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9 08:03최종 업데이트 20.06.0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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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앞 흑인사망 항의 시위 지난 6일(현지시간) 오후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백악관 앞에 설치된 철조망을 등지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미니애폴리스의 경찰 데릭 쇼빈은 흑인 남성인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8분 46초 동안 짓누르는 과잉진압을 했다. 그리고 숨을 쉴 수 없다는 플로이드의 호소는 결국 그의 유언이 되었다. 이 모든 상황은 영상으로 녹화되어 SNS에 공개되었고 분노한 사람들은 거리로 나섰다. 사실 이 시위의 양상은 지금도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고 워낙 많은 대중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기에 몇 가지 단편적인 장면들만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의 위험이 있다.

하지만 몇몇 국내 언론들은 미니애폴리스의 경찰서가 불타고 시위대가 경찰차를 향해 돌을 던지는 모습을 부각시키며 '폭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이런 식의 기사에는 어김없이 다음과 같은 댓글들이 달리곤 했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사용해선 안 된다."
"모든 집회는 평화롭게 진행되어야 한다."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고 이들이 '소요'를 일으킨다는 식의 이야기들은 마치 그 전의 미국 사회가 안전했고 공정한 질서가 있었다는 것처럼 들린다. 공동체가 조용하고 평화롭게 잘 굴러가고 있었는데 '폭동'이 일어나 '혼란'에 빠졌다는 식이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슬프게도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은 예외적이거나 특수한 사건이 아니었다. 이미 2014년에도 에릭 가너라는 흑인 남성이 경찰의 목 누르기 진압으로 사망한 적이 있었다. 그의 마지막 말도 역시 '숨을 쉴 수가 없어요'였다. 다음 해에는 신시내티의 경찰 레이 텐싱은 비무장 상태로 차를 운전하던 흑인 청년 샘 듀보스의 차를 멈추게 한 뒤 그를 사살했다. 바로 그 전해에도 젊은 흑인 남성인 마이클 브라운이 비무장 상태에서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유독 흑인에게 적대적인 공권력
 

백인 총격에 숨진 흑인청년 추모하는 미국 남성 지난 5월 8일 미국 조지아주 브런즈윅에서 조깅하다 숨진 흑인 청년 아흐마우드 엘버리를 추모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있다. 한 시민이 "저는 조깅 중입니다, 쏘지 마세요"라고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 EPA=연합뉴스


이러한 사건들은 인터넷을 오래 뒤지지 않아도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매우 만연하다.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과 이로 인한 사망사건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살인의 주체가 공권력이 아닌 경우로 넓혀보면 상황은 더 암담하다.

2012년 조지 짐머만은 비무장 상태의 흑인 청소년 트레이번 마틴을 쫓아가 몸싸움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마틴을 사살했다. 짐머만은 법정에서 자신은 마틴이 범죄자라 의심해 그런 일을 저질렀으며 총은 몸싸움의 과정에서 자기방어를 위해 발포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는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무죄로 풀려났다. 올해 5월에도 흑인 남성인 아무드 아버리가 조깅을 하던 중 단지 범죄자로 의심된다는 이유로 백인 남성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 남성들 역시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무죄방면 되었다.

미국 사회가 흑인에게 전혀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흑인들은 공동체에서 위험한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 에바 두버네이 감독의 영화 <미국 수정헌법 제13조>는 이 역사를 탁월하게 정리한다. 가령 백인우월주의자 조직인 KKK단을 미화해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영화 <국가의 탄생>은 백인 여성을 성폭행하려는 흑인 캐릭터를 등장시켰으며, 영화가 큰 인기를 얻으며 하나의 현상이 되자 '약탈자 흑인'의 이미지는 더욱 단단하게 굳어졌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사냥을 피해 흑인들이 북부로 대규모 이주를 하던 바로 그 시절에 말이다.

닉슨 대통령이 반전주의자와 흑인들을 탄압하기 위해 '마약과의 전쟁'을 펼쳤다는 사실도 유명하다. 2016년 작가 댄 바움은 하퍼스 매거진에 실린 기사에 닉슨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댄 에릭먼과 진행했던 인터뷰를 인용했는데, 이 인터뷰에서 에릭먼은 '반전이나 흑인을 불법이라 할 수 없지만 대마초를 피우는 히피와 마리화나를 하는 흑인을 엄중히 처벌해서 둘 다 무너뜨릴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또한 그는 흑인들의 모임을 해체하고 매일 뉴스에서 이들을 비방하는 게 목표였다고도 말했다.

