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 19:55최종 업데이트 20.08.0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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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내에서 가장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artel de Jalisco Nueva Generacion, CJNG)'이 SNS 서비스 와츠앱에 올린 영상. ⓒ CJNG

 
2020년 7월 17일 오후, 소셜미디어 상에 한 편의 비디오가 돌기 시작했다.

2분이 조금 넘는 분량의 동영상에는 75명의 요원들과 80여 점의 최신 무기, 그리고 22대의 무장 차량이 등장했다. 중간에 커팅이나 편집 없이 풀 영상으로 찍힌 화면이었고, 드론이 이용된 촬영이었다. 요원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은 정규군 위장복이었고 전원 방탄조끼뿐 아니라 헬멧과 관절보호대를 하고 있었다. 차량 역시 완전한 장갑무장에 위장 도색이 된 상태였다. 개인 무기뿐 아니라 차량의 장갑 상단에 거치된 화기의 면면이 당장 전투에 나간다 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한 파괴력을 과시하였고, 요원들은 자기 앞에 카메라가 지나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허공에 총을 난사하면서 포효했다. 실로, 가공할 만한 위력이었다.

누가 봐도 정부군의 최정예 군사 요원이라 할 만했다. 그러나 그들의 차량에 새겨진 로고는 CJNG, 현재 멕시코 내에서 가장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artel de Jalisco Nueva Generación)'의 약자였다. 전쟁 중이 아닌 정상적인 국가에서 사설 무장 세력이 최신 무기로 중무장 한 채 동영상을 찍어 유포한다는 사실 자체가 분명 놀랄 법한 일이다.

다만 지난 수년 사이 멕시코 내 마약 카르텔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작전 과정이나 군병력과의 충돌을 동영상으로 찍어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방식을 더러 취해왔기에, 멕시코에서라면 으레 있을 만한 일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순전히 자신들의 화기 수준을 과시하기 위해 사열 형태로 퍼레이드를 벌이며 동영상을 녹화해 올린 것은 처음이었다. 해당 동영상은 소셜미디어 망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멕시코를 뒤흔든 영상

속보로 올라온 뉴스에서는 해당 동영상이 '멕시코를 뒤흔들었다'라고 표현했다. 가장 먼저 연방치안장관인 알폰소 두라소(Alfonso Durazo)가 기자회견을 열어 동영상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요지는 편집된 가짜 동영상에 불과하니 동요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지만, 그날 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이전 발표를 번복하며 실제 상황에 대한 녹화임을 인정하였다. 안도하던 멕시코가 다시 한 번 휘청거렸다.
 

7월 20일 정례 기자 간담회에서 대통령 AMLO가 7월 17일 CJNG에 의해 배포된 동영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Noticia Televisa 화면 캡처

 
곧바로 비디오가 촬영된 장소의 지형이나 식생에 대한 분석이 시작되었고, 멕시코 서부 할리스코(Jalisco) 주와 미쵸아칸(Michoacan) 주의 접경지대일 것이라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AMLO)가 이 지역을 순방한 날이다. 각 주의 경계태세가 여느 때보다 촘촘한 상황이었음에도 마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바로 그 지역에서 마약 카르텔인 CJNG가 그들의 화기 수준을 자랑하는 동영상이 유포되었다.

이 날은 CJNG의 두목 엘 멘쵸(El Mencho)의 생일이기도 했다. 동영상 속의 요원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이 '엘 멘쵸의 사람들'임을 외쳐댔고, 정부에 위협이라도 가하듯, 허공에 연발 기관총을 소사하며 포효했다. 이날 하루는 연일 역사적 기록을 갈아치우며 상승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와 사망자 뉴스도 소리 소문 없이 묻혀버렸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7월 18일, 매일 아침 이루어지는 대통령의 정례 기자간담회가 순방 중인 콜리마(Colima) 주에서 행해졌다. 콜리마 주는 할리스코 주와 미쵸아칸 주 사이에 위치하고 태평양과 접한 곳으로 CJNG의 주요 근거지이며, 멕시코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당연히, 간담회의 시작은 하루 전 유포된 동영상에 대한 언급이었다.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 나왔다. '그들'과 전쟁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 질문의 이면에는 '정상국가의 범주에서 사설 무장 세력의 존재를 어느 선까지 인정할 것인가'라는 중의적인 뜻이 담겨 있었다. 2006년 마약과의 전쟁이 선포되고 십 수 년이 흐르는 가운데, 오히려 피살자 숫자만 늘어 실패한 전쟁이라는 말이 나오는 와중에 다시 한 번 현 정부의 입장을 되묻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대통령의 답은 '포용'이었다. 그들의 총알에 총알로 답하는 대신 그들을 껴안겠다는 것이었다. 총알 세례에 총알로 답하는 것은 결국 무고한 시민의 희생만 가져올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거기에 방점을 찍어가며 덧붙인 말은, 작금의 이 현실이야말로 지난 정권들이 만들어 놓은 유산이라는 것이었다. 전날 동영상을 통해 공개된 이들의 존재를 과거 정권들이 연루된 부정부패의 결과라고 규정했다.

