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16 16:47최종 업데이트 21.02.1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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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주장으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 유튜브캡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공인된 매춘부로 규정하며 '논문'이 아니라 '망언'을 집필한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버드대에서뿐 아니라 미국 의회에서까지 '역겹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1954년에 출생한 램지어 교수는 성장기를 일본에서 보냈다. 하버드 로스쿨 홈페이지에 실린 교수 소개란에 따르면, 어린 시절 대부분을 일본 남부에서 지내다가 대학 입학을 위해 미국에 갔다고 한다. 로스쿨 입학 전에 대학원에서 일본 역사를 전공했고, 그 뒤 일본 대학 여러 곳에서 강의했다. 일본과의 인연이 매우 깊은 편이다.
 
위의 교수 소개란에 2019년 3월 13일 자 논문 '위안부와 교수(Comfort Women and the Professors)'가 소개돼 있다. 이 논문 초록의 첫 문장이 인상적이다. "서구에 있는 우리는 이상한 서사(odd narrative)를 받아들였습니다"라는 문장이다.

논문 초록 첫 문장 "우리는 이상한 서사를 받아들였습니다"
 
'이상한 서사'의 내용은 그다음 문장에 나온다. "1930년대 및 1940년대 일본군이 거의 20만의 한국 10대 소녀들을 위안소(comfort station)로 불리는 강간 수용소(rape camp)에 강제적으로 동원했다고 우리가 쓴다는 점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10대 소녀 20만'이라는 표현은 한국인들이 아니라 램지어 자신이 과장해서 사용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는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이상한 서사'로 받아들인다. 그는 이 같은 강제동원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위안부 여성 중에서 단지 소수만이 강제 모집됐다고 주장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자신이 강제로 끌려갔다고 증언하는 여성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였다고 밝히는 것이 어느 사회에서건 모험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한 주장이다.
 
램지어는 "강제적인 군대 동원이라는 이야기는 정말로 사실이 아니다"라며 "믿기 어렵고 문서상의 증거가 없다"라고 말한다. 위안부들의 강제 군대 동원을 입증할 '문서상의 증거'를 요구하는 것이다. "사실, 어느 누구도 일본군이 한국 여성들을 위안소로 강제 동원했다는 문서상의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고노 다로 행정개혁담당 대신의 아버지인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내각 대변인)이 1993년 8월 4일에 발표한 '고노 담화'는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미 관여했다"라고 말한다.
 
이 담화는 아베 신조 내각은 물론이고 스가 요시히데 내각도 공식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자민당 정권인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이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어쩔 수 없이 시인한 일을 램지어가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자민당도 인정한 사실이건만
 

1993년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일본 관방장관이 16일 와세다대 한국학연구소 개설기념 심포지엄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고노 전 장관은 "한일관계를 잘 풀어가지 못하면 경제적 손실이 있고 한일관계가 안보에 중요하다는 시점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라고 강조했다. 2013.12.16 ⓒ 연합뉴스

 
현지 시각으로 지난 4일 하버드대학의 한국·중국 및 아시아계 학생들은 램지어 교수에 대한 규탄 성명에서 "램지어 교수가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은 논문의 참고문헌만 봐도 알 수 있다"라며 "한국의 관점과 학계 저작을 연구에서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또 "유엔과 국제앰네스티 등 국제기구의 폭넓은 학문 자료 역시 무시한다"라고 비판했다.
 
<국제 법경제학지(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 3월호에 실릴 논문인 '태평양전쟁에서의 성매매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논문은 위안부의 실제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램지어는 이 논문에서 위안부는 통상적인 계약기간보다 짧은 1, 2년의 단기 계약을 체결하고 고액의 선급금을 받았으며 만기 전에라도 계약관계에서 이탈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계약이 위안부 여성의 인생을 불리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계약 이행의 안전장치로서 위안부에게 유리한 조건들이 규정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위안부들이 고액을 받았다는 주장부터가 그렇다. 이는 그들의 수입이 장부상의 숫자에 불과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이영훈 교수가 위안부들이 큰돈을 벌었다며 <반일 종족주의>에서 언급한 문옥주의 사례에서도 이 점이 잘 증명된다.
 