어쨌거나 에릭먼의 의도대로 매일 밤 체포되어 경찰차에 오르는 흑인들의 모습은 미디어에 아주 자극적인 방식으로 보도되었고 '범죄'는 흑인에게 강하게 결부된 꼬리표가 되었다. 그 결과 흑인들이 범죄자로 의심받는 경향은 더욱 강해졌는데, 예를 들어 2017년에 발표된 뉴욕 경찰에 대한 연방 감찰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불심검문을 받은 사람 중 흑인은 53%를 차지했지만 백인은 11%였다고 한다. 흑인은 백인보다 몸수색을 당할 확률이 더 높았는데 역설적이게도 무기를 소지한 사람은 백인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것은 누구의 평화였는가
 

6일(미국 현지시각) 워싱턴D.C.에서 열린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인종차별 반대집회 모습. ⓒ 연합뉴스=UPI


공권력으로부터 보호는커녕 공격을 받고, 목숨을 잃는 순간에도 공정한 사법적 판단을 얻을 수 없으며 그럼에도 거꾸로 약탈자나 범죄자라 집단적으로 비하되는 상황, 이것이 미국계 흑인들이 처한 현실이다. 심지어 지나치게 높은 흑인 수감자 수와 비율, 이외의 경제적·사회문화적 차별을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다.

여기까지 살피면 의구심이 생긴다. 만일 조지 플루이드의 죽음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평화가 깨졌다면 그것은 누구의 평화였는가. 이들이 공동체에 혼란을 야기했다면 거꾸로 혼란스럽지 않았던 사회는 누구의 것이었는가. 시위대가 등장하고 이제야 소요와 폭력을 목격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체 그들은 누구인가. 

나는 '이 집회는 폭력적인가 평화적인가, 이것은 시위인가 폭동인가'를 이야기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질문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저런 식의 구분은 누가 할 수 있는가'이다. 대규모 군중이 모이고 이들이 경찰과 충돌할 때서야 세상이 시끄럽다는 것을 알고, 경찰서가 불에 타고 경찰차가 파손될 때서야 사회가 위험함을 느끼고, 그래서 시위대가 최소한 온건하게 굴거나 물러가서 사회가 조용해지길 바라는 사람들, 아마 그들은 이전의 미국이 너무도 안전했고 공정했던 백인 기득권층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작금의 사태를 앞에 놓고 폭동과 평화시위를 구분하며, 미국이 소요와 혼란에 휩싸였다고 말하는 이들이 누구의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는지도 알 수 있다. 바로 백인의 시선이다. '법과 질서(Law&Order)'를 외친 대통령은 트럼프가 처음이 아니다. 반전 운동과 흑인 민권 운동에 적대적이었던 닉슨과 레이건 대통령도 공공연히 이 표현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 법과 질서가 주로 누구를 지켜왔으며 누구를 소외시켰는가.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에 맞서 'All Lives Matter(모든 생명이 중요하다)'를 주장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후자의 구호는 미국계 흑인들이 집단 학살과 사냥, 공권력에 의한 살인, 혐오 범죄에 시달린 역사를 무시할 수 있거나 혹은 그래도 괜찮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혹은 그렇게 함으로써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거나. 'All Lives Matter'는 '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가 등장한 맥락을 소거해버리는데, 그 맥락이 노예제 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져온 착취와 차별, 폭력과 살해의 역사라면 이건 사실상 역사 부정 수준의 표현이 아닌가.  

어떤 사건이든 공정한 감각을 가지고 바라보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기울어진 위치에 서 있다면 그러한 노력은 필연적으로 헛수고로 돌아가고 상황에 대한 명확한 판단은 더욱 요원해져간다. 어느 사회건 소수자와 약자의 입장, 위치, 사연은 묻혀 있기 마련이다. 지금은 성급한 판단을 내릴 때가 아니다. 베일을 들쳐 드러나지 않았던 현실을 살펴볼 때다. 그 이후에 지금의 시위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전혀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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