대통령은 이들을 끌어안겠다고 함으로써 카르텔 세력과 대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지만, 여전히 CJNG의 기세는 맹렬했다. 물론,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또한 이들을 포용하겠다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그대로 믿을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무감각했고 또한 무기력했다. 그 와중에 다음 날인 7월 18일 오후 또 한 건의 동영상이 추가로 공개되었다.

하루 전날 최신 무기로 무장한 요원들의 사열을 이끌었던 엘 멘쵸의 경호팀장이 전하는 메시지였다. 상대는 라이벌 조직인 산타 로사 데 리마(Santa Rosa de Lima)의 두목이었다. 과나후아토 지역을 놓고 영역다툼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 조직에게 마지막으로 전하는 선전포고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언론들은 산타 로사 데 리마 조직의 수장인 엘 마로(별명)를 언급하며 그에게 남겨진 시간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음을 다투어 실었다. 언론의 포커스마저도 정부의 입장이 배제된 채 카르텔 간 갈등에 맞춰졌다.
 

지난 2019년 12월 2일 월요일 멕시코 빌라 유니언에서 청소 노동자가 총알 구멍이 난 시청의 외관을 수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중무장한 마약조직 카르텔 공격조직과 보안군 사이의 주말 총격전이 벌어져 22명이 숨졌다. ⓒ AP=연합뉴스

 
금요일과 토요일 연이어 유포된 동영상으로 충격적인 주말이 지나고, 7월 20일 월요일 아침 국방부장관의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화면에 공개되었던 무기 분석이 주 내용이었다. 동영상에서 포착된 총 80점의 무기 가운데 캘리버 50 대물저격총이 1정이었고, 바렛(Barret) 대물저격총이 10정이었으며, 경기관총 9정, 그리고 저격소총은 54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6정의 유탄발사기가 확인되었다. 화면에 사열 형태로 등장한 차량 22대 중 일부는 장갑무장임이 확인되었다. 75명의 요원들에 대해서도 그들 신체의 물리적 조건이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이 반복 강조되었다.

멕시코에서 일부 마약 카르텔이 군 병력과 충돌할 때 순간적으로 군 화기를 능가하는 화력을 갖게 되는 경우가 이미 공공연하다. 사실상 이번에 공개된 무기들은 지난 6월 멕시코시티 경찰청장 피습 사건에서도 그대로 노출된 바 있다. 당시 수도 한복판에서 유탄발사기나 고성능 대물저격총 같은 대량 살상무기들이 수도 치안을 담당하는 최고 통수권자를 피살할 목적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에 멕시코 사회가 충격에 빠졌지만, 멕시코 당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청부 살인에 고용되어 가담한 자들 중 일부만을 현장에서 체포한 정도였다.

분명 CJNG의 소행임이 밝혀졌음에도 당국으로서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만 발표했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국가를 충분히 조롱할 만한 동영상이 유포되어 사회 전반에 공개되었다. 이들은 이미 정부 당국에 대해 그 어떤 두려움도 갖지 않는 듯했다.

마약 카르텔과 멕시코의 숙명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무장력이 지금과 같이 강화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5~16년 전이다. 1970년대 이후 멕시코 각 지역에 카르텔이 등장하긴 하지만, 수십 년간 가족 중심으로 운영이 되었고, 코카인이나 헤로인 같은 화학 마약류보다는 오히려 아편이나 마리화나 같은 자연 마약 공급을 담당해 왔었다.

20세기 후반 내내 콜롬비아가 마약 시장을 장악하였고 미국으로 들어가는 마약들도 대부분 카리브 도서 국가들을 통해 운반되었기 때문에 멕시코 카르텔의 입지는 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미국과 콜롬비아의 협공으로 콜롬비아 카르텔이 약화되거나 해체되면서 그 자리에 멕시코 카르텔이 마약 운용의 중심축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콜롬비아 카르텔의 몰락과 함께 카리브 도서 국가들을 거쳐 미국으로 들어가던 마약류 대부분이 멕시코를 거쳐 들어가면서 멕시코 카르텔이 대륙간 마약 유통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시기가 멕시코 카르텔이 기존 가족 중심에서 전문 조직원 중심으로 전환되고 마약 관련 이권을 위한 영역 다툼을 통해 훨씬 극악해진 시점이기도 하다.

