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20 19:43최종 업데이트 21.03.20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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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스코 주 카시미로 카스티죠 시가 SNS를 통해 시장 알프레도 세비쟈의 부고를 전하고 있다. 알프레도는 2021년 지방선거에 해당 시 시장 선거에 여당 후보로 재출마 한 상황에서 3월 10일 납치되었고 이틀 후 시신으로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 ⓒ 카시미로 카스티죠 SNS 제공

 
지난 3월 10일 실종되었던 할리스코(Jalisco)주 카시미로 카스티죠(Casimiro Castillo) 시의 시장 알프레도 세비쟈(Alfredo Sevilla)가 이틀 후 시신으로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 시장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피살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acribillado'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번역하자면, 무수한 총알로 온 몸이 벌집이 된 상태를 이른다.

알프레도는 2018년 지방 선거에서 3년 임기 시장에 당선되었고, 2021년 6월 예정된 지방 선거 재출마를 위해 시장직을 사임한 상황이었다. 충분히 놀랄 만한 뉴스지만, 그의 피살 소식은 사전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해 9월 이후 약 6개월 동안 살해된 70여 명의 정치인 중 한 명으로 묻히고 말았다. 통상 정치인 피살과 관련한 뉴스들이 그러하듯, 실종되었다는 뉴스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단발성 뉴스만 있을 뿐, 그의 실종과 사망을 둘러싼 후속 보도는 없었다. 그럼에도 대부분 사람들은 궁금해 하지 않는다. 뻔하기 때문이다.

피살돼 버려진 시장... 여기선 흔한 일

어쩌면 멕시코에서 선출직 공무원이 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대통령 이하 주지사와 시장 그리고 상∙하원 국회의원과 지역 의회 의원들이 그 범주에 포함되지만 그 중 단연 수위는 시장이다. 지난 15년간 멕시코 2467개 시에서 200명 이상의 전∙현직 시장이 피살되었다. 평균적으로 한 달에 1명 이상이 피살된 셈이다. 피살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그간 멕시코 시장들에게 가해진 살해 시도 혹은 납치는 1000건을 훌쩍 넘어선다.


정치인 살해는 멕시코 정치의 고질적 문제다. 지위 고하를 막론한다. 1994년엔 당선이 유력했던 여당 대통령 후보가 선거를 석 달 앞두고 피살되었다. 현장에서 용의자가 검거되었지만 실질적 배후에 대한 답은 현재까지도 밝혀진 바가 없다. 전∙현직 주지사 피살도 왕왕 있다.

지난해 12월엔 멕시코 제2도시를 끼고 있는 할리스코 주 직전 주지사 아리스토텔레스 산도발(Aristóteles Sandoval, 2013-2018년 재임)이 대중음식점에서 다수의 괴한이 쏜 총에 맞아 피살되었다. 피살 직후 수사기관이 도착하기 전에 모든 혈흔과 탄피 그리고 CCTV가 조직적으로 제거되었다. 두서너 명의 가담자가 검거되긴 했지만 주요 용의자 검거와 제대로 된 수사기관의 발표는 아직이다.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검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용의자와 배후가 명백함에도 검거하지 못한다. 이미 언론을 통해 해당 주에 기반을 두고 있는 멕시코 최강성 마약 카르텔의 개입이 밝혀졌지만, 그뿐이다. 늘 그렇다.

그보다 반년 앞선 지난해 6월, 수도 멕시코시티 경찰청장(치안장관)이 시내 중심에서 고성능 대물 저격 총으로 무장한 십수 명 괴한들의 매복에 걸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일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산도발을 살해한 같은 조직의 소행임이 드러났지만 그들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나 공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경찰청장에 대한 도발이었으니, 매복과 총격에 가담한 조직원 일부를 검거하였을 뿐이다.

내가 사는 주에서도 세 명의 주지사가 연이어 목숨을 잃거나 위협을 받았다. 재임 순차적으로 A, B, C라 한다면, A 주지사(1997-2003)는 퇴임 후 지인들과 대중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다가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고 그 중 여섯 발을 맞았지만 다행히 목숨을 잃진 않았다. B 주지사(2004-2005)는 재임 중 전용기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으나 기계 결함으로 밝혀진 사고 원인에 대해선 일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남아 있다. C 주지사(2005-2009)는 퇴임 직후 백주에 집 앞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세 명의 주지사가 순차적으로 목숨을 잃거나 위협을 받았지만 그 어떤 경우도 공식 조사 결과 발표가 없었다. 멕시코에서라면 매우 현실적인 상황이다.

