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6 08:17최종 업데이트 20.08.26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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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 전국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 조치로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시행된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 유성호


"코로나 때문에 희망 진로라는 게 별 의미가 없어졌어요."

최근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의 요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만난 20대 구직자 여러 명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이전까지는 나름대로 정한 몇 가지 기준에 따라 취업 준비를 해 왔는데, 코로나19로 취업시장이 확 위축된 뒤에는 구인 공고가 뜨는 족족 원서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IMF 외환위기 때에 딱 그랬어요."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맞장구를 쳤다가 당황하는 표정을 마주했다. 지금 대화 중인 사람이 1990년대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이야기를 한다는 게 민망하긴 했다. 그래서 더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때 '진로'라는 것을 잃고 방황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의 경험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때와 지금 상황이 완전히 똑같다고 하려는 건 아니다. 분명한 차이가 있다. 외환위기 때는 물론,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우리 경제는 크게 흔들렸다. 이 충격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 처한 상황과 위치에 따라 일정하게 영향을 미쳤다. 그렇지만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 있다. 바로 '다시 회복된다'는 믿음, 경제성장률은 결국 다시 우상향(右上向) 그래프를 그리게 된다는 굳건한 믿음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곧 현실이 됐다.

지금은 다르다. 안그래도 한국 경제는 성장폭이 줄어들어서 '제로(0)'에 수렴해가고 있었고, 정체하는 사회를 '뉴 노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19의 타격으로 전세계 국가들의 경제 전망이 마이너스로 뚝 떨어졌다.

한국은 방역에서의 성과 덕분에 상대적으로 나은 전망치들을 받아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플러스'나 '제로' 정도의 전망은 아니다. '마이너스' 성장의 상황에 처했다는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경제의 높은 대외의존도로 볼 때,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 된다면 혼자서만 '플러스' 반전을 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부동산 '패닉 바잉'과 동학개미운동
 

정부의 다중 규제에도 서울 집값이 좀처럼 쉽게 잡히지 않으면서 서울 외곽 지역에서도 아파트값이 9억원을 넘기고 보증금 5억원이 넘는 전세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23일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 연합뉴스

성장하지 않는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구직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취업해서 받게 되는 초봉이 거의 그대로 오랜 기간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월급이 장기간에 걸쳐 오르던 시절에 가능하던 일들이 어려워진다. 예를 들면 대출을 받아 내 집 마련을 한다든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 같은 일들이다.

이미 버블경제 이후로 30여년 동안 신입사원 급여 수준이 오르지 않은 일본의 사례가 있고, 모기지론으로 내 집 마련을 했던 숱한 사람들이 홈리스가 돼버린 미국의 사례가 있다. 덕분에 정체 또는 마이너스 성장이 오래 지속되는 사회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증거는 모순적이게도 최근 30대가 부동산 매수에 나선 것을 '패닉 바잉'이라고 부르는 데서 엿볼 수 있다. 얼핏 보면 이 매수세는 '경제는 곧 회복되고 부동산 가격 추이는 기존대로 유지된다'는 신뢰에 근거한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렇다면 30대들이 많은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산다고 해도 나쁘게 볼 이유가 없다. 금융기관의 심사를 거쳐서, 각자 신용과 상환 능력에 따라 대출을 받은 것일 테니 말이다.

집을 샀으니 직장도 더 진득하니 다니게 될 것이고, 미혼이라면 결혼을, 기혼이라면 출산을 택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정부가 여러 정책을 써도 안 되던 일들이 해결되는 셈인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개인투자자들이 뛰어들어서 주식을 매수하는 '동학개미운동'도 그렇다. 우리 경제의 회복력, 국내 주요 기업들의 실제 가치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신뢰가 높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하등 나쁘게 볼 이유가 없는 일이다.

'마이너스 시대'를 맞는 30대의 불안감
 
그런데 이 두 가지 현상에 대해 우려가 큰 건 우리 경제가 내리막길 위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수십 년 동안 전국민이 '부동산 불패'를 경험했어도 이제는 비로소 부동산 가격이 내려갈 때가 됐다는 인식들이 생겨나 있다. 물론 도쿄와 뉴욕 한복판의 부동산은 여전히 비싼 것처럼 어떤 지역들은 계속 그 위상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지역이 그럴 수는 없다. 뽕밭을 사도, 비닐하우스를 사도, 판잣집을 사도 시간이 지나면 크게 보상받았던 것은 지나간 시대의 일일 뿐이다. 

길게 보면 전반적인 부동산 가격이 우하향(右下向)하리라는 것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성패와 관계없이 예정된 일이다. 그러니 30대들이 뒤늦게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어서, '영혼까지 끌어모아'도 서울 중심지의 부동산은 살 수 없으니 비교적 덜 오른 지역의 집들을 서둘러 사는 현상을 좋게 볼 수 없는 것이다.

