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30 18:20최종 업데이트 20.09.3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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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슬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니, 내 젊은 시절의 가을이 떠오른다. 역사의 무게가 하도 무거워서 개인의 삶에 여러 빛깔의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야기들을 제대로 담을 수 없었던, 민주주의가 죽어가던 시절의 가을 얘기다.

내 젊은 시절의 가을... 한 줄의 '사실 보도'를 위한 싸움
 
3선 개헌, 유신 독재, 10.26, 12.12, 5.17 등 그 줄지어 있었던 박정희-전두환의 포악한 군부독재가 압도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삶은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아마도 개인의 삶이 자리를 찾았다면, 그건 허무이거나 절망이었을 터이고, 아니면 군부독재에 아부하고 굴종하여 거기서 부스러기를 얻어먹는 개인의 '영달'이었을 것이다.
(나의 책 <기자인 것이 부끄럽다>(2002) 서문)

1970년 스무 다섯 살에 동아일보사 기자가 된 내게 당시 언론 현실은 암흑이었다. 유신체제 2년 전이었으니, '암흑 속에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던' 시절이다. 적지 않은 선배들은, 이제 막 병아리 기자의 날개를 퍼덕이는 우리들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런 판에 왜 기자가 되었느냐"며, 술과 절망과 허무부터 먼저 가르쳐 주었다.

그런 시절, 한 줄의 '사실 보도'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그걸 얻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과 희생을 무릅써야 하는지를 매일매일 온몸으로 느끼며 살았다.

1974년 가을, 유신체제의 그 강고한 성벽에 온몸을 던지는 대학생들의 시위 앞에서 우리는 참으로 부끄러웠다. 그들이 온몸으로 외치는 절규를 언론은 담아내지 못했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그리고 우리를 그렇게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유신 독재에 분노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해 10월 24일, 동아일보사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은 조그만 횃불이 되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한 줄의 '사실 보도'를 위해 싸웠다. 그리고 그 싸움으로 우리는 잃어버렸던 자유언론의 땅을 조금씩 쟁취하기 시작했다.
 

1975년 강제 축출된 동아투위 위원들은 6개월 동안 출근시간에 회사 앞에 도열한 뒤 신문회관 혹은 종로 5가 기독교회관까지 침묵시위를 벌였다. ⓒ 동아투위

 
그러나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의 자유언론 싸움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의 함성이 커지면서 이에 정치적 위기를 느낀 박정희 유신 정권과, 정권에 굴복한 동아일보사 경영진은 자유언론 싸움에 뛰어든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의 기자, 피디, 아나운서 113명을 이듬해 봄에 쫓아냈다. 

4년이 지난 1978년 10월 24일. 해직된 우리들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의 기념일을 맞아 당시 언론이 일체 보도하지 않았던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한 사건들'(1977.10 – 1978. 9)을 일지 형식으로 모아서 필경 유인물 300매에 담아 배포했다. 유인물 제목도 '민주인권사건일지'였다. 예를 들면 1977년 11월 초에는 이런 사건들이 담겨 있었다.
 
 <1977. 11월>
▲ 고려대학교에 반정부 유인물 - 11월 4일 캠퍼스 안에 살포된 유인물 사건으로 고광진 김성만 군 등 2명 구속
▲ 서울대학교 11.11 데모. - 10월 7일에 이어 또다시 대규모 유혈 데모. 3,000여 명의 학생이 참가. '반민주구국 선언문'을 발표하고 반정부 구호와 "구속자 석방" "총장 사임" 등을 외치며 경찰과 대치. 밤 7시경 경찰은 도서관에 페퍼포그를 쏘아대며 난입, 학생 100여 명을 연행. 연성만 진재학 김경택 여균동 이철균 신희백 장기영 김부겸 양기운 문성훈 군 등 10명 구속

아무런 평가 없이 발생한 사건을 있는 그대로 옮긴 일지 형식의 '사실 보도'였다. 유신 정권은 이 유인물을 '사실 왜곡'이라며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동아투위원 10명을 구속했다.

가을이 되면, 이 두 개의 사건이 늘 떠오른다. 이 두 사건은 내 청춘의 가장 강렬한 초상이었으며, 내 젊음과 이후의 삶을 압도했다.

그때 우리는 한 줄의 '사실 보도'를 위해,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유언론을 위해, 해직의 아픔과, 감옥의 고난을 치러야 했다. 단 한 줄의 '사실보도'는 그렇게 고귀한 것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언론의 자유는 그만큼 소중한 것임을 그때 뼈저리게 경험했다.

너무 쉽게, 함부로 기사를 쓰는 지금 '기자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한국의 언론자유는 참으로 풍성해졌다. 그런 환경 속에서 지금 한국의 '기자들'은 너무도 쉽게, 너무나 함부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 넘쳐나는 언론자유의 토양 위에 거짓, 왜곡, 부풀리기, 자극적인 제목과 기사, 게으르고 저질스러운 '따옴표 저널리즘'이 차고 넘친다. 언론의 생명인 신뢰를 죽이는 암과 같은 죽음, 파멸의 길인데도 한국 언론은 그냥 그쪽으로 치닫는다. 어디에까지 가야 자신들이 벼랑 끝에 서 있음을 알게 될까.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도착, 취재진 앞에 서서 간단하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19.9.2 ⓒ 연합뉴스

 
지난 1년여, 우리 사회에는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세계적 대전염병을 제외하면 마치 우리 사회가 절단이라도 날 것처럼 그렇게 언론이 부풀리고, 전력투구로 휘몰아갔던 여러 사건들이 실제 그만큼 심각하고 엄청난 문제였는가. 그렇게 쏟아낸 기사들 가운데 '확인된 사실'과 양쪽 이야기를 균형 있게 담아낸 '공정성'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을 지킨 기사들은 얼마나 될까.

오히려 지난 1년만큼 한국 언론의 실체, 특히 여러 추한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시기도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검찰과 함께 언론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와 우리의 다음 세대가 이 땅에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토양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이보다 더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 시기도 없었던 듯하다.

검찰·언론 개혁을 위한 두 가지 핵심 요인

검찰 권력과 언론 권력은 몇 가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선출되지도 않았고,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막강한 힘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 집단'이라는 점이다.

무릇 권력 집단의 개혁에는 두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하나는 권력의 분산이며, 또 하나는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다. 검찰 개혁의 경우, 제도적으로 이 두 가지를 모두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먼지떨이식 수사' '선택적 수사' 등 검찰 권력의 남용을 가능하게 만든 수사권·기소권 독점을 분리하여 검찰 권력의 힘을 분산시키면 된다. 그리고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공수처와 같은 제도를 만들면 된다.

언론개혁은 어떠한가. 검찰 개혁처럼 그렇게 권력을 분산하고, 책임을 묻는 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질 수 있는가. 검찰은 정부의 한 조직이어서 아무리 조직이기적 저항이 있다 하더라도 끝내 제도적 개혁은 가능하다. 그런데 언론은 민간 영역인데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직결되어 있어, 검찰 권력의 개혁처럼 해답이 쉽지 않다.

이런 한계 속에서도 언론 권력의 분산, 잘못된 언론에 책임을 묻는 일 - 언론을 바꾸기 위한 이 두 개의 길을 포기할 수는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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