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1 18:13최종 업데이트 20.12.2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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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4일 영국은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다. 1993년 탄생한 유럽연합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였던 영국은 이로써 한때 운명을 같이한 유럽연합 국가들과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로부터 4년 반이 지난 지금, 여전히 브렉시트는 신문 방송에 쉬지 않고 오르내린다. '영국이 아직도 안 나갔나?' 분명 영국은 지난 1월 31일부로 유럽연합을 공식적으로 떠났다. 하지만 브렉시트가 여전히 신문 방송을 못 떠나는 이유는 유럽연합과 영국 사이에 협상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양측 간 타결이 이뤄져야 하지만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양측 간 협의된 내용 없이 결별하는 이른바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무엇이 남았고 왜 협상이 이처럼 어려울까? 결별은 했지만 양측의 미래관계를 위한 이번 협상이 무산된다면 양측 모두에게 손실이 너무 크다. 그럼에도 양측이 서로를 향해 브레이크 없는 돌진을 하는 이유도 분명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오른쪽)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EU 본부에서 보리스 존슨(왼쪽) 영국 총리와 만나고 있다. ⓒ 연합뉴스

 
영국 아직도 안 나갔나?

유럽연합은 인류가 지향하는 이상 국가를 향해 한발씩 다가서는 중간 단계에서 만들어진 새롭고 과감한 정치 체제다. 과거 제국의 이름으로, 또 민족국가(Nation)의 이름으로 세계를 파괴하고 스스로까지 파괴했던 유럽이 경쟁이 아닌 공존에 근거한 새 정치 모델을 고안해 출범시킨 것이 유럽연합이다.


경제에 이어 앞으로 외교, 국방까지 포함한 하드웨어를 국가보다 큰 단위로 이양하고, 언어, 예술, 문화 등 소프트웨어 분야는 더욱 분화해 다양성과 지역화를 지향한다. 더 거시적으로, 더 미시적으로, 두 방향으로 기존 국가 단위를 해체해 나가는 것이 유럽연합의 요체다.

민족국가 단위의 인위적 국경선들이 만들어져 민중들 특히 소수민족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산산이 갈라놓은 것은 인류 역사에서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국가 간 분쟁은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땅을 갈라놓은 국경선에서 기인하고 있다.

전 세계 상당 부분의 국경분쟁에 책임이 있는 유럽인들은 그래서 국경선이 만들어내는 부조리를 누구보다 잘 안다. 유럽연합이란 다름 아닌 가능한 많은 국가 간에 필연적이고 공통적인 최소의 정체성을 매개로 최대한의 틀 안에서 최대한의 다양성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유럽인들은 지구촌 어느 지역보다 가장 앞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거대한 정치적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위험들이 따른다. 하지만 그 위험들은 인류를 위해 감수할 가치가 충분한 위험들이다.

이러한 가보지 않은 길 앞에서 한편의 유럽인들은 두려움도, 거부감도 나타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특히 쉽지 않은 난제들이 나타나면 저항은 배가된다. 회원국 간에 피할 수 없는 경제의 불균등한 성장, 지역 간 실업률 편차, 난민 처리 문제에 대한 책임 소재, 세기적 대유행 앞에 선 각국의 시급한 국민보건 위기 등 유럽이 당면한 도전 과제는 산적해 있다.

하지만 이런 이슈들에 순발력 있게 총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관리장치(Governance)를 유럽연합은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유럽연합 핵심부와 회원국 정부는 각종 위기에 대한 대응 이상으로 회원국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을 잠재워야 할 힘겨운 과제도 함께 떠안고 있다. 무엇보다 유럽연합의 성장이 개별 회원국의 주권에 대한 침해로 여겨지는 인식에 대한 대응이 가장 급선무다.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 본부 ⓒ 연합뉴스

 
제로섬 게임

유럽연합은 과연 옳은 길이었는가, 옳은 길이었다면 준비 과정은 충분했는가, 출범 시기는 적절했는가, 이후 맞닿은 모든 난제들은 예상한 범위 안의 것들이었는가. 유럽연합의 설계자들과 책임자들에게는 이러한 질문들이 끝없이 던져지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나왔다. 브렉시트가 대륙의 회원국들에게 더 아팠던 것은 유럽연합에 대한 근본적 회의론이 영국뿐 아니라 자국 국민들 사이에서도 일정 부분 계속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회의론(Euroscepticism)에 맞서는 회원국 정부에게 영국의 이탈은 그런 의미에서 국제관계 문제일 뿐 아니라 국내 정치 차원의 큰 이슈로도 떠올랐다.

