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5 08:11최종 업데이트 20.08.25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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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씨(이하 존칭 생략)가 최근 의정부고 인종차별 논란으로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됐다. 학생들의 '관짝 밈'에 대한 그의 문제제기로 시작된 이번 논쟁은 본인이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듯하더니 며칠 후 그가 영국 비비시(BBC) 방송과 관련 주제 인터뷰를 한 것이 알려진 후 다시 불붙는 양상이다.

이번 '오취리 논쟁'은 근현대를 거친 한국사회가 본능적으로 체득한 폐쇄적 자구 본능과 방어기제를 벗어나 비로소 문화적, 경제적 지구촌 오피니언 리더로 거듭 나려는 시점에 일어난 필연적 과정이며 지극히 한국적 현상이다.

'관짝 소년단'과 샘 오취리
 

3일 의정부고등학교 학생자치회에 올라온 '관짝소년단' 패러디 졸업 사진 ⓒ 의정부고등학교 학생자치회

 
개성 넘치고 재기 발랄한 의정부고등학교 졸업사진은 매년 공개마다 화제를 낳는다. 심지어 '올해의 졸업사진에는 어떤 것이 등장하는지' 몇 달 전부터 기다리는 마니아까지 나올 정도라니 <보졸레 누보>를 대신할 <의고졸사 누보>라고 불러야 할까.

2020 졸업사진에도 여지없이 웃음과 감탄을 자아내는 '명작'들이 나왔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들, 배구선수 김연경, 영화감독 봉준호 …… 명불허전이 따로 없다. 그들 중 하나로 등장한 것이 바로 '관짝 소년단'. 이미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 코핀댄스(Coffin Dance, 상여춤)의 모습을 패러디한 것이다.

사진 속 연기자들은 분장을 한 듯한 검은 얼굴에 모자와 제복을 갖추고 어깨에 관을 이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대부분의 다른 '작품'들처럼 표현력이 훌륭했고 모든 성공한 패러디가 그렇듯 이해하는 사람만 웃도록 하는 '배타적 도도함'도 보인다. 재미있는 패러디 작품으로 남을 수도 있는 사진이었다. 적어도 가나 출신 한국 거주 연예인의 지적 전까지는.

지난 6일 방송인 샘 오취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 사진을 언급하면서 "안타깝고 슬퍼"질 뿐 아니라 "불쾌한 행동"이고 "한국에서 이런 행동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면서 "기회가 되면 (이들과) 한 번 이야기 하고 싶다"는 심경도 밝혔다.

샘 오취리의 입장 표명 이후 온라인상에서는 찬반논란이 뜨겁게 달궈졌다. 샘 오취리를 옹호하는 입장은 사진 속 학생들의 표현은 가치중립적 묘사가 아닌 '블랙 페이스' 즉 흑인 외모에 대한 비하 의도를 담고 있는 특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검은 얼굴 분장이 흑인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문화적 맥락을 알고 행한 것이라면 더 비난 받을 행동이고 설사 모르고 했다 하더라도 무지에서 벌어진 잘못인 만큼 사과와 시정 의사는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그를 비난하는 입장은 크게 두 범주로 정리될 것 같다. 첫 번째는 내용에 관한 것으로 '학생들은 그저 원래 있는 흑인문화를 흉내 낸 것일 뿐 그들을 비하할 목적의 행동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그의 표현방식에 관한 것인데 대략 세 종류가 있다. 하나는 그가 자신의 주장을 올린 한국말과 영어, 두 버전의 내용이 서로 같지 않아 이중적이라는 것. 당사자일 수 있는 한국인들이 주로 읽을 법한 한국어 버전에서는 다소 완화된 표현을 통해 논쟁의 여지를 줄였던 반면 비한국인이 주로 읽을 법한 영어버전에서는 한국의 문화와 교육에 대한 비판이 더 신랄해 한국을 비난할 의도가 다분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비난은 오취리가 자신의 주장을 위해 학생들의 사진을 허가 없이 사용했을 뿐 아니라 사진 속 얼굴도 가림처리 없이 게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오취리 자신도 과거 한 방송에서 두 눈을 양쪽으로 찢는 행동을 함으로써 동양인 외모를 비하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 행동을 했던 그가 자신의 문화 비하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느냐는 비난인 셈이다.

오취리를 향한 비난 가운데 그 자신의 표현방식과 관련한 위의 세 가지는 이 논쟁의 핵심에서 벗어난다. 설사 그의 문제제기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지적된 내용이 소멸하거나 희석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오취리 논쟁의 핵심은 과연 학생들의 이번 '관짝소년단' 패러디 작품이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와 인권 원칙 하에서 전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예술적 활동인지, 그렇지 않으면 타문화에 대한 비하라는 고의적 또는 과실적 책임이 있는 행위로서 표현의 자유 범위를 벗어나는 행위인지 밝히는 데에 있다.

블랙핑크, 노라조, 마돈나
 

블랙핑크가 지난 7월 발표한 신곡 '하우 유 라이크 댓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블랙핑크

 
문화 창작 안에 타문화의 일부를 차용함으로써 빚어지는 논란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한국에서는 이번 일에 앞서 블랙핑크와 노라조의 뮤직 비디오가 한 차례씩 인도에서 문제 되는 일이 있었다. 블랙핑크가 지난 7월 발표한 신곡 '하우 유 라이크 댓 (How You Like That)'의 뮤직비디오 장면 가운데 힌두교의 신 가네샤 상(像)이 바닥에 놓여 있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됐던 것. 번영을 상징하는 이 신을 섬기는 인도인들에게 블랙핑크의 해당 뮤직비디오는 자신들의 신이 대중문화의 소품으로 사용됨으로써 모욕감을 느꼈던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해당 기획사 측은 문제의 장면을 삭제했다.