<반일 종족주의>에서 이영훈은 문옥주가 1943년 8월부터 1945년 9월까지 2만 6651엔을 벌었다고 주장한다. 1943년 당시 일본군 육군 중장의 연봉이 5800엔이었으므로, 문옥주가 불과 2년 만에 4년 치 중장 연봉을 받았다는 말이 된다. 일본군 장군보다 일본군 성노예가 2배 이상의 소득을 올렸다는 말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1992년 5월 13일 자 <한겨레>에 인용된 <교도통신> 보도에 나타난 것처럼, 문옥주의 수입은 장부상으로만 존재했다. 본인에게는 지급되지 않았던 것이다. 2016년 5월 17일 자 <연합뉴스> 기사 '위안부 피해자 고 문옥주 증언, 기록 일치'에 보도된 바와 같이, 1996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문옥주는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본인이 1992년 5월 11일 일본에까지 가서 돈을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돌려주지 않았다.
 
위안부들이 실제로는 돈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처럼 1990년대 초반부터 언론에 보도됐다. 램지어는 이런 기본적인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고 논문을 썼다.
 
위안부를 모독했다거나 위안부의 상처를 헤아리지 않았다는 점 못지않은 문제점은, 글을 쓰기 전에 기본적인 사실 검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안부가 성 착취를 당했다는 목소리가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상황에서 이런 목소리를 내는 쪽이 어떤 증거를 제시하는지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 극우파의 주장만을 근거로 논문을 구성했다는 점은 그가 이 문제에 관해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램지어를 비호하는 한국인들 
 

유튜브 채널 이승만TV에 출연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 이승만TV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그런 램지어를 비호하는 사람들이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램지어의 논문이 실릴 학회와 램지어를 비판하는 미국 학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램지어 일병 구하기'를 벌이는 이영훈·류석춘·정규재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미국인들에게 똑같은 메일을 보내 '외부인은 논할 자격이 없다'라는 주장을 폈다. 제3자는 빠지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의 메일을 받은 미국 학자들은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이 운영하는 <이승만 TV>에서 주익종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는 램지어의 논문이 역사학 논문이 아니라 법학·경제학 논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원래 역사 논문이 아닌데 거기에 대해서 경험적으로 역사적으로 결함을 갖고 있다 이렇게 비난을 하면 안 되겠죠"라고 말한다.
 
역사에 관한 논문이지만 역사학자의 논문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주자는 주장이다. 사실관계 분석이 가장 중시되는 역사학 논문을 쓸 여건이 되지 않으면 처음부터 이런 민감한 논문을 쓰지 말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다.
 
주익종의 발언에서도 나타나듯이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조차도 램지어의 논문이 역사학 논문으로서 충분치 않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외부인은 논할 자격이 없다'라며 미국 학자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에서는 외부인도 있을 수 없고 제3자도 있을 수 없다. 1980년 5·18 학살이 광주시민과 전두환만의 문제가 아니고 나치 대학살이 유대인과 히틀러만의 문제가 아니듯이, 위안부 성 착취 역시 위안부만의 문제도 아니고 남북한과 중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 사안이 개인 차원에서 벌어진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차원에서 벌어진 문제라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저 멀리 미국과 유럽에서까지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지는 것은 세계인들이 이를 자기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대하는 세계인들은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할 뿐 아니라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런 일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것을 남의 일로 생각했다면, 일본 정부와 기업의 방해를 무릅쓰면서까지 자기 마을에 소녀상을 세우는 데 힘을 보태지 않았을 것이다.
 
램지어를 비판하는 미국인들에게 '제3자는 빠지라'는 식의 메일을 보내는 것은 이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위안부 성 착취가 인류공동체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사안이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의 일본 경험과 학문세계에 갇혀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엉뚱한 혹은 엄청난 논문을 내놓은 램지어 교수도 문제지만, 이 사안이 전 인류적 문제임을 간과하고 램지어를 옹호하고 나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도 문제다. 램지어와 그들의 모습에서 '망발'이라는 글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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