영국과 브렉시트 협상에 나서는 유럽연합 대표부와 각 회원국 정부는 이런 맥락 하에서 묘한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단지 국제관계 원리 차원이라면 유럽연합과 영국 사이의 상생전략이 나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영국과의 협상 내용은 속속 국내 유럽회의론자들에게 전해진다. 영국이 조금이라도 유리한 협상결과를 가져간다면 국내 유럽회의론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브렉시트가 결과적으로 영국 국민들의 훌륭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평가되는 순간부터 유럽연합의 미래는 어두워진다. 이 얼마나 얄궂은 운명인가. 유럽연합은 영국과 윈윈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인들의 유전자

영국은 어떤가? 영국 내부에서 벌어지는 친유럽 진영과 반유럽 진영 간의 대결구도는 유럽 대륙과 비교할 때 훨씬 심각하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듯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캠페인 당시 친유럽 진영의 한 국회의원이 암살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놓고 벌어진 영국의 분열상은 전례가 없었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영국은 유럽연합을 떠났다. 1992년 2월 7일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서명하고 1993년 1월 1일 유럽연합을 탄생시킨 지 23년 반만의 일이다. 그리고 '유럽의 수호자' 윈스턴 처칠이 자신의 구상을 담은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을 말한 지 70년 만의 일이다.

유럽을 놓고 분열하는 영국인들은 분명 그들의 문화적 유전자에 상반된 두 개의 정체성이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처칠 총리를 만들어낸 적극적 유럽인으로서의 정체성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처칠보다 70여 년 앞서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와 같은 '화려한 솔로'를 즐기는 정체성이다.

처칠보다 태생도 정확히 70년 앞선 디즈레일리는 젊은 정치인 시절부터 영국 시장의 개방보다 자국 상품 보호를 위한 보호무역을 주장했다. 경제사에서 흔히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간의 첫 대결 사례로 거론되는 영국 곡물법 폐지 논쟁 당시 보호무역을 주장하던 측의 대표 인물이 바로 디즈레일리다. 요즈음 표현으로 하자면 그는 글로벌리즘에 저항하는 내셔널리스트였던 셈이다. 그 기조로 총리가 된 후 디즈레일리는 영국의 그 유명한 '화려한 고립(Splendid Isolation)' 노선을 이끌었다.

그리고 70년 후 윈스턴 처칠 총리는 2차 대전에서 나치로부터 유럽을 지켜낸 유럽의 수호자로 불리며 전쟁 직후인 194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유명한 연설을 남긴다. "우리는 평화와 안전, 자유 속에 살기 위해 유럽합중국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리고 5년 후 2차 대전의 적국이었던 독일과 프랑스는 손을 잡고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탄생시킨다. 유럽연합(EU)의 전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처칠의 연설 후 다시 70년이 흐른 2016년, 이번에는 영국 국민들이 유럽연합 탈퇴를 선언했다. 묘한 70주기 순환이 또 다시 반복된 것. 유럽대륙을 대하는 영국인들의 복잡한 속내는 그들의 역사를 관통해 흐르고 있다. 그리고 이제 열흘 남짓 후면 어떤 결과로든 이들의 유럽연합과의 관계는 매듭을 짓게 된다. 그리고 영국의 현 정권은 반드시 브렉시트가 영국을 위해 좋은 결정이었다고 역사에 기록하고 싶어 한다.
 

2019년 10월, 국회의사당 주변에 모인 수많은 시민들이 각자 준비해 온 피켓 등으로 보리스 존슨 정부의 브렉시트 합의안을 반대하고 있다 ⓒ 김종철

 
남은 시간은 열흘 남짓... 누가 웃게 될까

이러한 양보 없는 싸움에도 불구하고 올해 안에는 어떻게든 결정이 나와야 한다. 남은 과제 가운데 특히 주요 사항은 어업문제. 대륙과 섬의 필연적 운명이다.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의 영해를 한꺼번에 묶어 공동어업을 위한 정책(CFP)를 시행하고 있다. 공동 수역 내에서 회원 국가별 어획량을 정해놓은 것.

그런데 영국이 빠져나감으로 인해 상황이 복잡해졌다. 영국은 자국의 영해에 선을 그어 유럽연합 회원국의 어선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영국의 주권을 되찾겠다는 상징적 행위다. 군함까지 출동시켜 자국 영해를 보호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영국 영해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유럽연합 국가의 어민들에게는 비상상황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이런 상황을 유럽연합이 인정해줄 리 만무하다. 탈퇴자가 챙길 것 다 챙겨 나가면 회원 관리가 안 되는 것은 상식. 유럽연합 입장에서는 그렇게 되면 영국 어업이 누려온 무관세 어패류 수출을 제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면 반대로 영국 입장에서는 어업의 큰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사서 고생'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인 듯하다. 유럽연합과 영국은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그것도 며칠이면 결정이 난다. 과연 유럽인들은 2021년 아침을 서로 상처만 남기게 될 '노딜 브렉시트'와 함께 맞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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