같은 달 15일에는 남성 2인조 그룹 노라조의 멤버 조빈이 자신의 곡 '카레'에 인종차별적 내용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인도에서 유래한 음식 '카레'를 자신의 음악과 뮤직비디오에서 희화화시켰다는 것. 문제의 '카레'는 무려 10년 전에 발표한 그들의 앨범 <환골탈태>에 들어 있던 곡으로 다른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다시부르기(Remake)'가 없었다면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소환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이슈로 급부상하는 '타문화를 자신의 창작 속에 차용하면서 벌어지는 직접적 또는 파생적 분쟁과 관련한 현상'을 문화적 전유(專有)(Cultural Appropriation)라고 흔히 부른다. 앞서 몇 가지 예에서 봤듯이 비교적 최근에 불거진 일들을 일컫지만 한국 사회에 전혀 낯선 현상은 아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문화적 전유와 관련한 행위들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다만 문제제기가 없었을 뿐이다.

이처럼 똑같은 현상도 고립돼 있을 때는 문제가 없다가 개방사회로 나아가고 공유와 소통이 더욱 활발해질 때 불거지는 것이 문화적 전유의 특징이다.

문화적 전유는 90년대 초 미국에서 나온 개념이다. 처음부터 부정적 함의를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다. 용어의 어휘적 의미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한 문화의 특정 요소가 다른 문화권의 사용자에게 차용되는 것을 의미"하는 정도였다.

언어로 이뤄진 모든 개념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치론적 변이를 비켜가지 못한다. 가치론적 중립, 언어적 일반성에 기반을 두고 탄생한 용어 <문화적 전유> 역시 미국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뿌리를 내리면서 점차 문화적 제국주의의 횡포를 비판하는 가치론적 비판성, 언어적 특수성을 띠게 됐다. 21세기도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이제 차용자의 의도가 불순하고 그렇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차용당한 문화권 사용자가 모욕감을 느끼면서 불쾌해진다면 그것이 바로 문화적 전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문화적 전유가 성평등 문제의 중요한 하나의 사실과 유사한 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성평등의 문제에서 가장 빈번하게 논란이 되는 부분이 바로 피해자의 '주관적 판단' 부분이다. 행위자 또는 발설자의 선한 의도와 선한 본심은 분쟁 해결의 핵심이 아니다. 잠재적 가해자는 억울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도 그의 언행이 잠재적 피해자에게 주관적으로 굴욕의 경험을 안겨줬다면 그것은 성추행 또는 성희롱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판단이다. 법적으로도 그렇지만 윤리적으로도 그렇다.

문화 교류와 문화적 전유의 구분

문화적 전유 역시 같은 원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문화적 차용자가 선한 의도와 선한 본심으로 피차용자의 문화를 전유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피차용자의 불쾌감과 침탈의 모욕을 느꼈다면 그것은 문화적 도용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문화의 교류과정에서 상호 평등성에 의거하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문화적 지배와 피지배 관계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초의 용어 전유(appropriation)는 이제 어휘적 의미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론적 맥락에서 해석해야 한다.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가 젊은 시절 한 행사에서 흑인의 모습으로 분장을 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큰 곤욕을 치렀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고, 팝가수 마돈나가 베르베르 공주의 분장을 한 것이 문화적 전유의 상징이 되었던 것도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다. 두 경우 모두 차용자는 불순한 의도로 행한 차용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문화적 전유는 문화교류와 구별되어야 하며 오마주(hommage)와도 역시 구별되어야 한다. 문화적 전유, 문화교류, 오마주 모두 문화 창조의 과정에서 타문화를 수용해 발전하는 일이지만 문화교류는 두 문화권의 동등한 권리 속에서 한 쪽이 다른 한쪽으로 수용되는 흐름이고, 오마주는 우월하다고 판단되는 피차용자의 문화 일부분을 낮은 자세의 차용자가 수용하는 것인 반면 문화적 전유는 피차용자의 입장에서 차용자의 지배적, 우월적, 패권적 의도에 의해 모욕적으로 강탈당한 것이라고 판단되는 문화흐름이다.

복잡한 용어들로 혼란스러워졌다면 쉬운 예들로 머리를 식혀보자. 짜장면은 중국문화에서 유래한 한국의 음식이지만 우리가 우월감을 가지고 있지도, 중국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욕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부대찌개도, 카레도 마찬가지다. 문화교류의 좋은 예들이다.
 

노라조 '카레' 뮤직 비디오의 한 장면 ⓒ 노라조

 
반면 노라조의 노래 '카레'에 등장하는 인도문화의 경우, 그것을 감상하는 우리는 우스꽝스러운 익살로 받아들이고 인도문화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도용을 당했다는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여성 한복이 서구 패션쇼의 런웨이에 등장했다면 문화적 오마주가 되겠지만 일본제국주의 군대복장의 남성 앞에 앉은 자세로 등장했다면 명백한 문화적 전유가 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릭 파생(Eric Fassin)은 2년 전 일간지 <르몽드>와 한 인터뷰에서 "문화적 전유란 문화적 차용이 지배적 맥락에서 이뤄질 경우를 일컫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적 전유를 둘러싼 불필요한 논쟁의 상당 부분은 이 용어의 어휘적 의미와 사회학적 의미의 편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결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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