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05 13:06최종 업데이트 21.03.0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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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떠나며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이 될 것이라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주장은 잘 설득되지 않는다. 검찰에게서 수사권을 거둬들이는 것과 부패가 완전히 판치는 세상 사이에는 인과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검찰의 수사권을 이관하겠다는 정부·여당의 주장대로라면 부패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이 맡게 된다. 1차 수사권을 가진 경찰이나 신설된 공수처도 각종 범죄에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검수완박을 부패완판으로 치환하는 윤  전 총장의 발언은 검찰만이 정의를 지킬 수 있다는 독선적 아집의 발로이거나 국민의 우려를 키워 검찰권 지키기 방패막이로 삼아보려는 얄팍한 수라는 지적이 가능하다.


국회 입법 과정에 검찰총장이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탓할 바 못된다. 검찰의 권한을 다루는 중수청 설치를 두고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논의 단계부터 직을 걸겠다며 법무부와 검찰을 넘어 정권과 검찰의 대결 구도로 몰아갔던 윤 전 총장의 발언과 행보는 단순한 의견 표명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문제 제기 절차도 생략한 채 언론에 인터뷰 형식을 빌려 "내가 밉다고 국민 이익을 인질 삼나, 사기꾼 소굴로 만들자는 거냐"(<중앙일보> 3월 3일 [단독] 尹 "내가 밉다고 국민 이익을 인질삼나, 중수청은 역사후퇴")라며 막말에 가까운 울분을 쏟아내는 모습에서는 검찰 수장의 품격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이고, 임명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항명이라 불릴 만하다.

'검찰은 선'이라는 인식
 
"문민정부 이후 검찰의 반부패 활동이 우리 사회 특권을 없애고,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보를 표방하는 정부나 보수를 표방하는 정부를 가리지 않고 '잘못을 저지르면 힘 있는 자도 처벌 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우리 사회가 퇴보하고 헌법 가치가 부정되는 위기 상황에 서 있다."
- <국민일보> 3월 2일 [윤석열 인터뷰 전문] "檢수사권 박탈은 법치 말살, 민주주의 퇴보"

지난 3월 2일 <국민일보> 윤 전 총장 인터뷰는 검찰은 선(善), 반대편은 불의라는 구도의 동어 반복이었다. 검찰 조직의 수장임을 감안하더라도 조직에 대한 공치사에 비해 과오에 대한 발언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검찰의 역사에서 공에 못지않은 과오가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권의 탄핵과 처벌에 검찰의 공이 지대했다고 하지만, 그런 정권을 보좌하고 시녀 노릇을 했던 것 또한 검찰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어른거리는 검찰의 나쁜 수사조차도 잘못이라 생각하지 못한다면, 과오 불감증이거나 건망증이다. 검찰이 가진 힘인 수사와 기소권을 감시하고 견제할 장치가 있었더라면 검찰이 정권의 충견이라는 놀림을 면했을 것이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깃발. 2021.3.3 ⓒ 연합뉴스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 의혹도 그렇다. 없는 죄를 만들려고 증인에게 위증을 강요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검찰이다. 더욱이 이 사건을 수사하겠다는 임은정 검사의 보고에 직무배제로 대응해 수사 의지를 좌초시킨 게 윤 전 총장이다(공소시효가 3월 22일로 얼마 남지 않는 사건에 그간 조사를 한 임은정 검사를 배척하고 다른 검사에게 사건을 배당한 행위는 수사방해 행위다). 조국 전 장관 수사,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폭로한 검사 술 접대 의혹 등 윤 전 총장 임기에 있었던 정치 관련 사건만 보더라도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를 했다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많을까.

이런 검찰의 형태를 봐도 수사와 기소는 융합이 아니라 분리가 맞다. 수사와 기소의 융합이 효율적이라고 윤 전 총장의 설명은 일면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효율성보다 앞세워야 할 것이 국민의 인권이고 억울한 희생자를 막을 수 있는 장치다. 기소와 수사권 모두를 가진 검찰. 그 힘에 의해 법치주의가 지켜졌다고 하지만, 따져보면 막강한 힘으로 지켰던 건 법치주의가 아니라 검찰 권력이었다.

검찰 사랑은 이 정도로 족하다
 
저는 오늘 총장을 사직하려 합니다.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저는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습니다.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퇴하며 한 말이다. 언론에서는 '전격'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사퇴 소식을 전했지만 <국민일보>와 <중앙일보> 인터뷰, 대구 검찰청 방문 등의 행보로 본다면 사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발언의 내용 또한 공직자로서의 언행이 아닌 예비 정치인의 언어라 할 만큼 공격적이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총장의 발언을 두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탓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사퇴 과정이 아니라 정치인 윤석열으로서의 출정식 같다는 지적도 충분히 일리 있는 비유다. 임기 4개월을 남기고 사퇴한 걸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한 용단으로 치켜세울 수만은 없다.

정치인 윤석열, 아직은 낮설다. 하지만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라는 다짐이 의례적인 말은 아닐 것이다. 대선 주자로 꾸준히 거론되었고 자신도 부인한 적이 없으니, 정치인의 길을 선택한다고 해도 특별히 이상할 것 없다.
 

3일 오후 대구지방검찰청 정문 앞 도로에서 윤석열 검찰총장과 권영진 대구시장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날 권 시장은 윤 총장에게 "헌법 가치를 수호하는 윤 총장의 행보를 응원한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그러나 정치인 윤석열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검찰 사랑은 이 정도로 족하다. 검찰 출신 정치인과 검찰의 밀착은 비극이다.

국정 농단의 핵심 역할을 도맡았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전 대표. 이들 모두 검찰에서 정치인이 됐다. 정치인 윤석열의 미래가 김기춘·우병우·황교안과 같다면 이것이야말로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는 것이다. 자천 타천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윤 전 총장. 만일 그가 검찰 출신 대통령이 된다면 검찰 공화국의 화려한 부활인 셈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가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예단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예단보다 중요한 것은 검찰 개혁이다. 윤 전 총장 때문에 개혁의 수레바퀴를 세울 수는 없다. 검사 비위에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할 것이고, 술향응 접대가 사실로 드러나면 사과하겠다던 윤석열 검찰총장. 술 향응 검사들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사과하겠다는 당사자는 사과없이 사퇴했다.

국민은 여전히 술 향응을 받은 검사들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검찰은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원하는 검찰개혁, 잘못이 있으면 처벌받고, 사과할 줄 아는 검찰이 되라는 거다. 검찰은 이제 과거 검찰과 같을 수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 때의 검찰과도 달라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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