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8 19:50최종 업데이트 20.04.29 10:25
  • 본문듣기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 녹색전환연구소

 
라이더유니온 조합원이 화가 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노동단체 행사에 갔다가 라이더유니온 이야기가 나왔는데, 모 단체의 대표가 '거기 위원장 돈만 밝히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단다. 토론회 참석을 내게 제안하면서 20만 원을 준다고 했는데 그 돈이 적다고 참석하지 않았다는 거다.

뜻만 맞으면 공짜로 가는 경우가 많고, 전체 시장가격을 낮춰서 미안한 일이지만 20만 원이면 거절은커녕 열일 제쳐두고 갈 금액이다. 돈 한 푼 안 나오는 노조 일정과 겹쳐서 거절했는데, 아마도 페이를 내 쪽에서 먼저 물어봐서 생긴 오해였을 거다.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그 대표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월급 없이 활동하는 공익활동가들에게 행사 참석에 대한 페이 여부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그래도 먼저 금액을 묻는 건 아직도 영 어색한 일이다. 돈 없는 단체가 개최하는 행사에는 아예 페이를 묻지 않고 가는데, 기대하지 않던 문화상품권 3만 원이라도 쥐어주면 입이 찢어져서 돌아온다.

시간과 돈 써서 통화해도 남는 게 없다면...

토론회나 인터뷰에 페이가 있냐고 묻는 습관이 생긴 것은 라이더유니온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다. 배달산업구조가 워낙 복잡하다보니 기자 분들이 산업구조에 대해 묻는 경우가 많았다. 제때 전화를 받으면 다행이지만 부재중 찍힌 걸 보고 내 쪽에서 전화를 걸 경우에는 꽤나 부담스럽다. 100분 무료통화 옵션이 있는 알뜰폰 요금제를 쓰기 때문이다.

한 번은 1시간 넘게 통화를 한 기자가 기사를 출고했는데 라이더유니온 단어 하나 쓰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준비한 질문지를 읽어서 나도 정신없이 대답을 해줬더니 급하게 끊어버리는 이도 있었다. 라이더들이 다음 배달이 밀려 있어 손님에게 급하게 물건을 던지듯 전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손님의 심정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K신문사 기자라고 밝힌 한 청년은 말도 안 되는 질문을 계속하길래 기초적인 정보를 검색 후 다시 전화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입사시험 중인데 제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한마디만 해주면 안 되냐고 했다. 이 정도면 기자 사칭이 아닐까 싶지만 절박한 심정이 이해가 되어 라이더유니온은 기사에 절대 쓰지 말라 하고 넘어갔다. 급하다고 해서 내가 쓴 참고자료를 줬더니 출처를 밝히지 않고 그대로 기사를 써버리는 분들도 있었다.

기자뿐만은 아니다. 실태조사나 연구 사업에 인터뷰에 들어가는 비용은 전혀 책정하지 않고서는 1시간 넘게 이야기만 듣고 가는 분들도 있었다. 내게 전화를 걸었다가 '싸가지' 없다고 느끼신 분들이 있다면 이런 사정들을 널리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물론, 이런 언론인터뷰와 연구사업에 참여하게 되면 나에게도 큰 이익이 있다. 사회적으로 알려지면서 강연 요청이나 기고 요청들이 들어오기도 한다. 이를 통해 유·무형의 이득을 얻기도 하니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찾아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일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보상조차 안 되나?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 배달노동자들 라이더유니온 출범 1일 오후 여의도에서 열린 '라이더유니온 출범 총회'에 참석한 배달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 '배달보험료 현실화' '산재 유급휴일 실업급여 보장' 등이 적힌 조끼를 입고 광화문네거리에서 고용노동청을 향해 오토바이 행진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그러나 조합원들은 다르다. 가끔씩 배달라이더의 현실을 취재하고 싶다며 조합원 소개를 부탁받는다. 불행히도 한 번 해보신 분들은, 보통 다시는 하지 않는다. 간단하게 끝나는 촬영은 거의 없고 일하는 모습을 찍기 위해 설정을 요구하거나 현장의 상황을 꼬치꼬치 물어보기 때문이다.

