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8 07:59최종 업데이트 20.08.28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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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부산진구 한 교회에서 임영문 부산 기독교총연합회 대표 목사가 현장 예배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 조치로 부산시가 지역 교회들에 대면 예배를 금지했지만 일부 부산지역 일부 교회가 현장 예배를 강행했다. ⓒ 연합뉴스

 
27일 코로나19 신규 환자가 441명 나왔다. 전국 17개 시·도 모든 곳에서 신규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이렇게 감염자 수가 계속 급증한다면 거리두기 3단계를 실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름방학이 끝났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가 없다. 가게 문을 닫고, 직장을 잃어  생계난에 시달리는 사람도 점점 늘고 있다. 국가 경제도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코로나19가 다시 급속하게 퍼진 이유는 지난 8월 15일 전광훈 목사가 주도한 광화문 집회에 전국에서 많은 목사들과 기독교인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구국의 일념으로 모였다지만, 그들의 몰지각한 행동은 전국민을 코로나19 감염 공포로 몰아넣고 국가를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게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부산기독교총연합회(부기총)는 지난 8월 22일 긴급총회를 열고 비대면 예배만 허용하는 행정명령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집행정지 소송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부기총은 또 대면 예배를 강행한다는 결정을 담은 공문을 부산 지역 교회 1800여 곳에 보냈다고 했다. 심지어 어떤 목사는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라고 설교하며 대면 예배를 강행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교회발 코로나 감염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예수는 자신에게 예배하라 하지 않았다  

'목숨을 건 예배'가 성경을 따르는 것일까? 그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결코 아니다. 성경 어디에도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리라는 말은 없다. 그런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며 받는다고 한 말 역시 없다.
 
예수는 '나를 예배하라'고 단 한 번도 말한 사실이 없다. 예수는 '나를 예배하라'가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태복음 16장 24절)고 말했을 뿐이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교회당에 나와 예수 이름을 외치며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삶과 예수가 지향한 가치를 본받고 실천하는 것이다. 예수를 예배하는 것과 예수의 삶과 가치를 따르는 것은 전혀 다르다.

광화문에 모인 전광훈 목사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도 예수를 믿는다. 광화문 광장에 '예수' 이름과 '아멘' 소리가 넘쳐나니 그들도 예수를 믿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믿는다고 해서 예수의 삶과 가치를 따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광화문에 모여 코로나19를 전국에 확산시키고, 대면 예배를 강행하는 그들에게서 예수의 삶의 흔적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예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세상에 소금과 빛이 되는 삶'(마태복음 5장 13~14절)이라고 강조했다. 예수를 따르는 삶이란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처럼 사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한국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는커녕 세상에 코로나를 전파하여 국민을 위협하는 흉기로 전락했다.
 
예수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마태복음 5장 13절)라고 말했다.
 
몇 해 전  한 신학대학 채플에서 설교 중 "맛을 잃어버려 길가에 버려진 소금을 한마디로 말하면 뭐라 할까요?"라고 물었다. 여기저기에서 같은 소리가 들렸다.
 
"쓰레기요."
 
정답이다. 맛을 잃어버려 길가에 버려진 소금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쓸데만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길 가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혐오의 대상이 된다. 대면 예배를 고집하며 코로나19를 확산시키는 기독교가 딱 그 꼴이다.  
 

보건소 차량으로 향하는 전광훈 목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17일 오후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사택을 나와 성북보건소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0.8.17 ⓒ 연합뉴스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되었을까? 
 
유대교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에서 '하나님을 위한 예배'는 종교 지도자들이 사람들을 얽어매고 노예화시키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예수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마가 복음 2장 27절)라며 '사람이 우선'이라는 신앙의 본질을 분명히 했다.
 
예수는 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누가 복음 30~37절)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참 예배자의 삶이 무엇인지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나 죽도록 얻어맞고 모든 것을 빼앗기고 길가에 버려졌다. 마침 지나가던 제사장이 그를 보았으나 그냥 피해갔다. 레위인도 그냥 지나쳐갔다. 사마리아인은 그를 불쌍하게 여겨 여관으로 데려가 치료비를 줘 돌보게 했다.
 
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아마도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우선이었을 것이다. 예배에 늦으면 안 되니까. 그러나 이방인으로 무시 받던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일을 뒤로 젖혀놓고 비용을 지불해가며 강도를 만난 이를 살려냈다.
 
예수는 이 비유를 들어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라고 물으며 '가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라고 하셨다.
 
대한민국과 전세계가 코로나19라는 강도를 만나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예수의 뜻과 달리 목숨 건 예배 운운하며 고통받는 자들을 외면하는 것도 모자라 코로나를 전염시키는 강도가 되고 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세아 6장6절)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있다. 이 말씀을 현 상황에 대비해 보면 하나님은 예배가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삶을 원하시고, 목숨 건 예배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바로 아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예배는 인간 자신을 위한 것  
  

광화문 집회 나온 전광훈 목사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정부 및 여당 규탄 관련 집회에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나님은 인간의 예배와 아무 상관없이 스스로 충만한 존재다. 그렇다면 왜 예배를 드리는 것이며, 예배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배 드리는 인간 자신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림으로써 내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로워지고, 다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시간이 곧 예배다.
 
그렇다면 목숨을 건 예배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예배 때문에 예배드리는 자도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빠지고, 이웃들도 전염 위험에 빠뜨린다.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없게 되고, 전 국민이 공포에 시달린다. 이런 대면 예배가 왜 필요한가?
 
정부가 기독교 신앙을 전면 금지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일시적으로 대면 예배 대신 온라인 예배를 요청한 것에 불과하다. 마치 이것을 종교 박해처럼 과장하고 목숨 건 예배 운운하는 것은 정치적인 의도이거나 성경을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것이든 하나님을 욕보이고 한국 교회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 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신앙의 본질을 회복할 때가 왔다. 한국 교회를 병들게 하는 '교회 중심 신앙', '예배 중심 신앙'에서 깨어나 신앙의 본질을 회복할 때가 된 것이다.
 
구약성경 창세기 28장 16~17절에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가던 야곱이 해질 무렵 돌을 베고 잠을 자다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하며 자신이 있는 곳이 하나님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바로 여기에 참 신앙의 길이 있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모든 곳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면서도 교회당 예배에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았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는 장소와 시간에 제한받지 않는다. 내가 있는 그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성전이며,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그 시간이 살아 있는 예배다.
 
이제 교회당 중심 신앙에서 벗어나 일상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일주일 동안 하나님 없이 살다가 보험금 납부하듯, 일요일에 교회당 가서 예배드린다고 그 예배가 산 예배가 될 수 없다.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만날 때, 주일날 교회당의 예배가 살아 있는 예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약 중독'은 자기 자신만을 해치지만,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대면 예배를 강행하는 '예배 중독'은 한국교회뿐 아니라 세상을 위험에 빠트린다.
덧붙이는 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예배가 무엇인지 알기 원하시는 분은 필자가 쓴 '복음에 안기다'(새물결플러스)를 읽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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