대통령 후보나 주지사에 대한 도발과 이에 대한 공권력의 반응이 이 정도이니 시장들의 피살은 그보다 훨씬 더 빈번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수사에 대한 기대치는 더욱 낮아진다. 일 년이면 3만 명 이상이 피살되는 곳에서 어쩌면 흔한 죽음 중 하나로 유야무야 묻힌다. 다만 3년에 한 번씩 시장에 대한 피살 혹은 납치가 유독 기승을 부리는 시절이라면, 시류를 타고 언론이나 기관의 우려 수위가 다소 높아질 뿐이다. 바야흐로 작금이 그 시절이다. 바로 선거철이다.
 

2020년 12월 18일 할리스코 주 전직 주지사 아리스토텔레스 산도발이 같은 주 휴양 도시 푸에르토 바쟈르타Puerto Vallarta의 고급 식당에서 피살되었다. 피살 직후 수사 기관이 도착하기 전 종업원들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조직적으로 피살의 흔적을 지우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식당 안에 설치되었던 일부 CCTV는 피살 직후 사라졌다. ⓒ El Universal 뉴스 캡처

 
아니나 다를까, 다소 잠잠하던 정치인 피살 건 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각 언론에서 제시하는 숫자에 차이는 있지만 사전 선거 운동이 시작된 2020년 9월 이후 현재, 최소 64명 이상의 후보자 혹은 선거 관련자들이 피살되었다. 별도로 살해 미수가 20여 건에 달하고 납치는 15건이 등록되었다. 신변에 대한 위협은 이미 100건을 넘어섰다.

국민주권 위에 군림하는 어떤 파워

이처럼 선거철이면 난무하는 지독한 폭력의 근원에는 멕시코 일부 지역에서 국민주권과 정상적인 정치시스템 위에 군림하는 그 어떤 파워가 존재한다. 차라리 정쟁 가운데 발생하는 정적(政敵)이라면 그나마 나을지 모르겠으나, 대부분은 그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마약 카르텔이다. 입후보한 후보자들의 정치-경제적 성향이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그들이 원하는 후보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 중에 유독 시장이 폭력의 타깃이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마약 카르텔이 한 지역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카르텔이 한 지역을 장악하게 되면 점점 세력을 키우면서 주변 지역을 흡수한다. 그렇게 공권력이 부재하거나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지역들이 확산된다.

그런 지역에서 카르텔과 합의되지 않은 시장 선거 입후보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피살이나 납치뿐 아니라 선거 기간 중 후보 사퇴 혹은 당선 이후 사퇴가 빈발하는 이유다. 2018년 지방 선거 당시 정치인 피살률이 높은 게레로(Guerrero)주의 쿠차말라 데 핀손(Cutzamala de Pinzón)시에서는 시장 후보자들의 사퇴가 지속되면서 10번 이상 후보자가 바뀌기도 했다.

'피의 선거'라 불렸던 2018년 지방 선거는 치안 부문에서 역사상 최악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선거 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전국적으로 152명의 후보자와 선거 관련자들이 피살되었고 774건의 정치인에 대한 위협 및 공격이 등록되었다. 7월 1일 선거가 치러진 당일에도 7명의 후보가 피살되었고 138건의 선거 관련 정치인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졌다. 당일 혹은 익일 개표 결과가 발표되면서 다시 4명의 선거 관련자들이 피살되었다. 그러자 일부 지역에선 당선된 시장들이 겁에 질려 잇따라 사퇴했고, 멕시코 남부 오아하카(Oaxaca) 주에서는 여당 소속 시장이 취임 선서한 후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피살되기도 했다.

