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3 07:19최종 업데이트 20.07.23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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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비대면 경제'가 가야 할 길이라고 말한다. 이 판단은 옳을까? 30만 년 인류 역사는 끊임없는 전염병과의 싸움이었으며, 유럽 인구 절반 가까이가 사망한 14세기 흑사병 이래, 홍역, 콜레라, 소아마비, 말라리아, 폐렴, 천연두, 에이즈 등을 겪으면서도 접촉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접촉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소통을 연구하는 커뮤니케이션학자로서, 우리가 코로나 사태에서 놓치고 있을지 모를 몇 가지를 살피고자 한다. [기자말]

ⓒ 픽사베이

 
코로나독감은 이미 다른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더욱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바이러스는 사람뿐 아니라, 사회가 앓는 '기저질환'을 드러내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비대면 산업'이라는 작은 빙산의 밑에 자리한, 거대한 대면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가 그러하다.

한국 사회의 질병은 그저 불안한 고용과 위험한 노동환경만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사회가 대면노동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듯 행동한다는 점이다. 플랫폼 배달, 택배, 콜센터 노동자들은 하루 밥벌이를 위해 바이러스와 사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며, 내일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오늘 증상을 안고 출근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경제의 다리 역할을 맡은 노동자들이 고통 받고 있는데도 이를 보지도,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못한다면 멀쩡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코로나 이후 산업은 비대면으로 갈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들을 보면, 대개 출근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화상회의로 출근을 대신해도 월급 제때 나오고 실직 걱정도 없는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일반적으로 상위 절반의 소득층에서 절반 정도가 재택근무가 가능하지만, 하위 절반 소득층에서 재택근무가 가능한 취업자의 비율은 10% 미만이다. 

'비대면 어쩌구' 하는 소리가 고위 공무원, 기업 임원, 정년 보장받은 교수들에게서 주로 흘러나오는 까닭이 여기 있다. 이런 사람들이 그저 제 행운에 조용히 감사하면 다행이겠으나, 대개는 그런 운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기술의 진화가 이렇게 간다는 둥, 노동의 개념이 저렇게 변한다는 둥 훈계까지 늘어놓길 좋아하니 문제다.

얼마 전 한 시사주간지는 '코로나 뉴노멀'이라는 특집호를 내면서 한 유명 교수에게 '에필로그'를 부탁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인류는 '지금보다 덜 일하고 덜 만나도 사회가 돌아간다'는 것에 놀랐을 것이다… 재택근무 경험은 우리에게 이제 노동이 시간과 장소에 묶인 개념이 아니라 역할과 책임에 좀 더 밀접한 개념임을 깨닫게 했다."

'덜 일하고 덜 만나도 사회가 돌아간다'면 뭐가 걱정이겠는가.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정부가 온갖 대책을 강구하고 있고, 언론사도 부랴부랴 특집호를 기획한 게 아닌가. 위기의 핵심은 일하지 못하고 만날 수 없는 탓에 멈춰버린 실물경제에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허울 아래 급증해온 플랫폼 노동 탓에 사람들은 '덜' 일하기는커녕 '더' 일해도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판이다. 그런데도 앞 교수의 좁은 눈에는 노동이 재택근무로 대체 가능한 일에 한정되며, '시간과 장소'에 예속된 무수한 대면노동자들은 '인류'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플랫폼 노동자만이 아니다. 상점과 백화점의 점원, 식당 조리사, 청소부, 버스와 택시 기사, 설치 기사,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등은 모두 정해진 시간에 맞춰 특정 장소로 이동해야만 밥벌이가 가능한 사람들이다. 취업자 4명 중 1명에 달하는 자영업자들 역시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등 시간과 장소에 구속된 노동을 하며, 이들 다수가 생계를 유지하지 못해 플랫폼 노동으로 옮겨가고 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디지털 그린 뉴딜'도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데이터 댐', '지능형 정부', '스마트 시티', '스마트 의료 인프라' 같은 기술적 수사로 가득 차 있을 뿐, '뉴딜'의 핵심이 돼야 할 저소득층 복지 확대, 기존의 일자리 안정 대책, 새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구체적 방안은 찾아볼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인사말 하고 있다. ⓒ 연합뉴스

 
'4차 산업혁명'에 발목 잡힌 정부

무엇보다 심각한 점은 '디지털 뉴딜'에 노동자, 즉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이 먼저',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표어로 내세운 정부로서는 기이한 누락이 아닐 수 없다.

현 정부의 기술 정책에 사람이 빠져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론'을 정부 간판으로 내세웠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 '4차 산업혁명'은 다보스포럼이 제안한 개념이다. '살찐 고양이들의 모임'으로 불리는 이 민간기구는 고위 기업가와 유력 정치인들을 연결시키며 몸집과 영향력을 키워왔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론은 역사적, 개념적 오류라는 비판과 조롱을 받아왔지만, 더 중요한 점은 이 개념이 유포해온 기술 신자유주의다. (기사: 트럼프, 다보스의 뺨을 후려치다 http://omn.kr/nn7x)

다보스는 '규제로 기술의 발전을 가로막아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펴왔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정부가 최소한의 대책을 마련하면 된다고 한다.