게다가 2006년 멕시코 정부에 의해 개시된 '마약과의 전쟁'은 오히려 멕시코 카르텔이 더욱 잔인해지고 무장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자국 내에서 벌어진 '전쟁'이라는 이름 하에 멕시코에서는 매년 3만 명 이상이 피살되었고, 사람들은 점점 높아지는 폭력의 수위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만연한 피살에 무감각해졌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보유한 무기의 대부분은 미국으로부터 내려온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마약이 올라가고 미국에서 멕시코로 무기가 내려오는 것은 두 나라 사이의 루틴화 된 교환이다. 더 많은 마약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무기가 내려온다. 물론, 지난 십 수 년 사이 더 많은 마약이 올라갔고 더 많은 무기가 내려왔다. 실제로 1년이면 약 이십만 점의 무기들이 미국으로부터 밀수입된다. 2004년 미국이 살상무기 구매 금지법을 폐지한 이후 무기의 밀수입은 더욱 쉬워졌다. 이미 미국 주요 대도시에 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멕시코 카르텔로서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닌 셈이다.
 

2020년 현재 멕시코 전역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70%는 총기 개입에 의해 이루어진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사용하는 무기 대부분은 미국으로부터 밀수입되며, 카르텔의 화력은 갈수록 고성능 살상 무기들로 구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도심 한복판에서도 서로 다른 카르텔 조직원들 간 충돌뿐 아니라 정부군과 카르텔 조직원들 사이의 무장 충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연합뉴스

 
미국에서 내려오는 무기를 통한 카르텔 조직의 무장화는 멕시코 내 피살 건수의 증가로 이어질 뿐 아니라 총기 사망률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97년 1만 건 미만의 피살 사건 중 15%만이 총기에 의한 것이었던 반면, 2019년에는 4만 건 이상의 피살 사건 중 70% 이상에 총기가 개입되었다. 대량 살상 무기가 증가하면서 살인도 대량화 된 것이다. 하루 평균 피살 건수가 100건을 넘어선 지 오래다. 살인의 만연이다. 게다가 공중파 뉴스에서 전쟁터를 방불케 하며 엄청난 화기를 뿜어내는 총격전을 보는 것 또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며칠 새 마약 카르텔의 최정예 요원들이 최신 무기를 자랑하며 벌였던 페레이드 동영상이 준 충격도 서서히 잊히는 듯하다. 이미 평범한 일상이어서인지, 혹은 하루에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인지, 더 이상 뉴스에 언급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당국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미 공공연한 그들의 개인 화기가 아니라 무장한 차량들이 주는 두려움이다.

화면에 보인 22대의 차량 중 상당수가 장갑 무장을 하고 있었고, 장갑 상부에 대물저격총을 장착하고 있었다. 개인 화기는 대부분이 미국으로부터 밀수입 되고 있음이 이미 여러 루트를 통해 확인되었지만, 장갑 무장 차량들은 개인 화기에 비해 밀수입이 어려울 뿐 아니라 군사 관련 전문 설비를 갖춘 곳이 아니고서는 제작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그들이 과시한 무장 차량들이야말로 마약 카르텔들이 과연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고 또한 장악하고 있는지를 우려와 함께 가늠케 하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군 병력이 대 마약 카르텔 작전에서 매복 공격을 받거나 밀려 퇴각을 하게 될 때마다 애써 눌러 오던 피아 구분에 대한 의심이 다시 조심스레 제기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영상과 관련하여 현 정부는 그 뿌리를 전 정부들의 부정부패로 돌리며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집권한 지 1년 반이 지났을 뿐이니 십 수 년간 고질적으로 이어져온 폭력의 만연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다 할 수는 있겠으나,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현 정부 집권기에 이전보다 더 많은 피살 건수가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국민들의 입장으로선 도긴개긴의 상황에 다름 아닐 것이다. 집권 1년 반 만에 피살 건수는 이미 5만 4천여 건에 이른다.

마약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마약 최대 소비국인 미국이 바로 위에 붙어 있는 한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존재는 어떤 형태로든 유지될 것이다. 인공 마약까지 등장한 와중이니 코카 생산지를 초토화시키는 방식으로 약화시킬 수 있었던 콜롬비아 카르텔의 경우와는 또 다른 수가 등장한 셈이다.

동영상에 등장한 무장 수준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사실에 모두가 동의하지만, 과연 그 이면의 정도가 어디까지인지는 도무지 가늠이 쉽지 않다. 정상적인 국가에서 벌어지는 이토록 비정상적 상황이라면, 어떤 변명이라도 무색할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여지를 찾자면, 오래 전 어느 대통령이 한탄조로 읊조렸다는, 신으로부터는 너무 멀고 미국과는 너무 가까워 불쌍하다던 멕시코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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