사실은 30대들이 그런 사실을 몰라서, 어리석어서 그런 투자에 나선 것도 아니다. 오히려 30대들은 그 이전 세대보다 '마이너스 시대'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으며, 불안감도 더 강하다. 이들이 부동산 시장에 급히 뛰어든 것은 이번이 마지막 투자 기회라는 판단 때문이다. 임금이 꾸준히 오를 것도 아니고 금리도 낮은 상황에서 다른 어떤 경제활동을 통해서도 목돈 마련이 힘들 것이기 때문에 아직은 약간의 차익 실현 기회가 남은 듯한 부동산으로, 그 문조차 정부의 부동산 정책 때문에 완전히 닫히기 전에 서둘러 뛰어든 것이다.
 

사흘째 1% 상승 마감한 코스피 25일 코스피가 사흘 연속 1%대의 오름세를 이어갔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36.90포인트(1.58%) 높은 2366.73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은 전날보다 20.57포인트(2.52%) 오른 836.31에 종료됐다. 사진은 이날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 연합뉴스

개인 투자자들의 목적도 비슷하다. 한국 경제 또는 한국 기업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가 아니라, 크게 출렁일 때 들어가 차익 실현을 하기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크게 떨어졌을 때 이런 투자 경향이 시작됐다는 것이 그 증거다.

경제가 완전히 침체기에 접어들거나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되면 지금과 같은 '출렁임'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들어가는 게 현명하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동학개미운동'이라는 것은 인터넷에 유행하는 '밈'처럼 젊은 투자자들 스스로 재미있게 붙여본 이름일 뿐, 거창한 의미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즉, 지금의 젊은 세대가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경제 회복을 신뢰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마이너스 시대로 접어들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들이 부동산을 샀다고 해서 안 다닐 직장에 더 다닌다든지, 결혼과 출산을 결심하리라고 보기 어렵다. '이제 곧 투자의 기회가 닫힌다'는 생각은 '이제 우리는 아무리 열심히 일 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계층 이동을 하기 어렵다'는 것과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지금 중요한 건 '일자리의 질'

그렇다면 이런 현상들에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매달 한 번씩 계속 써 왔던 이 '똑똑한 경제이야기' 칼럼이 이번으로 마지막이라는 점을 전해야겠다. 2019년 3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달, 총 17편의 글을 쓰면서 일관되게 강조한 것은 우리 사회의 '일자리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꽤 좋은 일을 하고 있어'라면서 만족해 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나쁜 일'을 거절할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의 수준을 높이고, 노동의 최저선도 같이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해 왔다. 그래야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돈이 많든 적든,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곧 마이너스 시대에 접어들며 강한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이 글의 첫 부분에서 20대들이 "코로나19 때문에 희망 진로라는 게 의미가 없어졌어요"라고 한다는 말도 그저 그렇게 들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사회가 불안정해도 사람들이 닥치는 대로 아무 일자리나 들어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이런 시대라서 더 신중해야 한다. 경제가 성장하고, 대부분의 기업이 커지고, 어떤 자리든 일단 기업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런 저런 기회들을 얻을 수 있던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이 불안감 때문에 나쁜 조건의 일자리인 줄 알면서도 밀려 들어갈 때 전반적인 일자리의 질은 더 낮아질 것이고, 그 여파는 일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의 문제로, 가정 경제의 문제로, 자녀 양육 상에서의 문제로 이어진다. IMF 외환위기 때도 사회 전반에 넘쳤던 불안이 기성세대보다는 청소년, 어린이들에게 더 강하고 깊은 영향을 줬다. 지금 사회 초년생들이 자포자기하도록 그냥 둔다면 그 영향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깊고 넓게 남을 것이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 일자리의 질적인 측면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누구도, 어떤 일을 하더라도 생명 또는 건강이 위협받거나, 차별받거나, 정신적 고통을 당하거나, 당연히 누려야 할 헌법적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는지 정부는 더 각별히 챙겨야 한다. 사람들이 일자리를 옮겨야 하거나, 잠시 쉬어야 할 때도 기본적인 생활은 유지되도록 보편적 안전망으로 받쳐줘야 한다.

그렇게 최저선이 확실히 지켜진다는 믿음이 있을 때 사람들은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기가 진짜 원하는 일을 찾아갈 수 있다. 소득이 줄거나 고용상황이 흔들려도 삶이 망가지지 않을 수 있다. 즉, 경제는 어려워도 행복은 지킬 수 있다. 아이들은 밝게 자랄 수 있다. 이런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마이너스 성장 시대에 함께 잘 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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