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2 07:53최종 업데이트 21.01.2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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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AP=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제46대 미국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새 단장을 마친 백악관 집무실. 재단장된 백악관 집무실에서는 인종주의자로 평가를 받는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의 초상화 등 '트럼피즘' 상징물들이 제거되고 노동 운동가 세사르 차베스의 흉상 등 노동·인권운동 아이콘들이 새로 설치됐다. ⓒ 연합뉴스

 
파란과 곡절을 뒤로 하고 미국의 제 46대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공식 취임했다. 미국의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지만 그의 집무실에 놓인 '결단의 책상'(Resolute Desk: 미국 대통령 집무용 책상) 위로 당분간 결단이 쉽지 않은 서류들이 줄지어 올라올 것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은 이 결단의 책상 앞에 처음 앉을 때, 서류보다 먼저 읽게 되는 글이 하나 있다. 바로 전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백악관을 나설 때 자신의 후임을 위해 적어놓은 덕담이다. 오래 전부터 이어진 오벌 오피스(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의 전통으로 전임 대통령은 이 글을 책상 서랍 속에 남기고 떠난다.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후임 트럼프 대통령에게 글을 남겼고, 이에 감동한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는 일화도 미국 언론에 소개된 바 있다. 비록 통화 연결은 안 됐지만 정파를 초월한 국가 최고 통치자들의 연대감을 보여주는 예다.

그 외에도 대통령 또는 국가와 관련한 중요한 행사 때면 가능한 모든 전임 대통령들이 한자리에 모여 현직 대통령을 좌우로 둘러싸고 우애를 과시하곤 한다. 국가 현안과 관련한 해법을 놓고 정파 간 치열한 대립을 하지만 그 분열은 국가의 안녕과 이익을 위한 제도적 역할일 뿐, 궁극적 목표와 지향점은 하나로 수렴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민주주의 원리를 구체적 행위로 보여주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적어도 20세기 말까지는 그러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가 가장 잘 작동하는 나라가 미국이었다. 국민 여론도 시대 상황에 따라 특정 정파의 해법에 지지를 보냈고, 시대 상황이 바뀌면 얼마든지 정반대의 여론이 표심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정당정치는 그렇게 작동을 했고, 국가가 운영됐다. 그 결과에는 지역 구도도 없었으며 나이·성별·출신·계급 등도 크게 작용하지 않았다.
 

(워싱턴 AFP/Getty=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선서를 마치고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답이 정해진 투표

하지만 최근 20여 년 사이 미국 사회는 이러한 범례적 민주주의의 원리가 근본에서부터 서서히 균열해가고 있다. 이 징후를 빨리 눈치 챈 현명한 정치지도자들은 국민들을 향해 단합을 호소하기 시작했지만, 국민들 사이에 이데올로기 양극화 현상은 점점 심화하고 있다. 결국 특정 정파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 양상이 점점 굳어져 가는 양상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양극화 현상은 '묻지 마 투표'로 이어지고 특히 대통령 선거의 경우 일부 경합주(Swing State)를 제외하고 선거 전부터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조금 과하게 표현하면 사실상 '답정투'(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투표)가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피해는 다시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자신들의 정치적 표현이 선거를 통해 결과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미국 사회의 균열과 반목이 최정점에 달한 것이 지난해 말 있었던 대통령 선거였다. 이 상황에서는 모든 정치적 판단이나 심지어 사법적 행위들마저 정파 논리로 이해되며 민주적 절차도, 위법행위도, 그 외 모든 것들도 정파적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끝없는 음모론이 이어지고 합리적 판단이 있어야 할 곳에 맹목적 확신이 점점 자리를 꿰찬다. 

그 결과가 현재 우리가 보는 미국의 모습이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진실 추구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승리를 원한다. 그러한 열망은 자기 확신으로 이어져 자신의 판단은 다원적 사회의 한 의견이 아닌 유일한 진리로 둔갑한다. 반대로 상대의 판단은 역시 다원적 사회의 한 견해가 아닌 거짓으로 낙인 찍혀 배격할 대상이 된다. 

지난 6일 미국 연방 의사당을 점거한 트럼프 열성 지지자들이 들고 있던 한 슬로건에서 이러한 반지성주의, 반다원주의 현상이 명확히 드러난다.

'나의 대통령은 트럼프다.'

'나의 대통령은 트럼프'라는 이유가 다원주의의 심장인 의사당을 점거한 행위를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그들은 좌표를 잘못 찍었다. 차라리 트럼프를 위한 신전을 만들었더라면 그들의 생각과 행위에 모순은 없었을 것이다.