2018년 멕시코 지방 선거 당시 전국 각 곳에서 폭력이 난무하면서 주 멕시코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도 교민들에게 '멕시코 선거 관련 안전 유의 안내문'을 공지했다. 선거 당일 투표소 인근에서 총격전이 벌어질 수 있으니 가급적 선거 전후 유세장이나 투표소에 대한 접근을 자제하라는 내용이었다. 정상적인 국가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지난 해 12월 2일 월요일 멕시코 북부 코아우일라 주에 위치한 비쟈 우니온 시청사에서 청소 노동자가 총알 구멍이 난 시청의 외관을 수리하고 있다. 앞선 11월 30일 무장 트럭 25대에 나눠탄 130명 정도의 마약 카르텔 조직원들이 비쟈 우니온에 난입하였다. 시청사를 중심으로 경찰병력과 교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경찰 4명, 카르텔 조직원 1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 AP=연합뉴스

 
국가방위군까지 투입했지만...

2021년 6월 6일로 정해진 지방선거는 역대 최대, 혹은 메가급 선거라는 말이 나온다. 15개 주 주지사를 비롯 상∙하원 의원, 그리고 1929개 시의 시장과 시의회 의원들을 선출한다. 총 2만 1383명의 공무원이 선출된다.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대면 선거 운동이 제한되면서 '회색 선거'라는 말이 나오지만 작년 9월 7일 사전 선거 운동이 시작되었고 2021년 3월 5일 9만 7000명의 후보자들이 본격 선거 과정에 돌입하였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70명에 가까운 후보자와 전∙현직 정치인들이 피살되자 급기야 정부가 '후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적 전략'을 내놨다. 지난 2월 말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즈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AMLO) 대통령이 직접 나서 후보의 안위가 위험한 지역에 국가방위군을 투입할 것을 밝혔다. 동시에 시민안전보호 장관은 특별 예산을 집행하여 후보자와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수사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당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시장을 뽑을 권리는 오직 유권자에게 있으며 이번 선거가 결코 당신들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천명했다. '당신'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멕시코 국민들이라면 뻔히 안다. 지금과 같은 현실의 원인이 결국은 기존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에 있음을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역대급 선거라 불리는 2021년 지방 선거가 석 달 남았다. 정부는 이미 치안이 취약한 지역에 국가방위군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국가방위군은 현 대통령 AMLO의 취임과 함께 지독하게 왜곡된 멕시코 치안을 개선키 위해 창설된 병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AMLO가 취임한 이후 지난 2년 간 멕시코 전역에서 피살된 자들의 공식 통계는 이전 정권들이 보여준 수치를 상회한다. 2019년과 2020년에 각각 3만 4648명과 3만 4515명이 피살되었다.

그러니 선거 정국에서 치안이 취약한 지역에 국가방위군을 파견하여 선거 입후보자들의 목숨을 지키겠다는 취지에 회의가 든다. 과연 선거철이라고 일부 지역에서 국민 주권과 정부 위에 군림하는 마약 카르텔의 세력이 약해질 것이며 또한 선거철이라고 국가방위군의 세력이 강성해질 것인가? 지난해 9월 이후 현재 70명에 달하는 선거 관련 피살자 숫자를 고려한다면 앞으로 남은 석 달의 전망이 썩 밝지 않다. 
 

베르크루즈 주 라 페를라시 시장을 역임했던 멜키아데스 바스케스(Melquiades Vezquez)가2021년 3월 5일 공식 후보 등록 하루를 앞둔 3월 4일 인접 도시 시청 앞에서 수 명의 괴한들로부터 15발 이상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차량에 동승했던 부인은 중태다. 그의 아들은 그가 시장 선거 재출마를 위해 PRI(제도혁명당) 예비 후보로 등록한 지난 해 9월 납치되었고 수일 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 Televisa 뉴스 캡처

 
어쩌면 대통령의 말대로 선거철마다 피의 전쟁이 벌어지는 원인의 기저에는 지난 세기 70년 동안 한 정당에 표를 몰아준 묻지마 투표의 책임도 있을 것이다. 그간의 선택이 최선이었든 혹은 차악이었든 결과는 지극히 기형적인 현실이 되어 버렸다.

남은 석 달 동안 다시 또 얼마나 많은 후보자들이 벌집이 된 채 발견될지 알 수 없다. 한 명의 후보자가 죽어 나타날 때마다 유권자들은 두려움과 무력감에 빠져든다. 국민주권과 국가가 부정되는 가운데 생존을 위해 무관심을 택하게 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상황을 개선해 나가야 할지 암담하지만 적어도 유권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그 곳에 희망이 있을 것이다. 여전히 무서워 목소리는 낼 수 없지만, 작금의 폭력을 보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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