시간이 돈인 배달 라이더들은 촬영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하니 손해를 입는다. 게다가 일을 하는 과정을 찍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손님들과 식당주인, 회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쓰인다. 배달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찍기 위해 가까이 따라붙은 촬영 팀을 손님이 발견하고 회사에 항의 전화를 한 적도 있었다.

우리 조합원들은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얻는 이득보다는 위험이 더 크다. 그럼에도 노조를 믿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촬영에 협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내용이 잘 나가면 괜찮지만, 라이더들의 고충을 보도하기 위해 찍어놓았던 조합원 영상을, 성범죄 뉴스 자료화면으로 재활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부터는 조합에서 먼저 언론사와 연구기관들에 인터뷰 취지와 페이 유무를 글로 남겨달라고 요청한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이럴 때 페이가 없다고 답한다. 뉴스는 공공적 성격이 있고 돈을 주면 인터뷰의 객관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일리 있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돈을 주고 인터뷰이를 사는 것은 취재윤리에 어긋날 테니까. 그러나 이 주장은 인터뷰비가 수백만 원에 이를 때나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일을 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보상과 차비 정도의 금액에 자신의 양심을 팔아서 거짓된 증언을 할 사람은 없다.

게다가 언론사는 기업의 광고를 받고 운영되는 곳이다. 몇몇 인터넷 언론사들은 클릭수를 늘리기 위해 제목장사를 하기도 한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나 실태조사나 연구보고서를 만드는 사람들은 월급을 받고 자기 일을 하지만, 인터뷰를 당하는 이는 무급으로 뉴스라는 상품서비스를 만들거나 연구 자료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이것은 왜 공짜여야 할까? 심지어 페이가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하고, 종종 기분 나빠해야 하는 걸까?

물론 모든 활동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대부분의 공익활동은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다. 심지어 노조 조합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돈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조합비와 회비를 내면서 활동을 한다. 거리가 더러워지면 치우고, 눈이 오면 제설작업을 하는 부지런한 이웃들, 정부의 코로나19위생수칙을 준수하고 올바른 정보들을 퍼 나르는 국민들의 활동도 마찬가지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고 헌신하는 연대의 정신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이 자발적인 연대와 참여의 가치가 타인의 노동을 공짜로 사용하는 명분으로 사용된다면, 공동체는커녕 서로를 믿을 수 없는 각자도생의 지옥으로 이끌 것이다. 정당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만드는 행위다.

'공짜 말하기'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지난주 금요일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사무실을 방문했다. 1%이자로 공익활동가들에게 대출을 해주는 사업에 지원을 했는데 최종적으로 대출이 이루어지려면 대출약정서를 작성하고 대출교육을 받아야 했다. 교육을 진행하시는 분이 글쎄, 평일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다며 정말 적은 금액이지만 거마비를 지급해드리겠다고 했다. 1% 대출에 교육 참가비까지 챙겨주다니 뭐 이런 곳이 다 있나 싶다. 그날 저녁 3만원이 통장에 들어왔다. 공동체에 대한 믿음, 공공적 활동에 대한 믿음은 우습게도 단돈 3만원, 나의 시간과 노동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나오는 법이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여유가 있어 보이는 주변의 지인들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조금의 돈이라도 드릴려고 노력하지만 여력이 안 되면 안면몰수하고 양해를 구한다. 그러나 이 부분을 계속 방치하면 공익활동의 지속가능성은 물론 우리 사회의 다양성, 특히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사라질 것이다. 공적인 말하기가 계속해서 공짜로 취급받는다면, 시간적 물리적으로 여유가 있는 대학교수, 전문직, 사장님, 직업정치인들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질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책'이라는 잘 팔릴 것 같지는 않지만,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잡지가 있다. 여기에 글을 기고하면 원고료로 쌀을 준다. 없어도 될 쌀이지만, 내 노동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전해져 내가 쓴 글이 아깝지 않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들의 글과 말이 밥이 되어 돌아올 때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민주주의도 풍부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박정훈기자는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입니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