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9 08:10최종 업데이트 20.06.2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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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역 3번출구에서 나오면 보이는 전경 ⓒ 권은비

 
오늘은 동대문에 섰다. 누군가 가장 서울다운 장소를 꼽으라면 나는 동대문 일대를 일순위로 놓을 것이다.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것도 있는 곳이 동대문이다.

이곳은 사방팔방 정처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어도 몇 시간은 헤맬 수 있는 아주 기묘한 장소다. 훈련된 '도시 산책자'라면 응당 길 위에서 충분히 헤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에서 티어가르텐 숲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어떤 도시에서 길을 잘 모른다는 것은 별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마치 숲에서 길을 잃듯이 헤매는 훈련이 필요하다. 헤매는 사람에게 거리의 이름들이 마치 마른 잔가지들이 뚝 부러지는 소리처럼 들려오고, 움푹 패인 산의 분지처럼 시내의 골목들이 그에게 하루의 시간 변화를 분명히 알려줄 정도가 되어야 도시를 헤맨다고 말할 수 있다."
 
1900년경의 티어가르텐 숲이 발터 벤야민에게 일종의 사유의 숲으로 존재했다면, 2020년 동대문은 철근콘크리트로 이뤄진 도시의 숲이다. 발터 벤야민 식으로 동대문에 대해 서술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동대문에서 길을 잘 모른다는 것은 별일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길을 잃듯이 헤매는 훈련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헤매는 사람에게 거리의 이름들이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처럼 들려오고, 골목길 사람들의 고단한 표정으로 하루의 시간 변화를 분명히 알려줄 도시가 바로 동대문이다.
 
그러므로 도시 산책은 현대 도시인이 잘못된 길로 가거나 길을 잃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애초에 잘못된 길은 없다. 길을 잃을수록 새로운 도시의 발견은 가능하다.
 
이주노동자의 에베레스트, 한국

종로5가에서 동대문종합시장 방향으로 걷다보면 각종 등산 장비와 등산복을 판매하는 가게들을 볼 수 있다. 어느 등산가가 신성한 꿈의 산이라고 부르는 에베레스트 산자락을 담은 사진이 상점 안에 걸려 있다.

그곳으로부터 벗어나 조선의 사대문 중 하나인 흥인지문을 지나면 또 다른 '에베레스트'가 있다. 상상력만 있다면 이 구간을 걸으며 현재에서 과거 조선으로, 조선에서 네팔로 시공간 여행이 가능하다.

흥인지문과 조선의 성벽을 지나면 동대문역 3번 출구 방향에 일명 '네팔타운'이 자리잡고 있다. 네팔 식자재를 파는 가게부터 네팔의 명산인 에베레스트의 이름을 딴 커리 음식점들의 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동대문 네팔타운의 한 식당에 네팔국기가 걸려있다 ⓒ 권은비

 
어느 네팔 음식점 간판 옆에 걸린 빛바랜 네팔 국기를 보니, 한국에서 스스로 자신의 숨을 끊었다는 네팔 노동자의 소식이 담긴 기사가 떠올랐다. 네팔 사람들은 나름의 꿈을 안고 낯선 나라의 노동자로 살아가지만, 해마다 사망자가 늘어난다고 한다. 그들의 사망 이유 중 자살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가 한국이라는 기사 내용이었다.
 
'We didn't come here to die(우린 죽으러 오지 않았다).'

언젠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인근에서 열린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문화제' 당시, 이주노동자들이 들었던 피켓의 구호가 생각났다. 오랫동안 이주노동자들에게 '현대판 노예제'로 불려온 고용허가제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현재까지도 비현실적인 대안만 내놓고 있다는 기사도 떠올랐다.
 
그러다 몇 해 전 한국 정부로부터 강제 추방당한 이주노동자의 이름 하나가 생각났다.

미노드 목탄. 일명 '미누'.
 
1992년 한국으로 온 1세대 이주노동자 미누의 빛나는 생을 내가 마주한 건, 지난 5월 27일 개봉한 지혜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안녕, 미누>를 통해서였다. 목포의 어느 식당, 봉제공장, 김치공장, 가스벨브 공장 등 여러 노동 현장을 거치며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을 누구보다 열심히 했던 그는 2018년 돌연 생을 마감한다.

네팔타운에서 중앙아시아 거리로
 

미노드 목탄, 일명 '미누'는 스탑크랙다운의 보컬이었다. 사진은 <안녕, 미누> 스틸컷. ⓒ 영화사 풀 , (주)영화사 친구

 
나는 동대문 '네팔타운'에서 광희동 '중앙아시아 거리'로 향하는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이어폰을 꼈다. 미누가 리더로 활동했던 밴드 '스탑크랙다운'(Stop Crackdown, 단속을 멈춰라)의 노래 '손무덤'을 듣기 위해서였다.
 
피 쏟는 잘린 손목을 싸안고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에 갔네
사장 좋은 차는 작업복 나를 싫어해
사장 하얀 손 기름 묻은 나를 싫어해
 
기계 사이에 끼어 팔딱이는 손을
비닐봉지에 싸서 품에 넣고서
화사한 봄빛이 흐르는 행복한 거리를
나는 미친놈처럼 한없이 헤매 다녔지
 
프레스로 싹둑 싹둑 잘린 손을
눈물로 묻어 버리고
일하는 손들이 기쁨의 손짓으로
살아날 때까지
눈물로 묻었네 눈물로 묻었네
 
품속에 든 손은 싸늘히 식었어
푸르뎅뎅한 그 손을 소주에 씻어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었네
노동자의 피땀을 위해서
 
노래를 듣는 동안 내 옆에 무거워 보이는 짐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청년이 섰다. 그는 방진용 마스크를 쓴 채 나와는 다른 모국어로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파란불이 켜지자 나도, 그도 정면을 향해 걸었다. 짧은 찰나, 그는 동대문의 어느 미로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스탑크랙다운의 노래를 들으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니 흥인지문 뒤로 빼곡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보인다. 그곳은 마치 하나의 철근콘크리트로 이뤄진 에베리스트산처럼 보였다. 이주노동자에게 대한민국은 한순간 숨이 끊길 수도 있는 험한 노동의 산이 아닐까. 이 산은 이름도, 육신도 기억되지 못한 채 생을 마친 노동자들을 기반으로 우뚝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어디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동대문에서 기꺼이 길을 잃고자 했으나, 나는 어느 순간 생각의 길 또한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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