미 역사상 초유의 일
 

(워싱턴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와 함께 백악관의 북측 현관인 노스 포티코에 도착해 계단을 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1월 20일(현지 시각) 미국 대통령 취임식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열렸다.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할 대통령 취임식이 무장한 군인들에 의해 통제되고, 떠나는 대통령이 들어오는 대통령을 영접하고 축하하는 전통도 150여 년 만에 깨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끝내 자신의 후임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떠나는 대통령은 취임식과 별도로 셀프 환송식을 했다. 이것도 미국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데도 그렇게 했고, 그럴 수 있는 동기가 자신에게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 그에 대한 맹목적 지지자들의 비합리적 정파 논리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끝없는 기행이 가능했다.

떠나는 대통령 트럼프의 마지막 고별사에도 선거 결과에 대한 인정은 없었다. 차기 행정부에 대한 기원에도 새 대통령의 이름은 한 번도 언급이 안 됐다. 그나마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사용하던 결단의 책상을 물려받을 바이든 대통령을 위해 서랍 속에 글은 남겼다고 한다. 

전임과 후임 대통령 간에 이어지는 연대와 연속성이 서랍 속 편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대통령의 권한을 상징하는 물건 중 하나가 이른바 '핵 가방'이다. 물론 핵 가방 안에 실제 핵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핵무기 사용에 대한 최종 결정권이 있는 미국 대통령은 핵무기를 원격 작동할 장치를 가방에 넣어 늘 자신의 지근거리에 둔다.

언제 어디서든 핵무기 사용에 대한 최종 판단을 하고 사용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의 상징이 핵 가방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핵 가방을 인계하는 것이 대통령 권한을 인계하는 상징적 행위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손편지가 두 대통령 간의 개인적 공감대를 상징한다면, 핵 가방은 대통령 권한의 공식적 인계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퇴임을 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핵 가방마저 인계를 거부했다. 심지어 퇴임과 함께 가지고 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핵 가방은 대통령 권한을 가지고 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일 뿐 코드를 바꾸면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안보 차원의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을 위한 핵 가방은 별도로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징적 행위로서의 대통령 인계를 끝까지 거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집은 여기서도 잘 드러난다. 앞서 말했듯 그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 혼자의 책임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트럼프를 둘러싼 집단적 광기가 이 트럼프주의를 만들었으며 그 중심에 트럼프가 있을 뿐 트럼프의 퇴임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병사가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대기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탑승한 '마린 원' 헬리콥터 쪽으로 '핵가방'을 들고 가고 있다. 2017.2.3 ⓒ 연합뉴스

 
바이든이 절대 미뤄서는 안 될 것

바이든 대통령 시대가 열렸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여전히 잠재적 힘을 가지고 있다. 미국 국민의 상당수가 여전히 트럼프를 자신의 지도자로 생각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과 별개의 정당을 만들 가능성도 농후하다. '애국당'이라는 구체적 이름까지 등장한다. 물론 구체적 행보가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 그 신생 정당이 무엇을 추구할지, 어떤 정치적 지향점을 가지고 있을지, 어떤 방법으로 국가경영을 추구할지 알 수 없다. 그런 신생 정당이 실제 만들어질지도 아직은 불분명하다.

다만 트럼프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신생 정당 탄생의 조건은 충분하며 다음 달에 창당이 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렇게 되면 민주-공화 양당 체제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정치가 근본 변화를 겪을 가능성도 있다.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다당제가 나쁠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더 민주주의 원리에 가까울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구체화 되는 정치세력이 추구하는 것이 적어도 지금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보여준 방법론적, 지향적 통치방식을 재현하는 것이라면 미국을 위해서도,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방국들을 위해서도, 지구촌 모든 나라들을 위해서도 환영해주고 싶은 일은 아니다.

앞으로 결단의 책상 위로 올라올 서류들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이 절대 미뤄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지금의 미국을 만든, 그 미국을 모델 삼아 새로운 체제를 설계해온 후발 민주주의 국가들이 신뢰하는 사회 구성의 원리를 재건하고 복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반드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구대륙의 귀족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이 이해한 미국의 민주주의,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Dvořák, Antonín)가 처음 미국 땅을 밟고 느꼈을 전율의 신세계, 그들이 본 것은 과거의 미국이 아닌 미래의 미국이었다. 최근까지 미국은 나머지 세계에 인류의 미래를 보여줘 왔다.
 

(웨스트팜비치 AP=연합뉴스) 퇴임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비치에 있는 팜비치 국제공항에 도착해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내리고 있다. 이곳에는 이들이 거주할 개인소유 마러라고 리조트가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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