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 14:15최종 업데이트 20.10.0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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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 ⓒ SM엔터테인먼트

 
2019년 10월 14일 오후 5시쯤, 뉴스 속보가 왔다. 사랑하는 나의 스타, 설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질렀다.

다음 날 오전, 여성 친구 두 명과 내가 있는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사랑한다"라고. 친구들도 사랑한다고 말했다. 1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괜찮냐는 안부를 그렇게 물은 것 같다.

설리의 팬인 우리들은 충격적인 소식 앞에서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친구들과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하지만 설리에 관해 한 자도 쓸 수 없었다. 

세상은 설리가 떠나자마자 시끄러워졌다. 악플러 탓이라느니, 언론 탓이라느니, 페미 탓이라느니, 남자 탓이라느니 하는 말로 고인을 '죽인' '범인'을 지목하기 바빴다. 

잠시라도 성찰하기는커녕 그저 선명하게 말하고자 애쓰는 인간들의 헛짓거리에 한 자도 보태고 싶지 않았다. 섣부른 원인 분석, 섣부른 판단, 섣부른 위로가 전부 꼴보기 싫었다.

수많은 여성에게 용기가 되어준 설리

나에게는 설리의 죽음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살면서 직면한 것들, 그가 한 말들, 그가 쓴 노래의 가사들, 그가 해온 것들을 천천히 들여다 보면서 이젠 설리가 세상에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 이후엔 나를 돌봐야 했다. 죽음을 생각하고 시도했던 20대를 지나 여전히 쉽지 만은 않은 30대를 살아내는 나를, 사랑하는 스타가 견뎌야 했던 온갖 말들의 촉끝 사이에서 나의 상처와 다른 여성의 상처를 보고 있는 나를 돌봐야 했다.

설리의 팬인 이유, 글쎄. 뭐라고 콕 집어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냥 예뻤다. 웃는 것도 예쁘고, 노래하는 것도 예쁘고, 춤 추는 것, 술 마시는 모습, 영화와 드라마에 나온 모습, 광고, 화보 등등 모든 게 예뻤다. 설리가 하는 말과 행동의 모든 게 좋았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노래를 들을 때도 가사를 유심히 보게 된다. 2019년 6월, 설리의 첫 솔로 앨범이 발매됐을 때도 설리가 지은 가사를 유심히 봤다. 노랫말도 설리만큼 예쁘다. '고블린'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널 가득 안고 싶은 건 너의 맘의 하얀 안개. 까맣게 물들일게." 

보통 흰 색은 선, 까만색은 악의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이 노래에서는 이미지가 역전된다. 흰 색은 우울함, 까만색은 위로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우중충하게 낀 안개처럼 우울한 사람을 포근히 안아주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고블린'은 설리의 반려묘 이름이기도 하다. 반려묘를 향한 사랑을 이렇게 다정하게 표현했다.

'온더문'을 듣고선 아끼고 사랑하는 여성 친구들과 함께 손을 잡고 밤하늘을 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가사는 이렇다. 

"깊은 내 잠을 품 속 인형이 가지고 달콤한 꿈에 두려움을 다 가져가. 깊게 내 작은 마음이 기도를 받아. 올라가 On the moon, 나의 Happy girl, 너의 Happy girl." 

가사를 듣고 있으면 깊은 밤, 두려움을 떨치고 고요히 기도를 하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손을 잡고 천사소녀 네티처럼 밤하늘을 자유로이 비행하는 장면이 눈 앞에 그려진다. 얼마나 예쁜 가사인지.

MBTI 열풍이 국내를 휩쓸기 전인 2019년 5월, 설리는 인스타그램에 MBTI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ENTP-T인데, 중요한 건 ENPT-T 유형에 관한 설명을 설리가 캡처해서 올린 부분이다. 

"가시밭길이더라도 자주적 사고를 하는 이의 길을 가십시오. 비판과 논란에 맞서서 당신의 생각을 당당히 밝히십시오. 당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십시오. '별난 사람'이라고 낙인찍히는 것보다 순종이라는 오명에 무릎 꿇는 것을 더 두려워하십시오. 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념을 위해서라면 온 힘을 다해 싸우십시오."

물론 "진리(설리 본명)는 왜 진리를 못 견딜까"라는 내용의 사진도 있다. 하지만 그는 쓰레기 같은 말들 속에서도 꿋꿋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곧잘 자신을 가장 잔인하게 대하는 나, 그리고 이렇게 사는 수많은 여성에게 꿋꿋하려 애쓰며 다정하고 예쁜 가사를 쓰는 설리는 용기가 돼주었다.

죽음을 고민하는 자매들에게 그의 용기를
   

MBC <다큐플렉스-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 한장면. ⓒ MBC

   
설리에게 받은 맑은 용기를 설리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팬이 스타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인스타그램 댓글창에서 주접 댓글을 달며 설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하는 것, 악플마다 비추천 버튼을 누르는 것, 나쁜 기사는 쳐다도 보지 않아서 조회 수 장사 못하게 하는 것, 앨범을 내면 별점 만점을 주고 무한 스트리밍하는 것, 영화나 드라마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것 정도다.

하지만 그는 떠났고, 그에게 맑은 용기를 받은 나는 절망했다.

설리가 떠나고 며칠 후, 내가 다니는 교회 예배 시간에 기도문을 써야 할 일이 있었다. 그때 이렇게 썼다.

"설리의 가는 길을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힘들고 지쳤을 그의 마음을 위로하소서."

이렇게 쓰고 앞서 이야기한 단톡방에 보냈다. 설리를 위해 기도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추가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설리가 떠나서 슬퍼하고 같이 사라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싶어."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그런 충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설리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야만 했다.

기도가 이루어지게 하려면 내가 나를 돌봐야 했다. 물론 아직도 나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잘 모른다. 여전히 자기비하와 혐오는 내게 너무 달게 다가온다. 

설리가 떠나고 난 후 같은 절망감을 느끼며 마음 속에 하얀 안개를 드리운 사람들끼리 서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때 태어나서 친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제일 많이 했던 것 같다. 여성, 성소수자 친구들끼리 "사랑해", "죽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돌봤다. 우리를 둘러싼 억압에 관해서는 구태여 말하지 않고 일단은 사랑한다고 했다. 그렇게 운 좋게도 오늘날까지 살아있다.

지난해 20대 여성 자살률이 전년보다 25.5% 늘었다고 한다. 정확한 원인은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 모르면서 자꾸 말하려고 한다. 젊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의 원인을 명확하게 말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사안을 흐리는 것 같다. 설리를 다룬 MBC 다큐멘터리가 그랬듯 말이다. 배우신 분들의 책상 앞 판단과 분석이 무정하게 느껴진다.

'죽음을 택한 이유'보다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명확하게 알아보려고 하면 좋겠다. 그러려면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어떤 조건들이 있어야 삶을 지속할 수 있는지를 묻고, 듣고, 이를 명확하게 이야기해야 더 이상의 희생을 막는 길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설리가 할머니가 되는 걸 보고 싶었다. 저 다정하고 꿋꿋한 사람이 나이 들어갈수록 얼마나 더 멋져질까 생각하면 덕질하는 게 더 행복했다. 나도 꿋꿋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서 멋진 설리와 함께 동시대를 살고 싶었다.

설리는 없지만 설리에게서 받은 맑은 용기가 있다. 지금도 죽음을 고민하는 자매들에게 이 용기를 전달하고 싶다. 이 용기를 받은 수많은 자매들과 함께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이야기하면서 꿋꿋하고 씩씩하게 살아나가고 싶다. 죽음의 문턱을 서성이는 자매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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