비대에 붙잡힌다. 그새 스무명 가량의 아이들은 미국 측 국경 어디쯤에서 버려지고, 던져지고, 물살에 떠내려갔다. 복음을 쫓아 온 이들, 그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비극이다. 

결국 2021년 4월 12일 멕시코 대통령이 나섰다. 아이들을 이용한 밀입국은 명백한 범죄행위이며 더 이상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도 같이 나섰다. 아이들과 함께 밀입국을 시도하다 체포되더라도 즉각 안전한 제3국으로 추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간의 골칫거리를 멕시코가 해결해주겠다고 나섰으니, 미국에겐 또 다른 호재다.

그럼에도, 과연 미국과 멕시코의 공조가 이주자들의 행렬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여느 때라고 미국을 향해 불나방처럼 날아드는 이들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멕시코와 미국 국경에서 벌어지는 근자의 사건들 가운데, 자꾸만 젊은 아빠 오스칼과 어린 딸 발레리아가 겹쳐진다.(관련기사 : 강 건너다 죽어간 스물다섯 아빠와 두 살배기 딸 http://omn.kr/1lqoo)
 

두 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2019년 6월 24일, 미국 텍사스 주 국경도시인 브라운즈빌과 강을 사이에 두고 맞닿은 멕시코 마타모로스 국경검문소 근처 다리 밑이었다. 언론들은 이들의 죽음을 앞다투어 타전했다. 젊은 아빠와 어린 딸이었다. 죽은 아빠의 셔츠 안쪽에 묻힌 채, 죽어서도 미국에 닿지 못하고 다시 멕시코 쪽으로 흘러 들어온 아이의 삶이 너무 참담하게 느껴진 것일까? 아니면, 두 살배기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목숨을 걸고 강으로 들어가야 했던 스물다섯 살 아빠의 상황이 너무 아프게 느껴진 것일까?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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