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2 08:13최종 업데이트 21.01.22 08:13
  • 본문듣기
 

수술을 거부하고 자연치유를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지날 무렵, 아무것도 먹지 못할 정도로 고양이 발톱 같은 날카로운 것이 위장을 박박 긁어댔습니다. ⓒ 송성영

 
"아이구 속 쓰려. 왜 그러지? 갑자기 속이 쓰리기 시작하네."
"아빠 괜찮아? 많이 아퍼?"
"아니 그냥 속이 좀... 이러다 말겠지. 걱정하지 마라."


수술을 거부하고 자연치유를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두 아들(이후 두 행자로 표기)이 걱정할까봐 괜찮다 괜찮다 했지만 아무것도 먹지 못할 정도로 고양이 발톱 같은 날카로운 것이 위장을 박박 긁어댔습니다.


좋은 먹을거리만 골라 먹고 신선 체조나 다름없는 기혈운동과 명상을 해가며 암과 함께 신선놀음을 하고 있다는 둥 오만방자 건방을 떨어가며 주변 사람들에게 두 아들의 보살핌으로 잘 살고 있다고 떠벌여대고 있었지만, 어디 암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만만한 일이겠습니까?

간혹 속 쓰림이 은근슬쩍 기어 나올 때마다 따듯한 물을 마시거나 생감자를 갈아 마시면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 두 가지 방법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암환자, 그것도 위암 환자의 속이 멀쩡했던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으니 내심 올 것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위암 3기에 수술하지 않으면 1년밖에 살 수 없다는 암 산업의 통계치와 더불어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 한다'라는 프랑스의 어느 시인의 시구를 떠올리며 그럼에도 살아야 할 방도를 모색했습니다. 모든 결과는 원인이 있기 마련, 멀쩡하던 뱃속이 왜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키는지 그 원인을 추적해 나갔습니다.

늘 먹어 왔던 음식들이기에 적어도 먹을거리가 속 쓰림의 원인을 제공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속 쓰림이 오기 며칠 전부터 게으름을 피웠던 것입니다. 밥을 먹고 나면 꼬박꼬박 산책을 나섰는데 한두 차례 빠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걸음걸이며 몸동작, 호흡 하나 하나에 심혈을 기울였던 기혈운동이며 명상 또한 대충 대충 넘어갔습니다. 그리 했는데도 별 이상이 없자 그 며칠 전에는 스스로 몸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겠노라며 눈자위에 다크서클이 선명하도록 어리석게도 밤새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자만심으로 가랑비에 속옷 젖듯 대충 대충 했던 예전의 그 오만하고 게으른 습이 몸과 마음을 야금야금 갉아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암환자답지 않게 3개월 가까이 별 이상이 없자 꾸준히 먹어왔던 한약을 믿고 게으름을 피웠던 것입니다. 사사건건 몸 관리에 시비를 걸어오던 두 행자 역시 마찬가지로 늘어졌습니다.

몸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 한약을 복용하면서 체중이 10킬로그램 이상 빠졌음에도 지 애비가 아프기 이전보다 몸이 훨씬 가벼워지고 어지간한 지게질에도 끄떡없는 저력을 발휘하자 긴장의 끈을 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겨울 쇠젓가락이 손가락에 쩍쩍 달라붙을 정도의 추위에 노출된 낡고 허름한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두행자. ⓒ 송성영

 
늘어짐과 함께 찾아온 고통

속 쓰림과 함께 한약을 복용할 때마다 소변보기가 겁날 정도로 오줌줄기가 막힌 듯 무척 힘들었습니다. 하여 3개월 가까이 복용했던 한약도 잠시 끊어 보았습니다. 한약을 멈추자 오줌 줄기는 시원하게 뚫렸는데 속 쓰림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사나흘 지속되었습니다.

진통제의 유혹을 이겨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 기혈운동 명상 식이요법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마음자리를 다져 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점점 예민해져 두 행자와 전에 없던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니들 요즘 너무 늦게 일어나는 거 아녀? 일찍 좀 일어나자. 몇 번이나 말해야 하냐."
"밤늦게 노래 만들었구먼."
"노래는 무슨. 요즘은 매일 컴퓨터 게임만 하더구먼."
"요 며칠 그러긴 했지. 머리 식히려고."
"핑계도 좋다."
   
