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9 07:36최종 업데이트 20.07.29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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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로또 맞았네!", "어떻게 구했어?" 

베를린에서 9평 원룸을 계약한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독일에서 축하한다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다. 독일인 친구들도 '어떻게 구했냐'고 물어왔다.
 
지난해 8월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에 있는 공공임대 원룸을 계약했다. 너비는 약 30㎡(약 9평). 월세는 전기요금, 인터넷 등 모든 비용을 포함해 400유로가 조금 넘는다. 여러 명이 함께 사는 WG(wohngemeinschaften 공동주택) 방 하나 가격이 기본 월 500유로인 걸 생각하면 저렴한 비용이다.  

월세 인상은 법 규정에 따라 집 유지 관리 비용 증가, 표준임대료 증가 등 합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단순히 집주인의 '돈벌이'를 이유로 월세를 올릴 수는 없다.
 

베를린 공공주택 원룸 입주 직후. 독일에는 이렇게 전등 하나 달려있지 않은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임대료가 비싼 최근 신축 건물은 부엌 옵션이나 인터넷 등이 갖춰진 경우가 많다. ⓒ 이유진

  

독일 임대계약서 일부. '임대계약은 무기한으로 체결된다'를 기본으로, 임대인이 계약해지를 할 수 있는 예외조항이 나와있다. ⓒ 이유진


계약 기간은 무기한. 계약서에 따르면 계약 해지는 △방을 방치하거나 제3자에게 무단으로 양도했을 경우 △이웃의 평온을 해치는 경우 △임대료를 2달 연속 체납 혹은 총 3달 이상 체납했을 때만 가능하다. 그러니까 월세만 꼬박꼬박 내고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이 집에서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뿌리 없이 떠다니는 외국 생활에서 처음으로 땅에 발을 디딘 느낌이었다.

그렇다. 독일의 공공주택과 임대차보호법 덕분이다. 하지만 저렴한 공공주택의 장점을 찬양할 수만은 없다. 이 집을 구하는 일이 "로또 당첨"과 비교될 만큼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 피폐해지는 집 구하기 전쟁

'아, 어디 고시원 없나.'

베를린에서 집을 구하며 매일 들었던 생각이다. 

일단 집을 구할 때 내야 하는 서류를 준비한다. 이력서부터 지난 3개월 치 통장 내역, 은행에서 발급받은 신용 서류, 독일인 친구의 보증 서류, 관청에서 받은 '사회주택 입주 자격증명(Wohnberechtigungsschein)', 내가 바른(?) 사람이며, 월세를 꼬박꼬박 잘 내겠다는 다짐을 담은 편지까지. 준비할 수 있는 서류는 모두 준비했다.

수시로 부동산 홈페이지를 드나들며 새로고침. 아침마다 전화통 붙잡고 방문 신청, 혹은 메일로 신청서 보내기. 언제든 달려나가 지원할 수 있게 서류 뭉치 수십 통 준비. 서베를린 끝에서 동베를린 끝까지 오가며 매물 보기. 바른 복장과 질문할 때 필요한 독일어 미리 연습하기. 

1차 서류를 통과(!)하고 집을 보러 가면 최소 20명이 모여 있었다. 그런 방문 일정이 2~3차례 이어지니 방 하나에 경쟁자 50명은 기본이다. 

수십 번 방을 보고 나면 감이 온다. 이 집은 어차피 안 되겠구나. 개인이나 사기업 매물은 아예 제외했다. 외국인인 단점까지 가진 사람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키워드는 '공공성'. 베를린시 소유의 6개 주택공사 매물에 집중한 이유다. 
   