이 논리에서는 사람이 아닌 기술이 상수며, 사람이 변수가 된다. 기술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은 그저 기술에 종속된 '부작용'쯤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물론 4차 산업혁명론이 모든 사람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기술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기업가와 그것을 후원하는 정치인만큼은 특별히 모셔왔으니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실시간 화상으로 연결된 한성숙 네이버 대표의 디지털 뉴딜 관련 발언을 듣고 있다. 2020.7.14 ⓒ 연합뉴스

 
클라우스 슈바프의 '4차산업혁명'은 독일 연방정부가 제안한 '산업 4.0'과 '노동 4.0' 가운데 반쪽만 허술하게 베껴온 개념에 불과하다. 2015년 4월 독일연방 노동사회부(BMAS)는 '21세기 디지털 경제 환경에서 노동의 가치를 보존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1년 반에 걸쳐 사회 각계각층의 토론을 유도하며 의견을 청취했다. 그리고 다양한 견해들을 취합해 2017년 "노동 4.0 백서(Weissbuch)"를 발간해 정책의 지표로 삼았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국가와 존재목적부터 다르다. '노동 4.0'에는 '디지털 뉴딜' 정책의 자문역할을 한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나 네이버의 한성숙 대표의 제안과 달리, 시민사회의 기대와 우려가 담겨 있다. 무엇보다 '노동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사람이 먼저'인 철학이 담겨 있다.
 

한국의 자동화준비지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이는 고용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 ⓒ EIU

 
한국은 이미 자동화 준비 세계 1위

일자리가 줄어들고 삶이 불행한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한국은 이미 2018년 국가 자동화 기술지수에서 독일, 일본,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 '영예'의 순간에도 한국의 고용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을 뿐이다.

한국에 세계 최대의 '데이터 댐'이 구축되고 인공지능 기술까지 세계 제패를 하면 상황이 달라질까? 한국이 구글, 웨이모, 유튜브, 아마존,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회사를 갖게 되면 일자리가 쏟아질까? 이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과 시장을 지닌 미국을 보면 결과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 가계의 중간소득은 지난 10여 년간 하락해서, 인터넷이 처음 등장한 1995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것을 단순히 금융위기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는 불평등이 1990년대 중반부터 심화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첨단 정보산업이 비약적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 상위 10%를 제외한 부의 불평등이 한층 가속화했으며, 2010년대 이후에는 아예 상위 1% 제외한 99%의 부가 추락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경우 디지털 산업의 발전은 도리어 불평등 심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첨단정보산업은 규제를 벗어난 독점사업을 전개하며 부를 축적하지만, 기존 산업에 비해 고용 인원은 매우 적다. ⓒ Equitable Growth

 
이른바 '디지털 혁명'이 불평등의 기제가 된 것은, 적은 사람만을 채용해 소수가 막대한 수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기술이 진화해서 직업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고용을 줄이기 위해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고 채택하며, 이때 정부는 세제혜택까지 주며 고용난을 가속화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곤 한다.
 
한국 정부는 디지털 뉴딜로 일자리 90만 개를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나는 정부의 선의를 알지만, 미디어학자로서 이 수치가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도 안다. 앞에서 언급한 회사-구글, 웨이모, 유튜브, 아마존, 페이북, 트위터-의 직원을 모두 합해도 30만 명이 안 된다. 하루 13억 명이 방문하는 유튜브의 직원이 고작 2천여 명이라는 사실은, '디지털 일자리 창출'이 얼마나 희박한 토대에 서 있는지를 말해준다.
 

정부는 '디지털 그린 뉴딜'로 9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정책의 주요내용이다. ⓒ 대한민국정부

 
종교가 된 '기술혁신'

기술은 이미 정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종교의 차원으로 승화했다. 정당에 대해서도 생각이 다르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해서조차 생각이 갈리지만, 기술혁신은 모두가 따라야 하는 절대선이다. 기술 발전을 늦춘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금기이며, '러다이트(기계파괴운동)'는 과거 '빨갱이' 못지않은 낙인이 됐다.

흥미롭게도 '기술 절대 신앙'은 기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견된다. 만일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기술 속도 조절론'을 말한다면 어떨까? 실제로 그는 2017년 <쿼츠>지와 한 인터뷰에서, 사람 대신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는 회사에 '자동화세'를 매겨 기계 도입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빌 게이츠는 사람들의 삶과 국가의 존속을 위해 기술 발전 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고용을 줄이며 세금을 내지 않는 기계에 '자동화세'를 부과할 것을 제안한다. ⓒ Quartz

 
사람을 고용하면 취업자가 소득세를 내지만, 기계는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국가 경영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기술이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국가 재정까지 거덜 낸다면 대책이 마련되기 전까지 고삐를 죄는 게 당연하다. 2017년 <하버드 법 정책 리뷰>에 실린 "자동화 시대의 조세정책(보겐슈나이더 등)"에서는 기업이 기계를 도입하는 주요 동기가 효율성 향상이 아니라 '절세'임을 지적한다. 아무리 엉성한 기계라도 사람 대신 들여놓으면 인건비뿐 아니라 산업재해나 의료보험 등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세제도 개편을 통해 인력을 줄이며 기계를 들이는 업체의 경우 사람을 뽑는 것 이상의 강도 높은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것이다. 부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고용주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직원은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소비자가 되지만, 기계는 돈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극장이나 패스트푸드점에 갈 때마다 한심한 생각이 든다. 그곳에 설치된 자동 매표기나 주문용 '포스기' 때문이다.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나는 줄을 길게 서더라도 무조건 사람에게 간다. 기계를 쓸 경우 아르바이트생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지만, 소비자로서 불친절하고 별로 똑똑하지도 않은 기계를 쓰는 게 유쾌한 일도 아니다.  

아르바이트생을 줄이면서 기계를 놓는 극장과 식당체인들을 보면서, 코앞의 이익을 좇다가 자멸하는 어리석음을 본다. 생각해 보라. 영화, 팝콘, 햄버거의 주된 소비자층이 누구인가? 기계로 대체되면서 극장과 햄버거에 쓸 돈을 잃는 젊은이들이다.

불행히도, 나는 정부의 '디지털 뉴딜'에서 비슷한 어리석음을 본다. 그 이유를 다음 기사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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