 

한 평 반짜리 작은 골방에서 가내수공업으로 노래를 만드는 두 행자. ⓒ 송성영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두 행자. 이전에는 늦은 밤까지 노래를 만들거나 연주를 했는데 지 애비와 함께 축축 늘어지고 있었습니다. 밤늦게까지 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밤늦게까지 컴퓨터 게임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내면에 숨겨져 있던 습관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와 마찰을 빚기 시작했고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서다 보니 두 행자에게 사소한 일에도 화를 냈습니다.

"야! 아궁이 안에 장작을 그렇게 쌓아 놓지 말라고 했지! 그렇게 하면 불이 잘 안 붙는다고 했잖아, 이 자식들! 몇 번이나 말해야 되냐. 내가 말하면 건성으로 듣지."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녀 이눔들아. 아빠가 얘기하면 제발 좀 새겨들어라. 내가 뭐라고 했냐. 행자 생활 하듯 하라고 했잖아. 행자는 그냥 묵묵히 하라는 대로만 하믄 되는 겨. 뭔 말이 그렇게 많어? 하라면 하지. 그러고 니들 일찍 일어나겠다고 약속 해놓고 왜 이렇게 늦게 일어나는 겨? 다시 예전대로 돌아가는 겨?"

"아빠, 너무 예민해지신 거 아녀?"
"이눔 자식들이 지금 니들 얘기하잖어! 자꾸만 화나게 만들겨?"


두 행자 몰아붙이기

그렇게 암환자 주변의 가족들이 힘들어 한다는 말을 스스로 실감할 정도로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며 죄 없는 두 행자를 쥐 잡듯이 몰아붙이곤 했던 것입니다. 보통 화를 내면 내 자신이 견딜 수 없어 한두 시간이면 그 화 기운을 제어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화 기운이 반나절 이상 지속되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속에 있는 불만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부자지간에 서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지 애비의 화 기운을 피해 잠시 숲 속 텐트에서 지내던 두 행자가 돌아와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가 잘못했어."
"그려 알았다. 아빠 몸이 예민해져서 그러니까 니들이 이해해라. 그리고 니들 아빠한티 불만 있으면 어떤 불만이든 얘기 해 봐라."

 

병문안 온 분들의 물심양면 도움으로 돈벌이 없이 2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하여 뭔가 보답이라고 하고 싶어 시작한 두 행자의 표고버섯 종균넣기. ⓒ 송성영

 
잠시 머뭇거리다가 큰 행자부터 입을 열었습니다.

"... 어려서부터 아빠가 나한테 약은 놈이라고 할 때 마음이 안 좋았어."
"인효 너한티 그런 거 나도 후회하고 있다. 사실은 너한테 약은 놈이라고 한 것은 사람들 앞에서 지 자식 똑똑하다고 하기가 민망해서 그런 겨. 너 머리 좋잖아. 우리 삼행자 중에 젤 좋잖아. 그래서 그런 겨.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하지 말아야 했다. 그건 아빠가 잘못했다."

"이제 그런 말 안 했으면 좋겠어."
"그려 그러마. 혹시 입버릇처럼 약은 놈이라고 해도 이해해라. 근디 너 동생한티는 좀 그랬잖아."
"인상이한티는 좀 약게 굴긴 했지. 그건 내가 잘못했다. 인상아 미안하다."


작은 행자 송인상 또한 큰 행자 송인효처럼 어려서부터 아빠에 대한 불만이 있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평소 말수가 별로 없는 녀석이었기에 내가 그 불만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그 이유를 설명해 줘야 했습니다.

"인상이 너는 어려서부터 생각이 없는 놈이라고 그랬는데 그게 맘에 많이 걸렸다. 너도 그 말이 내키지 않았지?"
"그런 거 같네. 아빠가 늘 생각 없이 착한 놈이라고 해서 그게 힘들었어. 부담이 컸어."

"그래 그랬을 것이다. 생각 없는 놈이라고 한 것은 그만큼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 얘기를 토 달지 않고 다 받아 주는 착한 녀석이라는 사실을 다른 말로 표현했던 거다. 똑똑한 형아 한티 약은 놈이라고 했듯이..."
"근데 나는 아빠가 생각하는 만큼 착하지 않았어. 그게 부담이 컸어."