베를린 공영주택회사 게보박(Gewobag) 커뮤니티 사무실 ⓒ Gewobag

 

베를린 공영주택 게보박 신축 건물. 공영주택이라고 해도 이런 신축 건물은 저렴하지 않다. ⓒ gewobag

 
물론 공공주택 매물은 더 부족하다. 새로 올라온 집을 발견하고 메일을 써서 보내려고 하면 그새 매물이 사라진다. 짧은 순간 신청자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내가 공공주택 원룸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운'이 좋았다는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집을 구하는 동안 길바닥에 쏟은 시간과 개인정보가 담긴 A4용지 수백 장, 삶을 조여오는 괴로움을 되새기면 추억으로 남기고 싶지도 않다. 한국인이든 독일인이든 "그냥 부동산 중개사한테 돈 주고 비싼 집 구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거기나 여기나 돈만 있다면 집 구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 전쟁은 모두의 전쟁이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각자 예산에 맞는 집, 월세가 월 수익의 30%를 넘지 않는 합당한 수준의 집을 구하기 위한 전쟁이다. 

임대료 상한제, 그래도 임대료는 오른다
 

베를린시 표준임대료 기준을 표시한 지도. 빨간색은 거주하기 좋은 구역, 주황색은 중간 구역, 노란색은 단순 구역(그저 그렇다는 뜻)이다. 도로명 및 번지수마다 어떤 구역에 해당하는지 세분화된 리스트가 있다. ⓒ Stadt Berlin

 
독일은 2015년 6월부터 각 도시에서 정한 표준임대료를 기준으로 임대료 인상 제한법(Mietpreisbremse)을 시행하고 있다. 표준임대료는 건설연도, 위치와 소음 수준 등에 따라서 책정된다. 그래도 월세는 오른다. 예외조항 때문이다. 신축 건물의 경우 법 적용을 받지 않고, 리모델링을 근거로 법 적용을 피할 수 있다. 

독일 제1공영방송 채널 '다스에어스테(Das Erste)'는 지난 7월 23일 "임대료 인상 제한법 탓에 임대료가 더 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스에어스테 조사에 따르면 함부르크의 경우 임대용 매물 41%가 법으로 허용된 임대료보다 더 높았다. 하이델베르크는 매물의 87%가 허용치보다 더 높았다. '꼼수 리모델링' 덕분이다.

여기서 리모델링은 화장실, 부엌 설비 교체 등 집의 기본적인 형태와 구조를 바꾸는 것을 의미하지만, 법률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집주인들은 페인트칠만 '쓱' 하고 리모델링을 했다며 월세를 올릴 수 있었다. 다스에어스테는 "법을 피하려는 꼼수 리모델링이 이전보다 더 자주 일어나고 있다"면서 "임대료 인상 제한법이 오히려 저렴한 집들을 체계적으로 없애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이체보넨 등 거대 부동산 기업은 여전히 공격적으로 집을 사들인다. 꼼수 리모델링뿐만 아니라 실제로 고급 주택으로 만들어 거리 일대를 부자 동네로 만든다. 신축 건물은 임대료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으니 아예 건물을 새로 올린다. 자본은 손쉽게 법의 손발을 자른다. 
 

도이체보넨 몰수하라!(Deutsche Wohnen & co enteignen!) 이니셔티브는 지난해부터 3000채 이상을 소유한 부동산 기업의 국영화(Vergesellschaftung)를 위한 주민투표를 준비하고 있다. 주민투표 시행의 1차 조건인 2만 명 서명인단을 모집했는데, 총 7만7000명이 싸인했다. 현재 베를린시의 법적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 dwenteignen.de

 
세입자들의 반란

집 구하기 전쟁터에서 공공주택을 구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운빨'이다. 인간의 기본권인 주거권을 언제까지 운에 맡겨야 하는 걸까. 베를린에서 세입자 반란이 시작된 건 그래서다. 

베를린 시민들은 부동산 기업을 국영화하자며 주민투표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시행된 베를린 임대료 동결 조치도 이러한 운동의 결과다(관련기사: 서울에는 이런 법 안 될까? 부럽다 베를린 http://omn.kr/1mc26). 

