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26 13:40최종 업데이트 21.02.2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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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수산시장 농성장 노량진 농성장 간이주방에 식기도구가 달려있다. ⓒ 박김형준

 
노량진역 2번 출구 육교 위 농성장. 들어가면 제일 먼저 간이주방이 보인다. 따뜻한 밥과 국이 노량진 수산시장을 지키고자 투쟁하는 동지를 기다린다. 노량진 농성장에 가서 밥을 한 번이라도 먹어본 사람은 안다. 평소에 젓가락이 잘 가지 않던 가지볶음, 연근조림, 시금치무침 같은 반찬이 얼마나 맛있는지를.

지금은 사라진 노량진수산시장에서 20년을 일한 언니는 매일 아침 7시에 농성장으로 간다. 농성장 텐트에서 잠을 잔 사람들에게 밥을 챙겨주기 위해서다. 육교 위 농성장이 작년 여름에 차려졌고 가을부터 밥을 만들기 시작했으니 새벽같이 밥 짓기 시작한 지 반년이 됐다. 아침 7시부터 동지들이 다 같이 먹을 세 끼를 매일 짓는다. 언니는 처음 밥 지은 날을 기억했다. 2020년 10월 19일이라고 한다.


매일 밥 짓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수산시장에서 원래 강도 높게 일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때와 비교하면 밥 세 끼 짓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언니가 처음 수산시장에서 일할 때는 다른 가게 직원이었다. 배달을 하다가 주방으로 갔다. 주방에서 일하다 주방장이 됐다. 그렇게 10년을 성실하게 일했더니 사장님이 됐다. 자신의 어엿한 가게가 생겼다.

언니가 말했다. "김미경 강사님이 얘기한 적 있어요. 사장이 되려면 차근차근 처음부터, 밑바닥서부터 다 할 줄 알아야 된다구. 그 말 진짜 맞아요. 다른 가게 일을 내 가게 일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했더니 내가 가게 주인이 돼 있더라구." 가게 주인이 된 언니는 몰랐을 것이다. 10년 후 수산시장이 철거된다는 걸.

언니는 밥 짓는 게 자신의 달란트라고 했다. 동지들이 항상 힘써주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밥 짓는 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한다. "맛있게 다 잡솨 주니까. 밥 내가는 거라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언니는 아마 이 마음으로 20년간 일했을 것이다. 자신이 음식을 차려줄 수 있어서 다행이고, 손님이 맛있게 먹어주는 걸 보면 기쁜 마음 말이다. 20년 동안 식탁을 차린 장인의 손이 지금은 투쟁하는 동지들을 배불리 먹이고 있다.
 

노량진수산시장 노량진 농성장 간이주방에서 한 활동가가 밥을 푸고 있다. ⓒ 박김형준


철거민 투쟁 현장에 있다 보면 이런 마음이 든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왜 '먹고사는 일'이 허락되지 않나. 시장을 소유한 기업이 시장을 밀고 다른 건물을 짓는 부동산 개발은 너무 쉽게 허락된다. 가난한 상인이나 기업 모두에게 먹고사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상인의 먹고사는 일이 불가능해질 만큼 기업이 이윤을 추구한다면 가난한 이들은 어디서 무얼 먹고 살아야 하나.

기업이 자사의 재산을 마음대로 활용하는 건 기업의 자유라고 하면서 철거민이 더 이상 쫓겨날 수 없다, 같이 살자고 하면 떼쓴다고 한다. 먹고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하는 기본권 같은 건데 이 기본권을 기업은 너무 쉽게 누리고 철거민은 너무 쉽게 잃는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은 방역수칙을 지켜가며 수협 앞에서 집회하고 동작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집회와 시위를 끝내고 언 손을 비비며 농성장으로 돌아오면 따뜻한 밥이 기다리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도 먹고사는 일의 기쁨을 같이 누리자고 투쟁하는 이들이 밥을 짓는다. 그 밥 먹어가며 농성장에서 두 번째 겨울을 맞았다.

봄이 온다. 따뜻한 계절이 되면 농성장이 철거되고 밥 짓는 냄새도 안 나면 좋겠다. 대신 그 냄새가 투쟁하던 상인들 각자의 가게에서 나면 좋겠다. 그러면 한 상 거하게 대접받고 싶다. 맛있게 잡솨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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