"너 어렸을 때 너를 때리고 괴롭혔던 녀석과 아빠가 맞서 싸우라 격투기를 가르쳐 줬을 때 그 친구가 울까봐 때리지 못하겠다고 할 정도로 착했던 건 사실이잖아? 암튼 생각 없이 착한 놈이라고 부담 준 거 아빠가 잘못했다."

 

종종 탁발 공연을 다니기도 합니다. 지난 여름 지리산 화엄사 찻집에서 노래하는 두 행자. ⓒ 송성영

 
작은 행자는 어려서 지 애비에게 가장 컸던 불만이 따로 있었습니다. 사진 찍기 싫은데 아빠가 자꾸만 찍어대 사진기를 밀치는 과정에서 거울이 깨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빠가 자신 때문에 그 거울이 깨졌다고 심하게 혼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아빠하고 대화를 하기 싫어졌다고 합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큰 행자가 한마디 합니다.

"야! 그런 일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았다면 넌 행복한 거다. 다른 친구들 한티 물어봐라, 그게 가장 큰 불만이었다고 말하면 뭐라고 대답하는지."
"그래도 어쨌든 아빠가 잘못했다. 인상아! 거울 옆에 놓고 사진 한 번 더 찍어 볼래? 어뗘?"
"그럴까?"
"나도 니들 한티 불만 있다. 제발 좀 일찍 일어나자 새끼들아!"


아빠 대신 암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기도한 큰 행자

그렇게 서로의 불만을 털어 놓고 하하하 웃어 젖혔습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큰 행자가 갑자기 울먹거리며 말했습니다.

"아빠가 아픈 게 다 내 잘못 같아서..."
"그건 또 뭔 소리여?"
"내가 엄마 뱃속에 생기는 바람에 결혼했잖어. 내가 생기지 않았다면 암도 걸리지 않고 수행자로 자유롭게 살았을 건디......"
"그건 절대 아녀......."
"아빠 대신 내가 암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어......"


녀석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나 또한 감정이 복 받쳐 올라 말문이 열리지 않았지만 녀석에게 뭔가 말을 해 줘야 했습니다.

"이 눔 자식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겨. 절대로 그런 생각 하면... 안 된다... 너는 이 세상에 필연적으로 태어난 거여. 엄마 아빠가 선택해서 태어난 거잖어. 그래서 니 동생 인상이도 태어날 수 있었고....... 너 그런 생각하면 아빠 몸이 더 안 좋아진다. 절대로... 그런 생각하지 말어......"
 

평소 지 애비가 일구던 텃밭 일을 마치고 흡족해 하는 두 행자. ⓒ 송성영

 
목울대가 떨려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녀석이 그렇게까지 생각 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가슴이 너무나 아파 왔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참 행복한 놈이었습니다. 이 모든 게 암 때문이었습니다. 암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삼부자가 서로의 깊은 속마음을 툴툴 털어 놓을 수 있었겠습니까.

삼부자가 눈물 콧물 쏟아 가며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그날 이후 심기일전,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고 늘어진 몸을 일으켜 세워 기혈운동과 명상 식이요법을 철저히 지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몸의 균형을 잃게 되면 스트레스와 더불어 속 쓰림이 동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행자가 지 애비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 봤으면 좋겠습니다. 지 애비에게 마음을 쓰듯, 지 애비가 자신들에게 사랑을 베풀 듯이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사랑과 자비를 베풀게 되면 그 행복이 바로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니까요.

그날 두 행자에게 하지 못한 말을 이 글을 통해 덧붙입니다.
 

두 행자가 지 애비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 봤으면 좋겠습니다. 지 애비에게 마음을 쓰듯, 지 애비가 자신들에게 사랑을 베풀 듯이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사랑과 자비를 베풀게 되면 그 행복이 바로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니까요. ⓒ 송성영

 
"만약 엄마와 인연이 닿지 않아 평생 수행자로 살았다 해도 아빠는 지금처럼 암에 걸려 있을 것이다. 아빠가 암에 걸린 것은 그 누구 때문이 아니라 다 내 탓이다. 전생부터, 살아오면서 굳어진 내 오랜 악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만약 니들이 없었다면 벌써 히말라야 동굴에서 수행하다 객사 했거나 암에 걸려 죽었을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니들을 통해 지금처럼 행복을 누리지도 못하고."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90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