'임대료 뚜껑(Mietendeckel)'이라고 불리는 이 법에 따르면 베를린 월세는 2019년 6월 18일 기준 임대료로 동결된다. 물론 합당한 근거가 있는 인상은 가능하다. 2022년 1월부터 매년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수준으로 월세를 올릴 수 있는데 최대 1.3%를 넘어서는 안 되며 법에 명시된 임대료 상한선을 넘어서도 안 된다. 리모델링을 했을 때도 인상할 수 있다. 다만, 앞서 지적된 꼼수를 막기 위해 리모델링 형태를 세세하게 법률에 명시했으며 ㎡당 최대 1유로까지만 인상할 수 있다. 

이 법은 5년짜리 한시적 정책이다. 그마저도 위헌법률심판을 앞두고 있어 미래가 불안하다. 부동산업자들은 위헌 판정을 확신하는 분위기라고. 하지만 세입자들도 쉽게 물러서지는 않는다. 2018년에 열린 '미친 임대료' 시위에 2만 5천 명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4만 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했다. 이어 부동산 기업 몰수 주민투표를 위한 서명에는 7만 7천 명이 참가했다. 지난 6월 20일 코로나 시국에 열린 '미친 임대료' 시위에도 2천여 명이 참가했다. 참가자 수는 줄었지만 코로나로 안정적인 주거권에 대한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세입자들의 단결된 힘과 이들이 일궈내는 성과를 보고 있으면 기업 몰수라는 극단적인 목표도 실현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마저 생긴다.

베를린에서 진짜 배워야 할 것 : 실패
 

25일 오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열린 '소급적용 남발하는 부동산 규제 정책 반대, 전국민 조세 저항운동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2020.7.25 ⓒ 연합뉴스

 
최근 한국의 임대차 3법 관련해 독일의 집값 정책이 자주 언급된다. 한쪽에서는 기본적인 세입자 보호책이라며 찬성의 근거로, 다른 한쪽에서는 임대료는 계속 오르고 집 구하기만 어려워진다며 반대의 근거로 사용한다.   

베를린의 집 이야기를 정리하는 동안 설명하기 어려운 괴리감이 맴돌았다. 이유를 찾다 보니 우리나라에는 싸우는 세입자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임대인, 혹은 미래의 임대인이 시위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모두 '내 집 마련'의 꿈을 가진다. 언젠가 내 집을 구입하고, 악착같이 벌어 한 채를 더 놓고, 임대료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으면 최고의 시나리오다. 부동산은 불안한 사회 안전망에서 나와 내 가족의 삶을 지키는 유일한 희망이 됐다. 

보통의 사람들이 모두 '건물주'를 꿈꾸는 사회에 베를린 정책을 가져다 놓아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건물 없이는 안정적 노후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건물주가 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베를린 동화에서 건질 수 있는 건 그래서 베를린의 실패뿐이다. 지금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임대료 뚜껑을 5년간 닫아놓고 베를린이 뭘 하고 있는지 봐야 한다. 

베를린시는 2004년 재정 부족을 이유로 6만 채 이상을 보유하고 있던 주택공사 GSW를 4억5백만 유로에 매각했다. 세입자를 쫓아내고 럭셔리 아파트로 바꿔버린 GSW는 지금 도이체보넨이 소유하고 있다. 부동산 몰수 운동의 타깃이 되고 있는 바로 그 도이체보넨이다.

베를린시는 지금 공공주택을 확대하기 위해 당시 팔았던 금액의 몇 배를 더 써가며 다시 주택을 매입하는 중이다. 2016년부터 3년간 약 2만 채를 매입했고, 1만 2000채를 신축했다. 베를린 공공주택은 현재 32만 5000채. 2021년 말까지 3만 4000채를 더 확보할 계획이다. 

임대료 폭등을 일단 막아놓고 공공 주택 물량을 늘이는 데 애쓰고 있다. 5년 뒤면 주택 물량이 어느 정도 확보될 것이란 기대에서다.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저렴하고 안정적인 주택 공급은 결국 나라가 해야 할 일이다. 공공주택을 구하는 일이 '로또 당첨'이 아니라 보통의 일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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